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密敎) 이미 해는 땅속으로 기울어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그러나 온통 안개에 휩싸인 해동밀교(海東密敎)1의 내부는 열을 지어 서 있는 승려들이 손에 든 횃불로 인해 대낮처럼 밝았다. 승려들이 도열한 앞에는 문이 활짝 열린 큰 회당이 있었다. 그 회당 내에는 기이하게 꾸며진 화려한 제단이 있었고, 그 앞에 발이 묶인 송아지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뒤에는 각자 모습이 아주 특이해 절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다섯 사람이 묵묵히 서 있었다. - P-1
모두 잠이 든 듯, 교단의 경내는 쥐 한 마리 다니지 않고 고요했다. 그러나 안개로 둘러싸인 산에 수없이 뚫려 있는 빈 토굴 중 문이 굳게 닫혀 있는 한 곳에서는 고통스러운 비명이 가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주 희미한 소리였으나, 그 문에 바짝 귀를 붙이고 있던 장 호법은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장 호법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길고 처참하게 이어지던 비명은 귀에 익숙한 남자의 열띤 주문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아까의 미흡했던 의식이 제물을 바꾸어 다시 거행되고 있던 것이다. 서 교주를 따라갔던 두 승려의 모습은 이제 영영 볼 수 없을 터였다. - P-1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 없는 거라네. 수련이 깊을수록 욕심도 많아지고 유혹도 깊어질 수 있는 게야." - P-1
운명적으로 다가온 산중이인(山中異人) 한빈 거사. 그는 거의 죽어 가던 현암을 살리고 파사신검(破邪柛劍)6, 사자후(獅子吼)7, 부동심결(不動心訣)8이라는 태곳적의 무예를 전해 주었다. - P-1
도혜 스님은 칠십 년간 쌓아 온 자신의 진원지기(眞元之氣)를 모조리 현암에게 불어 넣어 그를 살리고 막강한 힘을 갖추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떠나 버렸다. - P-1
"하지만 박 신부님은 종교나 교파 같은 것을 가리지 않고, 다만 사람들을 위해 능력을 발휘하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박 신부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 P-1
박 신부는 신부라는 직책상 이교(異敎)의 인물들이 분명한 이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것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분명한 사명이 있었다. 종교나 믿는 바에 구속되지 않고 초자연적인 현상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 온 퇴마행(退魔行) 십사 년……. 박 신부는 퇴마행을 계속해 사람들을 구하는 것만이 자신의 숙명이자 미라의 죽음에 얽힌 마음속의 짐을 더는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 P-1
"다른 가르침을 받아 다른 길에 몸담고 계시면서도 사람들의 작은 불행조차 외면하지 않으시는 박 신부님이라면, 저희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박 신부님께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 P-1
사람이 믿는 바가 사람을 위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을무엇에 쓸 것인가!‘ 박 신부는 전부터 가졌던 많은 생각과 의문이 장 호법의 말을 계기로 하나로 응집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P-1
"천상천하(天上天下)! 염부나락(閻浮那)! 육도구천(九天)! 삼세제불(三世諸佛)!" 준후의 놀란 소리가 째질 듯이 울려 퍼졌다. "허허자 아저씨! 안 돼요!" - P-1
"네가 교주냐? 아니, 하는 꼴을 보아하니 악귀나 야차못지않은 쓰레기 같은데?" - P-1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 없는 거라네..... 수련이 깊을수록 욕심도 많아지고 유혹도 깊어질 수 있는 게야....... - P-1
"퇴마행...... 마를 물리치러 가는 걸세." - P-1
담소를 나누며 걷는 그들의 등 뒤에서 해동밀교의 마지막 잔해를 태우는 불길이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불길은 하늘마저 태워 버릴 듯했다. 아니, 이때만큼은정말 하늘이 불타오르는 날이었다. - P-1
현암의 생각으로는 기껏해야 가위눌리는 정도의 일이거나, 잘해 봐야 부유령(浮遊靈)‘ 또는 몽마(夢魔) 정도가 장난치는 일이리라 여겼다. 이번 기회에 멋있게 보이면 어쩌면………. - P-1
‘아이고, 내가 정신이 나갔나? 천벌 받을 생각만 골라서 하네. 이런 일을 사리사욕에 이용하면 천벌을 받는법인데……. 그래도 좋아. 예쁘면 까짓것 천벌을 받지, 뭐! 하하하!" - P-1
현암은 가볍게 듣고 넘겼다. 꿈 자체가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무서운 꿈을 꾼다고 사람이 죽지는않는다. 문제는 무서운 꿈을 꾸게 만드는 요인이고, 그것이 사람을 죽게 만들 수도 있다. - P-1
"글쎄요. 솔직히 말해서 당시 저는 제가 받는 고통을 면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선 제 고통부터 면하고 싶었다는 것이 제 본심이었어요."
"감사합니다……. 고통을 면한다는 것, 그건 제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우선 제 고통을 면하기 위해 남을 도왔던 거죠. 저는 그것에 대해, 그런 저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릇된 일이 아닌 것 같았어요. 존재라는 것은 일단 스스로를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아멘! 아마 파문당할 겁니다, 박 신부님.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겠지요?"
"교단이 나를 파문한다고, 하느님까지 나를 파문하지는 않으실 거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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