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말에는 여진 말이 많이 섞여있다
풍부한 어휘를 위해 자주 사용해야한다.

1. 주을온천: 주을은 뜨거운 물이란 뜻으로 말 자체에 온천이란 의미가 포함되어있는 여진 말이다.
2. 아오지탄광: 아오지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말로 불붙는 돌이란 뜻의 여진 말이다.
3. 성이 세 자인 동무도 있다. 먼지는 언급이 없다.

[187p]

혁명가는 마르크스 철학의 어떤 명제를 지키기 위해 운동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와 사회의 변혁을 위하여 한 시대의 사상을 수단으로 채용하는 것이지요.

[2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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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나서 내가 무대로 올라갔어요. 중·고등학생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이렇게 한마디 했지요. "여러분들이 이렇게살고 있지만 남쪽의 우리 어린이들도 씩씩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다만여러분들이 자랐을 때 서로 증오하지 않고 서로 미워하지 않도록 하는 책임이 우리 어른들한테 있습니다. 전쟁의 상처가 여러분들한테 가서는 절대로 안되겠다는 것을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라고요. - P196

협동농장단위의 농촌 - P197

북한에서는 기술혁명 사상혁명 문화혁명을 3대혁명으로 꼽고 있고그중에서도 문화혁명을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P198

예술가는 비반복적 존재

아무튼 문화혁명을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말한다죠.
그래요. 북에서는 예술가를 ‘비반복적 존재‘로 규정하죠. 모든 예술행위는 상투적이거나 반복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 P198

그러나 동시대문학임에는 틀림없고 그 1차목표가 분단현실의 극복에서 찾아져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남한의 현재의 문학은 ‘갈등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죠. 인간이 갖고 있는 복잡한 세계를 다양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남쪽문학의 강점이에요. 북의 문학은 혁명전통을 고수하는 맥락에서 유지되고 또 상당기간 그렇게 버텨나가겠죠 - P199

분단시대의 작가는 남이든 북이든 민족이익을 최우선에 놓고 창작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표현방식이나 주제, 구성이야 다양성의 차원으로 별개의 문제이겠지만. - P200

월북작가들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다 만났는데 다들 잘 살고 있어요. 이기영 선생네 가족은 7칸짜리 아파트에서, 글쎄 한 60여평되는 아파트지,  식구가 많으니까, 박태원씨 부인은 옛날식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고 계시드만. 거실 하나, 방 두개그리고 부엌이 있는 우리로 치면 약 20평 정도되는 아파트죠. 대부분의 작가들은 3칸짜리 아파트가 표준이에요. - P202

남북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싶다 - P203

이때에는 서울을 떠나 전라남도의 벽지인 해남에서 농민들과 함께 일하다가 광주로 올라갔지요. 현장문화운동에 종사하면서전라도에서 10년을 살게 되었는데 나는 여기서 「장길산」을 완성했을뿐만 아니라 잊을 수 없는 동지적 인연들을 맺게 되었습니다. 내 문학의 큰 가지의 하나는 전라도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민족과 역사‘를 뚜렷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 P246

네번째 시기가 광주항쟁이 일어나던 80년에서 89년의 방북하던 때까지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죽어간 벗들과 이름없는 민중들에 대한 피의 부채를 의식하고 스스로 급진적으로 변모해갔던 기간이었습니다. - P246

남과 북을 다 담는 작가가 되고 싶다 - P247

마침 그 소설을 읽은 일본 친구로부터 엽서를 받은 기억이 납니다. 문장 중에 "간첩을 인간으로 환원시킨"이라던 말이 생각납니다. 정말
‘간첩‘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통일꾼‘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전환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 P267

인류의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결국은 진보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저는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자본주의는 실로 한 삼백 년 되었고 그에 대처했던 사회주의라고 해봤자 이제 겨우 칠십 년 됐지요?
사람이 생각해내고 제도화한 것들 가운데 우여곡절 없는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 P272

북의 도시와 농촌은 그들 표현대로 "호화롭지는 못해도" 소박하고 깨끗하게 잘 짜여져 있었습니다. 북의 어려움은 ‘자력갱생의 한계‘에서 오는 어려움이지 식구들을 골고루 잘 보살피고 있습디다. 까놓고 말해서 아무리 ‘공산압제‘가 심하다고 한들 설마 제대로 살게 해주지 않는다면 북의 인민이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인민들보다 못해서 40여 년이 넘도록 전쟁도 치르고 복구도 하고 건설도 해오면서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은 물론 그 종주국 행세를 해오던 소련까지 못해 먹겠다고 나자빠지는 판에 ‘우리 식대로 살아가자‘고 버티고 있겠습니까. - P264

사회주의 책 안 읽은 민중이 정말 요새는 더 건강한 것 같습니다. 5월투쟁의 좌절이니, 위기니 하는데 언제 해방 이후 좌절과 위기를 한두 번 겪었나요. 내년에 보시고 내후년에 또 봅시다. 그러면 진짜 맑은물이 대지의 거죽이 아니라 땅 속에 대하처럼 흐르듯이, 숨어 있던
‘민중여론‘이 솟구쳐 나올 겁니다. - P264

가담하고 있는데요. 사실 40년대가 되면서는 일제의 토벌작전이 치열해져서 항일빨치산들은 소부대 활동을 주로 하게 됩니다. 해방 직전에미소는 동구와 아시아에서 해당 나라의 레지스탕스나 빨치산들과 연합부대를 편성하게 되지요. 유고의 빨치산들도 그러했고 베트남의 - P305

호지명과 디엔비엔푸의 명장 보우엔 지압도 미국 OSS의 훈련을 받고 연합군에 편성되어 항일전에 투입됩니다. 이것은 임시정부에 있었던 청년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군사훈련이나 한반도 침투를 위한 OSS훈련을 받고 대기하다가 원폭투하로 해산된다는 것을 김준엽, 장준하선생의 수기에서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 P306

천연두는 남부 중국의 항구를 통하여 유입되어 전쟁과 함께 조선으로옮겨진 것으로 보아 서양병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른바 외래의 오랑캐가 갖다준 우환이라는 말이죠. 이 흔적이 내 팔뚝의 우두자국처럼 민중들의 생활 속에는 ‘호구별성‘이라는 굿으로서 남아 있습니다. - P278

우리가 아직도 4·3이나 여순사건을 이념적인 좌우대립의 결과로보는 한, 6·25의 정확한 해명은 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전쟁 중이북에서 일어난 어떤 참화에 대한 접근을 통하여 ‘반외세 굿판‘을 한판 벌여볼까 하는 것입니다. - P278

내가 오사까에서 있었던 어느 강연회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말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나의 운명이다"라고 말했을 때에 아마도 조총련계가 분명한 늙은 재일동포 청중이 일어나 "그렇다면 당신은 반쪽짜리 운명에 짓눌린 채 살아갈 것인가?"
하며 항변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당시에는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반쪽짜리 조국에서 나왔기 때문에 나의 영혼도 마음도 그리고 몸뚱아리도 반쪽일 수밖에 없다는 궁색한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지요. - P279

혁명가는 마르크스 철학의 어떤 명제를 지키기 위해 운동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와 사회의 변혁을 위하여 한 시대의 사상을 수단으로 채용하는 것이지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어떤 명제가 새로운 현실에 대하여 해답을 줄 때에는 그것을 새로운 현실에 맞추어혁명의 이론과 방법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 P282

마르크스주의의 여러가지 명제가 현실에 맞지 않아서 그것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혁명적 원칙과 입장을 포기하는 것을 수정주의라고 하지요. 수정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명제에 대한 해석을 수정했기 때문에 수정주의로 비판되는 것이 아니라그 사상의 혁명적 입장을 포기하여 혁명을 배신했기 때문에 비판된다는 것입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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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루이스의 역사

레이크 루이스는 캐나다 횡단 고속도로에서는보이지 않는다. 빙하를 이고 있는 빅토리아 산만 보일 뿐이다. 그러나 다운타운에서 꾸준한오르막을 따라 오르면 숨겨놓은 보석처럼 완벽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호수가 나온다. - P146

이곳에 살던 원주민 스토니족은 레이크 루이스호수를 ‘작은 물고기의 호수‘라고 불렀다. 서양인 가운데 이 호수를 처음 발견한 이는 톰 윌슨이다. 그는 1882년 캐나다 횡단 철도를 놓기 위해 회사가 고용한 측량대 대장이었다. 톰 윌슨은 스토니족의 가이드 에드윈 헌터와 함께 이 호수를 발견한 후 ‘에메랄드 호수‘라 이름 지었다. - P146

그러나 산과 호수 이름은 2년 뒤 지금처럼 빅토리아와 루이스로 바뀌었다. 당시만 해도 캐나다는 영국의 지배를 받던 때라 지명에 영국 황실의이름을 많이 붙였다. 빅토리아 산은 빅토리아여왕 루이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자 캐나다 총독의 부인이었던 루이스 캐롤라인 앨버타 공주의 이름에서 따왔다. 앨버타 주의 이름도 그녀에게서 비롯됐다. - P146

1888년 레이크 루이스 호수로 가는 길이 열리자 캐나다 횡단 철도는 이곳을 제2의 밴프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1890년에 작은 통나무 산장이 문을 열었지만 곧 화재로 소실됐다. - P146

1900년에는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목조로 지은 빅토리아풍의 샤또 레이크 루이스 호텔이 완공됐다. 
1917년 미네완카 호수에 수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레이크 루이스는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휴양지가 됐다.
1930년에는레이크 루이스 기차역에 정차하는 기차가 하루30회에 이르렀다고 한다. - P146

그 후 샤또 레이크 루이스호텔은 몇 번의 보수공사를 거쳐 1,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최고급호텔로 거듭났으며 지금은 페어몬트 호텔 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호텔에서 호수를 볼 수있는 객실은 최소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얻을 수있을 정도로 인기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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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민항기와 40년만의 ‘조국‘ - P181

아, 감격은 그만 하시고 평양으로 들어갑시다. - P183

비행기에서 내리니까 소녀가 혼자서 앞으로 걸어오면서 꽃다발을줘요. 그러면서 "선생님 조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말을 아주또박또박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 꼭 우리 딸같구나"하면서 소녀의 뺨에 내 뺨을 대는데 그 순간에 울컥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요(이 대목에서 황씨는 정말 눈물까지 글썽였다). - P183

우리식대로 살아가자 - P184

우리는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아야 한다‘ - P184

이런 얘기도 하더군요. "함경도 말에는 여진 말이많이 섞여 있지 않은가, 우리 말에는 풍부한 어휘가 있는데도 이것을잘 사용하지 않아 잊어버리니까 그것을 사용하도록 만들어서 우리 말을 되살려내는 것이 소설가가 해야 될 큰 일의 하나"라고요. - P187

내가 여진 말의 예를 물었더니 주을온천의 주을이라는 말이 원래 ‘뜨거운 물‘이라는 뜻을 가진 여진 말이라고 해요. - P187

또 아오지탄광의 아오지도 ‘불붙는 돌‘이란 뜻의 여진 말이고, 그래서 그 이름들을 다 우리말로 고쳤다고 합니다. - P187

환락시설 없는 평양 - P188

낮으나 고른 생활수준 - P189

고도로 통제된 계획사회 - P191

대학생, 매년 한 달씩 ‘노력봉사‘ - P193

군복무 기간은?
3년인데, 대학을 못가는 대신 군대를 가면 군대에서 대학에 준하는교육을 시키는 분야들이 있다고 합니다. 통신이라든가 기계공학, 토목공학 등등. 이런 경우는 7년에서 10년까지도 복무를 한다고 해요. 내외사촌 동생도 군대에 10년 있었다고 그러던데, 걔는 지금 설계사예요. - P193

전 지식인의 노동자화, 전 노동자의 지식인화 - P194

어느 의미에서 북의 사회에서 살기 좋기로는 어린이와 노인이라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영아원 유아원 유치원의순으로 각 공동체의 시설에 맡겨져서 교육을 받는데 어린이 복지시설이나 교육시설에 쏟는 열의가 전체적으로 대단했습니다. 또 노인들은북한사회가 기본적으로 혈연사회이니만큼 우리쪽처럼 소외당하고 하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어요.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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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농사의 선생은 여기 있는 조합원들입니다. 그러니까 관리위원장은 밑에 직접 내려가서 일도 같이 하면서 물어도 보고 의논도 하고 자기가 아는 것은 가르쳐주기도 해야 합니다. 관리위원장은 농민들과 언제나 농사일을 토론하고 그들에게서 농사일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밑의 실정을 정확히 알게 되고 그에 맞게 분공을 줄 수있으며 해당한 대책을 세울 수 있겠지요. - P130

있었던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수사발표(국가안전기획부는(5월 2일)에이 발표에서 문목사와 황석영씨의 방북을 북한의 정치공작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히고 황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상의 지령탈출 등의 혐의로 기소중지처리했다)와 잇따라 발생한 부산 동의대 경찰관 소사(死)사건 등 한국에서 들려오는 어두운 소식이 그의 심중을 무겁게 하리라는 것쯤은구태여 묻고 말고 할 계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로서는 지난 2월 28일 일본에 온 이래 이미 두 달이 지났고 다시 두어 달 후 귀국한다 해도 일단 구속될 것을 각오해야 할 처지가 아닌가.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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