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전의 새 장수와도 거의 얼굴이 닿을 듯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아름답게 빛나는 검고 큰 눈은 무희가 가진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큰 아름다움이었다. 쌍꺼풀의 선이 말할 수 없이 고왔다. 그리고 그녀는 꽃처럼 웃었다. 꽃처럼 웃는다는 말은 그녀에게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다시 여행 중에 죽은 아기에 대한 얘기를 했다. 물처럼 멀건 아기가 태어났었다고 한다. 울 힘도 없었지만 그래도 일 주일 동안이나 숨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호기심도 경멸도 없이 그들이 유랑인이란 종류의 인간임을 잊어버린 듯한, 나의 덤덤한 호의는 그들의 가슴에도 젖어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느 새 오시마의 그들의 집에 가는 것으로 내정이 되어 있었다.

가을 하늘이 너무 맑은 탓인지 한낮이 가까운 바다는 봄처럼 아스라했다. 여기서부터 시모다까지 50리를 걷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바다가 보일락말락했다. 지요코는 한가롭게 노래를 시작했다.

물이란 말을 듣고 나는 뛰었다. 나무 그늘의 바위 틈에서 샘이 솟고 있었다. 샘 둘레에 여자들이 서 있었다.
"자아, 먼저 마시세요. 손을 넣으면 더러워질 테고 여자가 먼저 마시기도 뭣해서……"

"참으로 좋은 분이야. 좋은 분은 좋지?"
이 말은 단순하면서도 개방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감정의 치우침을 훌쩍 앳되게 던져 보인 목소리였다. 나 자신에게도 자기가 좋은 사람이란 감정을 무리없이 느끼게 했다.

도중에 몇몇 마을 입구에 팻말이 서 있었다.
‘걸인, 유랑 예인, 마을에 들어오지 말 것.’

승선장에 가까이 가자 바닷가에 웅크리고 있는 무희의 모습이 나의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곁에 갈 때까지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잠자코 머리를 숙였다. 지우지 않은 어젯밤의 화장이 나를 더욱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눈꼬리의 연지가 성난 것 같은 얼굴에 앳된 의젓함을 주고 있었다.

선실의 램프가 꺼졌다. 배에 실은 생선 비린내가 강해졌다. 캄캄함 속에서 소년의 체온으로 몸을 덥히면서 나는 눈물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머리가 맑은 물같이 되어 줄줄 흘러넘치고, 그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감미롭고 유쾌한 심정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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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탕에 저것들이 와 있습니다 ─ 저봐요. 이쪽을 보았는지 웃고 있어요."
그가 손가락질을 해보여서 나는 개울 저쪽의 공동탕을 보았다. 서리는 김 속으로 7, 8명의 나체가 희미하게 떠보였다.

어슴푸레한 욕탕 안쪽에서 갑자기 발가벗은 여자가 달려나오더니 탈의장의 톡 튀어나온 개울가에 뛰어내릴 듯한 자세로 서서 두 팔을 활짝 올리고 뭐라고 외쳤다. 수건도 두르지 않은 전라였다. 그것은 무희였다.

오동나무 밑둥처럼 쭉 뻗은 하얀 나신을 보고 마음에 청수 淸水 를 느낀 나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고 나서 껄껄 웃었다. 어린 아이였다. 우리들을 발견한 반가움에 발가벗은 채로 햇살 속에 뛰어나와, 발끝으로 바짝 설 만큼 어린 아이였다.

탕에는 가지 않고 나는 무희와 오목을 두었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오목을 잘 두었다. 에이기치나 다른 여자들은 턱도 없었다. 오목에서는 대개의 사람에게 이기는 내가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일부러 져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 기분 좋았다. 둘뿐이었으므로 처음에는 그녀가 멀리서 손을 뻗쳐 돌을 놓고 있었으나 차츰 열중하여 바둑판 위로 상반신을 내밀어 왔다. 부자연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검은 머리가 내 가슴에 닿을 듯했다. 갑자기 얼굴을 확 붉히고,
"죄송해요. 야단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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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건져낸 시체처럼 전신이 퍼렇게 부어오른 할아버지가 화롯가에 앉아 있었다. 눈동자까지 노랗게 썩은 듯 한 눈을 나른하게 내 쪽으로 돌렸다. 앉은 자리 주변에는 낡은 편지랑 종이봉투가 산을 이루고 있어서 그 종이더미 속에 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저히 산 사람으로는 여겨지지 않는 산중의 괴물을 바라보면서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래? 전번에 데리고 있던 애가 벌써 이렇게 되었나. 좋은 처녀가 돼서 자네로서도 다행이지. 이처럼 고와지다니…… 여자들이란 빠른 법이야."

심한 경멸을 담은 노파의 말이, 그렇다면 무희를 오늘 밤 내 방에서 재워야지 하고 생각할 만큼 나를 충동질했다.

나는 50전 은화를 한 닢 놓고 왔을 뿐이었는데, 감지덕지해서 눈물이라도 흘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무희 일행을 빨리 쫓아가고 싶어서 노파의 뒤뚱거리는 걸음이 짜증스럽기도 했다. 마침내 고개의 터널까지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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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위에 앉았다. 비탈길을 달려올라와 숨이 찼고, 또 갑작스런 일이라,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를 않았다.

무희의 일행은 40대 여자가 한 사람, 젊은 여자가 두 사람, 그 밖에 나가오카 長岡 온천 여관의 시루시한텡 3) 을 걸친 25, 6세쯤의 남자가 있었다.
 
3) 시루시한텡 : 성명, 상호를 새긴 간단한 웃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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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는 존이 어떤 친구에게 할 말이 있다며 카드놀이방으로 가 버린 상태에서 사랑하는 친구 캐서린의 짝을 맞출 수 없으므로 절대로 춤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신의 소중한 여동생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싫어요"라고 말이다.

이자벨라는 캐서린과 붙어 있지 않은 반대쪽으로 제임스와 계속 속삭이더니 결국 캐서린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친구야, 네 오빠가 하도 안달하니까 춤추러 들어가야겠어. 내가 없어도 괜찮을 거고, 존이 곧 돌아오면 그때 또 보면 되니까." 캐서린은 약간 실망했지만 마음이 착해서 그저 가만 있자 두 사람은 춤추러 일어났고 이자벨라는 캐서린의 손을 잡고 "안녕, 사랑하는 친구"라는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사라져 버렸다.

마음은 순수하고 행동은 잘못이 없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망신당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우스운 꼴을 보이고 불명예스러워지는 것이야말로 여주인공의 삶이며, 그런 상황에서 발휘하는 용기야말로 여주인공에게 위엄을 주는 법. 캐서린도 용기를 내 버텼다. 괴로웠지만, 한마디도 투덜거리지 않았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여 옆에 있는 아가씨가 여동생이라고 단박에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캐서린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앨런 부인의 품에 쓰러지는 대신* 완벽하게 이성을 발휘하면서 뺨만 평소보다 약간 붉어진 채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속상한 일을 연달아 겪다 보니 하나의 교훈, 즉 젊은 아가씨가 무도회에서 춤추기로 약속했다고 해서 반드시 위엄이나 즐거움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남자들은 원하는 게 있으면 물불 안 가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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