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살라딘의 예루살렘 관용과 로잔 조약에 따른 쿠르드족 비극 분석
1. 살라딘의 예루살렘 탈환과 대인의 면모
ㅇ (피의 보복 거부) 1187년 예루살렘 탈환 당시, 88년 전 십자군이 저지른 학살과 달리 단 한 명의 기독교인도 학살하지 않고 자비를 베풂.
ㅇ (포로 석방 및 배려) 가난하여 몸값을 내지 못하는 포로들을 자신의 사비로 풀어주었으며, 적장 리처드 왕이 병들자 얼음과 과일을 보내 간호하는 기사도 정신의 정수를 보여줌.
ㅇ (종교적 관용) 성묘 교회를 파괴하라는 참모들의 권유를 물리치고 기독교인의 참배를 허용하여, 이슬람의 고결한 가치를 세계에 증명함.
2. 1923년 로잔 조약과 쿠르드족의 분열
ㅇ (독립 약속의 파기) 1920년 세브르 조약에서 약속된 ‘쿠르디스탄‘ 독립안이 무산되고, 1923년 로잔 조약을 통해 쿠르드족 거주지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로 강제 분할됨.
ㅇ (영토 파편화 수치) 약 3,000만 명에서 4,000만 명에 달하는 쿠르드족이 단일 국가 없이 4개국에 흩어져 살게 되는 세계 최대의 ‘미승인 민족‘으로 전락함.
ㅇ (국제 정치의 희생양)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경선이 그어지면서, 살라딘의 후예들은 자국 내에서 언어와 문화를 부정당하는 처참한 탄압의 역사를 100년 넘게 이어오고 있음.
3. 정수일 교수의 시각과 인문학적 고찰
ㅇ (문명의 교차점) 정수일 교수는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지역을 실크로드의 핵심 요충지로 평가하며, 이들의 비극을 ‘국경이라는 인위적 장벽‘이 낳은 문명사적 아픔으로 규정함.
ㅇ (역사적 아이러니) 이슬람 문명을 수호한 살라딘을 배출한 위대한 민족이 정작 자신들의 땅에서는 ‘떠돌이‘ 신세가 된 작금의 상황은 국제 사회의 야만적 이기심을 드러내는 지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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