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시, 어디 색신 줄 몰라도 여기 우리 집에 숨어 있다가 자수하러 갑시다. 요즘엔 자수하면 다 살려준다오. 당신들이 좋은 세상 만들자고 하는 일인 줄은 알지만 그것이 어디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오. 이미 대세가 기울었는데 당신들이 아무리 그래 봐야 소용없소. 나도 옛날에는 산사람들 오면 아까운 줄 모르고 털어줬던 사람이오. 인제 틀렸소. 곧 있으면 전쟁도 끝난다는데 틀린 일을 붙잡고 생목숨 버려서야 되겠소? 자수합시다. 사람 목숨만큼 귀한 것이 또 어디 있겠소." - P-1
그녀가 경남도당으로 떠난 후 역시 경남도당 위원장으로 일하다가 그녀보다 몇 달 앞서 54년 1월 조개골에서 생포된 조병하는 고향의 소꿉친구였던 어느 국군 장성의 끈질긴 전향 권유에도 불구하고 미제의 앞잡이들과 타협할 수 없다며 자결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사형대에 올랐다. - P-1
"동무들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질 것이오. 동무들도 아다시피 산에서는 더 이상 유격투쟁이 불가능하오. 동무들은 곧 지하공작 사업을 맡게 될 것이오. 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처럼 열심히 투쟁하기 바라오." - P-1
"학습 열심히 하고, 건강부터 회복하시오. 건강하게…… 잘 싸우시오." 그것이 이현상과의 마지막이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이현상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녀가 아는 이현상은 소박하고 따뜻하고 강인한, 그야말로 철의 투사였다. 누구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고, 대원들의 짐을 대신 들어주고, 이름 없는 하부원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신경 쓰던 아버지 같은 지도자였다. - P-1
그녀는 그곳에서 조국을 알았고 조국을 위해 싸웠고 인간을 알았으며 인간해방을 위해 싸웠다. - P-1
기다렸다. 좀처럼 연락은 오지 않았다. 유화열과 김태봉이 내려가자마자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 리 없었다. 45년 해방 직후의 정세와는 전혀 달랐다. 이미 입산자들의 신원과 경력이 샅샅이 밝혀진 뒤였으며, 그런 그들이 사회에 숨어들어 지하사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 P-1
기다리던 소식 대신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전은 그들이 바라던 바였다. 51년 6월 23일 소련 외상 말리크가 유엔에서 휴전을 제의한 다음부터 남한의 전 빨치산들도 정전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그러나 휴전협정에서 빨치산들의 거취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죽음과 함께 생활했던 지난날이지만 이제 정말로 남은 것은 혁명가다운 장렬한 최후뿐이었다 - P-1
전쟁은 끝났다. 빨치산들에게는 바늘 하나 꽂을 만한 해방구도 없었다. 자기들이 피를 흘리며 싸웠던 그 땅에서 최후까지 싸울 수밖에. - P-1
휴전회담이 빨치산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건 이제 몇 가지 선택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는 혁명투쟁을 포기하고 살기 위해 자수하는 방법이었고, 둘째는 언젠가 다시 올지도 모르는 해방을 위해 지하로 숨어들어 유격투쟁을 지하조직 사업으로 바꾸는 것, 셋째는 사라진 꿈과 더불어 최후까지 싸우다 전멸하는 것이었다 - P-1
두 번째 방법은 수차례 연구하고 실시했으나 성공의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살아 있던 대다수의 빨치산들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 세 번째를 선택했다. - P-1
남부군 출신들이 그런 비판회에 곤욕스러워하고 있던 그 무렵, 1953년 9월 18일 이현상은 호위대까지 다 다른 곳으로 떠나보낸 후 부관만을 데리고 경남도당으로 오던 중 경찰의 매복에 걸려 전사했다(이현상의 죽음에 관해 여러 가지 추측들-남로와 북로 간 헤게모니 투쟁의 희생양이라든가-이 난무하고 있지만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 P-1
종파주의자든 아니면 역으로 종파주의에 의해 희생당한 제물이든 분명한 것은 남한 현대사의 한 장을 장식할 유격투쟁의 지도자였으며 남부군 대원들에게는 친아버지와 같은 존경을 받던 한 탁월한 혁명가가 유격투쟁의 본거지인 지리산에서 최후를 마쳤다는 사실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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