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태도는 보기에 따라 어리석어 보이지. 하지만 철저한 태도를 버리면 우리 기술자는 기술자가 아니게 돼. 밥 먹기 위해서만 일하는 거라면 철저한 태도는 거추장스러운 것인지도 모르지." - P-1

"하지만 이렇게 작업을 거듭하는 정성과 소망이 표지를 통해 이 책을 집어 드는 사람의 직감이나 잠재의식에 어필할 거라고 생각해." - P-1

"미스터 꿍,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이럴 때는 의외로 맨 처음 감이 맞을 때가 있어."
지로 씨의 연륜에서 나온 말은 적중했다. - P-1

총 10번의 시행착오 끝에 뜻밖에도 맨 처음의 인쇄 설정이 채택되었다. 직원들 표정에 안도와 함께 허탈한 기색이 배어나온다. 하지만 나머지 9번이 있었기 때문에 맨 처음 설정이 좋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는지 모른다. - P-1

"고칠지 말지를 포함해서 모든 결정권은 고객에게 있어. 출판사가 저자와 상의해서 결정할 일이야. 우리는 성심성의껏 사죄하고 그 결정에 따르면 돼."

"만약 우라모토 씨가 저자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양보할 수 없는 간행일과 오자 한 글자. 어느 쪽이 중요할까."

위태로운 통화에 가슴이 아프게 오그라드는 가운데 상대방 처지에 선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고 실감했다. 자칫 책임을 회피하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그래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선택지를 전부 고객에게 제시해야 한다.

"이번 일로 실감했겠지. 인쇄 회사는 모노즈쿠리가 아냐. 실수를 저질러도 고객이 그냥 내라고 하면 따라야 하는 거야. 그런 일이야."

책의 탄생은 저자와 편집자, 여러 방면에 걸친 수많은 관계자에게 두루 축복받는 일이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세상에 나오는 책은 애초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실수 없이 작업 하나하나를 잘 마쳐야 한다.

장마를 맞은 밤하늘에서 빗방울이 간간히 듣기 시작했다. 우라모토 마나부는 유라쿠초 선 고코쿠지 역으로 뛰어들었다. 우산을 펴지 않아서 조금 득을 본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레야레
‘야레야레’는 실망할 때 말하는 ‘아이고 맙소사’에 상당하는 말 - P-1

편집자는 예산이 허락하는 선에서 책의 사양을 궁리한다. 종이 재질, 표지 그림, 장정 등 작품에 대한 기대치는 책의 사양으로도 표현된다. - P-1

금박, 엠보싱, UV(자외선을 이용한 순간건조) 등의 특수 가공을 하거나 반투명지, 한지, 가죽 등 특별한 소재를 사용하는 등 기대치가 높은 작품은 자연히 공을 들이게 마련이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질문하러 일어선 여학생이 마이크를 양손으로 꼭 쥐고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 P-1

"꿈은, 내가 맡은 일을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겁니다."

새 슈트를 차려입은 학생들 얼굴에 당황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 P-1

이제 곧 사회에 진출할 취업준비생들에게는 너무 냉정한 대답이다. 꿈이나 희망 같은 건 없다는 말인가.

"그런 평상시 마음가짐 말고 장래희망 같은 걸 말씀해 주셨으면……." - P-1

"우리가 하는 일은 인쇄입니다. 주문받은 사양을 충실히 실현하는 거죠.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굳이 말하자면 방금 대답한 대로 하루하루 맡은 일을 실수 없이 마치는 겁니다." - P-1

"제 꿈은…… 인쇄가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것, 혹은 그 장인)로 인정받는 날을 맞이하는 겁니다." - P-1

"혼을 담아 쓴 이야기를 책이라는 물성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나카이도 씨가 말한 대로 실수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꿈과 책임이 있는 일입니다." - P-1

해금월
일본은 취업 활동이 학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기업의 홍보 등 채용 활동을 제한하는데, 이 제한이 풀리는 시기를 ‘해금월’이라 한다 - P-1

"더 냉정하게 말할까. 앞으로 책이 더 안 팔릴 건 불 보듯 뻔하니 인쇄업도 객관적으로 사양 산업이고 가라앉는 배야." - P-1

책이 점점 팔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우라모토는 책을 만들고 싶어서 도요즈미인쇄를 선택했다. - P-1

배지부에는 공기 샤워가 끊임없이 나와서 인쇄가 끝난 지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파우더를 부착하고 있다. 옥수수가루 등을 원료로 한 미세한 파우더로 종이와 종이 사이에 물리적 틈을 만들어 잉크가 문질러지거나 다른 종이에 묻는 것을 방지한다. - P-1

"영업부에서 물어 와 버리면 아무리 무리한 작업이라도 하는 수밖에. 밥 먹고 살려면."
우라모토는 "늘 고맙게 생각해"라며 조금 과장된 투로 말했다.
"전서구로군." - P-1

외부 계단 밑 흡연 장소에서 지로 씨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무도 호응해 주지 않는 별명을 짓는 데는 이 사람을 능가할 사람이 없다. - P-1

박리다매 때문에 작업량은 늘어만 가는데 공장 직원은 해마다 줄고 있다. 더구나 노즈에의 바로 위 선배 시절에 채용을 극단적으로 줄인 탓에 지금은 중견 사원이 거의 없다. 때문에 공장에서는 30대 초반 직원에게 중간관리 업무부터 현장 작업 관리까지 온갖 부하가 집중되고 있다. - P-1

그런 판국에 우라모토는 거래처의 무리한 요구를 제꺽제꺽 받아 온다. - P-1

계장 노즈에는 크고 작은 작업들을 관리하면서 부하 육성까지 맡고 있다. 책임과 중압 탓인지 조용한 장소에 가면 인쇄기 소리 비슷한 이명을 겪는다. 밤에는 인쇄기가 새하얀 종이를 줄기차게 토해 내는 꿈을 자꾸 꾼다. - P-1

인쇄 영업은 외부에 사과해야 할 때가 많다. 언제 사과해야 하는지 제대로 분간하라는 말이다. 시야의 폭, 판단력, 임기응변의 조정 능력. 무엇 하나 나카이도에 한참 못 미친다. 씁쓸한 심정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 P-1

"인쇄 회사는 책의 탄생을 돕는 산파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책이라는 몸을 얻으며 세상에 태어나니까 태어날 때 거드는 우리야말로 책의 산파가 아닐까 하는 거죠." - P-1

책과 사람은 일대일로 만난다. - P-1

독자는 설사 ‘재미없네’ 하며 던져 버리는 책에서도 뭔가를 건진다. 때로는 한 권의 책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한다. - P-1

책은 그런 것이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범저는 위나라 사람이고 채택은 연나라 사람이다. 이들은 고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다가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되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다. - P455

전국 시대 말기에 범저는 진나라 소왕을 도와 멀리 있는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어 가까이 있는 나라를 공격하는 계책을 세웠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장애가 되던강국 조나라를 장평 싸움에서 무너뜨리고, 또한 주변의 한나라와 위나라와 초나라를멸망시키고 나서 북쪽의 연나라와 진晉나라를 도모하는 데 공을 세웠다. - P455

채택은 동주낙양 서쪽 지역을 빼앗았다. 사실 진나라가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두 사람을 비롯한 인재들 덕분이다. - P455

사마천은 범저와 채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뜻을 잃지 않았고 공을 이룬 뒤에는 물러나 어진 사람을 따랐기 때문에 특별히 이들에관한 열전을 만든 것이다. 아울러 진나라가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을설명하고 있다. - P455

군주가 의심하면 잠시 떠나 때를 기다려야 한다 - P457

범저는 위나라 사람으로 자는 숙叔이다. 그는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위나라 왕을 섬기려고 했다. 그러나 가난하여 스스로는 자금을 마련할 수 없어 우선 위나라 중대부고 섬겼다. - P457

"위나라에 장록 선생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천하의 유세가입니다. 그가 ‘진나라 왕의 나라는 달걀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지만 내 의견을들으면 무사할 수 있는데 내 의견을 글로 전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기에신이 일부러 그를 수레에 태워 데리고 왔습니다." - P460

제후의 인재는 천하에서 찾는다 - P461

양후는 화양군華陽君으로 소왕의 어머니인 선 태후宣太后의 동생이며,
경양군經陽君과 고릉군高陵君은  모두 선 태후의 아들로 소왕의 동생이다. 양후는 재상이 되고, 다른 세 사람은 번갈아 장군이 되어 모두 봉읍을 받았으며 태후와의 관계로 인해 그들의 개인 재산은 왕실을 능가할 정도였다. - P-1

옛말에도 "평범한 군주는사랑하는 자에게 상을 내리고 미워하는 자에게 벌을 주지만, 현명한 군주는그렇지 않아 상은 반드시 공 있는 자에게 주고 형벌은 반드시 죄 있는 자에게내린다."라고 했습니다. - P461

또 신은 "대부의 집을 번창시킬 인재는 나라 안에서 찾고, 제후의 나라를 번창시킬 인재는 천하에서 찾는다."라고 들었습니다. - P462

천하에 현명한 군주가 있으면 다른 제후들이 마음대로 인재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현명한 군주가 그러한 인재를 빼앗아 오기 때문입니다.  - P462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죽고 사는 것을 알고, 훌륭한 군주는 일의 성공과 실패에 밝습니다. 이로우면 행하고 해로우면 버리고 의심스러우면 좀 더 시험해 봅니다. - P4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공범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좋은데
책 표지가 너무 맘에 안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