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적게 잡아도 50만, 어쩌면 100만 명이 ‘빨갱이’라는, ‘반동’이라는 손가락질 하나로, 심지어 그런 가족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모든 학살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학살은 괜찮고 어떤 학살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모든 학살은 다 나쁜 것이다. 설혹 빨갱이라 할지라도 그가 민간인이라면 국가권력이나 국가의 비호를 받는 무장집단이 한국전쟁 전후의 빨갱이사냥처럼 그런 식으로 마구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연좌제와 국가보안법의 그늘 아래 빨갱이 자식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가야 했던 유가족들의 이야기야 어찌 무딘 필치로 제한된 지면에 담을 수 있으랴. 이 땅에 살기 위해 부모를 처형한 우익반공단체의 열성 간부가 된 아들의 심경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한국 현대사에는 두 가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가 있었다. 하나는 친일파 청산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민간인 학살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은 서로 분리된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상호 관련되어 있다 함은 친일세력이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나 지원자로 등장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에서 최대규모의 학살인 보도연맹원 집단처형, 크고 작은 집단학살을 숱하게 낳은 ‘공비토벌’ 전술, 그리고 학살의 주체로 등장한 군과 경찰, 청년단에서는 일제의 잔재가 짙게 묻어난다.

더불어 사는 사회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나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 어딘가 부족하고 힘없는 사람들, 소수자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에서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또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빨갱이, 공산주의자라는 등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너무나 일상화 되어 있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있음에도 이 나쁜 버릇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민주화의 진전과 시민사회의 성장에 따라 수구세력들의 위기감이 진전되면서 이 나쁜 버릇이 오히려 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동학농민군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하고, 그들을 난에 이르게까지 한 학정을 더 매섭게 비난한 사람이 이건창이다. 창강 김택영(滄江 金澤榮)이 고려와 조선 천년을 통해 아홉 사람의 문장가를 꼽았을 때 그 마지막을 장식한 이가 바로 이건창이었다. 그는 조선 후기 사상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강화학파의 중심인물이기도 했다.

황현은 시골 선비라 차별을 받아 과거에 떨어지고 생원시에 장원급제하여 부모의 원을 풀었으나 도무지 벼슬길에 나갈 마음이 없었다. 도깨비 나라의 미친놈들 속에 들어가 미친 도깨비가 되라 하느냐며 황현은 초야에 남았다.

"그대 홀로 누운 것 서러워 마소, 살아서도 그대는 혼자가 아니었던가."(無庸悲獨臥 在日已離群)

고향에 돌아온 황현에게 끝내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는 아편을 준비했다. 그 밤 조선의 마지막 대시인인 황현은 절명시(絶命詩)를 짓는다.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옛일을 생각하니, 지식인이 된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로다."(秋燈俺券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몇 해 전 첫 손자를 보았을 때 갓난아이에게 글 아는 사람이 되어라 하고 축원해 주었던 그 황현이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석영(李石榮), 이회영(李會榮), 이시영(李始榮) 형제들. 모두 판서의 자제로 한 분은 양자로 가서 영의정의 아들이요, 한 분은 고종의 측근이요, 다른 한 분은 영의정 김홍집의 사위였다.

그 6형제가 지금으로 치면 재벌 부럽지 않을 많은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로 가 독립운동의 길에 나섰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밴댕이 소갈딱지보다 더 속좁은 우리 사회는 통일을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남쪽의 ‘관제 주사파’에 대해 수구세력은 호들갑을 떨지만, 우리가 함께 통일을 이루려 하는 이북에는 철두철미한 주사파가 2천만 명이나 있다.

친일파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민족 대 반민족의 대립구도를 이념이라는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좌우대립의 구도로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진정 통일을 원한다면 북은 남을 고무·찬양해야 하고 남은 북을 고무·찬양해야 한다. 북은 남이 거둔 물질적 성과를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로 찬양해야 한다. 남은 또 북이 큰 나라들에 대해 큰소리쳐온 역사를 연개소문 죽고 처음이라고 부추겨주어야 한다.

요즈음도 연좌제란 말을 많이 쓰는데 한자로는 緣坐制와 連坐制 두 가지가 혼용되다가 요즈음은 連坐制로 굳어져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緣坐라 함은 혈연관계로 인해 당사자가 아닌 친족들이 처벌받는 것이고, 連坐는 스승과 제자, 친구 등 비혈연적 관계에 의해, 또는 다른 관리의 문제에 연대책임을 지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분명히 지적한 바와 같이 이는 잘못된 것이다. 원래 3족이란 3대에 걸친 친족으로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인 조족(祖族), 형제와 그 소생인 부족(父族), 그리고 본인의 아들 및 손자를 가리키는 기족(己族)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법률체계의 모법이 되는 『대명률직해』나 『경국대전』을 비롯한 각종 법전에서 연좌제의 적용을 받는 친족의 범위도 친가, 외가, 처가의 3족이 아니라, 조족, 부족, 기족의 3족으로 국한되어 있다.

아끼던 김일성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화성의숙에서 중퇴하려 하자 최동오는 몹시 노여워하였지만, 결국 "조선을 독립시키는 주의라면 나는 민족주의건 공산주의건 상관하지 않겠네. 아무튼 꼭 성공하게"라며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운동권‘의 반미와 청소년, 네티즌들의 반미는 그렇게 만나고 있었다. 아직까지 미군보고 당장 나가라고 하는 사람은 그 엄청난 촛불의 바다에서도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따위로 하려면 나가라‘는 점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어머님, 아버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습니다"를 외칠 때 우리는 서로 반미냐 미국 반대냐를 따지지 않았다. 호들갑을 떠는 수구세력에 하나가 되어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라고 모두 외치는 듯했다.

『임진왜란과 한중관계』의 저자인 한명기 교수는 재조지은을 강조할수록 당시 권위가 실추된 선조나 대신들은 어려운 입장이 다소나마 완화될 수 있었다고 그 정치적 의미를 분석했다.

즉, "위기를 극복해낸 공로의 대부분을 명군의 것으로 돌리고, 나아가 명군을 불러온 주체가 자신들임을 부각함으로써 전쟁 초반의 연이은 패배 때문에 실추된 권위를 어느 정도 만회할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조지은을 강조하면 이순신이나 권율 같이 정규군을 이끈 명장들이나 김덕령(金德齡), 곽재우(郭再祐) 등 의병을 이끈 진짜 구국영웅들의 역할과 의미는 축소되고, 명군을 불러들인 조정 신료들이나 왕을 호종한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이 강화된다.

실제로 임진왜란이 끝난 뒤 전공을 세운 사람들을 공신으로 봉한 선무공신(宣武功臣)에는 이순신·권율 등 18명만이 책봉되었는데 그나마 의병장은 단 한 명도 끼지 못했다.

반면 선조를 따라 의주까지 도망가서 명나라에 파병을 청해 불러들인 공로로 정곤수(鄭崑壽)를 일등공신에 봉한 것을 필두로 무려 86명이 공신이 되었다.

명군의 노략질이 오죽했으면 민중 사이에 왜군이 얼레빗이라면 명군은 참빗이라는 말까지 돌았을까? 명군의 행패가 심해지자 민심의 이반은 극에 달해 "어찌하여 왜적이 오지 않아 이런 고통을 겪게 하는가?"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였다.

임재해 교수는 당시 민중은 "대국과 소국 간의 종속관계란 혈연의 친연성이나 혈맹관계 운운으로 호혜평등의 원칙에 의한 선린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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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모든 방법이 동원된 한국전쟁

참으로 죽이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때려죽이는 타살(打殺), 구살(毆殺), 주먹으로 쳐죽이는 박살(搏殺),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박살(撲殺), 격살(擊殺), 쏘아죽이는 사살(射殺), 총살(銃殺), 포살(砲殺), 칼로 찌르거나 베어죽이는 자살(刺殺), 찢어죽이는 육살(戮殺), 육시(戮屍), 생매장해 죽이는 갱살(坑殺), 바퀴로 치어죽이는 역살(轢殺), 단근질해 죽이는 낙살(烙殺), 밟아죽이는 답살(踏殺), 깔아죽이는 압살(壓殺), 독을 먹여죽이는 독살(毒殺), 껍데기를 벗겨죽이는 박살(剝殺), 끓는 물에 삶아죽이는 팽살(烹殺), 불에 태워죽이는 분살(焚殺), 소살(燒殺), 베어죽이는 참살(斬殺), 여기서도 머리를 베어죽이는 참수(斬首), 허리를 끊어죽이는 요참(腰斬)이 있다. 또 물에 빠뜨려 죽이는 익살(溺殺), 수장(水葬), 잡아죽이는 포살(捕殺), 굶겨죽이는 아살(餓殺), 목졸라 죽이는 교살(絞殺), 액살(縊殺), 채찍질하여 때려죽이는 추살(捶殺), 철퇴로 쳐죽이는 추살(鎚殺), 몽둥이로 쳐죽이는 추살(椎殺), 발로 차죽이는 축살(蹴殺), 높은 데서 내던져 죽이는 척살(擲殺), 곤장으로 때려죽이는 장살(杖殺), 폭탄을 터뜨려 죽이는 폭살(爆殺), 기둥에 묶고 창으로 찔러죽이는 책살(磔殺), 꾀어내어 죽이는 유살(誘殺), 죽일 사람이 없을 때 가족 등 다른 사람을 대신 죽이는 대살(代殺) 등 인류의 역사에 있었던 사람 죽이는 방법이 모두 동원된 것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현실이었다.

죽이는 방법도 가지가지고, 학살이 일어난 곳도 전국 방방곡곡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문자 그대로 죽은 자들의 뼈도 못 추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사 1 | 한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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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단일민족의 신화가 널리 퍼져 있다. 1960, 70년대에 비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우리 사회의 성원 모두가 ‘단군 할아버지’ 자손이라는 말은 아직도 흔히 들을 수 있다. 과연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라는 한 분의 조상으로부터 퍼져나와 혈연적으로 연결된 단일민족일까?

‘단군 할아버지’라는 한 분의 조상에서 오늘날의 한국인이 모두 퍼져나왔다는 것은 극단적 민족주의와 부계 혈통주의가 결합된 아주 난폭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뻗어나온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이 처음 출현한 것은 우리 역사에서 아무리 올려잡아도 한말 이상 거슬러올라갈 수 없고, 이런 의식이 전 국민적으로 보편화된 것은 좀더 세밀히 연구해 보아야겠지만 신분제와 신분의식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한국전쟁을 거쳐 1960년대 들어와서일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한국말은 "때리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우리도 사람이에요"라고 한다. 여기에 "월급은 왜 안 줘요?" 같은 말들이 실제로 이들이 사용하는 한국어 교재에 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단일민족국가 한국의 현실이다.

국회의원으로서의 김두한은 뉴스 메이커이자 트러블 메이커였다. 정책 입안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자유당 시절 국회에서 이승만을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두목으로 몰아붙인 유일한 인물이었다.

김두한이 이승만을 친일파 두목으로 비판한 것이 말인즉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정작 이승만이 두목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온갖 파괴공작을 일삼은 자신의 행동을 비판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유족들은 호소한다. 학살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부디 이 땅의 풀 한 포기 함부로 밟지 말아 달라고.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가족들을 가진 이들에게는 온 국토가 그들의 무덤이라고. 온 국토에 학살의 흔적이 널려 있고, 현대사의 거의 모든 사건이 학살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디로 도망칠 수 있을까?

흔히 ‘유격대국가’라고 불리는 이북은 주체사상의 시원을 항일무장투쟁에서부터 찾고 있으며,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은 주체사상과 더불어 이북사회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의 두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 식으로!"라는 구호를 쉽게 들을 수 있는 이북에서 항일무장투쟁은 단지 지나간 역사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정치와 사회의 운영에서 규범적 역할을 하고 있다.

1961년 11월 최고회의의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박정희는 이케다 총리가 주최한 공식만찬에 특별한 손님을 초청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시절 교장이었던 나구모(南雲) 장군이었다. 만주군관학교 생도 시절의 다카키 마사오로 돌아간 박정희는 나구모에게 큰 절을 올리고 술을 따랐다. 일본의 만주인맥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이자, 이남에 만주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게 됨을 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최근 친일잔재 청산에 대한 관심이 두 가지 이유에서 새롭게 고조되고 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언론개혁운동 과정에서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가 재조명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우익들에 의한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심화되면서 이 문제를 우리 사회 내의 친일잔재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하게 된 점이다.

이렇게 땅에 묻힌 친일의 어두운 과거를 집요하게 파헤쳐 지금 부족한 대로나마 우리가 친일잔재 문제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진 분은 임종국(1929∼89) 선생이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자료를 뒤져가며 친일파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추적한 임종국 선생과 그 제자들의 엄청난 노력에 우리는 모두 큰 빚을 지고 있다.

이북의 지도부가 채택한 방식은 탄백(坦白)이었다. 탄백이란 일제 통치 아래서 자신의 과거와 자신이 범한 잘못을 솔직하게 당과 인민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다. 여기서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고 자신의 죄과를 감춘 것이 뒤에 드러날 경우에는 엄한 처벌을 받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한 경우는 독립운동가를 밀고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용서를 받았다.

한-일협정 체결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한-일관계는 미국이 내세운 반공의 깃발 아래 이렇게 살아남은 군국주의자들과 친일파들의 야합의 역사였다. 친일파 박정희의 기념관을 짓지 못해 안달하는 나라, 제국주의의 베트남 침략전쟁에 동원되어 민간인 학살의 과오를 범하고서도 사과하지 않는 나라, 친일파의 행위를 비롯하여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하나도 가르치지 않는 나라, 과연 우리가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우경화에 제대로 대응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우익들이 비웃을 일이다.

백민태는 바로 이들이 선택한 하수인이었다. 그런데 백민태는 항일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테러리스트였기에 백민태를 하수인으로 고른 것은 이들 암살모의자들에게는 큰 불행이었다.

노덕술의 체포는 이승만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노덕술이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재직시 직접 그를 이화장으로 불러 "자네 같은 애국자가 있어 내가 발을 뻗고 잔다"고 격려한 이승만은 노덕술이 검거되고 얼마 뒤인 1949년 2월12일 국무회의에서 "노덕술을 잡아들인 반민특위 조사관 2명과 그 지휘자를 체포해 의법처리하며 계속 감시하라고 지령하시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국무회의록에 기록되어 있다.

종철이 아버님 말씀처럼 "아무 할말이 없데이…"다. 노덕술이 가고, 박처원도 가고, 이근안도 사라진 마당, 그러나 그들이 남긴 씨는 아직도 이 땅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그들과 똑같은 논리, 똑같은 수법으로 민주인사를 탄압한 자들이 남아 있는 곳이 어디 경찰뿐이겠는가?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과거청산을 모범적으로 행했다는 독일에서도 신나치가 생겨나는데, 단 한번도 과거청산을 하지 못하여 미청산된 과거의 만물상으로 불리는 우리 사회야 오죽하겠는가? 과거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해 현실로 이어진 과거사를 직시하고 그것과 싸우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는 친일잔재의 청산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 친일잔재는 군부독재권력에 의해 우리 사회에서 재생산되었다. 친일잔재의 청산은 이 어정쩡한 민주화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군부독재잔재의 청산으로 마무리돼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친일문제는 50년이 아니라 100년, 200년이 지나도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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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한 경배를 통해 그 뒤에 숨은 독재자에게 조건반사적으로 복종하게끔 만드는 것, 그것이 국민의례가 넘쳐나던 시기에 독재자들이 노린 것이다.

1975년 8월 박정희 정권에 의해 의문의 죽임을 당한 장준하 선생의 장례식 때는 동지들이 임시정부에서 쓰던 오래된 태극기를 그의 관에 덮어 애국자의 마지막 길을 전송했다. 관동군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에게 죽임을 당한 광복군 장준하는 그렇게 태극기를 덮고 이 땅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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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羅生門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날 폐허가 된 절(?)의 라생문 아래 두사람이(한 사람은 스님이고, 한 사람은 나무꾼이다) 폭우속을 노려보며, 전혀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폭우속을 뚫고 어떤 낯선 남자가 라생문밑으로 들어오고, 그는 전혀모르겠다고 중얼거리는 남자에게 무슨 일이냐며 무엇을 모르겠냐고 묻는다.
스님은 “아무리 세상사 통달한 승려라 한들 이처럼 불가사의한 일을 어찌 알겠소.”라고 대꾸하며, 낯선사람은 스님도 그 일을 알고 있냐고 묻는다. 스님은 여기 이사람과 같이 관아에서 직접 겪은 일이라 말한다.
“여기 라생문을 보쇼, 늘 시체 한두구는 뒹굴테니”
“그렇소, 전란, 지진, 태풍, 화재, 기근, 역병... 세상이 온통 재앙뿐이오”
“그러나, 오늘처럼 무서운 일은 처음이오, 정말 무서운 일이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소. 도적떼나 전염병, 기근, 화재, 전란보다 더 무서운 일이오.”
“설교 집어지우쇼, 그런 지루한 설교를 듣느니 차라리 빗소릴 듣는게 낫지”

사흘전 산에 나무하러 간 나무꾼(이 장면이 엄청 길다, 도끼를 들고 칼을 차고있다. 부엌칼 같은 칼), 나무에 걸려있는 모자, 땅에 떨어져 있는 주머니, 새끼 줄, 죽어 나자빠져 있는 사람 발견. 깜짝 놀라며 급히 관아로 신고하러 뛰어가고, 사흘 뒤 관아로 불려갔다.

1.나무꾼의 말
시체는 분명 소인이 처음 발견했고, 칼은 없었다. 나뭇가지에 여자모자, 바닥에 사무라이 모자, 시체옆에 끊어진 새끼줄, 낙엽 위에 붉은 부적주머니가 있었다. 다른 물건은 없었다.

2.스님의 말
저기 누워있는 시체는 만난 적이 있다. 사흘전 세키야마에서 야마시나로 가는 도중이었다. 모자를 쓴 여자, 칼과 활을 찬 남자(죽은 남자). 그가 불귀의 객이 될 줄,
”참으로 인간의 목숨이란 아침 이슬만큼이나 덧없군요“

3.포졸(?)의 말
제가 체포한 사람은 다조마루, 악명높은 다조마루다. 체포당시 고려칼을 차고 있었다. 사흘전 강가를 지나는데 검은 화살통에, 활, 화살 17개, 회색빛 말. 살해된 남자가 지니고 있던 물건. 다조마루가 말에서 떨어지다니, 인과응보

4.다조마루(도적) 관점
하하하, 말에서 떨어진게 아니다. 말을 달리던 도중 갈증이 나 말에서 내려 개울물을 마셨다. 개울물에 뱀이라도 죽어있었는지 마시기 무섭게 속이 뒤틀리고 강가에 이르니 복통을 견딜수 없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 뒹굴고 있었다. 결국 내 목을 베겠지만, 나는 진실만을 말한다. 저 남자를 죽인 건 분명 나다.
사흘 전 무더운 오후, 산들바람만 불지 않았어도 저자를 죽이지 않았을 거다.(산들바람 때문에 모자를 드리운 천이 날리며 여자 얼굴을 보게 된다) 그 여자의 얼굴이 천사처럼 보이고 남자를 처지하고 여자를 차지하기로 맘 먹었다. 가능한 한 남자는 죽이지 않고 여자를 차지할 작정이었다. 여자와 남자는 사라지고 다조마루는 그 뒤 급하게 그들을 쫒는다. 길을 잘 알고 있는 도적은 지름길로 뛰어가 그들을 만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칼을 보여주며 훌륭하지 않냐, 저기 무덤에서 많이 나와 숲에 감춰뒀다, 주겠다, 꼬셔서 남자를 데리고 간다. (그걸 왜 따라가냐.) 저기 소나무 밑에 있다며 가져가라하고, 뒤에서 남자를 덮쳐 나무에 묶어논다. 그리고 여자한테 남편이 뱀에 물렸다고 거짓말을 한다. 도적은 여자를 남자에게 데려가고 묶여있는 남편을 본 여자는 칼을 뽑아 도적을 찌르려하며, 격렬하게 저항한다. 그러나, 역부족, 힘에 부친 여자는 주저앉아 울부짖는다. 다조마루는 여자에게 키스를 퍼붓고 여자는 그를 끌어 안는다. 도적은 계획대로 남자를 죽이지 않고 여자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때까진 남자를 살해할 맘이 없었는데, 여자가 쫒아와서 당신이 죽든지, 남편이 죽든지 어느 한쪽이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남자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아요“ 둘 중 살아남은 사람을 따르겠다 말한다. 다조마루와 남편은 격렬한 결투를 하고 남편은 도적에게 죽임을 당한다. 자기칼을 23번 받아냈는데 지금까지 20번이상 받아낸 사람은 그자가 유일하며 대단한자라 추켜 새운다. 여자는 도망쳤다.(절에서 숨어지내다 포졸에게 발견됐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폭우속 라생문
나무꾼: 다 거짓이야, 여자도 다조마루도 다 거짖이야.
낯선남자: 인간들이란 게 다 그렇지 뭐,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진실을 인정하지 않지
스님: 약한 존재라 그렇소, 약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거죠

5.여자 관점(스님이 말한)
여자의 말은 다조마루의 말과 달리 강하지 않고 아주 연약해 보였다. 저를 속인 도적이 저를 욕보이고 자기가 그 유명한 다조마루라면서 남편의 손발을 묶고 조롱했다. 도적은 우리를 조롱하며 사라졌고, 분노로 번뜩이고 있는 남편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슬픔의 눈빛이 아니었다. 차가운 증오의 눈빛이었다. 남편을 풀어준 여자는 자기를 찔러 죽이라 한다. 여자는 그런 눈으로 처다보지 마라며 절규한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린뒤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 끔찍했다. 남편 가슴에 자기의 단도가 꽂혀 있었다. 너무 놀라 숲으로 달아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산아래 강가에 서 있었다. 전 그 강물에 몸을 던져 죽으려했지만 실패했다. ”연약하고 어리석은 저는 어찌하면 좋을까요?“

다시 라생문
낯선남자: 들으면 들을수록 헷갈리는군. 여자들은 뭐든지 속이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그러니 여자말은 너무 믿으면 안되요. 그야 스님생각이지 정직한 인간이 어디있소? 자신만 그런줄 아는 거지. 자기 죄는 잊고 거짓말을 하죠. 그 편이 맘 편하니까?

6.죽은 남자의 말(무당의 입을 통해 말했다고 스님이 말한다.)
도적은 아내를 범한 후 곁에 앉아 그녀를 위로했고 낙엽위에 앉은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를 설득하는 도적, 한 번 더럽힌 몸으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내 아내가 되라. 아내는 황홀한 얼굴로 그를 쳐다 보았다.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아내는 도적에게 말했다. “어디든 좋아요, 날 데려가 주세요”, “저사람을 죽여 주세요” 바로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암흑속으로 집어던졌다. 인간이 어찌 그토록 비열하고 저주스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도적조차 충격을 받았다. 저 사람을 죽여주세요. 도적은 여자를 발로 밟고 이 여자를 어찌하면 좋을 지 물었다. 도적이 한 눈파는 사이 여자는 도망치고 여자를 따라갔다 한참지나 도적이 다시 와서 남편을 풀어준다. 도적이 사라지고 상심한 남편은 여자의 단도로 자결한다. 시간이 지난뒤 누군가 다시 와 단도를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7.나뭇꾼 관점
그건 거짓이야, 남자의 가슴엔 단도가 꽂혀있지 않았어, 장도에 찔려죽었다. 산에서 여자의 모자를 발견하고 잠시 후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풀사이로 보니 묶인 남자, 울고있는 여자, 다조마루가 보였다.(남자의 시체를 발견했단건 거짓이었고, 이 사건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 다조마루는 여자앞에 꿇어 앉아 용서를 빌고 있었다. 이미 널 가졌지만 내 아내가 되 달라(이게 용서를 비는 것인가?) 당신이 원한다면 도적질도 관두고 장사라도 해서 열심히 살겠다. 나와 함께 삽시다. 허락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죽일 수 밖에 없다.(협박) 내 아내가 되겠다고 말하라. 여자는 단도로 남자를 묶은 끈을 자른다. 도적은 남자끼리 싸움으로 결정하라는 뜻으로 알아듯고 결투를 하려하지만 남편은 이런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싶지 않다며 결투를 거절하고 원한다면 여자를 데려가라 한다. 남편은 아내를 모욕하지만 도적은 연약한 여자라며 편을 든다.(애당초 지가 멍청해서 여자를 지켜주지도 못하고 못난놈) 여자는 사내대장부라면 나보고 자결하라 하기 전에 저자를 먼저 죽여야 한다며 남편에게 큰소리 친다. 도적놈 도 마찬가지라 한다. 뭔지 모르겠지만 여자는 다조마루에게 다조마루라 들었을때 해방구를 찾은줄 알았다, 다조마루라면 나를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해방시켜 줄줄 알았다 소리친다. 여자가 원하는 건 진짜 남자다. 여자는 칼로 쟁취하는 거라며 소리친다. 여자의 절규를 들은 두 남자는 칼을 뽑고 결투를 시작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칼을 들고 벌벌 떨며 좀처럼 싸우지 못한다. 도적과 남편은 둘 다 아주 못난 겁쟁이 었던 것이다. 칼 한번 부딪히지 못하고 허공에 칼을 휘두른다. 제대로 된 싸움 한번 못해보고 이전투구 끝에 도적의 칼에 남편은 찔려 숨을 거둔다. 여자는 도망치고 남자와의 싸움으로 근력이 바닥난 도적은 여자를 따라잡지 못한다.

인간이 인간을 못 믿다니 이건 지옥이야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 낯선 남자는 아기를 감싸고 있는 옷가지를(부적이 들어있다) 가지고 도망친다.

인간은 다 이기적이야 모두 변명뿐이지.

나뭇꾼은 집에 아이가 여섯이나 있는데 여섯을 키우나 일곱을 키우나 힘든거 매 마찬가지라며 아이를 데려간다.

덕분에 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되찾은거 같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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