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소고기는 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의 대명사다. 살아서는 농사를 짓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죽어서는 단백질의 원천이자 특유의 고소한 풍미로 입맛을 사로잡았던 소.

공평동 유적은 솔선수범을 해야 할 관리들이 대놓고 관청에서 고기를 잡고 회식을 한 흔적이다. 사료에 따르면, 제사를 지낸다는 핑계를 대고 소를 잡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한우는 황우, 칡우, 흑우, 제주 흑우로 크게 네 종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황우만을 한우로 표준화함에 따라 한우의 다양한 유전자풀이 고립되었고, 이후 전통 소의 명맥이 끊겨버렸다.

한우가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으려면 다양한 요리법만큼이나 품종을 개량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전통 소 복원 작업과 한우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이를 위한 방편들이다.

선생님은 힘든 발굴이 끝나고 나면 한적한 시골 마을의 단칸방에서 꼬시래기*라는 잡어의 막회를 소주에 곁들여 먹으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감을 느꼈다고 했다. 고고학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행복한 시간이다.

지금은 해초류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1960년대까지 남해에서 꼬시래기라 불리는 물고기가 있었다. 전문용어로는 문절망둑, 즉 망둥어다.

인간에게 죽음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통해 남은 자들의 삶을 결속했다. 라틴어 격언 중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이 격언은 역설적으로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제사는 인류가 메멘토 모리의 교훈을 실천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진정한 술 애호가의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준비와 절제가 아닐까? 여기에서 준비라 함은 평소 체력 관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절제는 순간의 기분에 휩싸여 과음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 정도의 주도(酒道)를 갖춰야 술을 즐길 자격이 있다고 하겠다.

위스키의 본고장이자 술꾼 많기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에서는 해장술을 ‘개털(hair of the dog)’이라고 한다. 늑대 같은 맹수에게 물린 상처는 그 짐승의 털을 문지르면 낫는다는 미신에서 비롯된 말로, 쉽게 말해 ‘술병은 술로 고친다’라는 뜻이다.

지금 당신이 마시는 한 잔의 술이 더욱 행복한 이유는 아마도 내일의 따뜻한 해장국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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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라는 음식 안에 한반도의 지리적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삶을 이어나간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김치에만 들어가는 젓갈은 그 지혜의 정수다.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하며 붙인 타이틀, ‘김장: 김치를 만들고 서로 나누기’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선정위원회 측은 김치의 원조를 따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류가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지혜롭게 저장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었던 지혜를 김치에서 발견하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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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있는 유물이 들려주는
살아 있는 이야기

고고학자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조금 유별납니다. 고고학자의 눈앞에 놓인 유물은 여러 시공간이 겹쳐진 것들입니다. 유물은 오랜 시간의 터널을 지나 오늘날에야 발견되었죠. 그것이 품은 시간은 아주 먼 과거인데요, 세월의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그 물건이 바로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외양만 봐서는 이 유물이 어떤 점 때문에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증명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자의 전문가적 지식과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 낡고 녹슨 이 비파형동검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유물은 인류가 미처 기록해두지 못한 역사의 구멍 난 부분을 메워주는 탁월한 퍼즐 조각이자 그 자체로 옛이야기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는 타임캡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른두 가지의 유물을 ‘잔치(Party)’, ‘놀이(Play)’, ‘명품(Prestige)’ 그리고 ‘영원(Permanence)’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나누었습니다.

각각의 키워드는 우리 삶의 커다란 네 가지 축인 ‘먹고’ ‘즐기고’ ‘욕망하고’ ‘죽음을 대하는’ 모습을 하나의 단어로 압축한 것입니다.

"1달러의 기적 같은 술이 진짜 있어?"

시원하게 해서 먹으면 토카이(헝가리의 화이트와인으로 달콤한 맛이 특징)의 청량감이 느껴지는 데다 독특한 곡물 향은 덤이고 여기에 유산균도 풍부해서 건강에도 좋다고 말이다. 친구가 말한 술은 막걸리였다.

유물로 현전하지 않는 술에 관한 정보를 고고학에서 알아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술을 만들고 담아둔 그릇을 발굴하는 것, 그릇에 남아 있는 술 찌꺼기를 찾아내는 것, 마지막으로 술을 마시거나 만드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나 벽화를 찾는 것이다.

빨대로 빨아 마신 맥주

러시아 카프카스 초원 지역의 약 5,500년 전 무덤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빨대가 발견되었다. 마이코프 문화라 불리는 이 유적은 사실 130년 전에 이미 발굴된 것이었다.

막걸리의 영원한 친구 도토리묵은
1만 년 역사를 가진 안주?

해외에서 한국을 찾은 고고학자들과 막걸리를 마시게 되면 나는 꼭 도토리묵을 소개한다. 맛을 본 동료들은 젤리처럼 독특한 식감을 지닌 안주가 1만 년의 역사를 지닌 그 전설의 음식이냐며 경탄한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우리는 1만 년 동안 이어진 고고학적 안주를 보유한 나라의 후손들이니 말이다.

소주
신이 내린 자연의 선물,
‘더 맑게‘ 진화하다.

소주의 기원은 만주다

김치
북반구를 따라 이어지는
‘푸드 로드‘

3,500년 전 빗살무늬토기로 만든 김장독연해주는 근대 이후 고려인들이 살기이전부터 한반도 동북한 지역과 동일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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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인간의 영혼을 잠식한다. 각자가 나를 어떤 존재로 지을 것인가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 불안 때문에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이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은 소유에만 관심이 있고 소유물이 무엇이며 얼마나 되는지가그 사람의 가치를 규정한다. 그래서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인간성을 훼손하는 불안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공적 분배를 통한보편복지의 확충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 그렇게 더불어 사는 사회, 사회적 연대가 살아 있는 사회, 모두가 소박하게 살지언정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만큼은지켜주는 사회로 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 환경에서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가꿀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머리(의식)도 중요하지만, 머리보다 가슴(공감 능력)이 더 중요하고, 가슴보다는 발(실천)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것인데, 신자유주의가 유일사상으로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가슴이나 발은커녕 머리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박해와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피난처를 찾아 한국 땅을 찾아온 난민들을 환대하기는커녕 혐오하는 동시대인들이 너무 많다. 이 땅을 찾아온 난민은 난민이라는 거울을 통해 투사된 우리의 자화상을 드러낸다.

독일 국내 극우 세력의 반대뿐 아니라 소속 기독교민주당의 반대도 무릅쓰고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인 앙겔라 메르켈의 담대한 정치철학은 물론, 그런 지도자의 결단을 결국 수용한 독일인들의 수준도 놀랍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종주의에 관한 탁월한 책을 쓴 타하르 벤 젤룬은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방인을 두려워할 권리를 갖는 것, 그것이 바로 두려움에 대한 승리가 된다.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고, 우리 자신의 허약함의 거울 속에서 자신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대신에 우리는 우리의 두려움을 적에 대한 무기로 만들고 방패로 사용하려고 두려움을 내면화한다. 그리하여, 위협인 이방인은 넘어올 수 없다."

자공이 물었다.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한 가지 말씀이 있습니까?"
"서(恕)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면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

『논어』 위령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예수님도 "남이 너에게 대접해주길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해주어라"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캐나다의 중도파 자유당의 쥐스탱 트뤼도 대표는 선거 캠페인 중에 "총리에 선출된다면 2015년 말 이전에 2만 5,000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다.

트뤼도 정부의 존 맥컬럼 이민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 해 전부터 세계의 난민 위기가 더 심각해지는 터에 다른 나라들이 문을 닫을 때 우리는 문을 열 것이다." 또 "가장 중요한 도전은 난민을 위한 주택과 언어 교육, 그리고 일자리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69퍼센트의 시리아 난민들은 입국한 지 석 달도 지나지 않아 주택을 제공받았다.

우리가 자주 말하곤 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의 뜻은 꾈 유(誘) 자를 써서 확장되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죄가 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죄를 짓도록 이끌기 때문이다(無錢有罪→無錢誘罪).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가난을 만드는 구조를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나를 빨갱이라고 불렀다."

동 에우데르 카마라 대주교의 말이다. 브라질의 빈민 지역에서 활동한 뒤 생을 마감한 카마라 대주교는 활동 초기에 부자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가 부자들의 기부에 의한 복지사업으로는 가난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인적 선행의 한계는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긍심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스스로 자신을 형성할 수 없고 동정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자긍심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남는다. 그래서 카마라 대주교는 청소부에게 정말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것은 일하느라 거칠어지고 더러워진 손이 아니라, 사람들을 자기중심적인 태도에 머물게 하는 사회구조라고 말했던 것이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 추구권이다.

결국 인간성을 훼손하는 불안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공적 분배를 통한 보편복지의 확충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 그렇게 더불어 사는 사회, 사회적 연대가 살아 있는 사회, 모두가 소박하게 살지언정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만큼은 지켜주는 사회로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모든 이웃들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 연대의 정신과 성숙한 정치다.

장발장은행은 그런 사회를 향한 작은 씨앗의 하나일 뿐이다. 빨리 문을 닫는 게 장발장은행의 목적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가난의 상태’가 지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남이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할 때, 시민들의 적극적인 연대활동과 올바른 정치 참여만이 그 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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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 거칢에 대하여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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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언명한—사회주의자이면서 자유주의자라고 했는데, 아무튼—조국 씨가 청와대에 입성하는 것을 보며 신선함을 느꼈다. 그런데 진보를 말하는 것과 진보를 사는 것이 다르고,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과 사회주의를 사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신이 아닌 사람이므로 말과 실제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다. 공자님은 “말은 항상 지나치고 행동은 항상 미치지 못한다” “군자는 말이 행동보다 지나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고 말씀하셨다. 누군가 말했듯이, 위선은 말과 행동을 다르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말과 행동을 다르게 살면서도 다르지 않게 산다고 말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조국 씨는 SNS 활동에 무척 열심이었고 성찰이라는 말을 빈번히 사용했다. 그의 성찰은 그의 말과 행동의 간극을 조금도 줄여주지 않은 듯했다. 나에게 그는 점차 해석하기 어려운 인물로 비쳤는데, 수많은 동시대인들이 “우리가 조국이다!”라고 말하는 놀라운 상황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조국 가족은 하면 안 되는 일까지 포함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리브스가 말한 기회의 사재기에 나섰는데, 서초동에서 “우리가 정경심이다!”라고 외친 그 수많은 사람들이 “삼루에 태어나… 삼루타를 치는” “기자, 학자, 기술자, 경영자, 관료들, 이름에 박사(PhD), 의사(Dr)와 같은 알파벳이 붙는” 사람들이었을까?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주창하며 시위에 나섰다. 하루에 보통 12시간, 적어도 10시간씩 일해야 했던 그들은 하루 24시간을 3으로 나누어 8시간은 잠자고, 8시간은 빵, 즉 일용할 양식을 위해 일하고, 나머지 8시간은 장미, 즉 자아실현을 위한 자유시간을 갖기를 바랐다. 미국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사상자를 냈고 폭발물 사고를 빙자해서 노동운동 지도자들에게 내란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했다. 5월 1일,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생일로 기념하는 노동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결 : 거칢에 대하여 | 홍세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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