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보는 남편의 얼굴에는 가면이 씌어 있었다. 은색 금속의 차가운 가면이었다. 감정을 숨겨 주는 그 가면은 남편의 마른 볼과 턱과 미간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번득 빛나는 가면의 남편은 흉포한 무기를 손에 들고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무기는…….’ - P-1

음침한 기분을 곱씹으며 구사나기는 방금 들은 내용을 메모했다. 사람이 죽으면 늘 이런 기분에 사로잡힌다. - P-1

그놈들에게 천벌이 내린 모양이군, 그렇게 말하려다가 구사나기는 얼른 말을 삼켰다. 사망자가 나왔는데, 너무 심한 말같아서였다. - P-1

"주의를 주는 사람이 없었나 보지?"
"주의를 주어요? 설마."
청년은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었다.
"지금 일본에 그럴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 P-1

"옛날에. 읽으려 했던 적이 있었지. 그렇지만 좌절하고 말았어. 독서 체질이 아닌 모양이야."

"불철주야 우리를 위해 치안 유지에 힘을 쏟는 구사나기 형사를 환영하는 것치고는 빛이 너무 약한 거 아닌지 몰라."

"재미있는 거 하나 가르쳐 줄게. 미국에서 UFO를 목격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분석해 본 결과 90퍼센트 이상이 뭔가를 잘못 본 것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고 해. 개중에 가장 많은 것이 천체를 UFO로 착각한 것이었어. 특히 가장 많았던 것이 금성이고, 심지어는 달을 UFO로 착각한 사람도 있을 정도야."

"유령의 정체는 의외로 사소한 데서 드러나. 가솔린이 든 석유통이 있었고 그 주위에 분별력 없는 소년 몇 명이 있었어. 그런데 그 석유통에 불이 붙었으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가 아닐까."

구사나기의 눈동자가 커졌다.

"놈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고, 불을 붙인 것은 바로 그놈들이란 말이군. 그것도 화상을 각오하고."

"원칙적으로 이곳에 있는 콘덴서는 완전 방전 상태여야 해. 그렇지만 오랜 시간 방치해 두면 정전 작용으로 서서히 전기를 축적하기도 해. 저 정도 크기의 콘덴서가 완전히 충전되면 자네 몸 정도는 한 끼 거리도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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