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자 하나가 저녁 무렵 삼개주막을 찾아왔다. 얼굴에 아직 애티가 남아 있는데, 나이도 많이 쳐줘야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 듯싶었다.
나례는 고려 때부터 전해져 온 악귀 쫓는 의식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각종 재앙을 불러오는 악귀를 쫓아내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는 게 나례의 취지다. 원래 궁중에서 시작된 나례는 조선 후기엔 민간에도 널리 퍼졌다. 돈 좀 있는 양반이나 양인들은 한 해를 떠나보내는 기념으로 성대하게 나례 연회를 열고, 연회장에 광대나 기생들도 부르곤 했다. 복쇠가 한양에 온 이유도 어느 지체 높은 양반가의 나례 연회에 동원된 기방(妓房)이 행사에 쓸 가면을 여럿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거야 원, 시끄러워서 귀신보다 사람 귀청이 먼저 떨어지겠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는 가면이라……. 꽤 으스스하군."
선노미가 입을 딱 벌렸다. 조금 전까지 감사해하던 마음이 싹 가셨다. 아니 그 양반은 선물을 줄 거면 그냥 줄 것이지 말을 왜 그따위로 하냐고! 속마음이 무심코 얼굴에 드러났는지 남자가 피식 웃었다.
"나리를 오래 모신 내가 풀이해주자면, 그 말은 ‘그걸로 언문 공부하라’는 뜻이야. 아마도 네가 꽤 마음에 드신 모양이다."
선노미는 어안이 벙벙해서 멀어져가는 남자와 제 품에 안긴 선물 보따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가 마음에 드셨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어쩌면 그분도 속마음과 다른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건가?
그곳에선 아이 잡아먹는 귀신이 나오기 때문이다.
큰 마님은 사람들의 어리석은 마음을 이용하기로 했다. 귀신을 달래기 위한 거라며 하인들에게 주기적으로 밥과 고기로 상을 차려 별채에 내가게 했고, 며칠에 한 번씩 남몰래 광 문을 열어 여자가 차려진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보안을 기울인 덕분에 비밀은 그동안 잘 지켜졌다.
‘나도 아기 잡아먹는 귀신이었어. 그 여자처럼.’ 달밤에 만났던 여자는 유순이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보았는지도 모른다. 여자의 쓸쓸한 미소에 그토록 가슴이 아렸던 것도, 여자가 자신을 향해 그토록 환하게 웃어 보였던 것도 서로가 아기 잡아먹는 귀신이라는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인 걸까.
‘아기 잡아먹는 귀신은 실제로 있어요!’ 유순이 울부짖던 소리가 귓전에 되살아났다. 김씨는 소름이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김씨도 아기 잡아먹는 귀신을 만난 적이 있다. 옥이가 아직 돌이 안 될 무렵이었다. 남편은 시름시름 앓아누웠고, 김씨는 남편 병간호하랴, 혼자 주막일하랴, 아직 어린 선노미와 복이 돌보랴,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눈물과 땀으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텼다. 가끔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짐을 지워준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귀신한테서 널 지킬 수 있어 정말 다행이야.’ 김씨가 속으로 가만히 속삭였다. 잊고 싶었던 오래전 기억을 떠올려서인지 주책스럽게도 뜨거운 눈물이 김씨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임오(壬午)년, 임금이 아들인 세자를 뒤주 속에 가둬 죽이다.’
‘130년 뒤인 경술(庚戌)년, 치욕스럽게 나라를 빼앗기다.’ 한참 동안 자신이 쓴 글을 내려다보고 있던 종훈은 먹이 마르자, 뒤편에 제 이름을 적어넣었다. ‘경자(庚子)년, 사관 박종훈 쓰다.’
결국 세상 물정에 밝은 복동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식리인(殖利人)에게서 돈을 빌렸다. 그게 파국의 시작이었다. 식리인은 전문적으로 사채를 빌려주는 사람들이다.
"민심은 말이지." 만수가 무겁게 입을 뗐다. "꽤 무서운 거란다. 높으신 양반 나리들도, 나라님도 민심을 무시할 순 없어.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민심이 모이면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울 수도 있다."
연암이 말했다. "우리한테 백성들이 입는 피해를 알리고 싶었겠지. 그래서 춘성 같은 사람들을 구제해 줬으면 했을 거다." 선노미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연암이 뭔가 해답을 제시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한텐 그만한 힘이 없다. 문벌 가문 출신도, 높은 벼슬에 있는 것도 아닌 한량들이니."
"이야기를 만드는 거다." 연암이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요?" "그래, 이야기의 힘은 생각보다 크단다.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니까. 어쩌면 고관대작의 상소보다 더 세다고 할 수 있지."
"가체를 만드는 게 아니야. 내가 만드는 건 꿈이고, 욕망이지." "욕망이요?" "그래, 욕망.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아.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지면 만족하지 않고 그보다 더 귀한 걸 꿈꾸지. 내가 하는 일은 그들이 계속 욕망을 갖도록 만드는 거야."
• 가체 금지령: 영조는 1758년 가체 금지령을 발표했으나, 사대부의 거센 반대 로 1764년 가체가 부활했다. 이후 1788년 정조가 다시 가체 금지령을 내렸다. • 형암: 실학자 형암(炯庵) 이덕무(1741~1793)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시아버지가 방에 들어올 때 급히 가체를 머리에 쓴 며느리가 목이 부러져 죽 은 실제 사건을 언급했다.
"너도 알겠지만 이 세상은 썩어빠졌어. 양반이란 게 대체 뭐길래 종을 개돼지처럼 취급하냔 말이야. 양반으로 태어난 것 말곤 잘난 게 하나도 없는 것들이."
"인생이란 기이한 일의 연속이지. 우리 인생 자체도 하나의 기담이다." 선노미는 연암이 하는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연암도 그걸 눈치챘는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하고 말했다.
방문을 열어젖히고 아들을 기다리던 김씨가 문득 분이 쪽을 쳐다보았다. 순간 김씨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마도 분이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분이가 김씨에게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아들을 잘 키워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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