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서한집

[독서보고 5] 1936년 『만년(晩年)』 출간 전후 다자이 오사무 행적 분석
1. 도서 출간 및 비정상적 홍보 실태
가. (자비 광고 추진) 창작집 『만년』의 광고비를 본인이 부담하기로 하고, 지인들에게 전방위적으로 자금을 차용함.
나. (여론 조작 시도)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천재˝라는 단어를 써서 호평 섞인 신문 광고문을 써달라고 강요함.
2. 경제적 파산 및 구걸 행태
가. (극단적 채무 요청) 광고비 50엔을 빌려달라며 ˝빌려주지 않으면 죽겠다˝는 식의 협박성 호소를 남발함.
나. (상금에 대한 집착) 경제적 구원을 위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에 집착하며, 상금으로 빚을 갚겠다는 불확실한 약속을 남발함.
3.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한 태도
가. (비굴한 아부) 평소 존경한다며 ˝큰 가르침을 받았다˝는 식의 감언이설로 심사위원의 환심을 사려 함.
나. (처지 비관) 자신의 빈궁함과 가족의 불행을 무기로 동정심을 유발하여 수상을 간원함.
4. 1938년 심리적 전환 및 갱생 의지
가. (심리적 안정) 스스로를 ‘광풍제월‘의 상태라 칭하며 과거의 태도에서 벗어나려 노력함.
나. (노동의 가치 인식) ˝일로써 나아가자˝는 조언을 받아들여, 집필(노동)만이 유일한 생존 전략임을 자각함.

[독서보고 6] 아쿠타가와상 개요 및 다자이 오사무의 수상 집착 사유 분석
1.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의 정의와 위상
가. (제립 배경) 1935년 제정된 상으로, 일본 신진 작가들에게는 ‘최고의 등용문‘이자 가문의 영광으로 통함.
나. (부상과 가치) 상금 500엔은 당시 오사무의 부채 상황을 고려할 때 ‘인생 역전‘의 자금에 해당함.
다. (심사 위원) 사토 하루오,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당대 문단의 거물들이 심사를 맡음.
2. 다자이 오사무가 이 상에 목맸던 결정적 이유
가. (경제적 파산 상태) 광고비조차 빌려서 낼 정도의 빚더미 상황에서 상금으로 채무를 일시 상환하고자 함.
나. (가문의 인정 욕구) 집안에서 ‘문제아‘ 취급받던 상황을 타개하고 성공을 증명하고 싶어 함.
다. (문학적 자존심) 스스로 작품성에 확신을 가졌기에, 수상을 통해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자 함.

[독서보고 7] 다자이 오사무의 아쿠타가와상 수상 실패 및 후폭풍 분석
1. 심사 결과 및 낙선 사유
가. (최종 결과)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생 아쿠타가와상을 받지 못함.
나. (심사위원의 독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작가로서의 생활 태도(약물 등) 결함˝을 들어 냉정하게 평가 절하함.
다. (사토 하루오의 변심) 믿었던 사토 하루오마저 오사무를 지지하지 않아 큰 배신감을 느낌.
2. 낙선 이후의 비정상적 반응
가. (살벌한 보복) 낙선 후 가와바타에게 ˝나를 죽이지 마라˝,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공개 비난장을 발표함.
나. (규정의 변경) 오사무의 난동으로 인해 ‘한 번 후보에 오른 자는 재선정 불가‘라는 규정이 신설됨.
다. (평생의 한) 죽을 때까지 이 상에 대한 원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원망함.
3. ‘일.일.일‘ 정신의 재조명
가. (구걸의 한계) 남에게 구걸하던 오사무의 끝은 비참한 실패였음.
나. (작성자의 통찰) ˝돈 안 빌리려면 일로써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좌우명이 오사무의 실패를 통해 증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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