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개주막은 한양 도성에서 서남쪽으로 십 리쯤 떨어진 마포나루 어귀에 있었다. 마포나루, 혹은 삼개나루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한강을 거슬러 오는 장삿배들로 언제나 북적거렸다.

젓갈 중에선 특히나 새우젓이 유명해 한양 사람들은 길 가다 새우젓 장수만 보면 출신을 묻지도 않고 그냥 ‘마포 새우젓 장수’라고 불렀다.

뱃사람이든, 장사치든, 옹기장이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한다. 자연스레 객주와 여각이 문을 열었다.

이렇듯 마포나루엔 다양한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 부대끼고 어우러져 특유의 활력이 넘쳤다.
나루터에서 이름을 따온 삼개주막은 시끌벅적한 선착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막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문 앞에 내다 건 ‘주(酒)’자를 볼 수 있을 정도로는 가까웠다. 선착장과 너무 가깝다면 손님들이 소음 때문에 마음 편하게 탁주를 마시기 어려웠을 것이고, 너무 멀다면 하룻밤 묵을 곳을 찾는 투숙객들이 모르고 지나칠 수 있으니 딱 안성맞춤인 곳에 터를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한일(一) 자를 세로로 세운 형태로 구성된 아래채는 객실과 외양간, 뒷간이 나란히 붙어 있어 아래채 객실에서 묵는 손님은 돗자리 아래서 들끓는 빈대, 다른 투숙객의 몸에서 나는 쾨쾨한 발 냄새, 땀 냄새뿐 아니라 뒷간에서 나는 구린내까지 감내해야 했다.

이렇듯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음식의 비결은 주모 김씨의 손맛에 있었다.

하지만 한창때도 인물 좋다는 칭찬은 들어본 적 없었을 삼개주막 주모 김씨는 죽었다 깨도 그런 일을 할 수 없을뿐더러 설사 자신이 전설 속 달의 여신 항아처럼 아름답다 하더라도 가볍게 웃음을 팔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몸은 고되더라도 새벽부터 일어나 손발이 부르트게 바지런히 노동해서 버는 돈이 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자신의 굵은 허리와 팔뚝을 창피해하기는커녕 일종의 훈장처럼 여겼다.

"애들은 걱정 마소. 내가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새끼들은 책임지고 잘 키울 테니."

도통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외양으로는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주모와 그에 못지않게 내세울 게 없었던 남편이 어떻게 저렇게 멀끔한 아들놈을 만들 수 있었느냐 하는 건데, 어쩌다 조물주는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서른 남짓 보이는 보부상이 삼개주막에 들어선 것은 아직 땅거미가 내려앉기 전, 늦은 오후였다.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는
보상(褓商)과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는 부상(負商)을 합쳐 보부상이라고 한다.

"지금은 술이 깰 때가 아니라 술을 마실 때지. 일도 마쳤겠다, 술 한잔 못 할 이유가 뭐가 있나?"

"이곳저곳 다닌다고 어디 다 좋습니까.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낯선 데서 쪽잠 자며 돌아다니는 것도 고달픕니다."

"그래도 덕분에 세상 구경 많이 할 수 있잖소. 보고 듣는 게 다 공부인데, 형씨는 우리보다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한 것 아니겠소."
"물건만 팔았지 보고 들은 게 그리 많지도 않습니다."

"혹시 귀신을 만난 적은 없소? 외딴 산길을 걷거나, 늦은 밤 노숙하는 일도 많을 터인데."
"이 사람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나. 세상천지에 귀신이란 게 어디 있어? 다 사람이 만들어낸 얘기지."

"귀신이란 게 실제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희한한 일들은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저건 그냥 그림이 아니라오. 배우자 그림이지."
"배우자 그림이라니요?"
"저 노인은 복동이 얼굴만 보고서 일면식도 없는 복동이 안사람을 그려낸 거요."

"나는 당신 얼굴만 보고서도 당신 안사람 얼굴을 똑같이 그릴 수 있소. 아직 상투를 안 튼 사내아이나 댕기 머리 계집애도 얼굴을 보면 미래에 어떤 사람과 혼인할지 초상화를 그려줄 수 있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저만 보고서 얼굴도 모르는 제 마누라를 그린다니요. 과장이 심하십니다."

"미래를 읽는다……. 그건 너무 거창한 말일 것 같고. 나는 다만 사람의 인연에 대해서만 보는 능력이 있을 뿐이오. 아니, 그것도 잘못된 말일 것 같군. 수많은 인연 가운데서도 남녀 관계로 맺어지는 배우자 운만 보니까. 하지만 인생에서 배우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지. 그러다 보니 어떨 땐 타인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건지 대충 짐작하게 되는 일도 생기는 거고. 그건 꽤나 성가신 일이오."

"결혼 전에 내 마누라 얼굴을 미리 알았더라면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갔을 것 같거든."
"예끼, 이 사람아. 그러는 자네 안사람은 자네가 서방이 될 거란 걸 알면 좋아서 춤이라도 췄을 것 같은가? 모르긴 몰라도 자네 얼굴 보고서 적잖이 실망했을 걸세."

"당신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 성년이 될 때까지 살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는 다 결혼을 하게 마련이고, 부부의 인연은 하늘이 정해주니까. 또 부부의 연이라는 건 한번 맺으면 어느 한쪽이 죽거나 인연을 끊을 때까지 지속되는 것이거든."

"당신 얼굴을 보면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 얼굴은 뚜렷하지 않고 잡힐 듯 말 듯 윤곽이 희미하게 보인다오. 그건 당신이 그 여인을 취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지. 이제껏 이런 사람은 당신 말고 한 명밖에 본 적이 없소."

"신이 왜 인간에게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안 알려주는지 아시오? 그건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자비요. 알아봤자 인간이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그나마 관가에 가서 자수라도 했으면 사고로 정상 참작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공포에 사로잡힌 두 남녀는 이성을 잃고 그대로 도주해버렸다. 그런 도주 행각이 오래갈 수 있을 리 없었다. 관가로 끌려온 팔생은 살인죄로, 함께 도망가던 여자는 간통 및 남편 살인 교사죄로 같이 참수형을 선고받았다.

"사람 속은 참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성실하고 예의 바르다고 평이 자자한 팔생 형님이었는데, 뒤에선 남의 여자를 탐하고 뻔뻔하게 살림까지 차리려 했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어쨌든 그 일 때문에 임방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의 선택 역시 그가 뜻한 바대로 되지 않았던 건가.’
후, 후, 후.
노인의 귓가에 아주 오래전 들은 적 있는 음산한 웃음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자식이라는 게 애물단지나 마찬가지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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