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호메이니 그리고 이란 혁명 - P80

국왕이 이란을 뜨고 몇 주 뒤 1979년 2월 호메이니는 백만명이 넘는 인파의 환영을 받으며 드디어 테헤란에 입성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왕관이 <터번>으로만 바뀌었다는 사실을. - P82

하지만 호메이니가 "이슬람은 정치적이다.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했던 것은 무슬림형제단 (Muslim Brotherhood,  1928년 이집트에서 창설된  단체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이슬람 운동 단체)의 쿠틉 추종자들이 10년 이상을 전파해온 바로 그 말이었다. - P83

테헤란에 입성한 그날, 호메이니는 국민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내가 정부의 이름을 짓겠다."라고. "누가 당신에게 투표했는데요?"라고 채 묻기도 전에 공포가 시작되었다. - P83

악명 높은 파트와(fatwa, 이슬람법에 따른 결정이나  명령)는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가 쓴『악마의 시』 라는 작품을 문제 삼기도 했다. - P85

종교를 빙자한 억압과 그에 분노한 시민들 - P86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는 이듬해인 1989년에 사망했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 P87

수니파 국가들에 둘러싸인 시아파 국가 - P92

"이스라엘은 도려내야 할 암 덩어리다." 
이렇게까지 비난이 이어지는 것은 종교에 뿌리박은 병적인 증오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P95

미국과의 정략결혼은 계속 이어질까? - P96

1979년 11월 한 무리의 무장세력이 미대사관을 습격해서 50여 명의 미국인을 인질로붙잡았다. 이후 444일에 걸친 위기는 지미 카터대통령의 재선 가도를 막았고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일조했다. - P97

자국의 혁명가들을 비웃는 국민들 - P100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이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고 대중은 이란의 대외정책을 소리 높여 비난했다. "가자도, 레바논도 아닌, 이란에서의 내 삶을." 그리고
"시리아로부터 손을 떼라."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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