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10월 12일]라파르트 Rr
최근엔 사생화를 아주 많이 그렸다네.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겠다는 사람들을 몇명 구할 수 있었거든. 덕분에 삽질이나 바느질 등 다양한 포즈를 취한 남녀들의모습을 습작했지. 요즈음은 주로 목탄과 콩테 연필로 작업하는데 세피아 물감과수채화 물감도 시도하고 있어. 내가그린 데생에서 자네가 어떤 발전을 간파하게될지는 모르지만 분명 변화를 확인할 수는 있을 거야. - P44

아, 저 들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모델료로 좀 더 많은비용을 들인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럴 거라고 장담할수 있어! - P44

사실 난 최근에 데생을 많이 했단다. 특히 인물 습작을 많이 했지. 이것들을 보면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게 될 거다. - P45

요즈음엔 아이들도 그렸는데 아주 즐거웠단다. - P45

1881년 겨울, 반 고흐는 그 해 봄부터 함께 살던 부모와 불화를 겪는다. 남편을 잃은지 얼마 안 되는 사촌에게일방적인 관심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1882년 1월에 헤이그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틀리에를 빌려 데생과 스케치 연구에 몰두하면서 미술계에서 알고 지내던 여러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 P47

행복한 가정에 대한 고흐의 꿈은 한낱 환영에 불과했다. - P47

정말이지 난 풍경화 화가는 아니야. 풍경화를 그리고 보면 그 안엔 늘 비유적인 무언가가 존재하니 말이다. - P52

[1882년 3월 24일]
요즈음 난 무척 고된 작업을 했단다. 지금도 아침부터 밤까지 일에 매여 있어.
이처럼 작은 마을의 풍경을 거의 매일 그린단다. 이제야 요령을 터득해가고있지. - P55

[1882년 4월 초]
날씨가 얼마나 화창한지 몰라. 사방에서 봄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인물화는 내게 가장 중요한 작업인 만큼 멈출 수 없지만 간혹밖으로 나가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단다. 하지만 지금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이대로 팽개쳐둬서는 안 되겠지. - P58

테르스테이흐가 말하더군. "예전에 자네는 운이 나빴지. 그래서 실패한 거야.
그런데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어" 라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지금은 전과는 아주 다른 상황이니까. 그의 생각이 완전히 틀린 거지. - P60

나의 ‘처신‘ 에 관한 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었으면해. 내가 품위 있는 옷을 입는다면 모델로 쓰고 싶은 일꾼들이 겁을 먹거나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볼 테지. 아니면 내게 많은 돈을 요구하거나. - P60

그렇다면 나는 어느 면에서 거칠고 교양 없고 세련되지도 않은 그런 사람일까? - P61

그런데 말이지, 내 생각에 정말로 예의바른 태도는 전적으로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야.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이지. 그러니까 자신이 무언가 쓸모 있는 존재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거지. - P61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함께살아야 한다는 궁극적인 필요성을 깨닫기 때문이야. 그러기 위해 나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려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야. 오히려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또 누구나 알지는 못하나 주목할 필요가있는 문제들에 그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거란다. - P62

내가 그리는 사람들과 함께지낸다고 해서 스스로를 천박하게 만드는 걸까? 일꾼이나 가난한 사람의 집에 들어간다고 해서, 또 그들을 내 아틀리에에 들여놓는다 해서, 나 자신이 싸구려가 되는 걸까? - P62

이것들은 내 직업의 일부라 생각해. 그러니까 그림이나 데생에 대해 아무것도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비난이지. - P62

[1882년 5월 1일]
목수의 연필에 관한 한 내 생각은 이렇단다. 옛 대가들은 무엇으로 그림을 그렸지? 분명 파버 B, BB, BBB 따위가 아니라 거친 석묵으로 그렸을 거야. 미켈란젤로와 뒤러가 사용한 도구도 아마 목수의 연필과 아주 흡사하겠지. 그 시대에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한가지 사실만은 알고 있단다. 이런섬세한 파버 제품들도 목수의 연필만큼 강력한 효과를 낼 수는 없다는 것을. - P62

나는 정교하게 다듬은 비싼 파버보다 가공하지 않은 석묵이 더 좋아. - P62

그건 그렇고 성 제롬처럼 근사한 노인이 이곳에 한 명 있어. 키가 크고 마른,
강인한 주름투성이 갈색 몸의 남자야. 관절 하나하나가 놀랄 만큼 뚜렷하고표정이 풍부해서 이런 남자를 모델로 쓰지 못해 마음이 우울할 지경이란다. - P63

그래도 할 수 없지. 이대로 노력하면서 계속 싸워갈 수밖에. - P63

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인물화 풍경화, 감상적인작품이 아니라 진지한 슬픔을 담은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단다. - P64

이것이 내 야심이야. 어떤 상황에서도 분노보다는 사랑에 열정보다는 평화로움에 근거한 야심이지. 때로 성가신 일을 겪더라도 마음속에는 고요하고 순수한 조화와 음악이 자리하고 있단다. 더없이 누추한 헛간이나 지저분한 구석에서도 난 그림이나 데생의 소재를 찾을 수 있어.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충동의 부추김을 당한 듯 내 영혼은 이 방향을 지향한단다. - P64

내게 밝은 미래가 있을지 여부는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에 달렸다고 믿어.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다른 어떤 길도 아닌 이 길로 묵묵히 투쟁을 계속해나갈거야. 내 작은 창을 통해 자연의 면모들을 즐겁게 관찰하며 애정을 다해 성실히 그것들을 그럴 생각이지. 누군가로부터 방해를 받으면 그저 방어하는 걸로만족할 테다. 이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니 그 무엇도 나를 이 길에서 돌려세울 수 없을 거야. 원근법의 독특한 효과는 복잡한 인간사보다 더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단다. - P65

자연과 예술을 향한 진지한 사랑 덕분에 열정과 지혜를 가지고 일한다면 사람들의 견해에 맞서 일종의 갑옷으로 무장하는 셈이지. 자연은 엄격하고 가혹하기조차 하지만 절대로 우리를 속이지 않으며 늘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준단다. - P67

이 모두가 내 기분을 더욱 북돋워주지. 싱싱한 녹색이나 부드러운 청색, 그리고 수없이 다양한 톤의 회색, 이것들에 내가 겁먹지 않는다는 걸 너도 알게 될거야. 붉은 회색, 노란 회색, 초록 회색, 푸른 회색 등 회색을 띠지 않는 색은거의 없단다. 모든 색을 섞으면 이런 회색이 되는 거야. - P67

지금 네게 보여주려는 데생들에 대해서는 한 가지 생각뿐이란다. 내가 같은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제대로 발전하고 있음을 네가 이 그림들을 보면서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상업적 가치에 대해서는 한 가지 사실만 말할 수 있을뿐이지. 그것을 다른 그림들처럼 정해진 경로대로 팔 수 없다면 몹시 의아해할 거라고. 당장 팔릴지 더 기다려야 할지는 네게 맡기겠다. 성실하고 끈질긴작업만이 이 모두가 헛되지 않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겠지. - P68

자연에 대한 느낌과 사랑은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조만간 반향을 불러일으키고야 말 거야. 자연에 완전히 몰입해서 자신의 모든 지성을 동원해 그 느낌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작품 속에 표현하는 것이 화가의 의무겠지. - P68

상업적인 판매를 목적으로 일하는 건 그리 올바른 방법이 아닐 뿐더러 예술을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롱하는 짓이 될 거야. - P68

그럼 잘 지내거라. 내게서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순과 온갖 악의를 들추어내며 의심하는 사람들을 향해 언젠가 웃어줄 날이 있을 거야(나라는 사람은 자연과 학문, 일의 친구며, 무엇보다 그저 사람들의 친구이니 말이다). - P68

우리가 스헤베닝언에서 함께 본 모래, 바다, 하늘을 살아 있는 동안 언젠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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