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데요시가 처음부터 기독교를 박해한 것은 아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정책을 이어받아 초기에는 선교사의 활동을 어느 정도 묵인했다. 기독교를 서구 문물 수용, 일본 열도 통일, 조선 침략에 유용한 통제할 수있는 자원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1587년 바테렌 (선교사) 추방령을 내리면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억압하기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집행이 느슨했고 선교사들은 계속 은밀하게 활동했다. - P63
그런데 1596년 ‘산펠리페호 사건‘이 터진다. 스페인 선박 산 펠리페호가 시코쿠 해안가에 좌초했다. 히데요시는 좌초된 배의 모든 교역물자를 압수할 것을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선원 중 한 명이 일본 관리에게세계지도를 펼쳐 보이며 스페인은 강대한 국가라면서, 기독교가 세계 정복을 위한 선봉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히데요시는 ‘통제되지 않는 외부의 힘‘에 의해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 예상치 못한 균열이 발생할 수 있음을 감지했다. 그는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교토와 오사카 등지에서 활동하던 프란치스코회 선교사와 일본인 예수회원, 신자 등 24명을 체포한다. - P63
히데요시는 본보기로 일본 기독교의 성지였던 나가사키에서 이들의 사형을 집행하기로 했다. 그들은 교토에서 시작해 오사카를 거쳐, 시모노세키, 후쿠오카, 나가사키까지, 1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한겨울에 3개월동안 걸어서 가야 했다. 이미 말할 수 없는 가혹한 징벌을 받은 뒤였다. ‘외부의 힘‘인 기독교를 믿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히데요시에 의해 이뤄진 일본 최초의 기독교 박해 사건이다. - P63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한 26성인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오우라 천주당이라는 곳이 있다. 천주당 정면은 니시자카 언덕을 향해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성당으로, 일본 국보로 지정된 건물 중 유일한 서양식 건물이다.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파견된 퓌레 신부가 성당 건립을 주도했고, 뒤이어 부임한 프티장 신부가 그 뜻을 이어갔다. 이곳은 1864년에완공되었으며, 1873년에 금교령이 해제되기 전까지 가쿠레 키리시탄들이신앙을 고백하는 장소였다. 보통 오우라 천주당으로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일본 26성인 순교자 천주당이다. - P65
글로버 가든의 가장 높은 곳에서는 나가사키 조선소가 한눈에 보인다.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의 주요 시설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군함을건조하고 어뢰를 제조하던 곳이다.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이 애초 겨냥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이 조선소에 최소 5975명의조선인이 강제동원되었고, 이 중 원폭 피해를 입은 조선인은 최소 13명이다. 히로시마 조선소에는 28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되었는데, 이 중원폭 피해자는 45명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고 풍광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잠시라도 그들을 기억해 보자. - P69
<나비부인>은 미국인 장교와 일본인 여성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는데, 두 주인공의 결혼식 장면에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연주되고,여주인공은 일본 전통 복식 기모노를 입는다. 한편 공영방송 KBS가 2024년 광복절 새벽에 <나비부인>을 방영했다가 시청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제작진의 불찰"이라는 성명과 함께사과한 일이 있었다. - P71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1945)와 청년 문사 송몽규(宋奎, 1917~1945)의 순국지, 후쿠오카 형무소다. 1945년 이곳에서 윤동주는 2월에, 송몽규는 3월에 사망했다. 둘 다 스물여덟이었다. - P76
윤동주와 송몽규가 순국한 후쿠오카 형무소는 대부분 철거되고 그 부지에는 주택과 공공시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후쿠오카 형무소 좌측 공터에 신축한 것이 지금의 후쿠오카 구치소다. 후쿠오카 지하철 후지사키역2번 출구로 나와 5분만 걸어가면 주택가 끝자락에 자리한 후쿠오카구치소 정문을 마주하게 된다. 구치소가 지하철역과 너무나 가까워 놀랍다. 동네를 걷다 보면 구치소 바로 옆에 있는 가나쿠즈강을 따라 산책하는 시민들도 쉬이 마주친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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