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월영시. 현재 신도시 계획이 잡혀 있으며 일부 아파트가 들어서고 분양이 들어간 상태.
이곳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기이한 존재들은 인간들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지키고자 한다.
인간과 괴이의 중간지대를 오가는 폐지 줍는 할아버지는 저주받은 물건을 모으러 돌아다니고, 이 지역 토지신인 노란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는 괴이를 막고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만 그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기말고사 무렵, 나는 시험공부를 하다 말고 앱을 켰다.
시험기간일수록 딴짓을 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 같은 거라서, 나는 우리 학교 커뮤니티의 중고장터 게시판에 들어가 이것저것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커뮤니티에서는 1학년 1학기 성적이 별 볼 일 없으면 바로 군대 가라고, 그게 그나마 돈 버는 길이라고들 했다.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성적을 잘 받으면 될 것을, 너희 학교 애들은 왜 그러는 거냐?"
‘당신도 유튜버가 될 수 있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방송장비 팝니다.’ 이거 괜찮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오르내리다가 어딘가에 내리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지."
월영시. 경기도의 소도시로, 괴이한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는 곳. 인터넷 게시판에서 그 소문은 들어본 적 있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왜… 무섭냐?" 그때 광희 형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일부러 소리내어 웃었다. "무섭긴 누가 무서워요. 저거 그냥 병원이잖아요." "아무것도 안 느껴지면 다행이고."
"레이어라고 알지? 그림 파일 수정하거나 할 때 많이 보잖아. 우리가 아는 이 세계도 겹겹의 레이어로 이뤄져 있어. 괴담은 그러니까 다른 레이어에 속한 세계를 엿보는 거지. 수고해라."
하지만 나는 분명히 들었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지닌 것을 버리지 말라던 그 말을.
고물상이란 원래 쓰레기를 치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있는 고물들 중에 쓸 만한 것이 있으면, 서로 붙여서 고치기도 하는 게 고물상이라고.
고해진은 ‘뱀탕에 뱀열마리’를 문자로 자신에게 보냈다. 매일 아침 10시마다 하는 일이었다.
해진은 마흔여섯 살이 된 자신이 아침마다 이 문자를 보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들끓는 성욕도.
일본 AV를 케이블이나 인터넷에서 보기도 했고, 여성용 자위기구를 사용해보기도 했지만 그런 것으론 욕망이 다 채워지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터치해주는 촉감을 느껴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런 마음은 어느 날 아이패드로 남편 계정의 클라우드에서 20대 베트남 여성과 남편이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을 보고 나서 더욱더 간절해졌다. 그 사진은 아이패드가 남편의 폰과 연결돼 있어 자동으로 뜬 것이었다.
"대학교 나오고 그냥 평범한 직장 다니다 인스타그램에 이것저것 사진 올리고 그러면서 상업사진을 찍게 됐죠. 꿈은 김중만이나 구본창인데 아직은 이런 일만 해요. 첨에 사진 입문했을 때 사진과 카메라 역사도 좀 팠었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카메라 오브스쿠라에서 기원이 된 게 카메라인데, 1826년 프랑스 화학자 니엡스가 찍은 게 세계 최초입니다. 1839년에 다게르가 은판사진술을 완성하면서 발전해서 코닥이나 라이카 렌즈회사 등이 탄생했죠. 지루하죠?"
"산중에 사는 구렁이가 처녀로 변신해서 자신의 집을 방문한 남자를 잘 모셨대요. 한참 지나고 남자가 본처와 아이들을 만나려 하니까 구렁이 처녀가 남자의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음식도 넘치게 해줬다죠. 남자가 다시 구렁이 처녀에게 돌아가는 길에 한 노인을 만나게 돼요. 노인은 구렁이가 요괴라면서 죽이는 방법을 알려주죠. 남자는 자신의 처와 아이들까지 잘살게 해준 구렁이를 차마 죽이지 못해요. 구렁이 처녀가 감동해서 남자를 잘살게 해주었답니다."
"나도 그게 어이없어서 인터넷 찾아봤는데, 원래 그런 식으로 고혼을 달래는 풍습이 있다나봐. 장례식장서 망자가 입었던 옷을 들고 흔든다고 하더라고. 조선시대에는 지붕 위에 올라가서 했고. 말하자면, 셀프 고혼이지 뭐."
모든 학교에는 괴담이 있기 마련이다. 월영시에는 올해로 99년 된 월영고등학교가 있는데, 오래된 만큼 전해지는 괴담도 많고 내용도 괴기했다.
‘늦은 밤에 별관에 가지 마시오. 학창시절 괴롭힘으로 자살한 원기들이 가득함.’
새벽 3시가 넘어서야 회원의 집인 월영아파트 앞에 겨우 도착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수업이 다 잘린 탓에 서울의 노른자 대치동에서 쫓겨나 월영시라는 낯선 곳으로 좌천됐다.
골목을 헤매다가 할아버지 한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차로 칠 뻔했다. 할아버지는 빈 리어카를 끌고 다녔다. 새벽 3시에 말이다. 길을 헤매던 나를 보더니 갈라지는 목소리로 "좋은 물건 있어? 바꿀 껴?"라고 물었다.
그나저나 가장 의아한 건 굳이 새벽 2시 반에 수업 전 상담을 진행하겠다는 중3 과외생 박세준과 그의 어머니 송인애이다.
"박세준 학생 어머님이시죠? 학생은 어디 있나요?" "세준이는 외출했어요." 침을 꿀꺽 삼켰다. 새벽 3시에 중학교 3학년이 외출을 하다니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어머니도 보통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2시 반까지 기다리다가 볼일이 있어서 나갔어요." 그러니까 늦게 온 내 잘못이란 뜻인가. "무슨 볼일인가요?" "그게 말이에요." 갑자기 송인애가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하마터면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갈 뻔했다. 원피스 앞섶이 살짝 벌어지며 삐쩍 마른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저도 몰라요."
숨이 턱 막혔다. 그건 파란색 가짜 보석이 달린 반지였다. 하수구에서 발견한 귀걸이와 세트임이 틀림없었다.
"어머, 고마우셔라. 덕분에 살았어요. 아들놈이 제가 들고 있던 칼을 뺏으려 달려들지 뭐예요. 하마터면 역으로 당할 뻔했는데, 감사해요. 세준이는 제가 자기 엄마인지 몰랐겠지만."
"아들놈이 괜히 길고양이를 돌본답시고 새벽에 싸돌아다니니 불안해서 일을 할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선생님에게 미행을 부탁한 건데, 뭐 결과적으론 잘됐네요. 어머, 선생님 혹시 뭔가 착각하신 건가요? 세준이는 괜히 길고양이 치료해준 것 말고는 아무 죄가 없어요."
송인애가 땅에 떨어진 식칼을 주워들었다. "으…." "선생님은 잘생기셔서 살려두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목 뒤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의식이 끊겼다.
지금 이 시간에도 괴이한 일은 벌어진다. 악귀에 씌어 일가족을 살해하기도 하고, 이사 간 집에서 귀신에게 시달리기도 한다. 공포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매년 뉴스에 보도되는 내용이다.
1999년, 월영시 괴촌면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현재는 재개발 지역이라 사람이 살지 않지만 과거에는 길게 줄을 선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무당 육병달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통하기로 소문난 그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기세가 대단했다.
그가 선택한 건 새로운 신을 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내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신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지 사람이 신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육병달은 새로운 신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육병달의 집 앞에 무속인과 종교인들이 모였다. 그들은 육병달이 신내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마귀를 불렀다고 했다. 여론은 그들이 시기심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서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의 잘못으로 마귀를 불렀습니다. 그것이 이곳에 머무는 자들을 죽이고 제물로 삼을 것입니다. 어서 이곳을 나가세요. 가족들이 그것에게 당했습니다. 이 집에는 마귀가 삽니다.’
"경찰도 기자도 그곳에 들어가는 걸 멈추세요. 행여 호기심에 들어갈 생각은 마세요. 육병달은 들여서는 안 되는 걸 들였어요. 그건 동쪽 저 멀리에서 온 마귀예요. 인간의 마음을 건드려 자신의 제물로 삼는 거죠. 마귀가 바라는 건 인간의 비극입니다. 서로 다투고 싸우고 죽이고…."
"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육병달이 부른 마귀를 신봉하는 단체가 있었어요. 인류 종말의 시대에 악마를 섬겨야 한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 사람들이 무당의 집을 다녀왔더라고요. 여기 인증사진도 있어요."
‘에베소서’ 4장 26‐27절이 나왔다. 그녀는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마라."
모두 경악했다. 최 작가의 머리가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멍석에는 그녀의 사체가 칼에 찔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육병달의 가족들이 죽어 있던 모습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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