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스컬 아일랜드 (1disc)
조던 보트 로버츠 감독, 존 굿맨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콩보다 더 큰 괴물

— 영화 《콩: 스컬 아일랜드》(2017)를 보고, 애먼 사람들만 죽어 나가는 세상

영화 소개

* 제목 : 콩: 스컬 아일랜드(Kong: Skull Island)
* 감독 : 조던 보트로버츠
* 개봉 : 2017년
* 장르 : 액션, 모험, 판타지
* 상영시간 : 118분
* 주요 출연 : 톰 히들스턴(제임스 콘래드), 브리 라슨(메이슨 위버), 사무엘 L. 잭슨(프레스턴 패커드), 존 굿맨(빌 랜다), 존 C. 라일리(행크 말로)
* 제작 특징 : 몬스터버스 세계관의 두 번째 영화, 1973년을 배경으로 한 킹콩 이야기
* 특이사항 : 쿠키 영상에서 고질라, 모스라, 로단, 킹 기도라의 존재를 암시

1. 누가 이 일을 벌였는가

괴수영화 한 편을 봤다. 《콩: 스컬 아일랜드》. 거대한 고릴라가 등장하고, 헬기가 추락하고, 괴물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볼거리는 충분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콩보다 더 화가 나는 인간이 하나 있었다.

존 굿맨이 연기한 빌 랜다. 비밀 연구기관 모나크의 책임자다.

이 인간이야말로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큰 괴물이다.

1973년,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하던 무렵이다.

랜다는 위성으로 발견된 미지의 섬, 스컬 아일랜드에 탐사대를 보내려고 한다. 그곳에 거대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랜다는 상원의원을 찾아가 탐사에 대한 정치적 지원을 얻어내고 군대의 지원까지 요청한다. 소련이 먼저 섬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논리도 동원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어이가 없다. 상원의원 한 사람의 정치적 지원으로 탐사가 추진되고, 군 병력까지 동원되는 과정이 너무도 손쉽게 그려진다. 물론 실제로 군대에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별도의 장군이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 속 의사결정 과정은 참으로 허술하다.

더 큰 문제는 탐사의 진짜 목적이다.

겉으로는 지질조사다. 폭발물을 투하해 지하 구조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조사 목적도 있지만, 랜다가 그토록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거대 생명체의 존재였다.

그는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함께 가는 사람들이 그 위험을 충분히 알고 판단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고 싶은 욕심, 남들이 믿지 않는 것을 자신이 밝혀내겠다는 집착. 그 목적을 위해 군인들과 조사원들이 동원된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정작 다른 사람들이다.

2. 집에 가고 싶었던 군인들

사무엘 L. 잭슨이 연기한 패커드 중령.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한다. 전쟁터에서 오랫동안 싸웠던 군인들이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패커드는 철수를 마냥 반기는 지휘관은 아니다. 전쟁이 이런 식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불만도 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 임무가 주어진다.

미지의 섬에 과학자들을 데려다주라는 것이다.

패커드는 기꺼이 임무를 받아들인다. 전쟁이 끝나가는 마당에 마지막으로 부하들과 함께 비행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부하들의 사정은 다르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전쟁이 끝났으니 가족을 만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군인에게 상부의 명령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결국 패커드는 부하들을 데리고 섬으로 향한다.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평범한 지질조사 따위가 아니었다.

폭발물이 투하되자 거대한 콩이 나타난다. 헬기들이 추락하고 군인들이 죽어 나간다.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전우들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콩의 입장에서는 자기 영역에 난데없이 침입한 인간들이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그러니 침입자들을 공격하는 것이 잘못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죽어 나간 군인들은 무슨 죄인가.

그들에게 이 섬에 오고 싶으냐고 물어보기나 했던가.

3. 패커드의 복수는 비난받아야 하는가

패커드는 분노한다.

자신이 지휘하던 부하들이 죽었다. 함께 전쟁터를 누볐던 전우들이다. 마지막 임무만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거대한 괴물에게 죽임을 당했다.

패커드가 콩을 죽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나중에는 콩이 섬을 지키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부하들까지 위험에 빠뜨리며 끝까지 싸우려 한다. 이 대목은 지휘관으로서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다.

그렇다고 해서 패커드를 그저 복수에 눈먼 미치광이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는 애초에 자신들이 어떤 위험에 들어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과학자들을 수송하는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누군가의 거대 생명체 탐사에 동원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패커드가 느꼈을 분노와 배신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패커드가 처음부터 아무런 판단 없이 명령만 수행한 것은 아니다.

섬에 접근하던 중 거대한 폭풍을 마주하자, 랜드샛의 현장 책임자 니에베스는 위험을 이유로 탐사 중단을 주장한다. 하지만 랜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패커드에게 결정을 넘긴다. 결국 패커드는 헬기대를 이끌고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패커드는 섬에 거대한 괴물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위험을 감수하고 작전을 강행하는 결정에는 직접 참여했다.

여기서 패커드의 책임도 시작된다.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이라는 사실과 현장에서 부하들의 안전을 판단해야 하는 지휘관이라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분노가 향한 대상은 잘못되었다.

부하들을 그 섬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랜다였지만, 패커드는 눈앞에서 부하들을 죽인 콩을 적으로 삼았다.

최초의 원인을 제공한 인간과 직접적인 죽음을 가져온 괴물 사이에서, 패커드는 결국 괴물에게 복수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도 죽는다.

생각해 보면 랜다와 패커드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랜다는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고, 패커드는 부하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살아남은 부하들까지 위험에 빠뜨렸다. 물론 두 사람의 동기와 책임은 다르다. 패커드는 랜다가 벌인 일에 끌려 들어간 피해자이면서도, 현장에서는 부하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지휘관이었다. 부하들을 잃은 피해자라는 사실이 남은 부하들의 생명까지 걸고 복수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결국 패커드도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랜다와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비극적인 인물이다.

4. 가고 싶었던 사람과 가기 싫었던 사람

이 영화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사람들의 운명이다.

톰 히들스턴이 연기한 콘래드는 돈을 받고 탐사에 참가한다. 위험을 예상하고 보수를 다섯 배나 더 요구하고, 살아 돌아왔을 때 보너스까지 추가로 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브리 라슨이 연기한 사진기자 위버도 자신의 취재 목적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섬에 들어간다.

반면 현장 책임자 니에베스는 폭풍을 보고 탐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탐사는 강행된다.

결국 니에베스는 섬을 탈출하기 위해 강을 따라 이동하던 중, 날개 달린 괴생명체 무리에게 붙잡혀 공중에서 목숨을 잃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군인들도 죽는다. 위험하다고 반대했던 사람도 죽는다.

반면 스스로 탐사를 선택한 콘래드와 위버는 살아남는다.

물론 위험을 감수하고 참가한 사람이 살아남았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들도 목숨을 걸고 살아남기 위해 싸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데 있다.

선택할 수 있었던 사람과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돈을 받고 위험을 감수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섬에 들어갔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저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정작 목숨을 잃은 사람들 가운데는 애초에 그 섬에 가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대목이었다.

5.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랜다도 결국 섬에서 죽는다. 그러니 그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위험을 알고 있었는가. 누가 탐사를 추진했는가. 누가 군대의 지원을 요청했는가. 그리고 그 위험을 함께 감수해야 할 사람들에게 무엇을 알려주었는가.

영화는 이런 질문에 충분히 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패커드는 콩에게 복수하려는 집착적인 군인으로, 콘래드와 위버는 콩을 이해하고 보호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는 사이 정작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었던 랜다와 모나크의 책임은 괴수들의 싸움 속에 묻혀버린다.

콩은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싸웠다. 인간들이 먼저 폭발물을 터뜨렸고, 그 소란으로 섬의 위험한 생명체들까지 깨어났다.

반면 랜다는 자신이 믿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험 속으로 데려갔다.

누가 더 괴물다운 행동을 했는가.

나는 콩보다 랜다가 훨씬 무서웠다.

영화 마지막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섬에 불시착해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말로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간다. 아내를 만나고, 그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들도 만난다.

그 장면은 반갑고 따뜻하다.

그런데 문득 생각한다.

말로는 수십 년 만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제 막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패커드의 부하들 가운데 일부는 영영 돌아가지 못했다.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가는 마당에 누군가의 탐사 욕심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괴수영화에서 이런 것까지 따져야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먼 군인들이 죽어 나갔는데, 누가 그들을 그 섬으로 보냈는지는 따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벌이는 사람이 있고, 그 일을 수습하느라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희생되는 사람도 있다.

《콩: 스컬 아일랜드》도 결국 그런 이야기로 보였다.

6. 사람은 죽어도 조직은 살아남는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쿠키 영상에서 살아남은 콘래드와 위버는 모나크 관계자들을 만난다. 그들은 다른 거대 생명체들의 존재를 보여준다. 고질라, 모스라, 로단, 킹 기도라. 스컬 아일랜드의 콩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괴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랜다는 죽었다. 패커드도 죽었다. 수많은 군인과 조사원들도 죽었다. 그런데 모나크는 여전히 건재하다.

섬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모나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오히려 새로운 거대 생명체들을 보여주며 다음 이야기를 준비한다.

모나크라는 조직 전체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는 영화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조직의 인물이 위험한 탐사를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조직은 다음 일을 준비한다.

하긴, 모나크까지 책임을 물어 해체해 버리면 다음 영화는 누가 만들겠는가.

영화 제작진 입장에서는 후속작을 위한 장치겠지만, 앞서 희생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으로 씁쓸한 결말이다.

사람은 죽고 조직은 살아남는다. 일을 벌인 사람은 사라져도 그 조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사업을 준비한다.

어디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겠는가.

결국 이 영화에는 두 종류의 괴물이 등장한다.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괴물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간.

영화의 제목은 《콩: 스컬 아일랜드》지만, 내가 본 가장 큰 괴물은 콩이 아니었다.

빌 랜다. 바로 그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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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의 공간 운영
병산서원 또한 그런 전형적인 서원 배치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나 병산서원은 주변의 경관을 배경으로 하여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이 빼어난 강산의 경관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배치되어 있다는점에서 건축적 · 원림적 사고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 P41

일신이란 대학』의 "구일신 일일신우일신(苟日新日日新又日新)"에서나온 것으로 "진실로 날로 새롭겠거든 날로 날로 새롭게 하고 또 날로새롭게 하라"라는 뜻이다. 직방이란 『주역』 「곤괘」의 "경이직내(敬而直內) 의이방외(義而方外)에서 나온 말로  "공경하는 마음으로 내면(마음)을 곧게 하고, 올바름으로 외면(행동)을 가지런히 한다"에서 나왔다. 학생들은 모름지기 이 두 경구를 아침저녁으로 간직하여 올바르고 새로워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었다. - P44

만대루에서의 조망, 그것이 병산서원 자리 잡음의 핵심인 것이다.
만대루에 중심을 두는 건물 배치는 건물의 레벨 선정에서도 완연히나타난다. 병산서원이 올라앉은 뒷산은 화산(꽃뫼)이다. 이 화산의 낮은구릉을 타고 외삼문에서 만대루, 만대루에서 강당, 강당에서 내삼문, 내삼문에서 존덕사로 레벨이 올라간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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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칼을 든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산티아고

—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한 이름에 담긴 역사의 아이러니

책 소개

* 지은이 :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브라질의 소설가
* 옮긴이 : 최정수
* 출판사 : 문학동네
* 출간일 : 2001년 12월 1일(한국어판)
* 분량 : 278쪽
* 장르 : 브라질 현대소설, 철학적 우화
* 작품 특징 : 스페인의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꿈에서 본 보물을 찾아 이집트 피라미드로 향하는 여정을 통해 꿈과 운명, 사랑과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소설
* 특이사항 : 1988년 포르투갈어로 원작 출간. 원제는 『O Alquimista』.

파울로 코엘료는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연금술사』 주인공의 이름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가져왔다고 밝혔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따온 이름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헤밍웨이 때문이라고 분명히 답했다.

그런데 이 이름에는 또 다른 역사가 있다.

산티아고(Santiago).

스페인의 수호성인 성 야고보의 이름이자, 이베리아반도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이 충돌했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나는 이 이름에 담긴 역사를 생각하며 『연금술사』를 다시 읽었다. 작가가 이름을 가져온 계기는 분명하지만, 소설 속 산티아고가 걸어가는 길에는 그보다 오래된 역사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었다.

1. 무어인을 죽이는 성인

스페인 역사에서 산티아고는 특별한 이름이다.

예수의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성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숭배되었다. 그리고 이베리아반도에서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과 싸우던 레콩키스타 시대에는 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성 야고보의 모습을 일컫는 별칭이 있다.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

말 그대로 ‘무어인을 죽이는 성 야고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844년 클라비호 전투에서 기독교 군대가 이슬람 군대에 밀리고 있을 때, 백마를 탄 성 야고보가 나타나 기독교군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클라비호 전투 자체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본다. 백마를 탄 성 야고보의 출현 역시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이다. 당시 이베리아반도에서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관계도 전쟁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서로 동맹을 맺기도 했고, 교역도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이 전설은 오랫동안 스페인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백마를 타고 칼을 휘두르며 무어인들을 짓밟는 성 야고보의 모습은 그림과 조각으로 남았고, 그의 이름은 전쟁터에서 외치는 구호가 되었다.

레콩키스타 역시 기독교 세력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국토회복운동이었지만, 그 땅에서 살아가던 이슬람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지배와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기독교 세력에게 성 야고보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성인이었다. 그러나 그 칼끝의 반대편에 서 있던 이슬람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누군가에게는 수호성인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들을 죽이는 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쪽의 영웅이 다른 쪽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같은 인물을 두고도 역사의 기억은 이처럼 다르다.

2. 칼끝의 반대편에 선 산티아고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양을 치던 소년이다. 그는 꿈에서 본 보물을 찾아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의 탕헤르로 향한다.

과거에는 무어인을 몰아내는 전쟁의 상징이었던 이름을 가진 소년이, 이제는 그들이 살아가는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코엘료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소설 속에 직접 등장시킨다.

탕헤르의 술집에 들어간 산티아고는 사람들이 커다란 담뱃대를 돌려 피우는 모습을 본다. 낯선 풍습을 ‘이교도들의 풍습’이라고 생각하던 소년은 어린 시절 교회에서 보았던 산티아고 마타모로스의 형상을 떠올린다.

백마를 탄 성인이 칼을 빼 들고 있고, 그 발아래에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소년은 속이 불편하고 몹시 외롭다고 느낀다.

이 장면은 뒤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장면과 연결된다.

사막을 건너 알파이윰 오아시스에 도착한 산티아고는 매의 움직임을 보고 오아시스에 닥칠 공격을 예감한다.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린 뒤, 어느 날 밤 백마를 탄 낯선 기마인과 마주친다.

검은 옷을 입은 기마인은 커다란 칼을 빼 들고 소년을 위협한다.

그 순간 산티아고는 다시 산티아고 마타모로스를 떠올린다.

백마를 타고 칼을 든 모습은 어린 시절 교회에서 보았던 성인의 형상과 닮았다. 다만 이번에는 입장이 뒤바뀌었다.

과거에는 무어인들이 그 칼 아래 있었지만, 지금은 스페인에서 온 산티아고 자신이 칼끝 앞에 서 있다.

칼을 든 자와 칼을 맞는 자.

그 위치가 바뀌자 같은 광경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나는 이 장면이 인상 깊었다. 역사 속에서 칼을 휘두르던 성인의 이름을 가진 소년이, 이제는 그 칼을 맞을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마인은 소년을 죽이지 않는다. 그는 바로 연금술사였고, 소년의 용기를 시험한 뒤 사막을 건너는 길을 이끄는 스승이 된다.

이것이 단순히 이름이 같아서 생긴 우연일까.

코엘료가 처음에 헤밍웨이에게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마타모로스의 형상을 두 차례나 등장시키고, 칼을 든 자와 칼을 맞는 자의 위치까지 뒤바꿔 놓은 것을 보면 그 역사적 의미를 모르고 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작가가 역사적 화해를 의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이 장면에서 오래된 적대의 역사를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문학적 반전을 읽었다.

3. 같은 바람, 다른 이야기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에는 레반터(Levanter)라는 바람이 등장한다.

지중해를 거쳐 안달루시아로 불어오는 이 바람은 과거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로 건너왔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산티아고에게는 사막의 냄새와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이기도 하다.

소년은 그 바람을 맞으며 자신도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사막을 지나 이집트의 피라미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정작 보물은 그가 처음 꿈을 꾸었던 스페인의 낡은 교회에 묻혀 있었다.

소년이 찾아낸 금화와 보석, 황금 가면 등은 오래전에 잊힌 정복의 전리품이었다.

보물을 찾아 떠난 여행의 끝에서 다시 과거 정복의 흔적을 만난 셈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고향으로 돌아온 산티아고에게 레반터가 다시 불어온다. 그런데 이번에 바람이 전하는 것은 정복의 소문도, 무어인의 침공에 대한 위협도 아니다.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파티마의 향기와 입맞춤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산티아고 마타모로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과거 무어인들이 바다를 건너오던 일은 전쟁과 정복의 기억이었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에 같은 바다를 건너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바람이 전하는 이야기는 달라졌다.

어쩌면 코엘료가 말하는 연금술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납을 금으로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오랫동안 적대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을 이해와 사랑의 대상으로 바꾸는 일 말이다.

물론 이것은 작가가 직접 밝힌 의도가 아니라, 산티아고라는 이름의 역사를 통해 내가 읽어낸 소설의 또 다른 의미다.

그 역사의 한가운데에는 칼을 든 산티아고가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년이 그 땅으로 건너가 사람을 만나고, 지혜를 배우고, 사랑을 얻는다.

나는 『연금술사』를 단순히 꿈을 이루기 위한 자기계발의 이야기로만 읽고 싶지 않다.

칼을 든 산티아고와 길을 걷는 산티아고.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존재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전쟁의 기억을 품은 바람이 사랑하는 사람의 입맞춤을 전한다는 역설.

그것이 내가 이 소설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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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탐관오리였을까?

— 『목민심서』를 읽고, 공조 치수사업담당 임 정랑의 수해 예방사업

들어가며

“廉者,牧之本務,萬善之源,諸德之根,不廉而能牧者,未之有也。”

“청렴은 수령의 본무로, 모든 선(善)의 근원이요 모든 덕(德)의 뿌리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노릇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廉者,天下之大賈也。故大貪必廉。人之所以不廉者,其智短也。”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이다. 그러므로 크게 탐하는 자는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않은 것은 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 『목민심서』 율기편(律己篇), 청심(淸心)

다산(茶山) 정약용은 청렴을 관리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보았다. 특히 대탐필렴(大貪必廉)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더 큰 가치와 명예를 추구하려면 오히려 청렴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산은 『목민심서』 서문에서도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이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하고 백성을 돌보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고 꾸짖었다.

그런데 내게는 공전편(工典篇)의 천택(川澤)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하천과 못을 관리하는 일을 다룬 대목이다.

이 책 『정선 목민심서』는 다산연구회의 『역주 목민심서』 여섯 권을 한 권으로 줄인 발췌본이다. 천택에서 인용할 세 구절 가운데 첫 번째만 이 책에 실려 있어, 나머지 두 구절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에서 원문과 번역을 확인했다.

“川澤者,農利之所本,川澤之政,聖王重焉。”

“천택(川澤)은 농리(農利)의 근본이 되는 것이므로, 천택에 대한 정사를 성왕(聖王)은 소중하게 여겼다.”

“土豪貴族,擅其水利,專漑其田者,嚴禁。”

“토호(土豪)와 귀족(貴族)이 수리(水利)를 멋대로 하여 자기의 전지에만 물 대기를 독점하는 것은 엄금하여야 한다.”

“池澤所產,魚ㆍ鼈ㆍ蓮ㆍ芡ㆍ茭ㆍ蒲之屬,爲之厲守,以補民役,不可自取以養己。”

“못에서 생산되는 물고기, 연마름, 마름줄, 부들 등속은 엄중하게 지켜서 그 수입으로 백성들의 요역에 보충해야 하고, 수령이 스스로 취득하여 사복을 채워서는 안 된다.”

— 『목민심서』 공전편(工典篇), 천택(川澤)

하천과 못은 백성의 생업을 위한 시설이며, 그 혜택을 특정인이 독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못에서 나는 물고기조차 사사로이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하는 데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만하다.

다산이 그토록 경계한 목민관(牧民官)의 폐단은 과연 지금 공직 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졌을까.

책장을 넘기다 문득,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나 공조(工曹)의 관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지금의 5급 시설사무관은 조선시대로 치면 어느 정도 벼슬일까?

정5품 정도라면 공조 정랑(正郞)쯤 되었을 법하다. 공조는 오늘날 국토교통부와 비슷한 일을 맡았던 관청이니, 토목직인 내게도 제법 어울리는 자리다.

그런데 나는 과연 다산이 바랐던 청렴한 관리가 되었을까, 아니면 그가 그토록 경계했던 탐관오리(貪官汚吏)가 되었을까?

기왕 상상하는 김에 탐관오리가 되어보자.

1. 금의환향

때는 조선 어느 해 봄.

한양 공조의 정5품 정랑 임 아무개가 충청도 고향으로 내려왔다. 조정의 명을 받아 장마철을 앞두고 제방과 교량을 보수하는 공사를 감독하게 된 것이다.

고향 백성들은 중앙에서 높은 관리가 내려왔다며 반겼다.

그러나 임 정랑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걸리던 고향집 뒤편의 낡은 석축이었다.

마침 나라에서 내려준 공사비가 은자 천 냥이었다.

‘기왕 내려온 김에 우리 집부터 손봐야겠구먼.’

임 정랑은 아전들을 불러 석축을 보수하도록 했다. 그런데 공사가 시작되자 욕심이 생겼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배수로도 널찍하게 내고 마당 물매도 잡았다. 내친김에 정원의 연못까지 근사하게 정비했다.

아전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리, 석축만 보수하시면 될 것을 어찌 배수로까지 새로 내시옵니까?”

“이놈아! 석축만 튼튼하면 무엇 하느냐? 물이 빠지지 않으면 수압이 높아져 석축이 무너질 것 아니냐!”

“허나 연못까지 정비하시는 까닭은 무엇이옵니까?”

“그것은 우수 저류시설이니라. 집중호우 때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여 하류의 홍수 부담을 줄이는 것이지.”

“그런데 연못에 비단잉어는 어찌 풀어놓으셨사옵니까?”

임 정랑이 혀를 찼다.

“쯧쯧,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수질 상태를 상시 확인하기 위한 생물학적 모니터링이니라!”

아전은 감탄했다.

역시 한양에서 내려온 관리는 아는 것부터 달랐다.

2. 장마가 지나간 자리

그해 여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제방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졌다. 백성들의 초가집은 물에 잠기거나 통째로 떠내려갔다.

그런데 임 정랑의 고향집만은 멀쩡했다.

튼튼한 석축과 널찍한 배수로 덕분에 마당에는 물 한 방울 고이지 않았다. 연못에서는 비단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며칠 뒤, 고을에 암행어사가 들이닥쳤다.

“암행어사 출두야!”

관아가 발칵 뒤집혔다.

“네가 공조에서 내려온 임 정랑이냐?”

“그러하옵니다.”

“나라에서 제방을 보수하라고 내려준 은자 천 냥은 어디에 썼느냐?”

“수해 예방사업에 집행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공사비 장부를 가져오너라!”

임 정랑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황공하오나, 지난 장마에 관아가 침수되어 장부가 모두 떠내려갔사옵니다.”

“뭐라? 장부가 떠내려갔다고?”

“그러하옵니다.”

“그런데 어찌 네놈의 집만 멀쩡하단 말이냐?”

임 정랑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소신이 평생 힘써 온 수해 예방사업의 성과이옵니다.”

3. 시범사업의 성과

“뭐라? 성과?”

암행어사가 눈을 부릅떴다.

“백성들의 집은 모두 떠내려갔는데 네놈의 집만 멀쩡한 것이 성과란 말이냐?”

“소신의 집은 시범사업 대상지였사옵니다.”

“시범사업?”

“새로운 수해 예방공법을 전면 시행하기에 앞서 한 곳에 먼저 적용하여 효과를 검증한 것이옵니다. 이번 장마로 그 성능이 확실하게 입증되었사옵니다.”

“그 한 곳이 하필 네놈의 집이란 말이냐?”

“사업 효과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려면 관리가 용이한 곳을 선정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렇다면 백성들의 집은 어찌할 것이냐?”

“내년도 본사업에 반영할 예정이옵니다.”

“내년도라니! 백성들은 당장 올겨울을 어디서 나란 말이냐!”

“그것은 소신의 소관이 아니옵고, 호조와 진휼청에서 검토할 사안인 줄 아뢰옵니다.”

“이놈! 그럼 네놈은 대체 무엇을 했느냐?”

“시범사업을 완료하고, 사업 효과를 검증하였으며, 향후 확대 시행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였사옵니다.”

“그 기초자료는 어디 있느냐?”

“장부와 함께 떠내려갔사옵니다.”

암행어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냐?”

“시범사업 시설물은 온전히 남아 있사옵니다.”

“어디에?”

“소신의 집에 있사옵니다.”

4. 내년도 예산

“여봐라! 저놈을 당장 포박하라!”

역졸들이 달려들었다.

임 정랑이 다급히 외쳤다.

“어사또! 잠시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또 무슨 할 말이 남았느냐!”

“소신을 잡아가시면 내년도 본사업 추진에 차질이 발생하옵니다!”

“뭐라?”

“시범사업을 수행한 담당자가 사라지면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렵사옵니다. 후임자가 오더라도 현장 여건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옵니다.”

“그래서 네놈을 풀어달라는 것이냐?”

“그런 뜻은 아니옵니다. 다만 백성들의 안전을 생각하신다면 사업의 정상적인 추진을 우선 고려해 주십사 하는 것이옵니다.”

암행어사가 기가 막혀 물었다.

“그렇다면 내년도 본사업에는 얼마나 필요하겠느냐?”

“은자 만 냥 정도면 되겠사옵니다.”

“만 냥이나?”

“정확한 사업비는 실시설계를 거쳐 확정하여야 하옵니다. 다만 물가 상승과 현장 여건 변동에 따라 총사업비가 증액될 가능성은 있사옵니다.”

암행어사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끌고 가라!”

임 정랑은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외쳤다.

“어사또! 소신은 나라에서 내려준 공사비를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집행하였사옵니다!”

“그 돈을 모두 어디에 썼느냐!”

“그 성과가 지금 소신의 집에 고스란히 남아 있사옵니다!”

5. 후일담

이렇게 공조 정랑 임 아무개는 포승줄에 묶여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나라에서 내려준 공사비로 자기 집을 고쳐놓고도 끝까지 시범사업의 성과라고 우겼으니, 참으로 뻔뻔한 탐관오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임 정랑에게도 억울한 점은 있었을 것이다.

석축은 무너지지 않았고, 배수로는 제 기능을 했으며, 연못의 비단잉어까지 무사했으니 말이다.

사업 효과만큼은 확실하게 입증된 셈이다. 다만 그 혜택을 본 사람이 자기 자신뿐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도 저런 관리가 되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 임 정랑의 고향집에서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장마가 끝나고 연못의 물이 빠지자 비단잉어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식을 들은 임 정랑이 옥중에서 탄식했다.

“아이고, 이런! 수질 모니터링 체계에 문제가 있었구먼.”

그리고 옥졸에게 종이와 붓을 청했다.

“나리, 옥에 갇혀서까지 무엇을 그리 열심히 쓰시옵니까?”

임 정랑이 붓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내년도 우리 집 수해 예방시설 유지관리 예산 요구서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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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미국 서부 5대 캐니언 - 셀프투어 그랜드캐니언 여행
이루다 / 인사이트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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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하려고 샀더니, 여행을 준비하란다

— 이루다, 『미국 서부 5대 캐니언』을 읽고

1. 여행 정보를 얻으려고 구입한 책

지난 9월 미국 서부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구입했다. 그랜드캐니언을 비롯한 미국 서부의 장대한 자연을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 어디를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고 싶었다. 인터넷에도 여행 정보는 넘쳐나지만, 책이라면 그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으리라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히 헛짚었다.

책 어디에도 여행 안내서라고 명시돼 있지는 않다. 제목과 ‘셀프투어 그랜드캐니언 여행‘이라는 부제, 그리고 여행 준비와 각종 팁을 다룬 목차를 보고 내가 실용적인 여행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 기대가 터무니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실망을 넘어 화가 났다.

2. 다섯 캐니언, 남는 것은 감탄사뿐

전체 166쪽 가운데 다섯 캐니언을 소개하는 내용은 약 50쪽이다. 그마저도 사진과 함께 어디에 갔고, 무엇을 보았고,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이야기하는 수준이다.

여행의 감동을 전하는 글도 좋다. 여행기가 반드시 관광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했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는지를 자신만의 언어로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브라이스캐니언을 소개하는 부분을 보자. 48쪽부터 55쪽까지 여덟 쪽에 걸쳐 사진과 감상이 이어진다. 셔틀버스를 탔다고 하지만 어디서 타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브라이스 포인트, 인스퍼레이션 포인트, 선셋 포인트를 방문했다고 하면서도 각 전망대의 특징이나 이동 동선은 알려주지 않는다. 하이킹 코스가 다양하다고 하지만 어느 코스를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여행자가 알고 싶은 것은 아름답다는 감탄사만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3. 알맹이 없는 여행 정보와 추천 없는 추천 코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여행 준비와 각종 팁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여행경비를 절약하는 방법이라며 일찍 예약하라, 성수기를 피해라, 현지 식당을 이용하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한다. 이 정도 상식이라면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식당과 카페의 위치, 메뉴, 운영 시간을 알려준다면서 정작 식당 이름 하나 제시하지 않는다. 공원 입구나 방문자센터 근처에 식당이 있고, 운영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확인하라는 식이다.

압권은 추천 하이킹 코스다.

초보자는 2∼5km, 중급자는 5∼15km, 상급자는 15km 이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실제 하이킹 코스의 이름은 하나도 없다. 어느 국립공원의 어디서 출발하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무엇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추천 하이킹 코스를 소개한다면서 정작 추천하는 코스가 없다는 사실이 황당할 따름이다.

가이드 투어 예약 방법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공식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궁금하면 업체에 문의한 다음 예약하라고 한다. 이런 내용을 네 쪽에 걸쳐 설명한다.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의 곳곳에는 편안한 신발을 신고, 충분한 물을 준비하고, 날씨를 확인하고, 안전수칙을 지키라는 조언도 등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 서부 캐니언에 관한 특별한 정보라기보다 어느 여행지에나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주의사항이다.

틀린 말이 없다고 해서 유용한 정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4. 내가 직접 걸었던 그랜드캐니언 1.3km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랜드캐니언의 매더 포인트에서 야바파이 포인트까지 협곡 가장자리를 따라 1.3km를 걸었다. 실제 이동 시간과 관람 시간을 기록했고, 걸으면서 마주한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 짧은 경험만 정리해도 두 전망대의 위치와 이동 경로, 소요 시간, 중간에 만날 수 있는 풍경을 다른 여행자에게 알려줄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이 바로 그런 정보였다. 어디가 좋다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곳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험과 지식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런 구체성이 보이지 않는다. ‘셀프투어‘라는 부제가 무색할 정도다.

여행 정보가 부족하다면 여행기로서의 매력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아쉽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자연과 교감하고, 마음의 평화와 치유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정작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특별한 경험이나 저자만의 시선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5. 별 하나조차 아까운 책

인터넷서점에는 이 책을 극찬하는 독자평도 몇 건 올라와 있다. 나와는 전혀 다른 평가지만, 누가 어떤 감상을 남기든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실제로 책을 구입하고 읽은 내 판단은 분명하다.

나는 웬만하면 책에 별 네 개 아래의 평점을 주지 않는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책이라도 한 권을 쓰기 위해 들였을 저자의 시간과 노고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만큼은 별 하나조차 아깝다.

책을 쓴 사람의 노고를 존중하는 것과 그 결과물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적어도 내가 읽은 이 책은 그동안 지켜온 관대한 평가 기준마저 무너뜨렸다.

여행기는 저자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여행 정보를 다루는 책이라면 독자가 어디를 어떻게 여행할 수 있는지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해낸다면 책으로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행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하고, 여행기로서도 상투적인 감상과 표현을 반복하는 데 그친다.

아름다운 자연을 다룬 책이라고 해서 그 책까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장대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고 해서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책을 덮고 나서 남은 것은 여행 정보도, 여행에 대한 감동도 아니었다. 왜 이 책을 구입했을까 하는 후회와 허탈함뿐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려고 책을 샀는데, 책은 그저 여행을 잘 준비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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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병기™ 2026-10-28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평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