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의 시작

ㅇ 삼개주막 기담회
1. 주최자 연암, 2. 전기수? 선노미
3. 참가자(회원) 연암의 제자들?
[회원님들]
1. 세현-여우, 2. 진석-올빼미,
3. 무광-노루, 4. 종훈, 5. 석호-너구리
아쉽게도 연암의 제자들?은 실명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의 관직도. 종훈만 사관으로 나올뿐.

종훈은 춘추관 지하 서고에서 130년뒤 경술국치일을 예견하는 죽은 사관이(귀신) 전해주는 자색 표지의 책자를 보게되고, 130년뒤의 일을 알고도 아무것도 할수 없는 자신을 탓하며 선노미에게 언문을 가르쳐주고 떠난다.

때는 1780년, 책본문 내용으로 추리한 결과. 그리고 책의 마지막장에 연암이 청나라 건륭제 생일 축하 사절로 간다는 야그가 나온다.

선노미는 삼개주막의 주모 김씨의 장남, 한번 들은 내용은 기맥히게 기억하는 신기한 재주를 지녔다. 그래서, 주막을 찾았던 연암이 그 재주를 기특히 여기고 주막에서 보고들은 기막힌 이야기를 자신의 벗들에게도 들려주고자 삼개주막 기담회를 만들고 선노미는 그 기담회의 주역이 된다.(선노미는 사실 주모 김씨의 아들이 아니다.)

연암은 선노미의 그 재주를 아껴 청나라 사행원으로 갈때 수행원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청나라에 가면 신문물을 자세하게 기록해 책으로 낼 생각이다. 그때 네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다.”
선노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연암 을 바라봤다.
“그리고 하나 더.”
그런 선노미를 모른 척하며 연암이 말을 이었다.
“기록과는 별개로 오가는 길에 기담도 수집할 생각이다. 그러니 기담회 주인공인 너 말고 더 좋은 선택이 없지.”

더 기대되는 3권입니다.
열하로 가는 과정이 어떻게 그려질지 완전 기대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물에 견줘도 손색이 없는거 같네요.(2권까지 읽고 어제의 맘이 바뀌었다.)

열하일기: 정조 4년(1780) 연암 박지원이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로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여행기. 당시 박지원은 공식적인 벼슬이 없는 평범한 선비였음에도 사절단으로 갈 수 있었는데, 당시 사절단의 수장인 정사가 삼종형(8촌 지간)인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조의 부마로, 영조가 가장 총애한 딸인 화평옹주의 남편이다.

삼개주막은 한양 도성에서 서남쪽으로 약 십 리쯤 떨어진 마포나루 어귀에 있었다. 마포나루, 혹은 삼개나루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한양을 거슬러 오는 장삿배들과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거렸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곳에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괴이하고 신기한 이야기가 모여들었다.
신기한 이야기가 만나는 곳에서 선노미와 연암의 만남이 이뤄졌다. 이야기를 통해 이어진 소년과 괴짜 선비는 이제 이야기를 찾아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려 하고 있었다.

삼개주막 기담회 2 | 오윤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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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자 하나가 저녁 무렵 삼개주막을 찾아왔다. 얼굴에 아직 애티가 남아 있는데, 나이도 많이 쳐줘야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 듯싶었다.

나례는 고려 때부터 전해져 온 악귀 쫓는 의식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각종 재앙을 불러오는 악귀를 쫓아내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는 게 나례의 취지다. 원래 궁중에서 시작된 나례는 조선 후기엔 민간에도 널리 퍼졌다. 돈 좀 있는 양반이나 양인들은 한 해를 떠나보내는 기념으로 성대하게 나례 연회를 열고, 연회장에 광대나 기생들도 부르곤 했다. 복쇠가 한양에 온 이유도 어느 지체 높은 양반가의 나례 연회에 동원된 기방(妓房)이 행사에 쓸 가면을 여럿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거야 원, 시끄러워서 귀신보다 사람 귀청이 먼저 떨어지겠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는 가면이라……. 꽤 으스스하군."

선노미가 입을 딱 벌렸다. 조금 전까지 감사해하던 마음이 싹 가셨다. 아니 그 양반은 선물을 줄 거면 그냥 줄 것이지 말을 왜 그따위로 하냐고! 속마음이 무심코 얼굴에 드러났는지 남자가 피식 웃었다.

"나리를 오래 모신 내가 풀이해주자면, 그 말은 ‘그걸로 언문 공부하라’는 뜻이야. 아마도 네가 꽤 마음에 드신 모양이다."

선노미는 어안이 벙벙해서 멀어져가는 남자와 제 품에 안긴 선물 보따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가 마음에 드셨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어쩌면 그분도 속마음과 다른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건가?

그곳에선 아이 잡아먹는 귀신이 나오기 때문이다.

큰 마님은 사람들의 어리석은 마음을 이용하기로 했다. 귀신을 달래기 위한 거라며 하인들에게 주기적으로 밥과 고기로 상을 차려 별채에 내가게 했고, 며칠에 한 번씩 남몰래 광 문을 열어 여자가 차려진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보안을 기울인 덕분에 비밀은 그동안 잘 지켜졌다.

‘나도 아기 잡아먹는 귀신이었어. 그 여자처럼.’
달밤에 만났던 여자는 유순이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보았는지도 모른다. 여자의 쓸쓸한 미소에 그토록 가슴이 아렸던 것도, 여자가 자신을 향해 그토록 환하게 웃어 보였던 것도 서로가 아기 잡아먹는 귀신이라는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인 걸까.

‘아기 잡아먹는 귀신은 실제로 있어요!’
유순이 울부짖던 소리가 귓전에 되살아났다. 김씨는 소름이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김씨도 아기 잡아먹는 귀신을 만난 적이 있다. 옥이가 아직 돌이 안 될 무렵이었다. 남편은 시름시름 앓아누웠고, 김씨는 남편 병간호하랴, 혼자 주막일하랴, 아직 어린 선노미와 복이 돌보랴,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눈물과 땀으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텼다. 가끔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짐을 지워준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귀신한테서 널 지킬 수 있어 정말 다행이야.’
김씨가 속으로 가만히 속삭였다. 잊고 싶었던 오래전 기억을 떠올려서인지 주책스럽게도 뜨거운 눈물이 김씨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임오(壬午)년, 임금이 아들인 세자를 뒤주 속에 가둬 죽이다.’

‘130년 뒤인 경술(庚戌)년, 치욕스럽게 나라를 빼앗기다.’
한참 동안 자신이 쓴 글을 내려다보고 있던 종훈은 먹이 마르자, 뒤편에 제 이름을 적어넣었다.
‘경자(庚子)년, 사관 박종훈 쓰다.’

결국 세상 물정에 밝은 복동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식리인(殖利人)에게서 돈을 빌렸다. 그게 파국의 시작이었다.
 
식리인은 전문적으로 사채를 빌려주는 사람들이다.

"민심은 말이지."
만수가 무겁게 입을 뗐다.
"꽤 무서운 거란다. 높으신 양반 나리들도, 나라님도 민심을 무시할 순 없어.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민심이 모이면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울 수도 있다."

연암이 말했다.
"우리한테 백성들이 입는 피해를 알리고 싶었겠지. 그래서 춘성 같은 사람들을 구제해 줬으면 했을 거다."
선노미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연암이 뭔가 해답을 제시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한텐 그만한 힘이 없다. 문벌 가문 출신도, 높은 벼슬에 있는 것도 아닌 한량들이니."

"이야기를 만드는 거다."
연암이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요?"
"그래, 이야기의 힘은 생각보다 크단다.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니까. 어쩌면 고관대작의 상소보다 더 세다고 할 수 있지."

"가체를 만드는 게 아니야. 내가 만드는 건 꿈이고, 욕망이지."
"욕망이요?"
"그래, 욕망.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아.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지면 만족하지 않고 그보다 더 귀한 걸 꿈꾸지. 내가 하는 일은 그들이 계속 욕망을 갖도록 만드는 거야."

• 가체 금지령: 영조는 1758년 가체 금지령을 발표했으나, 사대부의 거센 반대 로 1764년 가체가 부활했다. 이후 1788년 정조가 다시 가체 금지령을 내렸다.
• 형암: 실학자 형암(炯庵) 이덕무(1741~1793)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시아버지가 방에 들어올 때 급히 가체를 머리에 쓴 며느리가 목이 부러져 죽 은 실제 사건을 언급했다.

"너도 알겠지만 이 세상은 썩어빠졌어. 양반이란 게 대체 뭐길래 종을 개돼지처럼 취급하냔 말이야. 양반으로 태어난 것 말곤 잘난 게 하나도 없는 것들이."

"인생이란 기이한 일의 연속이지. 우리 인생 자체도 하나의 기담이다."
선노미는 연암이 하는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연암도 그걸 눈치챘는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하고 말했다.

방문을 열어젖히고 아들을 기다리던 김씨가 문득 분이 쪽을 쳐다보았다. 순간 김씨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마도 분이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분이가 김씨에게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아들을 잘 키워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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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연암 박지원, 형암 이덕무가 등장
18세기 지식인들의 문예공화국
이덕무; 아정, 형암, 청장관, 동방일사 다양한 호를 사용

2권부터는 홍대용,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이들도 나올까, 읽어보지요

선노미가 고개를 들어 빤히 선비의 얼굴을 살폈다. 큰 키에 붉은 얼굴, 광대뼈가 두드러진 50대 남자. 얼마 전 병약한 인상의 선비와 함께 주막에서 술을 마셨던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때 상대방은 이 선비를 연암이라고 불렀다.
“내 지인들은 다들 괴짜라 네가 끼는 걸 반대하지 않을 게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치들이 더 많겠지.”

선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선 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장소를 가르쳐 줄 터이니 열흘 뒤 다음번 모임에 우리 집으로 오거라. 그리고 이야기가 일단락됐으니 이제 음식을 주문하도록 할까. 주모, 장국밥 한 그릇 주시오.”
삼개주막 기담회는 그렇게 뚝딱 만들어졌다.

삼개주막은 한양 도성에서 서남쪽으로 약 십 리쯤 떨어진 마포나루 어귀에 있었다. 마포나루, 혹은 삼개나루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한강을 거슬러 오는 장삿배들과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거렸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곳엔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괴이하고 신기한 기담도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털어놓고 간 그 많은 기담은 그동안 선노미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는데, 오늘 선비가 후, 바람을 넣고 간 뒤로 비로소 숨결을 머금고 새록새록 자라기 시작했다.

삼개주막 기담회 | 오윤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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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미스테리.
한국판 미야베미유키 시대물이라고 할까?
미미여사의 에도시대물에 견주기는 좀 부족하지요.
그래도, 참 재미있네요.

<어려운 단어공부>
[집주릅] ; 공인중개사, 부동산업자
🏡 집 흥정을 붙이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

대감마님 댁을 나온 할멈이 새로 살 집을 찾아보고 다닐 무렵이었다.
홍제원 인근 어느 색주가(色酒家)가 부동산 중개를 해주는 집주릅 일까지 겸한다고 해서 찾아간 적이 있었다.
술과 함께 여자도 파는 색주가를 운영하는 이는 쉰이 넘은 퇴기(退妓)였는데, 술자리에서 오간 정보를 기둥서방에게 전해 몇 차례 손님 집 사고파는 일을 도와주다 아예 그 일까지 겸하게 됐다고 했다.

삼개주막 기담회 | 오윤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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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봄밤에 어울리지 않는, 동지섣달 칼바람같이 서늘한 미소를 보고 한돌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때로는 증오와 복수심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할멈은 그제야 깨달았다.

강아지는 주인의 실수를 보고 지적하지 않고, 주인의 발뒤꿈치를 물지도 않는다. 그저 주인의 행동을 비판 없이 받아들일 뿐이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할멈은 다시 한번 등골에 서늘한 냉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까 말하지 않았니. 증오와 복수심은 자칫하다가는 상대뿐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태워버린다고 말이다."

사내들은 여자에게만 일방적으로 투기를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한 공간에서 한 남자의 애정만 바라고 사는 여자들이 투기를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요.

"오래 살다 보니 남을 죽도록 미워하는 게 결국은 제 살 깎아 먹기란 생각이 듭디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자신이 낳은 증오가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니 말이오. 그런데 그 둘은 이걸 몰랐던 거요."

"그것도 다 운명이고, 타고난 팔자 아니겠습니까?"

그날도 주막 안은 시끌벅적 활기가 돌았다. 술 한잔 걸친 손님들이 제각각 떠들어 왁자지껄한 게 주막의 여상한 풍경이라지만, 오늘은 특별한 점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타인의 비극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혀지는 법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귀돌이 일은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일남이 눈이 좀 이상했다. 비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정확하게 어떤 건지 표현할 길은 없었다. 그냥 비어 있는데, 굳이 말해보라면 어두운 동굴 같았다. 눈이 어둡고 텅 빈 동굴 같이 느껴지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일남과 눈이 마주친 무당의 눈에 순간적으로 놀라는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곧 ‘그럴 리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예로부터 전해져 왔다던 저주를 거는 방법이오. 항아리 속에 독사나 독충을 잔뜩 넣어놓고 뚜껑을 닫으면 서로를 잡아먹다가 결국 마지막 한 마리만 남지. 그게 바로 고독이오. 수많은 독이 농축돼 만들어진 거지. 그러니 고독으로 거는 저주가 얼마나 지독하겠소."

인간은 대체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을까. 자신의 알량한 이익을 위해 남의 목숨을 도구처럼 사용했던 무당 일행을 떠올리곤 다들 가슴이 답답한 것 같았다.

"나라가 어지러우면 제일 먼저 희생되는 게 약자라고 하더이다. 염매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많다는 건, 세상이 그만큼 어지럽다는 뜻 아니겠소."

화롯불 앞에서 비웃(청어)을 굽고 있는 선노미는 전에 없이 심각한 얼굴이었다. 미인도 그림처럼 고운 눈썹이 살짝 찌푸려진 걸 보니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밤새 수풀에서 너구리와 씨름이라도 했는지 밤이슬을 홀딱 맞은 꾀죄죄한 옷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미처 털어내지 못한 나뭇잎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과거를 보려면 관직에 오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관직에 오르는 건 백성들을 어질게 다스릴 사람이 된다는 걸 의미하지. 비록 네가 글재주가 있다 하나, 아직 속은 다 여물지 못했다. 진정으로 준비가 될 때까지 마음을 갈고 닦는 데 더 힘쓰도록 하거라."

"전라도 순천에서 따온 작설차요. 조선에서 나는 작설차 중에선 최고로 치지요."

"글을 읽는 궁극의 목적이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라는 걸 귀공께서도 잘 아실 게요. 이 몸은 배움이 얕기도 할 뿐더러 내가 가진 걸 남에게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없소."

"하오나 관직에 오르는 게 자신만을 위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덕과 재주를 갖춘 인물이 벼슬에 올라 백성을 어질게 다스리면 그게 바로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관직에 오르는 건 권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오. 물론 백성을 어질게 다스리는 데 그 힘을 쓰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훨씬 더 많은 관료는 자신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오.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남들이 가진 것을 뺏기 위해, 혹은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사람들을 짓밟기 위해. 나는 살면서 그런 이들을 질릴 정도로 보았소. 권력은 가진 자에게 힘을 부여할 뿐 아니라, 권력을 쥔 자를 조종하는 힘까지 갖고 있소. 그래서 때로는 권력이 사람을 변하게 만들지."

‘내 인생 전체가 내 생부와 친형제의 피를 딛고 일궈낸 것이었던가. 나는 이제껏 원수를 아비로 알고 살아왔던가.’

옥이가 입가를 실룩이더니 급기야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이 죽은 지 십 년이 넘도록 따라 죽기는커녕 온몸에 생명력이 펄펄 넘치는 주모는 겉보기엔 분명 선비들이 말한 정숙한 여인과는 거리가 있었다. 옥이가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딱히 무리는 아니었다.

"괴짜로 치자면 연암(燕巖) 형님 역시 만만치 않지요. 적성(積城: 현재의 경기도 파주) 현감 부임을 축하한다 하시면서 이런 주막으로 불러내시다니요."

그때 상대방은 이 선비를 연암이라고 불렀다.

선노미도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순 없었다. 일상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매우 특별한 이야기,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는 언제나 선노미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거나 그리고 있을 때면 주막집 허드렛일을 하는 자신의 신분도, 매일같이 반복되는 고된 노동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네가 그린 이야기는 지식을 알려주지도, 충효를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백년 묵은 여우나 처녀 귀신 같은, 어찌 보면 황당하고 뜬구름 잡는 얘기지. 왜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거지?"
선비는 선노미를 질책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얼굴엔 순수한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거기에 용기를 얻은 선노미가 간신히 대답했다.

"저는 어떤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할 때 사람들은 울고 웃었습니다. 저도 먼발치서 이야기를 엿들으며 속으로 같이 기뻐하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니 황당하고 뜬구름 잡는 얘기라도 얕잡아볼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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