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보고] 영화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문명 붕괴 속 고독한 생존과 인류를 위한 마지막 희생

1. 작품 개요
가. 기본 정보
ㅇ (제목/원제)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ㅇ (감독/주연) 프랜시스 로런스 / 윌 스미스, 앨리스 브라가, 샐리 리처드슨
ㅇ (조력) 샘(반려견)
ㅇ (제작국가/개봉연도) 미국 / 2007년
ㅇ (작품의 위상) 인류 멸망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거대한 재난보다 한 인간의 고독과 마지막 선택을 중심에 둔 재난·SF 영화임.

나. 작품의 기본 성격
ㅇ (사건의 출발) 암을 정복하기 위한 신약 개발이 인류를 구하는 대신 치명적인 변이를 불러오면서, 문명 전체가 붕괴 위기에 빠지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됨.
ㅇ (영화 내 설정) KV 바이러스는 치사율 90%를 기록했고, 살아남은 인구 중 약 5억 8,800만 명은 변종 인간으로 바뀌었으며, 1,200만 명 미만만이 면역자로 남은 것으로 제시됨.
ㅇ (시대적 배경) 뉴욕이 봉쇄되고 대부분의 인류가 죽거나 변종 인간으로 바뀐 뒤, 사실상 한 도시가 무너진 채 남아 있는 종말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함.
ㅇ (공간적 배경) 영화의 무대는 텅 빈 뉴욕 전체이지만, 그 넓은 공간은 자유의 공간이 아니라 낮과 밤이 갈라진 생존의 감옥처럼 그려짐.
ㅇ (핵심 문제의식) 문명이 무너진 뒤 인간을 끝까지 버티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까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하는 영화임.

2. 줄거리 및 서사 구조
가. 기본 줄거리
ㅇ (생존자의 처지)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뉴욕에 가까스로 홀로 살아남아, 낮에는 식량을 구하고 밤에는 은신처에 숨어 지내며 생존을 이어 감.
ㅇ (생존의 일상) 그는 변종 인간들이 햇빛에 치명적인 약점을 지녔다는 점을 이용해 낮에만 움직이며, 방송을 송출해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고 면역 치료제 개발에도 매달림.
ㅇ (상실의 축적) 네빌은 가족을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이미 큰 상실을 겪었고, 이후 유일한 동반자였던 샘마저 잃게 되면서 사실상 완전한 고독 속으로 밀려남.
ㅇ (결말의 의미) 마지막 순간 네빌은 면역 치료제를 완성해 생존자에게 넘긴 뒤, 자신은 변종 인간들과 함께 죽음을 맞음으로써 인류를 위한 마지막 희생을 택함.

나. 서사 전개의 특징
ㅇ (고독의 축적) 이 영화는 단순한 괴물 영화처럼 사건만 밀어붙이기보다, 텅 빈 도시를 떠도는 한 사람의 외로움과 불안이 어떻게 쌓여 가는지를 보여 줌.
ㅇ (낮과 밤의 대비) 낮의 뉴욕은 넓고 고요하지만, 밤의 뉴욕은 변종 인간들이 지배하는 공포의 공간으로 뒤바뀐다는 점에서 극단적인 대비를 이룸.
ㅇ (점진적 붕괴) 네빌은 처음에는 비교적 질서 있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샘의 죽음 이후 감정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며 영화의 비극이 더 짙어짐.

3. 주요 인물 분석
가. 로버트 네빌
ㅇ (인물의 성격) 네빌은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라 끝까지 치료제를 만들려는 과학자이자, 마지막까지 임무를 포기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짐.
ㅇ (삶에 대한 애착) 샘과 함께 허드슨 강 쪽에 정박한 배에서 골프를 치며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보면, 네빌은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 아니라 아직은 삶의 리듬과 일상을 붙들고 버티려는 모습을 보임.
ㅇ (고독한 존재) 그는 텅 빈 도시에서 오직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이미 문명 폐허 속에 남겨진 마지막 증인처럼 보이기도 함.
ㅇ (인물의 의미) 네빌은 끝내 자기 목숨보다 인류의 가능성을 앞세우는 선택을 함으로써, 멸망 직전의 세계에서도 인간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인물임.

나. 샘
ㅇ (동반자의 의미) 샘은 단순한 반려견이 아니라, 무너진 세계에서 네빌이 사람답게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마지막 가족 같은 존재임.
ㅇ (상실의 전환점) 샘은 변종 개들과 싸우다 치명상을 입고 감염되며, 결국 네빌의 손으로 마지막을 맞게 됨. 이 장면은 네빌에게 마지막 정서적 버팀목이 무너지는 결정적 순간으로 작용함.
ㅇ (고독의 심화) 샘을 잃은 뒤 네빌이 더 위험하게 행동하고 사실상 자포자기 상태로 기울어 가는 점에서, 샘의 존재는 이 영화 전체의 감정선에서 매우 큰 존재임.

다. 안나와 아이
ㅇ (외부 세계의 증거) 네빌의 방송 송출을 듣고 찾아온 안나와 아이는 네빌이 끝까지 믿지 못했던 다른 생존자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인물들임.
ㅇ (희망의 매개) 이들은 단순히 구조 대상이 아니라, 네빌이 완성한 치료제를 다음 세계로 옮기는 역할을 맡는다는 점에서 희망의 연결고리로 기능함.
ㅇ (의문이 남는 설정) 다만 변종 인간들이 우글거리는 밤의 위기 속에서 이들이 네빌을 구해 내는 과정은 영화 흐름상 넘어갈 수는 있어도, 개연성 면에서는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 있음.

4. 핵심 주제 및 메시지
가. 문명 붕괴와 인간의 고독
ㅇ (무너진 세계) 영화는 인류 멸망 자체보다, 텅 빈 도시에서 혼자 살아남은 인간이 얼마나 빠르게 외로움과 불안에 잠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줌.
ㅇ (고독의 무게) 사람은 먹을 것만 있다고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대화할 상대와 정서적 연결이 끊어질 때 더 깊이 무너질 수 있음을 네빌의 삶을 통해 드러냄.
ㅇ (도시의 역설) 뉴욕처럼 거대한 도시는 원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가장 거대한 고독의 공간으로 바뀌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임.

나. 과학과 재앙의 역설
ㅇ (구원의 실패) 암을 정복하려던 신약이 오히려 인류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었다는 설정은, 인간이 만든 구원의 기술이 언제든 재앙으로 바뀔 수 있다는 불안을 보여 줌.
ㅇ (과학의 양면성) 그러나 영화는 과학 자체를 악으로만 그리지 않고, 네빌이 다시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끝까지 매달린다는 점에서 과학이 파괴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음을 함께 보여 줌.

다. 희생과 전설의 의미
ㅇ (마지막 선택) 네빌은 자신의 생존을 택하지 않고 치료제를 다른 생존자에게 넘기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감수함.
ㅇ (전설의 뜻) 이 영화에서 전설은 단순히 살아남은 영웅이라는 뜻이 아니라,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끝까지 사람을 살리려 했던 마지막 인간이라는 뜻으로 보여짐.
ㅇ (인간성의 잔존) 결국 영화는 문명은 무너질 수 있어도, 끝까지 타인을 살리려는 마음까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시사함.

5. 인상 깊은 장면과 기억에 남는 요소
가. 텅 빈 뉴욕의 풍경
ㅇ (도시의 공포) 자동차도 사람도 없는 뉴욕의 풍경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문명 붕괴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한눈에 보여 주는 장면임.
ㅇ (낮의 침묵) 햇빛 아래에서 사슴을 쫓고 식량을 구하는 장면들은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그 고요함 자체가 이미 세상이 끝났다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드러냄.

나. 샘의 죽음
ㅇ (가장 아픈 장면) 샘이 변종 개들과 싸우다 감염되고, 결국 네빌의 손으로 마지막을 맞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대목 가운데 하나임.
ㅇ (완전한 고독) 이 장면 이후 네빌은 더 이상 예전처럼 버티지 못하고, 사실상 감정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큰 전환점이 됨.

다. 마지막 희생
ㅇ (치료제의 완성) 네빌이 마지막 순간 치료제를 완성해 안나에게 넘기는 장면은, 그가 단순히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 역할을 다한 사람임을 보여 줌.
ㅇ (폭발의 의미) 수류탄을 터뜨려 변종 인간들과 함께 죽는 선택은 영웅적 과시라기보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자리에서 인류의 가능성을 지켜 내기 위한 마지막 선택으로 보임.

6. 인상 깊은 부분과 생각
가. 버티게 하는 것
ㅇ (삶의 흔적) 네빌이 샘과 함께 배에서 골프를 치고, 방송을 내보내고,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사람이 끝까지 버티게 하는 것은 결국 일상의 습관과 삶의 리듬이라는 생각이 듦.
ㅇ (무너지는 순간) 그런 점에서 샘의 죽음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네빌이 붙잡고 있던 삶의 마지막 끈이 끊어지는 순간처럼 보임.

나. 개연성에 대한 생각
ㅇ (아쉬운 설정) 안나와 아이가 무시무시한 변종 인간들 사이에서 네빌을 구해 내는 부분은 영화 흐름상 넘어갈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다소 어색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이 있음.
ㅇ (마지막 선택) 그래도 네빌이 끝내 치료제를 남기고 죽음을 택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또렷하게 남는 부분임.

다. 마지막에 남는 생각
ㅇ (살아남는 것의 의미) 결국 중요한 것은 오래 버티는 것 자체가 아니라, 끝까지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가 중요하다는 점임.
ㅇ (전설의 이유) 네빌이 전설이 된 것은 강해서가 아니라, 다 무너진 뒤에도 마지막까지 사람을 살리려는 쪽에 서 있었기 때문으로 보임.

7. 종합 평가 및 결론
가. 작품의 성취
ㅇ (작품의 강점) 「나는 전설이다」는 재난과 괴물의 공포를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고독과 상실, 그리고 마지막 희생을 더 강하게 남기는 영화임.
ㅇ (남는 여운) 특히 샘의 죽음, 텅 빈 뉴욕, 마지막 치료제 장면은 문명이 무너진 자리에서 인간이 무엇으로 버티는지를 곱씹게 함.

나. 결론, 소회
ㅇ (인간의 마지막 품위) 이 영화는 세상이 무너진 뒤에도 끝까지 사람을 살리려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간의 마지막 품위가 무엇인지를 보여 줌.
ㅇ (한줄 정리) 「나는 전설이다」는 괴물보다 더 무서운 고독 속에서도 끝내 인류를 위한 희망 하나를 남기고 사라진 한 인간의 비극적 기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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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꼿꼿하며 간쟁을 서슴지 않았다. 올곧은 간쟁으로야 어찌 태부 신석정이나 혜민시 대령 난곡을 당할까마는, 신석정이나난곡은 황제를 독대하여 간쟁하지만 주공신은 편전에서 대놓고 하기 일쑤였다. 그는황제의 처족이나 척신들을 물리치는 일에누구보다 앞장섰으며, 관제를 대폭 개편해폐습을 개혁하고 유신을 단행해야 한다고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이 관철될 때까지 끊임없이 상소했다.

마지막 상소문에서도 주공신의 서슬은한 치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선조들이 다스리던 땅은 송곳을 꽂을 만한 작은 땅이라도되찾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황제의 도리라고 했다.

"비록 짐이 아끼는 독수리를 죽인 놈이지만, 늠름한 기세를 멸할 수 없도다. 가져가 딸에게 주어라. 또한 딸의 용기가 가상하여 금잔과 옥환을 하사하노라."
뜻밖에도 금잔과 옥가락지까지 받은 주공신은 머리를 조아렸다.

"독수리가 어느 정도 살면 묵은 털로 나래가 무거워지고 발톱의 날카로움도 무뎌지며, 부리도 닳아 그대로는 몇 년 더 살 수없게 되옵니다. 이때 살기를 체념한 독수리는 얼마 못 살고 죽지만, 용기 있는 독수리는 깎아지른 벼랑에 둥지를 틀고, 아무것도먹지 않고 부리를 절벽에 부딪쳐 깨뜨리옵니다. 그렇게 계속 깨뜨리면 닳아빠진 부리가 빠지고 새 부리가 나옵니다."

"발톱도 절벽에 갈고 또 갈면 묵은 발톱이 빠지고 예리한 새 발톱이 나오는데, 이때쯤이면 독수리가 벼랑을 벗어나 창공을줄곧 날면서 묵은 털을 빼버리옵니다. 독수리는 털이 빠진 채 바싹 말라 벌거숭이가되지만 다시 새 털이 나게 되옵니다. 털은윤이 흐르고 부드러우며 가벼워서 창공을맘껏 날아다닐 수 있사옵니다. 이렇게 처절히 고행을 한 독수리는 40년을 더 산다 하옵니다."

주공신의 얘기를 들으면서 대흠무는 독수리의 고행과 웅지가 고구려가 멸망한 지30년 만에 일어선 발해의 기상과 닮았다고생각했다.

그날 밤 국구 고원이 은밀히 대흠무를찾아왔다.
"폐하, 신이 감히 아뢰옵니다. 충신을 얻기 위해서는 주공신의 딸을 후궁으로 맞아들이시옵소서."
사사로이는 장인이 아니던가. 대흠무는젊고 고혹스런 후궁을 두라는 국구의 말을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천하를 다스리려면 물과 같아야 하옵니다. 물은 만물에게 두루 베풀지만 다투는일이 없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연한 물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쇠와 돌을 다루고, 스스로모양을 갖지 않아 작은 틈새까지 자유자재로 스며드옵니다. 앞으로 주공신은 간쟁을서슴지 않을 것이니, 그의 간쟁을 받아들이시면 반드시 성덕이 사해를 비출 것이옵니다.

"폐하, 새가 죽을 때는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말이 옳다고 했사옵니다. 누구든 죽기를 각오하고 간하거든,옳은 말이라 여기시옵소서."
결국 밤 이슥토록 고원과 마주앉아 청담을 나눈 대흠무는 고원의 청을 듣기로 마음을 굳혔다.
 
병신(756)년 화창한 봄날, 발해 황제 대흠무는 강역의 중심인 상경으로 천도하고선조에게 제를 올렸다. 천지신명께도 도성의 무궁함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 후 대사면을 단행했다. 죄의 대소를 논하지 않고 뇌옥을 열게 했으며, 유배 갔던 자들도 모두방면했다.

신석정은 대흠무가, 위기에 처한 당나라를 급습하거나 내홍에 싸인 당나라가 경황이 없을 때 신라를 공략하여 남방을 평정하거나, 국기를 바로잡아 대국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쇄신을 단행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석정은 그런 기운을 곳곳에서 감지하면서도 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대흠무는누가 간언하지 않아도 천하의 흐름을 읽고민심을 세세히 파악했다.

"높은 산을 오르면 눈보라와 강풍과 세찬 빗방울이 그치지 않듯 인간사도 그러하옵니다."

그 무렵 당제 이융기는 재상 양국충의간언을 받아들여 장안의 서남방에 있는 파촉으로 몽진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극비리에 용무장군 진현례에게 2천 명의 호위 군사와 말 9백여 필을 대기시켰다. 때는 병신(756)년 6월 13일이었다.
부슬비가 내리고 안개 자욱한 새벽에 몰래 황궁을 빠져나가는 도피 일행은 3천여명이었다. 태자와 공주 등 황손들과 양국충, 위견소, 고력사가 황제를 따랐다. 양귀비를 비롯한 양씨 일족과 환관, 비빈들이 뒤따르고 있었지만 도망자의 처량한 행렬이었다.

도주 이틀째 되는 6월 14일, 마외역에 도착했지만, 현령은 도망쳤고 배곯은 군사들은 금세라도 폭동을 일으킬 것 같았다. 눈치 빠른 호위 대장 진현례는 목청을 세워군사들의 원성을 엉뚱한 데로 모았다.
"지금 천하가 무너져 백성들이 떠돌아다니고 만승천자께서도 모든 것을 잃으셨다.양국충 같은 간신이 백성들을 벗겨 먹지 않았다면, 조야가 어찌 오늘의 처지에 이르렀겠느냐? 양국충을 죽여 만백성들의 원망과분노를 막아야 한다."

호위 대장의 선동으로 호위 군사들 손에양국충의 목이 달아났다. 그의 아들 호부시랑 양훤도 아비와 같은 신세가 되었고, 양귀비의 언니 한국부인과 진국부인도 칼날아래 이슬이 되었다.

"폐하, 소첩은 폐하의 은의에 어긋나는몸이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한시 바삐 부처님을 뵙게 해주옵소서."
눈물범벅이 된 양귀비의 목을 고력사가 비단수건으로 졸랐다.
"귀비, 극락왕생하여라."
이융기는 끓어오르는 통한을 삼켰다. 서른여덟의 천하절색 양귀비는 경국지색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라졌다.

대흠무는 당나라 사신이 돌아간 후 신석정과 대신들에게 안녹산 군사와 함께 당나라 깊숙이 진격한 발해 군사 5천 명을 회군시킬 방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한편, 대굉임 일행이 발해 강역을 순람하여 북방의 흑수 지경에 다다랐을 때는 추위가 극심한 한겨울이었다. 그들은 덫으로 작은 짐승을 잡고 창애로 꿩을 잡아 허기를때우며 순례를 계속했다.

그러나 어느 틈에 설개의 졸개가 대굉임을 향해 장도를 내리쳤다. 난청이 칼날을다급히 막다가 왼쪽 목을 찔려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삽시에 덜미에서 붉은 피가솟구쳤다. 어수선한 틈에 설개가 말을 타고도망치기 시작했다

난청이 무겁게 눈을 한 번 떴지만 이내눈꺼풀이 내려앉았다. 회자정리라지만, 인생의 무상함이 대굉임의 가슴을 메웠다. 어찌 그리 갈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의 목숨이이리 가볍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대굉임은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하늘을 보았다.

난청의 아버지 난삼은 열아홉 젊은 나이에 태자비 강사임을 위해 험준한 태백산에홀로 올라 자인삼을 캐어 바쳤다. 소꿉동무강사임이 회임하자 태자비의 순산을 위해초하루와 보름마다 몸을 깨끗이 하고 천신에게 빌었다. 그의 아들 난청도 황자를 지키려다가 기꺼이 목숨을 바쳤으니 어찌 대굉임의 가슴이 미어지지 않겠는가. 난청은그렇게 허망하게 저승길로 떠났다.

"그 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수려하면, 이름도 서릿발같이 하얗다 하여 상악이라 부르겠습니까. 또한 가을 단풍이 기가 막히다하여 풍악, 겨울 되어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신기한 바위가 드러난다 하여 개골, 동해 바다 가운데에 있어서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는 영산이라 하여 봉래라고 합니다. 또 부처님께서 살고 있는 동해한가운데의 아름다운 산이 금강산인데, 그산처럼 아름답고 신비하다 하여 금강산이라고 부릅니다.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산 이름이 바로 금강산입니다."

대흠무는 사위 양태사에게 대임을 맡기기로 했다.
"일본 가는 뱃길이 멀고 험해서 아까운인재들이 주검 되어 깊은 바다에 수장되니짐의 마음이 심히 아프도다. 부마는 오늘부터 해로를 익히고 교역을 배워 짐을 보필하고 나라의 동량이 되어라."

해가 바뀌어 정유(757)년 정월 보름 무렵, 경천동지할 소식이 장안에서 날아들었다.천하를 뒤흔들던 연나라 황제 안녹산이 급사하고 둘째아들 안경서가 계위했다고했다. 뜻밖의 보고를 받은 대신 고원은 급히 황제를 알현했다. 대흠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안녹산에게 은밀히 빌려준 발해 군사 5천 명을 안전하게 회군하는 일이 화급했다.또 안녹산을 거병케 하는 데 사력을 다했던이합비의 안전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후 이합비가 참살당했다는 소식이전해졌다. 이합비를 끝까지 수발했던 해시례가 천신만고 끝에 장안을 탈출하여 상경까지 도망쳐 올 수 있었던 덕에 안녹산이급사한 내막과 이합비의 죽음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신석정의 머리는 오직 이합비의 시신을찾을 생각 뿐이었다.
병신년 정월 초하루에 낙양에서 황위에올랐으니, 안녹산은 꼭 1년 만에 아들과 심복의 손에 암살당했다. 이와 함께 안녹산의마음을 흔들어 중원을 어지럽힌 이합비는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안경서는 황위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오. 하북의 맹주가 된 사사명에게는 10만 대군이 있소이다. 안경서가 사사명을 위천왕으로 봉했지만, 사사명이 심복 장수 채희덕에게 태원성을 맡기고 범양으로 급히돌아간 건 딴 생각이 있기 때문이오. 안녹산이 낙양과 장안을 함락하고 막대한 금은재화를 범양에 옮긴 걸 사사명이 왜 모르겠소."

혜민시에서 혜민부로승격하면 그 수장은 중신반열에 오르고, 황제를 수시로 독대할 수 있으니 벼슬만 중신이지 권신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대흠무는 대신들의 주청을 받아 혜민부경에 난곡을 임명하였다. 의술에 능하고 시문에 밝으며 황제의 심경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사명은 오승은을 참살하고 무술(758)년 6월, 13만 대군을 일으켰다. 그는 당군에 대패하고 도망 다니는 안경서의 구원 요청을 핑계로 단숨에 위주를 점령하는 위용을 보였다. 이에 안경서는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사사명에게 전위하겠다고 말했다.
기해(759)년 정월 초하루, 사사명은 위주에서 연나라 황제를 칭하고 즉위했다. 그러나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봄날 느닷없이 안경서를 형장에 세우고 참수했다. 안경서의죄목은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아버지를 죽이고 황위에 올랐으니 천륜을 어긴 대역죄를 지었다는 것이었다. 안경서 뿐만 아니라 동생 4명과 그의 심복들도 목 졸라 죽이는 교형에 처했다.

그러나 대흠무는 일거에 거절했다. 당나라에서도 수차 간곡히 원병을 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어느 편도 거들지 않는 것이유익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흠무의 계략이었다. 겉으로는두 나라의 전쟁이지만 실제로는 내란이었다. 중원의 내란이 길어질수록 발해는 오히려 부강해질 것이다. 내란이 끝나면 강역이 폐허가 되고 국고가 비어서 군심과 민심을 다독거리는 일만도 힘겨울 것이다.
발해는 그 틈에 군사를 기르고, 농경과물산을 장려하고, 교역을 넓혀 나라를 부국강병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강직한 신하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 중 당나라 유학파들은 황제 대흠무가 유약하다고 생각했다. 위기에 처한 당나라를 도와주고 중원이 평정된 뒤 약조대로 요서 땅을 차지하면, 그것이 바로 부국강병이라고 생각했다.

"춘추필법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었도다. 첫째 존화양이라 하여 중화를 높이며 다른 나라는 깎아내리고, 둘째는 상내약외라하여 중화의 역사는 상세히 기술하되 다른나라 역사는 간단히 쓰며, 셋째 위국휘치라하여 중화를 위해 수치스러운 것은 모두 숨긴다는 것이다. 공자가 춘추를 쓰면서 왕이나 천자의 잘못을 대놓고 쓰지 못해 이리저리 에둘러 기술한 것이 바로 춘추필법임을경들은 아는고?"

"그러함에도 우리의 사가와 선비들이 춘추필법의 장단에 춤을 추며 중화의 사서를베끼고 있지 않는가. 간쟁을 하려거든 그런어리석고 옹졸한 선비들처럼 정세를 다루고 있지나 않는지 살펴보라. 당나라는 내란이 평정되면 분명 오랑캐들이 스스로 군사를 일으켜 황은에 보답했다고 기록하리라.섣불리 우리가 기병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음을 경들은 숙고하라."

"성무고황제께서는 유언으로 신라를 치지 말라 이르셨노라. 나당 연합으로 백제와고구려를 멸망케 했더라도 다 같은 단군자손이니 형제로 대하라 하셨도다. 신라를 치는 것은 바로 형제를 죽이는 것과 같도다.현명한 신하는 먼저 백성의 어려움을 보고,간교한 신하는 먼저 군주의 얼굴빛을 살핀다고 했도다. 경들은 늘 바른말로 간하니충신이 분명하도다. 언제고 짐의 부덕을 간쟁하는 데 충절을 아끼지 말라."

사사명도 안녹산처럼 자식 복이 없었는지 장남 사조의 대신 첩의 자식이자 막내인사조청을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다. 사조의는 아버지가 동생 사조청을 부원수로 삼고 자신을 제거하려 하자, 신축(761)년 3월심복 장수 낙열, 허계상과 모의하여 아버지사사명을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다.

더구나 당나라와 신라, 일본까지 교역하여재산을 불린 것을 푼푼하게 나누어주었기때문에 대소신료들로부터도 신망을 크게얻었다. 그러나 강직한 신하들은 대견강의득세를 걱정하여 대술묘를 후궁으로 앉히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특히 양소화는 대술묘의 입궁뿐 아니라대견강과 대원의가 근신이 되는 걸 한사코반대했다. 그들이 돈벌이라면 해적질까지서슴지 않았으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 큰재물을 모은 죄상을 낱낱 적어 상소했다.그러나 대흠무는 주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구려 후손들 중 왕모중과 고선지 이후에 후희일과 이회옥이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받고 있는 걸 대흠무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지략과 용맹이 두드러진 탓도 있지만,그들 휘하에 있는 군사들은 고구려 후손들이 주축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태부는 오직 충성으로만 폐하를 섬기며나라의 부국강병에만 혼신을 바치옵니다.그러나 국구는 고구려 왕손의 피를 숨기지못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보위에 오른 지 스물다섯 해가 되었사옵니다. 태자를 봉하시면 그들이 태자에게 모여드는 게 보일 것이옵니다. 그러면충신과 간신도 보이게 되옵니다."
대흠무는 당당한 체구의 대원의를 내려다보며 지략과 기개가 담대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한 말이 다시는 입 밖에서 공론이되지 않게 하라. 너의 충절은 잊지 않겠도다."

"폐하, 사람이 모여드는 이유는 이득이나 덕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국구 고원은덕이 있어 사람이 모여들고, 대견강은 이득이 있어 사람이 모여드는 것이옵니다. 덕을좇는 자들은 도리를 지키지만, 이익을 좇는자들은 사욕을 위해 음모와 흑심을 품게 마련이옵니다."
대흠무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신석정은 오히려 대원의의 부친인 대견강을 비판하고 나섰다.

"폐하, 재물은 반드시 사람을 떠나지만덕은 후세까지 모여드옵니다. 지략이 지나치면 음계가 되고 음계가 지나치면 반심이되옵니다. 대견강 부자를 경계하옵소서."
신석정이 아니라면 차마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황제가 총애하는 대술묘의 아버지요, 오라버니였다.

대원의의 주장이 마땅히 옳으니 받아주옵소서. 양소화가 비록 여인의 몸이지만 웅지가 장대하니 재상으로 삼아 곁에 두옵소서. 대원의의 현책은 받아주시고 간책은멀리하옵소서."
"폐하, 국구는 고구려 왕손이옵니다. 그에게 충역이 있으면 진작에 작은 징후라도있었을 것이옵니다. 국구는 겉모습과 나이만 변했을 뿐 마음은 한결같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짐이 어리석을 때마다 눈이 흐려졌음이니, 눈에 침을 맞아야 한다고 말하시오.또한 남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귀가 어두워졌음이니 귀에 침을 맞으라 하고, 부당한명령을 내리거든 입이 가벼워졌음이니 입에 침을 맞으라 하시오. 하늘을 우러러보지못하면 머리끝에 침을 놓겠다 하고, 덕이모자란 듯하면 가슴에 침을 맞으라 하시오."
"폐하!"
신석정은 몸을 더 조아렸다.
"경은 신하일 뿐 아니라, 짐의 스승이자자손들의 스승이오. 오늘부터 태부는 짐에게 무슨 말을 해도 벌하거나 죄를 물을 수없는 면책권과 불촉권을 주겠소."

"폐하, 대원의의 얼굴은 역상이옵니다.신이 청하건대 그를 멀리하시어 후환을 방비하옵소서."
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신석정은 단호하게 간했다. 양소화도 누차 대원의를 멀리하라고 상소했다.
"짐에게 맡겨 두시오."
기어이 황제는 태부의 뜻을 자르고 물러가게 했다.

조정에서는 그녀의 공을 높이 받들어 개국공으로 추증했지만, 백관들은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신석정과 무명선사를 비롯한 소수의 권신들만이 그녀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다. 그들은 양소화의 급작스런횡사에 의문을 품었지만, 진위를 밝힐 만한단서를 찾지 못했다. 양소화의 죽음에 얽힌풍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10호 연좌제 때문에 그녀를 미워하는 권신들의 암계가 아니면 그녀가 매섭게 비판한 대원의 일가의 응징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그 즈음 대원의의 사가에는 심복 몇 사람이 무릎 끓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찌 감쪽같이 주살하지 못하고 풍문이들끓게 했느냐?"
"곧 주서채를 죽여 소문의 진원을 없애겠습니다."

이렇듯 대흠무는 3성 6부 1대 7시 1원 1감 1국의 주요 관작을 모두 정비했다. 그외에도 무관직제 10위를 정해 각 위마다대장군, 장군을 두고 그 밑에 도장과 낭장을 두었다. 별도로 혜민부를 두어 백성을구휼하도록 했고, 문무를 가리지 않고 품계를 1품에서 9품으로 나누어 각각 정과 종으로 구별했다. 그 안에서도 상과 하를 구분하여 벼슬을 세분했다.

대흠무는 도성인 상경용천부를 비롯한 5경과 15부의 도독과 그 관하 62주에는 자사를 모두 정비하여 강역을 장악하는 쇄신을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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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6 - 불심과 진신사리 김홍신의 대발해 6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6권, 불심과 진신사리 – 문왕 대흠무의 치세, 흑수 정벌과 충신의 죽음, 상경 천도와 대당 질서의 균열

1. 대발해 6권 전체 개요

가. 목적
ㅇ (핵심요약) 대발해 6권에서 3대 황제 대흠무(문왕)의 치세가 본격화되는 과정, 흑수말갈 정벌과 장문휴의 최후, 양소화의 재등용과 정치적 부상, 상경용천부 천도 구상, 진신사리 구득을 위한 무명선사의 천축행, 그리고 안녹산의 부상과 반란으로 이어지는 대당 질서의 동요를 종합적으로 검토함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배경) 무황 대무예 사후 문왕 대흠무가 즉위하여 정복 국가를 수성 국가로 전환해 가는 시기이며, 북방에서는 흑수말갈의 위협이 이어지고, 대당 관계는 겉으로는 화친을 모색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긴장과 견제가 계속되는 국면임. 동시에 당나라에서는 현종 말기 궁정 문란과 안녹산 세력의 비대화가 겹치며 제국 질서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함
ㅇ (공간적배경) 발해 황도와 북방 영자성·자림성 일대, 흑수말갈 경계 지역, 서북압록부 등의 변방 통치 공간, 흘한해와 상경용천부 예정지, 당의 장안과 범양, 그리고 안서도호부·돈황·옥문관·총령·탄구령을 거쳐 천축으로 이어지는 서역 순례길이 주요 무대가 됨

다. 핵심요지
ㅇ (수성기로의전환) 6권은 무왕기의 정복과 공세를 넘어, 문왕 대흠무가 인사·군정·감찰·천도·불교 권위를 결합하여 국가 운영의 틀을 새로 세우는 수성기의 출발을 보여줌
ㅇ (충신의비극적완성) 장문휴는 황권 때문에 개인적 상처를 입고도 끝내 나라를 위해 흑수 정벌에 나서며, 죽음을 각오한 전투 끝에 전사함으로써 발해 충신 서사의 정점을 이룸
ㅇ (정치적포섭과체제정비) 대흠무는 장문휴 사후 영가혼례를 허락하고 양소화를 중용하는 한편, 수도 이전과 감찰 체계 정비를 추진함으로써 체제를 안정시키려 함
ㅇ (국제질서의흔들림) 발해를 둘러싼 대외 환경도 급변하여, 안녹산이 양귀비와 결탁한 궁정 특권 속에 세력을 키우고 끝내 반란을 일으키며 동북아 전체 질서가 새 국면에 접어듦

2. 주요 내용 전개

가. 흑수말갈의 준동과 양소화의 북정
ㅇ (북방위기) 흑수말갈 수령 오소걸몽은 발해 북방 방어선의 허점을 노리고 영자성·자림성으로 이어지는 요충지를 흔들며 준동함. 문왕은 이를 단순한 국경 분란이 아니라 북방 질서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으로 인식함
ㅇ (양소화등용) 대흠무는 북방을 수습하기 위해 양소화를 북정군 통수로 임명함. 발해 역사상 보기 드문 여성 대장군의 전면 배치는 문왕 치세 초반 군사 지휘 체계를 새로 짜는 상징적 인사로 제시됨
ㅇ (초기성과와좌절) 양소화는 처음에는 적이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고 유연한 전술로 전황을 주도하나, 흑수 쪽의 반격과 오소걸몽의 기민한 대응으로 자림성을 빼앗기고 전황은 급격히 불리해짐
ㅇ (분노의무리수) 양소화는 요충지 상실에 분기탱천하여 부하들의 만류에도 자림성 탈환을 서둘러 강행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군사를 잃으며 북정군은 심각한 타격을 입음

나. 장문휴의 귀환과 자림성 수복
ㅇ (은둔한충신의복귀) 장문휴는 대흠무에게 정혼자를 빼앗긴 뒤 태백산 일대에 물러나 있었으나, 나라의 위기 앞에서는 끝내 등을 돌리지 못하고 발해인·말갈인·사냥꾼·화전민까지 아우른 민병 약 5천을 규합하여 다시 전장에 나섬
ㅇ (민심이따른장수) 장문휴에게 태백산 일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단지 무용 때문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보여준 법도 있는 인품과 명성 때문으로 그려짐. 이는 장문휴가 무력뿐 아니라 덕망까지 갖춘 장수였음을 드러냄
ㅇ (전략적탈환) 장문휴는 정면 돌파보다 적의 심리와 지형을 읽는 전술을 택해 자림성을 다시 수복하고, 무너졌던 북방 전선을 재정비함
ㅇ (복권의계기) 양소화가 조정에 진상을 올리고 신석정 등이 이를 받치면서 장문휴는 다시 공적으로 평가받고, 보국대장군에 준하는 위상을 회복하며 발해 최정예 장수로 재등장함

다. 흑수 깊숙한 추격과 장문휴의 죽음
ㅇ (죽음을무릅쓴진격) 장문휴는 단순히 자림성을 되찾는 데 그치지 않고, 오소걸몽을 뿌리 뽑기 위해 흑수 깊숙한 적진까지 밀고 들어감
ㅇ (오소걸몽제거) 장문휴는 끝내 오소걸몽을 추격해 제거하는 데 성공하나, 승리 뒤에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전진하다가 독화살을 맞고 치명상을 입음
ㅇ (충절의완성) 장문휴의 전투는 살아 돌아오기 위한 싸움이라기보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결전처럼 묘사되며, 나라를 위해 개인의 삶을 모두 던지는 충절의 극한을 보여줌
ㅇ (영혼가례의허락) 양소화는 장문휴의 시신을 수습해 황제에게 영가혼례를 청하고, 대흠무는 이를 허락함. 이는 생전에 파괴된 인간적 관계를 사후에라도 정리하려는 조치이자, 황권이 충신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수습하는 방식이기도 함

라. 양소화의 감찰과 대신 등용
ㅇ (직접대신기용의난관) 대흠무는 양소화를 대신으로 기용하고자 하지만, 조정의 대신들은 출신과 전장 경력,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함
ㅇ (신석정의우회책) 이에 태사 신석정은 곧바로 대신으로 올리지 말고 감찰어사 직임을 맡겨 능력과 충정을 검증한 뒤 공을 세우면 상을 내리도록 하자고 건의함
ㅇ (서북압록부감찰) 양소화는 서북압록부 감찰어사로 파견되어 변방 통치 실태를 조사하고, 그 과정에서 도독 공심지가 백성 수탈과 군정 전횡, 불법 처형과 음란한 궁색 조성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음을 밝혀냄
ㅇ (공심지제거) 공심지는 죄상이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 군대를 동원해 양소화를 죽이려 하지만, 양소화는 천신만고 끝에 반격하여 공심지를 직접 처단함
ㅇ (선참후결의논란) 문제는 공심지가 황비 공사량의 오라비였다는 점이었으나, 양소화는 선참후결로 보고를 올림. 신하들은 그를 벌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신석정은 이런 경우마저 충신을 벌하면 나라에 충신이 남지 않는다고 간언함
ㅇ (대신으로의상승) 결국 대흠무는 양소화를 칭찬하고 대신으로 기용하며, 문왕 치세의 새 핵심 실무형 대신으로 세움

마. 수도 이전 구상과 상경용천부
ㅇ (남쪽치우침의인식) 대흠무는 기존 수도가 넓어진 강역을 다스리기에 지나치게 남쪽에 치우쳐 있다고 보고, 국토 중앙부에 더 가까운 새로운 통치 거점을 구상함
ㅇ (흘한해순방) 그는 흘한해를 순행하며 폭포·용천·평야와 요새 지형을 두루 살피고, 장안에 못지않은 도성을 세울 터전으로 상경용천부를 점찍음
ㅇ (북방중심국가의구상) 상경 천도는 단순한 수도 이전이 아니라, 북방 경영 강화, 행정 효율 제고, 대외 방어선 재편, 고구려의 옛 중심 회복이라는 뜻까지 겹친 장기 국가전략으로 제시됨
ㅇ (문왕적통치의형성) 이 과정에서 대흠무는 무왕기의 돌격형 군주와 달리, 넓어진 국가를 오래 지탱할 질서와 공간 구조를 만드는 제왕으로 형상화됨

바. 진신사리와 무명선사의 천축행
ㅇ (황제의원력) 대흠무는 나라의 안녕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무명선사에게 천축으로 가 진신사리를 구해 오도록 명함
ㅇ (죽음같은여정) 무명선사는 사실상 목숨을 걸고 상경을 떠나, 돈황·옥문관·총령·탄구령을 넘어 천축을 향하는 죽음 같은 순례길에 오름. 모래와 열기, 산적과 독충, 굶주림과 갈증이 이어지는 길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으로 그려짐
ㅇ (혜초와의만남) 무명은 장안에 머물던 혜초를 찾아가 천축의 길과 불법, 순례의 뜻을 듣고 마음을 다잡음. 혜초는 직접 걸어본 자의 언어로 천축 순례의 험난함과 의미를 전해 주며, 무명의 여정에 정신적 이정표가 됨
ㅇ (고선지의도움) 안서도호부의 절도사 고선지는 고구려 후손이라는 자의식과 서역 경략의 경험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며, 무명선사의 길을 돕고 발해와의 연을 이어 주는 존재로 등장함
ㅇ (진신사리의의미확장) 작품은 진신사리를 단지 부처의 육신 유물에만 한정하지 않고, 부처의 말씀과 지혜, 자비를 행하는 것 또한 진신사리라는 해석까지 제시함
ㅇ (귀환과봉안) 결국 무명선사는 진신사리를 무사히 가져와 대흠무에게 바치고, 이는 문왕의 통치가 군사와 행정뿐 아니라 불교적 권위와 성덕의 언어로도 정당성을 확보해 가는 모습으로 이어짐

사. 대문예 계열의 잔재와 대청천 사건
ㅇ (반란의대물림) 무왕 대의 반란 중심이었던 대문예의 계열은 문왕 치세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잔존함
ㅇ (대청천암살기도) 대문예의 아들 대청천은 당 조정 실세 고력사와 연결되어 대흠무를 암살하려 하나 끝내 실패함
ㅇ (왕실불안의지속) 이는 발해 내부의 왕실 갈등과 외세 개입이 세대를 넘어 계속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문왕 치세의 안정도 결코 저절로 온 것이 아님을 드러냄

아. 당 현종, 양귀비, 안녹산과 이합비
ㅇ (당궁정의문란) 당 현종은 양옥환을 후궁으로 삼아 궁정 기강을 흐트러뜨리고, 안녹산에게 범양·하동절도사 등의 막강한 권한을 맡겨 제국 내부의 균형을 무너뜨림
ㅇ (안녹산의비대화) 안녹산은 양귀비를 어머니로 모시게 해 달라고 청하며 궁중 출입의 특권까지 누리고, 황제의 신임을 등에 업은 채 군사적 기반을 키워 감
ㅇ (이합비의공작) 작품은 발해 여인 이합비가 안녹산을 유혹하고 부추겨 발해 대신 당 내부를 향한 야심을 키우도록 만드는 서사를 넣음으로써, 발해가 무력만이 아니라 첩보와 심리전까지 구사하는 국가로 묘사됨
ㅇ (조짐에서현실로) 안녹산의 야심은 점차 노골화되고, 위서를 둘러싼 의혹과 황실 내부 혼란이 이어진 끝에 결국 반란으로 폭발함

자. 안녹산의 반란과 국제질서의 균열
ㅇ (반란의발생) 안녹산은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장안으로 진격하고, 짧은 시간 안에 칭제건원하며 연국을 선포함
ㅇ (당질서의붕괴) 이는 당의 혼란이 더 이상 궁정의 문란에 머물지 않고 제국 전체를 뒤흔드는 내전으로 번졌음을 뜻함
ㅇ (발해의새국면) 발해로서는 당의 직접 압박이 느슨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동시에 동북아 전체 질서가 흔들리면서 더 예측하기 어려운 대외 환경과 마주하게 됨

3. 인물 및 통치 평가

가. 대흠무의 군주상
ㅇ (수성군주의형상) 대흠무는 흑수 대응, 양소화 발탁, 감찰 정비, 상경 천도 구상, 진신사리 구득을 통해 수성기 군주로서의 면모를 뚜렷이 드러냄
ㅇ (권력의냉혹함) 그러나 그는 장문휴의 삶을 무너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며, 생전의 상처를 사후 예우로 수습하려는 군주라는 점에서 여전히 황권의 냉혹함을 품고 있음
ㅇ (정치적유연성) 그럼에도 실리를 위해 양소화를 중용하고, 지역과 공간 구조까지 재편하려는 점에서는 무왕과 다른 문왕형 통치술을 보여줌

나. 장문휴의 역사적 위상
ㅇ (충절의정점) 장문휴는 개인적 원한을 나라 앞에 접어 두고, 민병을 이끌어 무너진 북방 전선을 수습하며, 적진 깊숙한 곳에서 죽음으로 충절을 완성하는 인물로 그려짐
ㅇ (비극적영웅) 특히 정혼자를 빼앗기고도 황제를 향한 노골적 반역으로 가지 않고, 끝내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다는 점에서 발해 서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비극적이고도 웅대한 장수상으로 남음

다. 양소화의 부상
ㅇ (실패를딛는인물) 양소화는 무리한 공격으로 병력을 잃는 실책도 범하지만, 이후 진상 보고와 감찰 임무, 공심지 처단을 통해 다시 능력과 충성을 증명함
ㅇ (무장형대신) 그는 전장 경험과 행정 감각, 결단력까지 갖춘 인물로 자리잡으며, 문왕 치세가 요구하는 새로운 유형의 실무형 대신으로 성장함

라. 무명선사의 상징성
ㅇ (불교적권위의매개) 무명선사는 단순한 승려가 아니라, 문왕 치세가 왕권의 종교적 정당성과 국가적 염원을 결합하는 통로로 기능하는 인물임
ㅇ (고난의수행자) 죽음을 무릅쓴 천축행은 문왕의 원력과 국가의 대의를 몸으로 짊어진 수행자의 희생을 보여주며, 6권의 서사를 전쟁에서 수행과 구법의 길로 확장시킴

4. 거시적 고찰 및 역사적 함의

가. 정복국가에서 수성국가로의 전환
ㅇ (통치문법의변화) 6권은 발해가 무왕기의 정복과 공세만으로 유지되는 나라가 아니라, 북방 방어·감찰·천도·불교 권위까지 포괄하는 수성 국가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여줌
ㅇ (문왕체제의정립) 문왕은 전쟁 영웅이 아니라 제도와 공간, 인사와 정당성을 설계하는 군주로 제시되며, 국가 운영의 문법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드러냄

나. 충신의 희생과 황권의 부채
ㅇ (장문휴의희생) 장문휴의 죽음은 발해가 흑수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공훈이지만, 동시에 황권이 끝내 갚지 못한 부채이기도 함
ㅇ (사후수습의한계) 영가혼례와 예우는 생전의 상처를 완전히 지워 주지 못하며, 오히려 문왕 체제가 충신의 희생 위에 서 있음을 더 선명히 보여줌

다. 불교와 왕권의 결합
ㅇ (사리의정치성) 진신사리 구득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왕권을 불교의 성덕과 연결하여 국가 질서의 도덕적 권위를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함
ㅇ (문왕치세의정당화) 천축행과 사리 봉안은 문왕이 무력 중심 통치에서 한 걸음 나아가, 성왕의 언어와 불법의 상징까지 끌어들이려 했음을 보여줌

라. 동북아 국제질서의 재편
ㅇ (당의내부붕괴) 안녹산의 반란은 당이 더 이상 안정된 중심 질서가 아님을 뜻하며, 발해를 둘러싼 외교 환경도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의미함
ㅇ (발해의기회와불안) 발해는 당의 약화를 틈타 공간을 넓힐 수도 있으나, 반대로 질서 없는 국제 환경 속에서 더 복합적이고 위험한 선택을 강요받게 됨

마. 대조영의 두 아들과 엇갈린 운명
ㅇ (혈통의분기) 대발해 6권은 개국황제 대조영의 혈통이 시간이 흐르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여줌. 한쪽 계열은 대무예를 거쳐 대흠무로 이어지며 황통을 계승하고 나라의 중심이 되지만, 다른 한쪽 계열은 대문예와 대청천으로 이어지며 끝내 당과 결탁한 반란과 암살 기도로 나타남
ㅇ (왕조의아이러니) 이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형제의 후손이 한쪽은 나라를 지키는 황제가 되고, 다른 한쪽은 대를 이어 나라를 흔드는 역적이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줌. 결국 6권은 국가의 위기와 외부의 침략 못지않게, 왕실 내부의 균열이 얼마나 오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드러냄
ㅇ (개국자의비극) 더 나아가 이는 대조영 개인의 비극으로도 읽힘. 아버지의 눈으로 보면 두 아들 모두 나라의 기둥이 되었어야 하나, 현실에서는 한 혈통이 제국의 황통이 되고 다른 혈통은 멸문의 불씨로 남았다는 점에서, 개국의 영광 뒤에 숨은 가장 쓰라린 그림자를 보여줌

5. 종합 결론

가. 문왕 치세의 본격화
ㅇ (체제정비의시대) 대발해 6권은 대흠무가 흑수말갈을 제압하고, 양소화를 중용하며, 상경 천도와 불교 권위 확보를 병행함으로써 문왕 치세의 본격적인 틀을 마련하는 과정을 보여줌

나. 장문휴 서사의 마무리와 시대 전환
ㅇ (영웅세대의퇴장) 장문휴는 흑수 정벌이라는 대업을 이루고도 살아 돌아오지 못함으로써, 개국·정복기의 영웅 세대가 역사의 전면에서 퇴장하는 상징적 인물로 남음. 그의 죽음은 발해가 이제 개인 영웅의 무용보다 제도와 통치로 버텨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뜻함

다. 새로운 질서의 문턱
ㅇ (새국면의도래) 상경용천부 구상, 진신사리 구득, 대문예 계열의 잔재, 안녹산의 반란은 모두 발해가 안팎의 긴장 속에서 새로운 도약과 새로운 불안을 동시에 맞는 문턱에 서 있음을 보여줌
ㅇ (6권의의미) 결국 6권은 문왕 대흠무 시대가 단순한 평화의 시대가 아니라, 전쟁의 상처를 안은 채 질서를 다시 짜고, 권력을 재배치하며, 국제 격변 속에서 발해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전환기였음을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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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처럼 누추한 안국사까지 왕림하셨으니 감은부복하나이다."
대흠무 일행은 승려를 따라 절 마당으로들어섰다. 앞뜰에 30척이나 높이 솟은 9층석탑이 있고 그 옆으로는 온통 꽃밭이었다.승려는 탑 앞에 합장하고 낭랑한 목청으로고했다.
"나무 아미타불, 혜명선사시여! 제자 무명은 10년을 기다려서 효감금륜성법 대왕을 모셨나이다. 굽어 살피소서."

별안간 거문고 줄이 툭 끊겼다. 무명은거문고를 내려놓고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귀인이 엿들으면 줄이 끊어진다 했나이다. 엿듣는 귀인은 어디 계시옵니까?"
대흠무는 기척하고 무명 앞으로 나섰다.
"폐하, 어찌하여 홀로 들으셨사옵니까?"
"거문고 소리가 짐의 마음을 헤집으니어찌 잠들 수가 있으리오. 달은 밝고 경치는 수려하니 춤이라도 추고 싶소."

"혜명선사께서 세속에 나와 백성을 구원하고 나라를 강건하게 하셨음을 아시오?"
"스승께서는 혜안이 있으시니 능히 그러셨을 거라 짐작되옵니다."
"혜명선사의 수제자이니 응당 짐을 도와나라와 백성을 구원해야 하오."
무명은 고개를 저었다.

"개국 황제이신 성무고황제께서는 유지를 남겨 부처님 나라 천축에 가서 진신사리를 구해 나라의 안녕을 도모하라 하셨소.만천하를 둘러보아도 멀고 험한 천축까지다녀올 만한 승려는 무명뿐이오. 짐이 안국사까지 달려온 것은 무명에게 대임을 맡기기 위함이오. 이는 또한 혜명선사의 가르침이기도 하오. 혜명선사는 짐이 올 것을 미리 알았듯 무명이 대임을 맡게 될 것도 알았소이다."

황제가 애원하는 것은 정녕 보기 드문광경이었다.
"소승은 어리석어 제 한 몸 추스르지 못하는 승려이옵니다."
대흠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두손을 모으고 무명에게 절을 올렸다. 한 나라의 주인이요, 지엄하기가 하늘과 같다는황제가 승려 앞에 꿇어 엎드렸으니 천하가놀랄 일이었다.

대흠무의 곡진한 간청을 더 물리는 일이불충임을 깨달은 무명은 황제 밑을 파고들듯 땅바닥에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이 한 목숨을 바쳐 성은에 보답하겠나이다."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강역을 넓혀사방이 4천 리나 되옵나이다. 중경은 남쪽에 위치하였으나, 상경은 국토의 중심이옵니다. 서로는 요하를 경계로 당나라가 있고, 북으로는 속말수를 경계로 거란이, 흑수를 경계로 흑수가 있으며, 남으로는 패수를경계로 신라가 있나이다. 이렇게 강성해진발해의 도읍지는 홀한수를 끼고 번성해야하옵니다."

배를 버들방천에 매어두고 뭍에 오르자, 호숫가를 따라 버드나무가 울창했다. 그 길을 따라가니 천하를 희롱하는 듯 웅장한 금경(경박)폭포가 나왔다.

거연히 솟은 소나무 밑에 선 황제 일행은 마치 거센 눈발처럼 물보라가 휘날리는폭포를 바라보며 누구라 할 것 없이 감탄했다. 천하 장관이었다. 흡사 하늘에서 수백 마리 백룡이 내리꽂히듯 했고, 용궁에서수많은 은룡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천년이끼 자란 바위 위에서 홀한해의 맑은 물이쏟아지고 있었다.

높이가 390여 척이요, 너비가 1,300여 척이나 되는 푸른 소에 쿵쿵 떨어지는 폭포의 울부짖음은 산악이 무너지고 하늘이 진동하듯 요란했다. 홀한수(목단강)는 홀한해와 옛 화산의 분화구였던 이 깊고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끝없는 샘물이 시원이 되고 원천이 되어, 수백 리 화산석 벌판을 적시며 유유히 동으로 흘렀다.

이튿날 아침, 황제 일행은 부지런히 지하삼림을 향했다. 지하삼림은 지금으로부터78년 전 대흠무의 증조부이자 고구려 유장인 진국장군 대중상이 고구려 멸망 뒤 패잔병과 저항군을 규합하여 개국의 발판으로삼았던 곳이다.
"정말 감회가 깊도다."

"폐하, 이곳이야말로 꿈에 용이 승천한곳이니, 용천이 틀림없고 황도로 손색이 없사옵니다. 이런 길몽이 어디 있겠사옵니까.사람이 생존하자면 물과 곡식이 있어야 하옵니다. 저 너른 들에 양식이 풍성하고 용천이 있어 세세연년 물 걱정은 아니 해도되니 이런 길지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이곳을 상경용천부로 삼고 도읍하소서."

"당나라 장안의 황성 못지않게 축성하되고구려의 혼을 잊어서는 안 되니 옛 평양성을 본뜨게 하라. 10만 호가 살 만큼 성역을넓히고 발해의 장구한 역사가 자리 잡게하라. 결코 서둘러 축조하지 말고 10년 동안 짓되 천년 동안 보전케 하라."

"상경은 개활지여서 상호 왕래가 편한땅이요, 땅이 기름지고 기후도 따뜻하며 홀한수가 있어 농사짓기도 좋고, 마소 기르기도 좋나이다. 백리 석판벌에 홀한수가 흐르고 높은 산들이 병풍인 양 둘러쳐 천년 요새를 이루고 있어 나아가면 진공할 수 있고물러서면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이옵니다.더욱이 북방으로 강역을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국토의 가운데에 자리 잡아야 하옵니다."

무명선사가 황명을 받들어 부처님 진신사리를 구하기 위해 상경을 떠난 것은 병술(746)년 5월이었다.
"선사를 사지로 내모는 것 같아 짐의 마음이 편치 못하오. 그러나 이는 발해의 대업이자 숙원임을 잊지 마시오."

초기의 순례자들 가운데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고승은 동진시대의 법현이었다. 뒤를이어 북위 왕조 때 호태후의 명을 받고 불전을 수집하기 위해 송운이 순례를 떠났다.그로부터 한 세기 뒤에는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천축국을 다녀왔고, 의정도 뒤따랐다.바람결에 들리는 얘기로는 신라의 승려 혜초가 천축에 다녀와서 지금 장안에 머물고있다고 했다.

천복사에서 금강지 선사는 이미 5년 전에 입적했다는 애석한 소식을 들었다. 금강지의 법통을 이은 승려가 신라에서 건너온 혜초라는걸 알고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무명은 혜초가 묵는 처소로 찾아갔다. 단아한 표정으로 손을 맞는 혜초는 따스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소승, 문안 여쭙니다."
혜초가 합장한 채 반가운 낯으로 물었다.
"누추한 곳을 어찌 찾아주시었소?"
"천축을 순례하려 합니다. 금강지 선사께 가르침을 받고 싶어 왔으나, 이미 입적하셨다고 하여 스님을 찾아뵈었나이다."
"천축에 가신다니 큰 뜻을 세우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천축에 다녀오신 걸로 알고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다녀왔습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소승을 이곳으로 인도했습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천축으로 향한 것은 소승의 나이 스무살 때였습니다. 스물네 살에 돌아왔으니, 4년 정도 걸린 셈입니다. 자그마치 5만 리길이었으며, 모래폭풍과 모든 것이 다 말라비틀어지는 혹독한 더위, 느닷없이 길을 막는 산적 떼와 가도 가도 알 수 없는 길들…… 세상 모든 것이 순례의 길을 막는 악귀같았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천축에 당도해 부처님의 자취를 순례할 수 있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혜초는 계해(723)년에 금강지의 권유로광주를 떠나 약 4년 동안 곤륜(동남아시아)과 불서(수마트라), 사자주(스리랑카)와 오천축, 북천축 등 서역 여러 지방을 순례했다. 그리고 정묘(727)년 11월에 안서도호부의 소재지 구자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천축에 가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뜻을 세워 가는 것이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가피로 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어려울 때마다 먼저 그 길을 다녀온 선사들을 떠올리고, 발해 황제의 간절한 염원과 백성들이 기다리는 정법을 되새겨야만 합니다."

옥문관은 한나라 무제가 장성 서쪽 끝에설치한 관문이었다. 후에 무제가 하서4군을 설치하고 서역을 지배하던 거점이기도했다. 당시 서역 여러 나라에서 옥을 가져올 때 이곳을 통과했기 때문에 옥문관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난주에서 옥문관을 거쳐 돈황까지는 2천9백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천축에 가는순례자들은 대부분 돈황을 거치는 여정을택했다. 왜냐하면 돈황에는 석굴사원 천불동과 막고굴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명 일행은 돈황이 서역으로 통하는 또하나의 큰 관문이자 성지이나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그 먼 길을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기에는 시일이 많이 소요될 것 같았다.

천축을 비롯 서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거쳐야 할 거대한 장벽은 바로 총령(파미르고원)과 탑극랍마간(타클라마칸) 사막이었다. 죽음의 대장벽, 지옥의 대장벽이라불리는 이곳은 죽음을 불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다. 법현, 현장, 혜초 모두그 지옥의 대장벽을 넘은 순례자들이었다.
무명은 사막으로 들어서기 전에 한번 더다짐했다.

사람들은 하나둘 지치기 시작했다. 발해에서 가장 강건하고 용맹한 자들인데도 이글거리는 태양을 견디지 못해 쓰러졌다.
"들으시라. 태양이 아무리 이글거려도 사람을 태울 수 없으며 더구나 사람의 마음은 결코 태울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마음을 부처님께 모으고, 관세음보살을 부르시오."

"아! 이 사막의 끝이 있기는 있습니까?"
검두밀이 물었다.
"세상에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이 어디 있으리오. 가고 또 가면 사막이 끝날 것이오."
무명은 믿고 있었다. 선험자들의 발자취를 믿기 때문이었다.

"늙은 몸을 섬겨야 하는 여인은 늘 삭일수 없는 애달픔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애달픔을 채워 줄 남자는 천하에 대부뿐입니다. 귀비는 열일곱에 시집와 한창 물오른스물두 살에 황제를 만났으며, 8년 동안이나 오직 늙은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몸을 바쳤습니다. 지금 귀비는 자신의 몸을열락에 빠지게 할 남자가 절실합니다."

안서도호부는 경자(640)년에 당나라가토노번(투루판) 지방의 고창국을 멸망시키고 서주를 경략하기 위해 설치했다. 6도호부의 하나로 서역 경략의 거점이었다.
안서도호부의 절도사는 고구려 후손인고선지였다.
고려노였던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는하서군에 종군하여 여러 공을 세워 장군이되었다. 그 공덕으로 고선지는 장군의 반열에 올랐다.

"이곳에서는 고구려 후손이라면 어딜 가나 대우를 받습니다. 총령과 탄구령을 가장먼저 넘은 군사들이 바로 고구려 후손들이었습니다. 고선지 장군은 천하의 영웅으로추앙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익히 소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은덕으로 동족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장군께서는 늘 고구려 후손이 세운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고구려의 혼을 일으켜 세우고 고구려 땅을 지키는 발해의 웅혼함을 부러워했습니다."
돈벌이를 하기 위해 길잡이를 하겠다던사내는 오히려 고선지 장군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했다.
"고구려 후손이 절도사가 되었다면 그만한 공력이 있었겠지요?"
"부친 고사계 장군이 큰 공을 세워 사진십장을 거쳐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 아들도출중하여 장군에 오르고 공이 혁혁하여 절도사가 되었습니다.

성 밖까지 마중 나온 고선지의 위용은대단했다. 정예무사로 이루어진 겸종 30기의 늠름함은 마치 제후의 행차 같았다. 고선지를 호위하기 위해 늘어선 30기의 복색이 모두 선명한 붉은 색이어서 그런지 더욱당당해 보였다.
고선지는 말에서 내려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고초가많으셨습니다."

"제가 크고 작은 전쟁을 하면서 늘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게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이미 짐작하셨겠지요?"
그리고는 좌우를 한번 둘러보았다.
"누구를 위해 싸우는 것인가입니다. 내나라를 멸망시킨 당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싸운다고 생각하면 맥이 풀리고 가슴 속에불덩이가 들어앉습니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저는 결국 고려노일 뿐입니다. 어떻게죽든 이민족이자 번병입니다. 곽국공 왕모중도 고구려 후손이었기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곳 총령은 피로 얼룩진 계곡입니다.오래전부터 수많은 전란의 현장이고, 산적떼가 숱하게 출몰하는 곳입니다. 이름 없이사라진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산적에게 약탈당하거나 목숨을 빼앗겼고, 발을헛디뎌 천길 벼랑으로 떨어져 죽었습니다.그래서 계곡에는 늘 피가 마르지 않았다고합니다."
그렇게 험한 길인데도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녔다면 부처의 정법을 갈구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뜻이었다. 무명은경외심으로 새삼 내딛는 걸음에 힘을 주었다.

"진신사리가 꼭 붓다의 몸에서 나온 사리만을 뜻하는 게 아니오. 붓다의 말씀이새겨진 경전도 진신사리요, 붓다의 법인 지혜와 자비를 행하는 것도 진신사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니어찌 하늘이 감동하지 않고, 불법이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무서운 것은 사막도 험준한 벼랑도 아닙니다. 야수나 독충보다 더 조심해야할 것은 사람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람이 더 무서운것은 욕심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행을 짓누르는 긴장감이 높아질수록 발걸음이 빨라졌다. 냇물을 건너 한나절쯤 가자, 수림이깊어지고 푸르른 골짜기가 나타났다.

무명은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잘 벼린 단검으로 자신의 배를 그었다. 칼끝이 지나간자리에 붉은 선혈이 뚝뚝 배어 나왔다. 무명은 진신사리 2과를 갈라진 상처 속에 넣고 실로 꿰맸다. 무명은 생살을 갈라 사리를 넣고 꿰매는 끔찍한 일을 오히려 광영으로 여기는지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신라는 선덕여왕 재위 말년인 병오(646)년에 당나라로 유학 갔던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하며 당나라에서 구해온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자장은 진골 출신으로 속명은 김선종이었다. 당나라에 들어가 8년간불경을 닦고 돌아와 대국통이 되었다. 자장은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의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하며 정진한 끝에 사리를 구했다.그 사리는 통도사 외에 금성(지금의 경주)의황룡사탑과 울산의 태화사탑에 봉안되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심복을 궁중에 심어조정의 움직임을 신속하게 알아야 합니다.조정대신들과 황제의 근신들이 전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변고가 생길 수있습니다. 고구려의 왕모중이 인신으로서는 더 오를 데가 없었는데 주검이 된 걸 모르십니까? 장안과 범양은 수천 리 길입니다. 그러나 장안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소상히 살핀다면 누가 감히 전하를 능멸하겠습니까?"

요서벌에서 누란의 위기가 꿈틀대고 있음을 모르는 이융기는 늙은 몸으로 양귀비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 간밤에 은밀히 찾아왔던 심복 왕경유, 장경승, 이건묵이 모두 참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연자실한 안녹산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곁에 있는 이합비를쳐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차가웠다.
"그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무슨 소리냐?"
이합비의 말에 더욱 놀란 안녹산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그쳤다.
"발해를 공격하겠다고 20만 군사를 요청하는 순간 황제의 총애는 거두어집니다. 그러잖아도 조정에서는 20만 대군을 거느린전하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전하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조정의 밀명을 받고 전하를 떠보기 위해 술수를 부린것을 왜 모르십니까?"

"폐하, 보구림은 안녹산에게 뇌물을 받고 거짓으로 상주했사옵니다. 안녹산을 조종하는 것이 첩 이합비인데, 발해 여인으로안녹산을 부추겨 역심을 품고 군사를 기르게 한 계집이옵니다. 폐하께서 입조를 명하시면 안녹산은 반드시 입궐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통촉하옵소서."

그런데 북방에 모진 추위가 몰아치던 그해 동짓달 초순, 황제 이융기가 극비리에보낸 사신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의 품에는 황제의 친필 밀서가 들어 있었다. 안녹산은 크게 놀라 심복 장수들을 불러들였다.
장수들도 경천동지할 황제의 밀조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역적 양국충이 모반을꾀하고 있으니, 충신 안녹산은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달려와 양국충과 그 무리를 주살하라는 밀명이었다. 거병할 날은 을미(755)년 동짓달 아흐레, 군사를 일으켜 장안으로 진격하면 충성스런 신하들이 응전하겠다고 했다.

황제의 밀서가 가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합비와 둘째아들 안경서, 측근 심복엄장, 손효철, 가순, 여지희, 고수암 정도였다.

이융기는 황자 이완을 토적군 원수로, 고선지를 부원수로 삼았다. 그리고 급히 관고를 열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과 옷감을주어 군사를 충원했다. 급조된 오합지졸이었지만, 천무군으로 명명했다.

영성은 고선지가 자신의 은밀한 청을거절한 데 앙심을 품고 허위사실을 들어 황제에게 밀고했다. 고선지가 섬주 땅 수백리를 버렸을 뿐 아니라, 뱃놀이를 즐기며국고의 관물을 도적질했다는 것이었다. 황제 이융기는 적을 앞에 두고 호화롭게 뱃놀이를 즐겼다는 말에 격노했다. 고선지가 적의 기습에 대비하여 강을 둘러본 일은 어이없게도 화근이 되었다. 늙은 황제의 흐린분별은 결국 고선지를 참하라는 어이없는명을 내렸다.
드디어 충역지자 안녹산이 낙양에서 칭제건원하고 연국을 선포하고 황위에 오르니, 때는 병신(756)년 정월 초하루였다.

하늘과 땅이 세상 만물을 만들어 내고,사람이 그것을 취해 생존하옵니다. 밭에 씨앗을 뿌려 곡식을 얻는 것도 햇빛과 물과흙이 조화를 부렸기 때문이옵니다. 천지만물은 하늘과 땅이 만들고 사람이 먹을 뿐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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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흠무가 즉위한 뒤 발해는 무왕 시기의 공세 국가에서 문왕 시기의 수성 국가로 넘어가는 길목에 들어선다. 그러나 그 출발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흑수말갈이 다시 세력을 떨치며 북방을 위협하자 대흠무는 양소화를 북정군 통수로 내세워 이를 막으려 한다. 양소화는 초반에는 기세를 잡지만 요충지 자림성을 오소걸몽에게 빼앗기고, 이를 만회하려 무리하게 공격하다 큰 피해를 입는다. 이때 대흠무에게 정혼자를 빼앗기고 태백산에 물러나 있던 장문휴가 민병 5천을 이끌고 돌아와 전세를 뒤집는다. 장문휴는 자림성을 수복하고 오소걸몽을 추격해 끝내 제거하지만, 승세를 멈추지 않고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가 독화살을 맞고 전사한다. 장문휴의 죽음은 나라를 구한 충신의 승리이자, 황권이 끝내 감당하지 못한 비극으로 남는다.

이후 대흠무는 장문휴의 죽음을 영가혼례로 예우하고, 양소화를 다시 불러들여 감찰과 정치를 맡긴다. 양소화는 서북압록부 감찰어사로 나가 도독 공심지의 악행을 밝혀내고, 결국 그를 선참후결로 처단한다. 공심지가 황비 공사량의 오라비였음에도 대흠무가 양소화를 벌하지 않고 오히려 대신으로 중용한 것은 문왕 치세가 혈연보다 체제 정비와 실무 능력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대흠무는 기존 수도가 남쪽에 치우쳤다고 판단해 흘한해 일대를 순행하고, 국토 중심에 가까운 상경용천부 건설과 천도를 구상한다. 이는 발해가 더 넓어진 강역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장기적 재편의 출발점이 된다.

이와 함께 대흠무는 무명선사에게 천축으로 가 진신사리를 구해 오게 하여 왕권의 종교적 권위까지 다지려 한다. 무명선사는 돈황, 옥문관, 총령과 탄구령을 넘어 천축으로 향하는 극한의 순례길에 오르고, 그 과정에서 혜초와 고선지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결국 진신사리를 무사히 가져와 바침으로써 문왕의 통치는 군사와 행정만이 아니라 불교의 상징과 성덕의 언어로까지 확장된다. 그러나 왕실 내부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문예의 아들 대청천은 당과 연결되어 대흠무 암살을 시도하고, 이는 대조영의 두 아들 가운데 한 계통은 황통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 계통은 대를 이어 반란으로 흐르는 비극을 드러낸다. 동시에 당에서는 현종의 궁정 문란과 안녹산의 비대화가 심화되고, 발해 여인 이합비의 공작까지 겹치면서 안녹산의 난이 현실화된다. 결국 6권은 문왕 대흠무가 북방의 위협, 충신의 희생, 체제 정비, 천도 구상, 불교 권위 확보, 그리고 대당 질서의 붕괴 조짐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6권의 내용이다.

무혜비가 태자 이영과 황자 이요, 이거에게 사람을 보내 궁중에 적란이 일어났으니 급히 구원해 달라고 청했다 하옵니다.무혜비의음모를 알 리 없는 태자가 두 황자와 함께 군사를 모아 궁중으로 달려가자무혜비가 다급히 황제에게 고하기를 태자와 두 황자가모반을 꾀해 군사를 일으켰다고 하옵니다. 환관을 내보내 확인해 보니사실이어서 재상 이림보와 상의 끝에 태자를 폐출하는 칙지를내렸다 하옵니다.

호색의 당제 이융기는 무려 서른 명의황자와 스물아홉 명의 공주를 두었다

당나라의 후궁 제도는 수나라의 제도를 본떠 황후 이외에 귀비, 숙비, 덕비, 현비를 둘 수있고, 소의, 소용, 소원을 비롯한 아홉명의빈을 두었으며, 첩여, 미인, 재인을 각각 아홉 명씩 두었다. 그 아래 보림, 어녀, 채녀가 각각 스물일곱이나 되어 후궁 숫자만121명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통칭 3천 궁녀라고 불리는 궁녀들이 궁궐을 가득 메웠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태자를 포함하여친아들 셋을죽였으니 어찌 참화가 아니겠는가.

이듬해인 무인(738)년 6월에 충왕 이형이 태자로 책봉되었다. 당나라에서는 뒤늦게 대흠무의 등극에 경하 사절로단수간을파견하여 금은옥향과 비단과 명마를 바쳤다. 대흠무는 답례로 담비가죽과 약재, 마른 문어와 포를 보내며 한서, 삼국지,진서,
십육국춘추, 당례의 필사를 요구했다.대흠무는 묵은 원한을 딛고 일어서 당나라와 당당하게 겨루기 위해 그들의 학문과문물을배우고 익혀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학생을 파견하여 당나라 문물도 배워오게 할 작정이었다.

대흠무가 당나라 문물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은 정묘(727)년, 신라 승려 혜초가천축(인도)의 성적을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 세권을 지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다.혜초는 남해에서 바다로 천축에 이르러동, 중, 남, 서, 북의 다섯 천축을 두루 돌아부처의 성적을찾아 참배하고 마지막에 총령을 넘어 10년 만에 당나라로 돌아왔다고한다.

개국 황제 대조영이 부처의 나라 천축에가서 진신사리를 구해, 탑을 쌓고 나라의 안녕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라는 유지를 남겼지만,
아직 그 유지를 받들지 못했다. 돌궐과 거란의 와해로 당나라와 발해 지경에서 완충 역할을 하던 세력이 사라졌기에, 발해는 당나라와직접 부딪쳐야 했다.

신이 알기로는 보통 두 가지 방법이 있나이다. 하나는 아편으로 마취한 후 대나무집게로 고정시켜 예리한 칼로 고환을 빼내거나,
옥경을 절단한 부위에 식물에서 짠기름을 뜨겁게 하여 붓고 기름 적신 천으로환부를 압박하는 방법이나이다. 다른 하나는 뜨거운호초탕(후추나무의 열매로 만든 탕)으로 마취하여 절단한 뒤 백납의 심지를요도에 삽입하고, 냉수에 적신 한지로 환부를 압박하는방법이나이다.

"경들의 뜻이 갸륵하여 내시를 두기로했노라. 다만 궁중에 항시 기거해야 하는내시는 충절이 깊고 총명하며 신뢰할 수 있어야 하니,
경들의 아들 중에 가려 뽑을 것이로다. 스스로 기꺼이 천거하라. "황제의 옥음이 이러하자 편전은 삽시에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일부 대신들의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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