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오가와라 반조. 나이는 마흔둘이고 지방 경찰 본부 수사 1과 경감이다. 살인 사건이 나면 부하들을 이끌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간다. - P-1

경찰 조직 내에서는 근엄한 존재다. 그렇게 보이려고 콧수염도 기른다. 내가 "이봐, 뭐하는 거야!"라고 고함이라도 지르면 파출소의 신출내기 순경 따위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 P-1

어떤 인물이란 바로 그 유명한 명탐정 덴카이치 다이고로다. 낡아 빠진 양복에 더부룩한 머리, 연륜이 쌓인 지팡이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범인일 듯한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자, 여러분!"이라는 대사로 시작하여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범인은 바로 당신!"이라며 지팡이로 가리킨다.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 P-1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그 아름다운 여인이 범인이었다니, 이거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라며 한심한 대사를 읊어야 한다. - P-1

이처럼 내가 맡은 역할은 쓰디쓴 보조역이다. 하지만 그런 신세도 오늘로써 끝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너무도 오랜 세월을 보조역으로 살아왔다. 눈을 감으니 지금까지 마주쳤던 난제들이 어제 일처럼 뇌리를 스쳐 간다. 내 머리에 맨 처음 떠오른 것은, 역시 그 밀실 살인 사건이다. - P-1

이렇게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시작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아직 이불 속에 있었다. 수화기를 귀에 대자, 당직 형사의 당황스러워하는 목소리가 귓속으로 날아들었다. - P-1

우리를 맞이한 것은 비실비실한 시골 순경이었다. 손을 어색하게 올리고 있어
뭐하는 걸까 궁금했는데 다가가 보니 경례를 하는 것 같았다. 마을에서는 이 ‘할아버지’가 유일한 경찰이라고 한다. - P-1

때로는 "나, 소설을 중간쯤 읽다가 범인이 누군지 알아 버렸어."라고 말하는 독자가 있다. 하지만 추리를 통해서 알아낸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녀석이야!’라고 적당히 꿰맞췄는데 결과적으로 들어맞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와 같은 ‘꿰맞추기’ 식의 경우 예측이 한 인물로 모아지지 않는다. 독자의 범인 꿰맞추기는 경마의 우승마 예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별개의 인격이 범인이었군. 그건 생각도 못했어. 대단해. 역시 명탐정 덴카이치야. 이번에는 정말로 자네에게 완패했네."
나는 필사적으로 덴카이치를 치켜세웠다.
"아닙니다. 모두 경감님 조언 덕분에……."

"어, 자네……."
내 눈과 입이 동그래졌다.
"자네도 초대받았나?"
"네, 저도 웬만큼 이름이 알려져 있거든요."

"외부인의 범행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성립 불가능한 범죄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선명히 어필할 수 있지요. 이번 경우가 거기에 해당됩니다. 모두가 거실에 모여 있었는데도 오고시 씨가 산 정상에서 살해됐습니다. 그렇다고 범인이 외부 인물일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 결과 소설의 신비함이 깊어지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립이라는 패턴은 작가 편의에 의해 자주 채택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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