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1월 9일 기사에 따르면, 무슨 까닭인지 모기장도 있었다고 한다. 모기장을 높은 값에 밀매하는 국제범죄 조직이 있을 리는 없으므로, 그 물건이 모기장이라는 데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즉, 이 배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148톤이 정성스럽게 포장된 채 여러 인물의 관심을 받으면서 아주 중요한 거래를 하는 것마냥 운반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1960년대 후반 한국에서는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정부가 수출 기업에 대해 여러 혜택과 정책적 지원을 보장하고 있었다. ‘수출 보국輸出報國’, 즉 국산 제품 수출이야말로 나라에 대한 충성의 길이라는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수출을 강조하던 때였다.

1950년대 후반, 도시의 사회적 약자였던 17세 여성이 죽음을 맞기 전까지 그 주변에 나타났던 위협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갖가지 방향에서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런 상황이 몇 날, 몇 달간 이어지는 와중에도 치안 당국이 결국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점은 사건 수사 과정에서 보인 미흡함보다도 더욱 부끄러워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사건 현장은 완전히 변해 서울의 여느 다른 지역처럼 아스팔트 도로와 아파트 단지가 가득한 곳이 되어 있다. 보육원도 소나무밭도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적어도 그 모습이 바뀐 만큼은 사회의 문화도 같이 바뀌었기를 바란다.

작업은 그날 밤 11시까지 계속되었지만, 보물을 찾을 수는 없었다. 깨진 그릇 조각 몇 개가 더 나올 뿐이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땅을 파고 들어간 깊이는 3미터 60센티미터였다. 『경향신문』 9월 27일 기사에서는 강씨가 작업 포기를 결심한 후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런 망신이 어디 있죠?"라고 말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지난 7년 동안의 궁금증은 사라지게 되어 후련하다고도 했다.

60여 년의 세월이 다시금 흐른 지금, 보물찾기 일행이 흙을 파냈던 자리에는 근사한 옷 가게가 입점한 큼지막한 건물이 들어섰다. 보물이 있든 없든 60여 년 동안 명동의 땅값은 무섭게 상승해 지금은 1제곱미터 넓이의 가격이 무려 1억 원을 훌쩍 넘게 되었다. 그 때문에 그 자리에 들어선 건물의 가격은 이미 100억 원을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고작 20억 원 가치의 보물을 위해 건물을 포기하고 그 지하를 파 내려갈 사람은 당분간 다시 나타나지 않을 듯하다.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라는 독일어 단어는 ‘시끄럽게 하다poltern’와 ‘혼령geist’의 합성어로, 보통은 집 안에서 접시나 장난감 따위가 이유 없이 떨어지거나 의자나 가구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은 이상한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집에 귀신이 들려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따라붙기도 하는데, 한국에서는 <폴터가이스트>(1982년)라는 할리우드 영화 때문에 이 단어에 익숙한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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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대책을 내놓으면 외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고, 언론에서도 강한 의지라며 기사화하기에 좋고,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책임 경찰관이 무능해서 그렇다"고 몰아붙일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책임을 피하기도 용이하다. 게다가 누군가 책임을 지고 무너지면 다른 경쟁자들이 그 자리에 끼어들기에 좋다. 눈치 빠른 사람들끼리 자리다툼에 써먹기에도 매우 유리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사기 공화국’이 되어버린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그의 범죄를 돌아보면, 요즘 유행하는 "서울지방검찰청입니다"고 말문을 떼는 피싱 전화 수법과 아주 비슷해 보인다. 개인 정보 유출로 확보한 데이터베이스나 명의 도용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지만, 그는 비슷한 수법을 60년 앞서 개발해서 사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보면 이런 범죄 행각에 대비할 시간이 60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사람들끼리 믿고 지내기 어려운 세상에서 권력자나 공공기관의 권위가 사회를 너무 쉽게 짓누르는 세태를 바꾸지 못했다는 점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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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씨의 재주는 훌륭했다. 소매치기 기술을 익힌 지 3개월 만에 많은 수입을 올리는 완연한 전문 소매치기꾼이 되었다. 자신감을 얻은 문씨와 해주 꼬마는 얼마 후 서커스단을 뛰쳐나왔고, 당시 소매치기꾼들의 성지와도 같았던 만주국의 봉천奉天으로 향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광복 후에도 한참 동안 한국 영화에서 서부극 비슷한 이야기를 구상할 때 이 무렵의 만주국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흔했다. 임권택 감독의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년)부터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까지 만주국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한국 영화가 있었고, 이는 ‘만주물’이라든가 ‘만주 웨스턴’같은 명칭으로 불렸다. 다만 이런 영화 속에서는 멋쟁이 총잡이들이 일본군의 황금을 빼돌려 독립군 군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말을 달렸지만, 실제로는 문씨 같은 소매치기 범죄자들이 가방을 훔쳐 도망치면 중국어를 모르는 조선인 여행객이 경찰에 신고할 때 애를 먹었다는 에피소드가 훨씬 많았다.

6·25 전쟁 발발 후에는 입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사가 되었다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전쟁 중에 큰 공을 세웠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면 또 무슨 협잡을 부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상일 뿐이지만 소매치기 재주를 이용해서 북한 인민군의 중요한 정보를 빼돌려 포상이라도 받았는지 모르겠다.

1964년 1월 대전에서는 61세 노인이 보문산에서 어린 호랑이를 만났는데 엉겁결에 돌을 던져 물리쳤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신문지상에 올랐고, 1964년 6월 21일에는 광주 지산동의 무등산 아래 농가 헛간에서 아기 호랑이 3마리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나오기도 했다. 아기 호랑이를 붙잡고 있으려니 22일 밤에 어미 호랑이가 나타나 으르렁거리는 통에 마을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함께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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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거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 중에 그 시대에는 상당히 화제가 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은 이상한 사건이었지만, 지금은 어느새 잊혀 거의 언급되지 않는 몇 가지 사건을 읽기 좋게 정리해본 것이다. 실화를 소재로 글을 쓴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작가는 글을 쓰고 돈을 받으므로, 결국 그 실화가 소재가 되어 작가의 돈벌이가 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남이 겪은 일이나 남이 실제로 고생한 일을 그저 재밋거리나 관심거리로 활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간 기업의 도전으로 시작한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HLKZ는 영영 이어지지 못했다. HLKZ 방송은 그대로 사업을 종료했고, 시간이 흘러 1961년 12월 정부 주도의 방송국인 KBS가 텔레비전 방송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옛날, 라디오 장비 해커 출신의 무역상이었던 한 젊은이가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에 도전하기 위해 사업을 벌였을 때 HLKZ가 택한 채널 번호는 9번이었다. 이 채널 번호는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KBS-1이 계승해서 이어오고 있다.

『동아일보』는 1975년 6월 16일부터 ‘검은 손의 세계’를 통해 소매치기 범죄에 관한 기사를 연속으로 게재하면서, 아주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소매치기 수법을 소개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혼자서 범행하는 경우가 있고, 각각의 전문 분야를 맡은 여러 명이 팀을 이루어 범행하는 경우가 있다. 혼자서 범행하는 소매치기는 ‘특공대特攻隊’의 일본식 발음을 따라 ‘독고다이とっこうたい’로, 여러 명이 움직이는 팀은 ‘회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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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창은 본디 자신의 수명이 여든임을 알고 있었으나, 벗들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천기를 누설하여 각각 30년과 10년의 수명을 넘겨 주고 자신은 마흔 넷의 이른 나이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인간의 정을 포기하고 신선이 되느니, 인간으로서 죽는 것을 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조광조는 사사로이 붕당을 맺어 나라를 어지럽혔다. 대사헌 조광조와 그 무리를 모두 압송하라!"

노량해전 전날 밤 배 위에 오른 이순신은 손을 씻고 선상에 무릎을 꿇더니 하늘을 우러르며 빌었다."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그러자 하늘에 큰 별 하나가 바다 위로 떨어졌다. 《이충무공행록》 중에서

"이곳 남쪽에 솟은 관악산은 그 모양이 타오르는 불과 같으니 궁궐이 이 산과 마주 보게 된다면 장차 나라에 큰 화가 불어닥칠 것입니다. 절대 그곳에 궁을 세워서는 안됩니다."

"200년 뒤 반드시 내 말을 생각하는 날이 있을 것이오…"
과연 그로부터 정확히 200년이 흐른 뒤 조선에 큰 재앙이 들이닥쳐 궁이 모두 불타 버리니 이는 온 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임진왜란’이었다.

과연 벗의 꿈처럼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쓰러질 뻔한 조선을 온몸으로 떠받쳐 구한 영웅이 되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 했던가, 이순신 장군의 일이 바로 그러했다.

그가 일생을 바쳐 나라를 지키고자 한 것이 사람의 일을 다한 것과 같았으니 하늘도 감동하여 그에게 앞날을 꿈으로 알려 주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술에는 농부에게 죽은 세 사람의 혼이 깃들여져 있어 한 잔을 마시면 선비처럼 점잖아지고, 두 잔을 마시면 흥에 겨워 무당처럼 춤을 추고 노래하며, 석 잔을 마시면 광인처럼 마음속에 있는 광기가 솟아오르게 된 것이라 전한다.

선운사 마애불 안에 숨겨져 있었다는 비밀의 문서, 과연 그 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혼탁하던 시대 고통받던 민중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였을까? 아니면 지금도 이 땅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까?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선운사 마애불에는 현재에도 복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노인은 묻는 말에는 답하지 않고 대뜸 되물었다.
"자네… 밤마다 무얼 하는 겐가?"

범은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릴 수 있게 된다. 범이 처음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 창귀는 ‘굴각(屈閣)’이 되어 사람을 범에게로 유인하고, 두 번째로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육혼이 ‘이올(彛兀)’이 되어, 높은 곳에서 사냥꾼의 움직임을 살펴 범을 위해 함정과 쇠뇌를 부순다. 범이 세 번째로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육혼(鬻渾)’이 되는데, 육혼이 된 창귀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모조리 범에게 알려 준다. 《호질(虎叱)》 중에서

이 이야기는 <천녀이혼>이라는 극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훗날 영화 <천녀유혼>의 제목 유래가 되기도 하였다.

‘옛말에 불의로 얻은 부귀는 뜬구름과 같다고 하였다. 그런 방법으로 출세한다면 어찌 하늘 아래 고개를 들고 살 수 있겠는가?’

군대란 인간을 잡는 흉기요, 전쟁은 덕을 거스르는 것이며, 장수는 죽음을 내리는 관리이다.

전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재앙이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서로 흉기가 되게 하고 인간성을 말살시키기에 더 두려운 일인 것이다. 이씨가 본 괴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전쟁을 겪으며 남의 시체마저 파먹을 만큼 짐승처럼 변한 이들을 빗대어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을까?

"당신이라고 다를 것 같소? 그릇된 일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며, 행하지도 말라 하였소. 남을 속이고도 살아 있는 자들은 요행히 이를 모면하고 있을 뿐이오. 부러워할 것이 아니란 말이오."

흉노는 달이 차면 공격하고, 달이 이지러지면 물러난다. 《사기》, 흉노열전

요술로 재물과 여색을 탐한 자, 하늘의 규율에 따라 처단하노라.

江月照松風吹
강엔 달이 비치고 소나무엔 바람 부니,
永夜淸宵何所爲
긴긴밤 맑은 하늘은 무엇을 위함인가?

남을 저주하려거든, 무덤을 두 개 파라. 일본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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