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까지 흩뿌리던 비는 그친 것 같다. 오늘은 운이 좋네. 스쿠터에서 내리던 미쓰이 레이지는 뭔지 모르게 조금 득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비가 퍼붓는 가운데 배달을 나갔지만 가는 곳마다 지하에 주차장이 있는 아파트라 물 한 방울 젖지 않은 채 상쾌한 기분으로 일을 다닐 수 있었다. - P-1

그 직후,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아파트 옆 도로에 검은 덩어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우연히 그 곁을 지나던 여자가 그것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아악, 아악." - P-1

다음 날 아침, 가오루가 관할 서인 후카가와 경찰서에 들어서자 구사나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상관인 마미야도 함께였다. - P-1

계장님, ……웬일이세요? - P-1

"갑자기 정신이 홱 돌아 버렸을 거야. 어느 모로 보나 계획적인 범행은 아니니까 말이야. 통화 기록을 훑어서 남자관계를 중심으로 철저히 조사해 보라고." - P-1

"아, 이렇게 소중한 정보까지 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만, 우리 일이란 게 뭐든 근거를 확보하고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서…… 그러니까, 지금 상태라면 오카자키 씨가 에지마 씨의 아파트에 갔었다는 사실밖에는 수사 기록에 남길 게 없으니까……." - P-1

"그 친구는 아마 이렇게 말할걸. 과학은 마법이 아니라고. 포기해." - P-1

구니히로는 입가에 냉소를 띤 채 창을 등지고 서 있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태도다. 어떻게 자랐기에 저렇게 냉혹한 인간이 되어 버렸을까, 나미에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반복했던 생각을 또 속으로 되뇌었다.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 P-1

"맥주고 위스키고 마음껏 들도록 하라고. 단, 자기 몸이랑 잘 의논해서." - P-1

"자네, 정말 많이 변했구먼. 과학밖에 모르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인간의 마음까지 알아 버렸어." - P-1

"사람의 마음도 과학 아니겠습니까. 정말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죠." - P-1

"자신에게 맞는 삶을 찾았다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어. 제일 행복한 일이지."

"그래서 구사나기에게 의논한 거로군. 그러고 보면 구사나기가 나에게 떠넘긴 것도 무리는 아니야. 도통 자기 머리로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 녀석이니까. 살인 사건 같지도 않고, 게다가 밀실이었는지 아닌지도 명확지 않은 문제에 매달리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전문 지식이라……. 물론 물리적인 지식이 필요한 경우도 많아.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풀 수 있는 수수께끼는 거의 없어. 자연현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간이 만들어 낸 수수께끼를 풀려면 역시 인간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 거야. 사건이 일어난 날 밤 누가 어디에 있었느냐는 나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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