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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 그 30년 후의 이야기 - 심리치료는 과연 내담자들의 인생을 변화시키는가?
로버트 U. 아케렛 지음, 이길태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전 목차를 보면 ‘이런 망상이 가능한가’싶은 환자들이 등장한다. 자신이 스페인 백작부인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북극곰을 사랑한 남자이다. 비유적으로 지은 소설 제목같다. 이런 망상을 어떻게 치료할지 가늠도 가지 않는다.
이 책은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 정신과 치험례를 엮은 책은 치료 종료와 멀지 않은 미래까지만 다룬다. 궁금하지만 환자의 그 다음 인생은 어떤지 잘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35년 전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 본다. 5명의 환자가 등장하며, 35년 후 찾아가서 그들이 살고 있는 모습, 과거 치료 과정 회상을 보여준다.
5명의 환자는 모두 애정과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다. 그 뒤에 도사리는 것은 부모의 잘못된 양육이다. 부모와 향후 자식의 애정 생활이 아주 밀접하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절실히 느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강압적으로 고집한 태도나 행동이 자식에게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3번째 사례에 해당하는 남자와 그 부모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그런 악마같은 엄마가 있을 수 있는지? 아들을 망가뜨려서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데 쾌감이 있는 듯했다.)
저자 로버트 아케렛의 말처럼, 꼭 정해진 매뉴얼로 흘러가는 치료가 아닌, 상황에 따른 직감이 필요한 예술이다. 북극곰을 사랑한 남자의 상담을 위해서는, 북극곰에 대한 사랑을 부정할 경우 치료가 중단될 수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상담받는 남자와 북극곰과 커플 상담을 하기도 한다. 자신이 스페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환자는 이 망상을 버리게 하지는 못하고, 이상행동만 바로 잡아줬다. 나르시즘이 심한 환자는 현실의 문제로 나르시즘이 꺽일 때까지 몇 달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화내고, 울고, 비난하고, 유혹하는 환자들에게 끌려가지 않고, 객관적인 분석과 관조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부분이 정말 인상깊고 재미있었다.
35년 후, 환자들은 대체로 치료효과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사람의 삶이니 만큼 동화처럼 완벽해 보이는 해결이 안 된 경우도 있었다. (북극곰 남자는 북극곰에 대한 사랑을 꺽는 것을 배운 뒤,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도 잃어버렸다고 한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으므로, 내담자들의 삶의 변화에 상담이 전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 어렵다. 황당한 자신의 망상을 가지고 새로운 삶에 도전해 성공적인 삶을 산 내담자도 있다. 저자는 심리 치료를 기점으로 고통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삶을 보람있게 가꿔간 내담자들에게 자신의 서사시의 영웅들이라고 이야기 한다. 내담자뿐만 아니라 치료자의 고민과 내면도 볼 수 있어 내용이 더 풍부한 책이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고통을 겪는 내담자를 보며 어린 시절에 처했던 상황이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살갗에 닿게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또한 각 내담자가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사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고, 생기가 넘치는 놀라운 존재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덧붙여 심리학에 대한 흥미를 높아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