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기로 한 이상 저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모두 사법고시를 통과한 인재들이죠. 엄격히 지도할 생각인데,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꼭 군기를 바싹 잡아 주세요."

요즘 같은 시대에 학생들의 군기를 잡아 달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옛날 사고방식이다. 분명 마시코의 사고는 시대착오적일 것이다. 법조계의 인식이 대중과 괴리되는 것은 이런 사고와 변하지 않는 체제 때문임은 쉽게 상상할 수있다. 낡은 가죽 부대에 새 술을 담는다는 비유까지는 아니지만, 낡은 교육체제이기 때문에 바로 자신 같은 노인들이 참신한 수업을 해야 한다.

사명감이 활활 타오르는 순간, 마시코에게서 예상 밖의 질문이 날아들어 왔다.
"고엔지 판사님. 최근 건강검진은 받으셨습니까?"
"아뇨."

"겐타로 씨가 즐거워하실 때는 대개 주변 사람한테 폐를 끼치고 계시거든요."
과연 온종일 겐타로를 보살피는 만큼, 미치코는 겐타로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시즈카는 저도 모르게 끄덕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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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석탄 시대
철도 · 공장 · 노동자 · 공업도시. 자본주의를 탄생시키다

○ 영국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석탄을 불에 태운 사람을붙잡아 처형시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석탄이 없었다면 철도, 공장, 노동자, 공업 도시는물론이고 자본주의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다고 해도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1661년
보일의 법칙
화학이 연금술과 결별하고 제대로 된 학문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다

○ 합리적인 방법으로 물질을 탐구하며 화학을 제대로 된 학문 분야로 인정받게 한 최초의 과학자

1667년
향신료제도 발견
역사를 만든 향료 분자

① 원래 향신료가 각종 의약품으로, 페스트를 몰아내는
‘부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후추가 사람들을 열광시킴으로써 신항로 개척시대가 시작되었다……."

원래 향신료는 류머티즘이나 위통, 복통 등에 사용하는 의약품, 최음제, 수면제, 벌레 쫓는 약으로사용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페스트 팬데믹이 한창일 때는 주머니에 각종 향신료를 넣고 다니며 페스트를 몰아내는 부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향(丁香)에서 ‘정(丁)‘은 무슨 의미일까? ‘못‘을 의미한다.정향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향신료로 사용되어 왔다. 여기에는 강력한 살균 효과가 있어서 치통을 다스리거나 입 냄새를 방지하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여겨졌다.

무역회사인 동인도회사를 경쟁이라도 하듯 차례로 설립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1600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02년에 설립되었다. 동인도회사의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무역회사‘다.

그러나 사실 이는 ‘회사‘라는 단어로는 포괄할 수 없는  엄청난 조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인도회사는 식민지 경영을위한 군대를 움직일 수 있고 다른 나라를 상대로 전쟁도 선포할 수 있는 ‘국가‘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스페인은 향신료 무역을 둘러싸고 세계 곳곳에서 군사 충돌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네덜란드는 육두구와 정향 생산지를 장악할 목적으로 반다제도를 무력 점령했다. 1621년의일이다.

영국에서 세계사를 혁명적으로바꿔놓은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1710년 무렵 토머스 뉴커먼(Thomas Newcomen, 1664~1729)이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1773년에 존 케이(John Kay, 1704~c. 1779)가 방직기를 성공적으로 개량하면서 현실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산업혁명은 어떤 분야에서가장 먼저 시작되었을까? ‘직업‘이다. 직공이 소량 생산하던 면직공업의 이전 방식은 기계를 사용해대량 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전환되었다.

1704년
감청색 발명
고흐와 호쿠사이를 매료시킨 프러시안블루

0 세계 미술사를바꾼, 베를린 염색업자 요한 야코프 디스바흐가 개발한 프러시안블루

일본에서는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c. 1760~1849)와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1797~1858) 등 에도시대 우키요에(浮世繪)  화가들이 프러시안블루를 ‘베를린 남색‘으로 부르면서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히로시게의 대표작 <후가쿠 36경(富嶽三十六景)〉이나 〈도카이도 53경(東海道五十三次)〉도 이안료를 써서 그려졌다.  또한 우키요에 화가들이 색을 사용하는 독특한 방식은 빈센트 반 고흐 등 유럽인상주의 화가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쉽게 말해, 1,000년, 2,000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살아남아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는 콘텐츠, 혹은 작품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일의 진정한 평가자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바흐나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베토벤의 음악, 페르메이르(Johannes한국정밀기김지220Vermeer, 1632~1675) 나 르누아르, 고흐의 그림은 향후 1,000년 후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가치를 발할 것이다. 과연 이 책은 얼마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1707년
나무통에서 숙성된 위스키
세금을 피하려다 우연히 발명된 새롭고 획기적인 양조 기법

○ 헨리 8세의 가톨릭교 탄압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1709년
코크스를 이용한 제철
새로운 제철법으로 산업혁명의 기반을 구축하다

○ 더드 더들리가 개발한 코크스,
제철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1722년
표트르 대제
흑해 진출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무너뜨린 맥각 중독

① 선진 조선술을 배우기 위해 네덜란드 조선소에서 배 목수로 일한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1735년
중남아메리카라는 ‘새로운 발견‘의 보고
세계사를 바꾼 또 하나의 신소재, 고무의 유럽 전래

○ 수많은 놀라운 발견을 낳은 뉴턴과 데카르트의 ‘지구 형태에 관한 논쟁‘

첫째, 인디오가 ‘카우추‘ (카우는 ‘나무‘, 추는눈물‘로, ‘눈물을 흘리는 나무‘라는 의미)라고 부르는 나무에서 배어 나오는 흰 수액을 굳혀서 연기로 가열한다음 굳히면 공이나 용기, 장화 등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아마존 원주민이 ‘큐라레‘ 라고 부르는 맹독을 바른 화살로 동물을 사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 기나나무 껍질에 들어 있는 ‘퀴닌‘
이라는 쓴맛을 내는 성분이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특효약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남아메리카를 탐험하며얻은 지식은 그 자체로 하나같이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미국에서 커피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뜻밖의 계기

○ 미국이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독립을 쟁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보스턴 차 사건

1769년
도자기와 홍차의 인기
산업혁명의 버팀목이 되어준 두 가지 상품

0 도자기 대량생산 기법을 발명해
‘도자기 왕‘이 된 영국의 조사이아 웨지우드

분노한 식민지 주민들은 캄캄한 한밤중 보스턴 항에 잠입해 정박 중인 동인도회사 무역선에 몰래 올라탔다. 당시 그들 모두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중 하나인 모호크족으로 위장한 상태였다. 이는 1773년의 일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오늘 밤 보스턴 항을 티포트로 만들자! (Boston Harbor a Tea-Pot this night!)"라고 외치며 배에 실려 있던 342 상자, 9만 달러 상당의 홍차 잎을 남김없이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 (Boston Tea Party)‘이다. 훗날 이 사건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차에는 다량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또한 떫은 느낌을 주는 성분인 타닌도 들어 있다. 타닌을 구성하는 성분은 많은데, 폴리페놀이라고 부르는 구조의 카테킨류가 여기에 포함된다. 카테킨류는 몸에 좋은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항산화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찻잎을 발효 도중에 덖어 만들면 ‘우롱차, 찻잎을 완전히 발효시켜 말리면 ‘홍차‘가 된다. 그렇다면발효가 진행될수록 차의 색깔이 붉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카테킨류가 산화하기 때문이다.

1776년
미국 독립선언
미국에서 되살아난 루크레티우스 사상

● 루크레티우스 철학에 심취한 토머스 제퍼슨의 입김으로미국 독립선언서에 그의 사상이 반영됐다는데?

그 초안을 가필하고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독립선언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에게서 생존·자유·행복 추구를 포함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사람들은이런 권리를 확실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권력은 통치를 받는 사람들의 동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

이는 영국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선언문이다. 한데, 초안을잡은 제퍼슨이 존 로크보다 더 크게 영향받은 인물이 있다. 바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시인인 루크레티우스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제퍼슨은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심대한 영향을받았다. 실제로 그는 이 책의 라틴어판과 영어판, 프랑스어판, 이탈리아어판을 모두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루크레티우스의 팬이기도 했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라는 에피쿠로스파사상을 신봉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이 세계는 원자와 물질이라는 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지나 공포는 인간에게필요한 속성이 아니다‘라는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에 깊이 공감하는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1784년
강철의 대량 생산
강한 철을 만들기 위한 험난한 여정

○ 강철을 만들려면 ‘철의 ○○ 성분‘을 제거해야 한다. 여기서 ○○는?


탄소

1789년
화학의 탄생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화학 혁명가

○ 연금술에 사형선고를 내린 ‘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

○ "공화국에 화학자 따위는 필요 없소"

라부아지에는 루이 왕조를 대신해 대중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꽤 짭짤한 비즈니스에 손을 댔다. 화학실험에 필요한 만만치 않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흉작이 계속되면서 굶주린 사람들이 폭도로 변해갔다.
그 무렵 신성로마제국 수도 빈에서는 불세출의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35세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이름 모를 사람들과 함께 공동묘지에 매장되는 가혹한 운명을 맞이했다. 한데같은 시기 프랑스에서는 또 한 명의 천재 라부아지에가 더욱 가혹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프랑스혁명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대중의 분노가 왕을 대신해 세금을 징수하던 징세 청부업자들을 향한 탓이었다. 마침내 징세 청부업자 체포령이 떨어졌고 라부아지에 역시 구금당하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아내마리안과 절친한 친구들이 백방으로 손을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라부아지에는 혁명 법정에 끌러나가 사형 판결을 받았다. "우리 공화국에 과학자 따위는 필요 없소"라는 말과 함께. 
1794년 5월 8일 오전 10시에 벌어진 일이다. 같은 날 18시 15분, 라부아지에는 콩코르드 광장으로 연행되었다. 광장에는 루이 16세(Louis XVI, 재위 1774~1792)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를 비롯한 1,343 명의 목을 자른 단두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라부아지에와 세금 징수원 28명은 차례차례 목이 잘렸고 그들의 몸통은 짐마차에 실려 황폐한 공동묘지에 버려졌다. 당시 처형 현장에 있던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조제프루이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 1736~1813)는 슬픔 속에서 하늘을 보며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그의 목을 자르는 데는 1초면 충분하지만, 그와 같은 두뇌를 가진 인물이 인류사에 등장하려면 적어도 100년은 걸릴 것이다."

나폴레옹의 군사적 승리를 뒷받침한 것은 당대에 가장 획기적인 무기로 손꼽힌 ‘대포‘였다. 당시 프랑스는 장바티스트 바케트 드 그리보발(Jean-Baptiste Vaquette de Gribeauval, 1715~1789) 이라는 포병장교의 주도 아래 대포의 규격화, 크기별 통일 규격, 부품의 공통 규격화 등을 열정적으로 추진했다. 이는1776년 이후의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프랑스는 경량으로 설계된 바퀴 달린 캐넌포를 대량 생산하기시작했다. 참고로, 캐넌(cannon)은 ‘갈대‘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칸나(kanna)‘에서 파생되었다.

의미가 확장되어 ‘가늘고 긴 관‘을 뜻하게 되었다. 포탄을 빠르게 발사할 수 있는 캐넌포의 위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 덕분에 포병대 시스템을 고도로 발전시킨 프랑스군은 말을 이용해서 캐넌포를 견인해 고속으로 이동시키면서 원하는 전장에 배치할 수 있었다.

1791년
갈바니의 동물 전기
‘개구리 실험‘으로 전기의 흐름을 발견하다

○ 전기의 비밀을 밝혀낸 윌리엄 길버트는 엘리자베스 1세의 주치의였다?

1795년
괴혈병 예방
원인은 비타민 C 부족이다

○ 신선한 과일·채소 등이 괴혈병을 예방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영국 의사 제임스 린드

1800년
볼타 전지 발명
세계사를 바꾸고 문명을 바꾼 또 하나의 신소재

0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기 흐름을 발생시키는 데 성공한 과학자, 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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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7년
몽골군과 화약의 확산
유라시아대륙 동서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족

○ 몽골초원 기마민족, 드넓은 유라시아대륙동쪽에서 서쪽에 걸친 거대 제국을 건설하다

13세기
화약이 유럽으로
화포, 전 유럽을 뒤흔들다

○ 흑색화약에 관한 기록을 남긴프란체스코수도회 수도사 로저 베이컨

1300년 무렵
증류주 출현
활력을 되찾아주는 기적의 약으로 여겨진 새로운 알코올

ㅇ세계사를 바꾼 증류주, 브랜디와 위스키의 탄생

1300년 무렵
대포 굉음이 울려 퍼지는 유럽
신형 무기가 유럽 판도를 뒤흔들다

○ 교회 종을 만드는 당시 주물 기술자들이 특별히 주목받은 까닭은?

1346~1353년
페스트 전야
14세기 페스트가 식민지 도시 카파에서 시작된 이유

ㅇ 여러 대륙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팬데믹‘으로 발전한최초 사례,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

1346년
페스트 = 생물병기
페스트에 걸린 시체를 성안으로 던져 넣어 화학무기로 활용한 몽골군

○ 유럽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감염병, 페스트

1377년
검역의 시작
역설적으로 사회 변화와 발전을 앞당긴 페스트 팬데믹

ㅇ ‘검역‘을 뜻하는 영어 단어 ‘쿼런틴‘이40 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까닭은?

농민도 많이 죽었기에 노동력이 부족해지며 임금이 크게 상승했다.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한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한편, 농촌 인구의 격감으로 인해 오랫동안 농노가 지탱해온 중세의 상징인 장원제도가 붕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의 지위는 자연스럽게 향상되었다. 이에 따라 영주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농민 봉기나 반란이 빈번히 일어나곤 했다.

14세기 페스트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 구조와 시대정신의 커다란 변화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

1415년
얀 후스의 교회 비판
한 성직자의 투쟁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다.

○ 체코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화형당한 불운의  성직자 얀 후스

잉글랜드의 성직자이자 종교개혁가인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c. 1328~1384)는 "성경이야말로 신앙의 최고 권위다"라고 주장하며 당대 타락한 교회를 비판했다. 14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리고 위클리프는 가톨릭교회가 엄격히 금지하고 있던 성경의 모국어 번역, 즉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당시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교회의 권위를 부여받은 사제 등 소수 엘리트에 국한되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민중은 라틴어를 알지 못했다. 이런 사회 구조상 라틴어 성경밖에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 라틴어를 익혔다는 사실만으로 성직자의 권력과 부와 명예가 보장되었다.

얀 후스는 가톨릭교회의 이단자로 몰려 화형을 선고받았다. 1415년에 열린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그러나 후스가 남긴 말은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 "진실을 사랑하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지켜라" 라는 말이다. 이 문구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얀후스 동상 기단에 새겨져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문구는 오늘날 체코 대통령실에서 사용하는 깃발에도 "진실은 승리한다"라는 문구로 응용되어 새겨져 있다.

얀 후스를 추종하는 후스파는 거대한 세력이 되었다. 후스가 화형당한 뒤 보헤미아 독립운동, 농민반란 등과 결합한 결과였다. 이에 로마 교황 마르티누스 5세(Pope Martin V, 재위 1417~1431)는 십자군을소집해 전쟁에 돌입했다. 당시 십자군이 주 타깃으로 삼은 세력은 후스파 가운데 보헤미아 타보르를 중심으로 급진적인 움직임을 보인 타보르파였다.

○ 농민군 1만 명이 독일기사단을 중심으로 한신성로마제국의 십자군 10만 명을 괴멸시켰다고?
농민군 1만 명이 독일 기사단을 중심으로 한 신성로마제국의 십자군 10만 명과 대치했다. 그야말로정확히 10배의 전력 차이였다. 1421년 12월 21일, 쿠트나호라(Kutná Hora, 프라하에서 동쪽으로 60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는 도시)에서였다. 농민군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자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1만 명뿐인 지슈카의 군대가 무려 10배에 달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십자군 기사단을 상대로 단지 승리를 거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괴멸시킨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신병기를 교묘히 운용해 화포를 집중적으로 발사함으로써 마구잡이로 공격해 들어오는 적군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었다. 독일 기사단이라는 명문 프로 집단의 최강군대가 최신 화포로 무장하고 집중 훈련을 받은 농민군에게 패한 것이다. 이 전투는 현대로 이어지는 ‘전쟁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전쟁사에 길이 남을 이 흥미진진한 전투를 계기로 세계전쟁사에 ‘화포의 시대‘가 마침내 도래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사의 시대‘는 영원히 종말을 맞이했다. 이 전투에서 사용된 총핸드캐넌)을 체코어로 ‘피스탈라(Pistala)‘라고 부른다. 참고로,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권총의 일종인 피스톨(pistol)의 어원이다.

1415년
엔히크 항해 왕자
신항로 개척시대의 초석을 다지다

○ 신항로 개척시대의 트리거가 된 세우타의 향신료

1417년
루크레티우스의 재발견
그리스도교라는 ‘거르개‘를 거치지 않은 독창적 자연관

○ 독일 어느 수도원 서가에서 루크레티우스의책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한 이탈리아 학자 포조 브라촐리니

1440년 무렵
활판인쇄술 발명
전 세계적 지식의 빅뱅이 일어나다

○ 중국에서 발명된 활판 인쇄술이 동북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더 급속히 퍼져 나간 까닭은?

1450년
백년전쟁 종결
과학·기술 혁신을 등한시한 나라는 반드시 멸망한다

○ 신무기 대표의 힘으로 잉글랜드군을 무찌르고 백년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프랑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동로마제국, 역사 속으로 퇴장하다

○ 1,000년 동안 이민족 공격을 23차례나 막아낸 난공불락의 요새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무너뜨린 메흐메트 2세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오스만제국의 수도가 된 후 ‘이스탄불‘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그리스계 주민들이 ‘이스탄 폴린(eis tan polin, ‘도시를 향해‘라는 의미)‘
이라고 부르는 것을 터키인들이 듣고 지은 이름이 정식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1492년
유럽 열강, 신대륙에 도달하다
오늘날의 우주 진출과 다름없던 신항로 개척시대의 세계일주

○ 유럽에 고무가 전해지는 계기가 된 콜럼버스의 두 번째 항해

1516년
사탕수수 재배
대서양에 형성된 거대한 삼각무역권

○ 사탕수수 재배가 인류의 농업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신호탄과도 같은 일대 사건으로 규정되는 이유는?

1516년
자본주의의 태동
‘교회 비즈니스‘로 막대한 수익을 거둔 유럽의 부호와 권력자

○ 오늘날의 대표적인 기축통화 US 달러의 원형이 된체코 북부산지 장크트요하임스탈 광산의 은화

장크트요아힘스탈(독일어로 ‘성 요아힘 골짜기‘라는 의미, 오늘날 체코 야히모프)이라는 골짜기에서 은광산이발견되었다. 1516년의 일이다. 장크트요아힘스탈은 ‘보헤미아‘로 칭해지던 체코 북부 산지에 속했다.
이곳에서 광산이 발견되자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수천 명이 부나비처럼 몰려들었다. 사람들은이곳에서 연간 85톤의 은을 캐내어 지름 4센티미터 크기 은화를 대량으로 제작했다. ‘요아힘스탈러(Joachimstaler)‘라고 불린 이 은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었다. 훗날 요하임스탈러는 어미 부분만을 따서탈러‘로 불렸다. 그리고 그것이 또다시 변화해 ‘달러(dollar)‘, 즉 오늘날의 대표적인 기축통화인 US 달러가 되었다.

1521년
아스테카제국 정복
스페인에 막대한 부를 안겨준 천연염료

ㅇ 아스테카제국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멸망으로 몰고 간 결정적 요인 두 가지는?

1532년
잉카제국 정복
스페인을 세계제국으로 발돋움하게 한 식민지 아메리카대륙의 은

○ 심각한 임플레이션을 발생시켜 유럽 경제를 휘청이게 한 스페인의 포토시 은광산 개발

1541년
‘의학계의 루터‘가 등장하다
새로운 르네상스식 약학을 도입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의학자

○ 최초로 근대적 약학 개념을 주창한 ‘의학계의 루터‘ 파라셀수스

1554년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
커피라는 평범한 음료는 어떻게 세계사를 바꿨나

O초기에 커피는 기호음료보다 ‘약으로 사용되었다는데?
.

"직접적인 경험은 어떤 권위보다 우월하다."
이는 파라셀수스가 남긴 유명한 명언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 실제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의학자였다. 그러나 기존 지식과 질서를 공격하는 그의 과격한 주장과 행동은 환영받지 못했고 그는 대학에서추방당해 이곳저곳을 떠도는 괴짜 방랑자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파라셀수스는 낡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르네상스식 약학을 도입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예배당 벽화 <최후의 심판>을 완성한 해인 1541년의 일이다. 파라셀수스가 불운한 죽음을맞이한 후 그의 철학과 방법은 ‘의화학(Iatrochemistry)‘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분야로 인정받아 크게 융성했다.

"(커피는) 이슬람교도가 마시는 사탄의 음료다."
유럽에는 이런 말이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커피가 전파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상황이다. 그리고 마침내 교황 클레멘스 8세(Pope Clemens VIII, 재위 1592~1605)에게 커피를 금지해줄 것을 간청하는 성직자들이 나타났다. 1605년의 일이다. 교황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놀랍게도 그는 커피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직접 커피를 마셔보고 그 맛과 향에 반한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이토록 훌륭한 음료를 이교도만 마실 수 있게 하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러니 세례를 해서 그리스도교의 음료로 만들자"
그 결과 유럽에서도 자유롭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아침부터 술독에 빠져 살면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매우 독특하고도 예외적인 ‘
인물이 존재한다. 전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이던 20세기 중반 영국 총리로 재임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재임 1940~1945, 1951~1955)이 바로 그다. 경이롭게도 그는 아침에는 탄산수에 희석한위스키, 낮에는 샴페인, 밤에는 와인 등을 들이붓듯 마시면서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조국 영국을구해냈다.

1556년
금속에 관하여 출간
르네상스 시대에 광산개발 발전을 이끈 책

○ 그 의사는 왜 ‘광산‘의 매력에 그토록 깊이 빠져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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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멸망은 유럽에서 옛 시대의 구심점이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대신해새로운 권위를 갖게 된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세력이무소불위의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그리스도교가 유럽을 지배하는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결과 얼마나 성경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천국을 지향하느냐가 인생과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런 시대가 되면 과학도 발전하기 어려워진다. 당대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했던, 신의 존재에 기반한 우주관과 물질관을 더욱 제대로 구현하는것이 과학의 목적이라고 여겼다.

552년
비단의 비밀
산업 스파이가 유럽에 양잠을 확산시키다.

○ 그리스도교 이단파 수도사 두 명을 파견해 누에고치를 몰래 가져오는 데 성공한 비잔틴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673년
그리스의 불
비잔틴제국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한 가공할 신무기

○ 위기에 빠진 비잔틴제국의 구세주, ‘그리스의불‘을 발명한 이가 시리아 출신 건축가 · 과학자였다?

사막이라는, 극도로 척박한 환경에 뿌리내린 이슬람인은 어떻게 그런 만만치 않은 악조건을 딛고 말할 수 없이 경쟁이 치열한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로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그들이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 강인한 정신력을 길렀다는 점이다. 
둘째, 새롭게 등장한 종교의엄청난 열정과 에너지가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거칠고 메마른 사막지대에서 말과 낙타를 이용해 물자를 원활히 이동시키고 보급하는 시스템에최적화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슬람군의 규율이 엄격했으며 점령지 민중에게 관용적이었다는 점이다.

800년 무렵
우연한 폭발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꾼 화약의 발명

○ 도교의 연단술이 흑색화약 발명으로 이어졌다고?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프로파간다에 성공한 권력자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1085년
레콩키스타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의 문을 활짝 열어준 영토 재탈환 전쟁

○ 알폰소 6세의 ‘톨레도 탈환‘은 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나?

○ 세계사의 주도권이 아라비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가게 한 결정적 원동력, 알폰소 10세의 방대한 문헌 번역 프로젝트

1096년
십자군 원정
탐욕스런 유럽이 운명적으로 조우한 미지의 세계

○ 인류 역사상 최초로 프로파간다에 성공한 권력자,
교황 우르바누스 2세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프로파간다에 성공한 권력자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그가 교묘한 책략과 선전·선동·정보 조작을 통해 서유럽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참고로, 프로파간다는 ‘씨앗을 뿌리다‘, ‘번식시키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프로파가레 (propagare)‘에서 기원한 단어다. 프로파간다는 ‘대중을 선동하는 정보 조작‘을 의미한다.

1099년 7월,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간 십자군은 민간인 대량학살과 약탈을 자행한 후 예루살렘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이슬람 세력은 조용히 물러나지 않았다. 다시 기세를 올린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재점령하는 데는 10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이유브왕조를 세운 쿠르드인 명장 살라흐앗딘(Salāh al-Din Yusuf ibn Ayyüb, 재위 1169~1193, 흔히
‘살라딘(Saladin)‘이라고 불린다)이 탁월한 전략과 리더십으로 예루살렘왕국을 멸망시켰다. 이는 1187년의일이다.

○ 십자군을 혼비백산하게 만든이슬람의 가공할 신무기, 소이병기

1202년
변질되는 십자군
이슬람 세계 조우에서 엄청난 문화충격을 받은 유럽

○ 잉글랜드의 유명 축구클럽 ‘아스널‘이 왕립 병기 공장에서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팀에서 유래했다는데?

○ 이슬람 세계와의 조우로 인한 문화 충격이 향신료 경쟁을 통한 신항로 개척시대의 막을 열다

인간은 누구나 고난과 역경 속에서, 혹은 새로운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그 점에서는 국가나 사회도 다르지 않다.

그런 상징성과 대표성을 모두 지닌 사례 가운데하나가 바로 이슬람 세계에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던병원이다. 오늘날 시리아아랍공화국의 수도이기도한 다마스쿠스에 비마리스탄(Bimaristan, 페르시아어로 ‘병자가 있는 곳‘을 의미)이 역사상 최초로 세워졌다. 이는 707년의 일이다. 비마리스탄은 오늘날의현대식 병원으로 이어진 가장 오래된 기관이라고 할수 있다. 

1221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
유럽 약품 공급망을 장악한 메디치 가문

○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약국은 언제, 어디에서 영업을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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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1년
갈리아의 와인
오늘날의 ‘와인 왕국‘ 프랑스를 만든 일등공신 카이사르

○ 갈리아 원정을 떠난 카이사르 군대의 진군과 함께 퍼져 나간 와인 제조법

기원전 1세기
유리 제조 기술 혁신
획기적인 유리 제조 기술·문화를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킨 로마제국

○ 고대 로마 유리공업의 원동력이 된 와인 산업

70년 무렵
약의 백과사전
이슬람 의사에게도 전파된 고대 로마 최고의 약학서

○ 고전 의약을 집대성한 책 『데 마테리아 메디카』를 집필한 로마군 군의, 페다니우스 디오스 코리데스

1세기 무렵(?)
연금술의 마리아
뛰어난 연금술사이자 화학자였던 유대인 마리아

⑥ 알렉산드리아를 세계 최고의 화학 도시로 만든 걸출한 여성 연금술사. 화학자

105년
제지법 개발
지식 세계를 확장시킨 중국의 제지 기술

○ 인류 기록 문화에 대혁명을 일으킨 후한 시대 환관  채륜의 종이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이용해온 주요 기록 매체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파피루스(papyrus) 풀의 줄기로 만든다)와 양피지 (양의 표피를 무두질해서 만든다)를 무엇보다 먼저 꼽을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사용하는 종이와 같은 물질은 중국에서개발되었다. 이것을 발명한 이는 식물 섬유(셀룰로오스)를 물속에서 분산시킨 다음 촘촘한 망으로 걷어올리는(종이뜨기) 방법을 사용했다.

128년
시멘트 사용
로마는 ‘시멘트 제국‘이었다?

○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건설된 제국, 로마

시멘트(cement)는 ‘쇄석‘, ‘거친 작은 돌‘을 의미하는 라틴어 ‘카이멘툼(caementum)‘에서 유래했다. 로마의 공용어인 라틴어에 이미 단어가 있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듯 이는 고대 로마에서 꽃피운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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