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헤이룽장성 黑龍江省 무단장시牧丹江닝안현寧安縣에 해당한다. 17세기 중반 당시 영고탑에는 청나라 군대의 사령부가 있었는데, 현재의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일대를 관할했다. 따라서 당시 흑룡강을 따라 횡행하던 러시아군을 공격하기 위한 원정군은 일단 영고탑에 집결한 후 출정했다. 이는 1654년의 제1차 원정 때도 마찬가지였다. - P32
○ 고두례 叩頭禮공경하는 뜻으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땅에 댄 다음에 이마를 땅에 세 번 조아리는 인사법이다. 고두례는 본디 명·청의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행하는 예법이었으나, 황제의 칙서 앞에서도 실행하곤 했다. 따라서 일개 성주가 조선군 장수에게 고두례를 강요한 것은 예법에 어긋난다. - P35
8기를 말한다. 팔기는 만주족이 군대를 기의빛깔에 따라 여덟로 나눈 군사조직이자 행정조직이다. 처음에는 만주족만으로 조직한 만주8기뿐이었으나, 태종(홍타이지, 재위 1626~1643) 때에 몽골족과한족에게도 확대해 몽골8기와 한인기 등 모두 24기를 두었다. - P36
송가라강宋加羅江지금의 송화강(쑹화강)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송화강은 북으로 흘러 눈강과 합류하기까지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을 관통하며 흐르다가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인 흑룡강으로 들어간다. 총길이는 1960킬로미터다. - P38
지나온 지역에는 10리나 5리를 사이에 두고 마을이 이어져 있었다. 두 강이 합류한 잔잔한 물결은 넓고 멀어 아득하고, 텅 비고 넓은 벌판은 끝이없어 두 눈은 하늘 끝까지 다다랐다. 고국을 떠난 회포와 어버이 생각에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 P39
대한민국의 국제 위상이 높아진 요즘에는 UN평화유지군 자격으로 국군이 해외에 출병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역사에서 보면, 어떤 나라의 해외파병이 반드시 그 국가의 국제 위상이나 국력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실제로는 파병을 원치 않으면서도, 강대국의 압력에 못 이겨 끌려나가다시피 한 사례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 P4
조선의 독자적 해외원정으로 알려진 사례는 아마도 세종 때 단행한 대마도원정(1419)일 것이다. 이종무가 지휘한 이 원정이 조선의 자체 필요에 따른 출병임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왜구 소탕을 위해 명나라가 일본원정을 감행할지도 모르던 당시 정세 판단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명나라가 왜구를 근절시키기 위해 일본을 직접 공격할 경우, 명나라 육군이 한반도를 통과할 것은 자명했다. 엄청난 군수물자 징발도 큰일이었다. 이럴 경우에 조선이 입을 피해가 어떨지는 200여년전 몽골의 일본원정 경험을 통해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따라서 차라리 조선군을 미리출병시켜 독자적으로 대마도를 침으로써, 명나라 군대가 한반도에 진입할 명분을 미연에 없었던 것이다. - P5
이 책에서 역주한 자료 <북정록>은 바로 이런 심경으로 어쩔 수 없이 만주로 출병한 조선군 사령관 신류가 남긴 진중일기다. 따라서 이 역주를 읽을 때, 단지 전투상황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기록의 행간에 넘쳐나는저자의 미세한 심리 상태까지 엿보고 느낄 수 있다면 매우 훌륭한 자료 읽기가 될 것이다. 이런 ‘읽기 재미‘를 함께 나누기 위해, 이 역주본은 대학생은 물론이고,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고등학생이라 해도 읽기에 충분할 것이다. - P6
정벌은 국가사이의 상하 질서와 선악의 구분을 강조한 유교적 가치가 강하게 투영된 용어로, 21세기 역사학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선정벌‘에 대한 대안으로 ‘나선원정‘이라는 용어를 생각할 수 있다.그런데 원정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나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조선군의 두 차례 원정 모두 흑룡강까지 진격한 점을 중시해, ‘흑룡강원정‘으로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할것이다. 다만 나선정벌이라는 명칭이 이미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현실도 감안해, 여기서는 ‘흑룡강원정(나선정벌)‘으로 표기한다. - P8
1619년 조선은 명나라를 도와 후금과 싸우기 위해 강홍립姜弘立(1560~1627)이 이끄는 1만2000여 병력을 요동에 파견한 적있는데, 이때 조선군은 비록 명나라 사령관의 지휘를 받기는 했으나, 독립적 예하부대로 움직였다. 그런데 흑룡강원정(나선정벌 때 조선군은 처음부터 청군 속으로 분산됨으로써, 독립부대로서의 면모를 완전히 상실했다. 이는 명-조선 관계보다, 청-조선 관계가 훨씬 더 수직적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렇듯 《북정록》은 청-조선 관계의 상하 질서가 얼마나 엄혹하고 현실적이었는지 가감 없이 보여 주는 자료다. - P14
흑룡강黑龍江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이루는 총길이 4352킬로미터의 강으로, 몽골 북부의 오논강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흘러 오호츠크해로 들어간다. 러시아어로는 아무르강, 중국어로는 헤이룽강이라고 부른다. - P23
함경도 북병영은 본디 경성에 두었으나, 두만강이 얼어붙는 겨울철인 10월에서 3월 사이에는 종성으로옮겼다. 당시는 4월이지만,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종성을 이용한 듯하다. - P26
화승식 점화법을 이용해 화승총이라고 했다. 1589 년(선조 22) 황윤길 일행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오는 길에쓰시마 도주로부터 몇 자루 받아온 것이 시초다.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했고, 1655년(효종 7) 조선에온 하멜 일행이 조총 제작에 참여하면서 성능이 향상됐다. - P27
이러한 지세와 자연환경은 마야문명의 생성에 상당한영향을 미쳤는데, 그것을 세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① 각지에 다양한 독자적 지방문화를 탄생시킴으로써 서로가 유무상통하며 보완하는 하나의 복합적 문명을 이루었다. ② 화산지진·홍수·한발 등 가혹한 자연환경은 주민들의 대응 능력을 키워, 그 극복 과정에서 찬란한 고대문명을 창출하고 꽃피울 수 있었다.③ 다양하고 가혹하며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은 그 불가사의에 대한 특유의 우주관과 세계관, 종교관을 탄생시켰다. - P256
˝그애 솜씨는 아름다웠지˝그: 브래드 피트˝우리는 상대방이 도움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때론 그들이 원하지 않는 도움을 주곤 합니다. 그러나 우린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서로를 사랑할 순 있습니다.˝A River Runs Through It, 1993. 2014년 재개봉내 초가 있는 힘을 다해 빛을 태우니비록 이 밤을 다 밝히지는 못해도내 적과 벗들을 모두 따사롭게 비추리라그 순간 나는 완벽을 목격했다는 것을분명하고도 확실히 알수 있었다.동생은 빅 블랙풋 강둑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자연법칙을 초월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마치 예술 작품처럼또한 인생은 예술품이 아니고순간은 영원한 것이 아니란 걸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우리는 누구나 일생에 한번쯤은사랑하는 사람이 불행에 천한걸 보고 이렇게 기도합니다.˝기꺼이 돕겠습니다. 주님!˝그러나 필요할 때, 사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거의 돕지 못합니다.무엇을 도와야 할지도 모르고 있으며 때로는 그들이 원치 않는 도움을 줍니다.이렇게 서로 이해 못하는 사람과 산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그렇다해도 우린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완전한 이해 없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이해는 못했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제시 역시.그러나 난 아직도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
"우리는 상대방이 도움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때론 그들이 원하지 않는 도움을 주곤 합니다. 그러나 우린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서로를 사랑할 순 있습니다."
"그는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