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질문하러 일어선 여학생이 마이크를 양손으로 꼭 쥐고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 P-1
"꿈은, 내가 맡은 일을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겁니다."
새 슈트를 차려입은 학생들 얼굴에 당황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 P-1
이제 곧 사회에 진출할 취업준비생들에게는 너무 냉정한 대답이다. 꿈이나 희망 같은 건 없다는 말인가.
"그런 평상시 마음가짐 말고 장래희망 같은 걸 말씀해 주셨으면……." - P-1
"우리가 하는 일은 인쇄입니다. 주문받은 사양을 충실히 실현하는 거죠.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굳이 말하자면 방금 대답한 대로 하루하루 맡은 일을 실수 없이 마치는 겁니다." - P-1
"제 꿈은…… 인쇄가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것, 혹은 그 장인)로 인정받는 날을 맞이하는 겁니다." - P-1
"혼을 담아 쓴 이야기를 책이라는 물성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나카이도 씨가 말한 대로 실수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꿈과 책임이 있는 일입니다." - P-1
해금월 일본은 취업 활동이 학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기업의 홍보 등 채용 활동을 제한하는데, 이 제한이 풀리는 시기를 ‘해금월’이라 한다 - P-1
"더 냉정하게 말할까. 앞으로 책이 더 안 팔릴 건 불 보듯 뻔하니 인쇄업도 객관적으로 사양 산업이고 가라앉는 배야." - P-1
책이 점점 팔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우라모토는 책을 만들고 싶어서 도요즈미인쇄를 선택했다. - P-1
배지부에는 공기 샤워가 끊임없이 나와서 인쇄가 끝난 지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파우더를 부착하고 있다. 옥수수가루 등을 원료로 한 미세한 파우더로 종이와 종이 사이에 물리적 틈을 만들어 잉크가 문질러지거나 다른 종이에 묻는 것을 방지한다. - P-1
"영업부에서 물어 와 버리면 아무리 무리한 작업이라도 하는 수밖에. 밥 먹고 살려면." 우라모토는 "늘 고맙게 생각해"라며 조금 과장된 투로 말했다. "전서구로군." - P-1
외부 계단 밑 흡연 장소에서 지로 씨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무도 호응해 주지 않는 별명을 짓는 데는 이 사람을 능가할 사람이 없다. - P-1
박리다매 때문에 작업량은 늘어만 가는데 공장 직원은 해마다 줄고 있다. 더구나 노즈에의 바로 위 선배 시절에 채용을 극단적으로 줄인 탓에 지금은 중견 사원이 거의 없다. 때문에 공장에서는 30대 초반 직원에게 중간관리 업무부터 현장 작업 관리까지 온갖 부하가 집중되고 있다. - P-1
그런 판국에 우라모토는 거래처의 무리한 요구를 제꺽제꺽 받아 온다. - P-1
계장 노즈에는 크고 작은 작업들을 관리하면서 부하 육성까지 맡고 있다. 책임과 중압 탓인지 조용한 장소에 가면 인쇄기 소리 비슷한 이명을 겪는다. 밤에는 인쇄기가 새하얀 종이를 줄기차게 토해 내는 꿈을 자꾸 꾼다. - P-1
인쇄 영업은 외부에 사과해야 할 때가 많다. 언제 사과해야 하는지 제대로 분간하라는 말이다. 시야의 폭, 판단력, 임기응변의 조정 능력. 무엇 하나 나카이도에 한참 못 미친다. 씁쓸한 심정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 P-1
"인쇄 회사는 책의 탄생을 돕는 산파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책이라는 몸을 얻으며 세상에 태어나니까 태어날 때 거드는 우리야말로 책의 산파가 아닐까 하는 거죠." - P-1
독자는 설사 ‘재미없네’ 하며 던져 버리는 책에서도 뭔가를 건진다. 때로는 한 권의 책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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