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그런 일을 해결하긴 하지만 무당은 아니야." - P-1

"하하! 아, 뭐야. 생각보다 용한 무당이었네? 허주신도 없는데 그런 걸 다 보고. 그럼 난?" - P-1

매일 같이 힘들여 일하는 것에 비해서 제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들의 지나온 세월이나 대충 읊어주면 돈이 생겼으니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신’들이 점점 연화의 몸과 생각과 말을 훔치기 시작한 게. - P-1

신이 떨어져 나갔다는 걸 안다면 손님들은 연화를 죽이려 들 거였다. 돈도 없고 의뢰도 들어주지 못하는 무당은 쓸모없는 존재였으니까. - P-1

"그런 잡귀들을 신이라고 받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너도 느꼈을 텐데. 조금만 더 그대로 놔뒀다가는 잡귀들이 네 몸을 차지하고 너인 척 굴었을 거다." - P-1

"그러면 안 되냐고요! 어차피 이렇게 사는 것도 짜증 나요. 더 살고 싶지도 않고요. 그냥 죽지 못해서 사는 거예요. 그게 잡귀든 신이든 상관없어요. 어쨌든 돈을 벌어줬으니까. 지금까지 거절만 당하면서 살아온 나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잖아요. 그게 뭐 그렇게 나쁜 거예요?" - P-1

"인간들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니까. 별것도 아닌 일로 신내림을 받게 하거나 귀들을 불러들이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이들이 해줄 수 있다고 믿으면서." - P-1

"요새는 인간들이 귀들보다 더 약았어. 못됐고." - P-1

"저는…… 저는 또다시 쓸모없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 P-1

"너, 인간도 아닌 것이 어디서 인간 행세를 하면서 돌아다녀?!" - P-1

"고작 박수무당 주제에 시비를 걸고 다니면 명줄이 짧아지잖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들어도 못 들은 척하라는 옛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고 살아." - P-1

"어찌됐든 도우러 와줘서 고맙군. 가끔 저런 치들이 있거든. 틀린 말은 아니지. 인간이 아닌 게 인간인 척하고 있는 건 맞으니까." - P-1

‘네 이름은 산호다. 산군 호랑이라는 뜻이지.’
산군(山君). - P-1

그건 산신을 모시는 동물을 의미했다. 산신이 다스리는 산을 지키고 그 산 안에 사는 것들을 돌보고 산신의 뜻을 전달하는 존재. - P-1

땅과 산과 신을 지키는 게 산군이 해야 할 일이었다. - P-1

신은 믿음으로 존재를 유지한다. - P-1

인간들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지 않았다. 산과 땅은 그저 돈벌이의 일부였고 그들은 그것들을 마음대로 사고팔았다. 그리고 일어난 전쟁들. - P-1

"그냥. 달이 오늘따라 밝길래." - P-1

보름 역시 산호의 시선을 따라 커다랗게 뜬 달을 한 번 바라보았다. 달. - P-1

사랑.
그래,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
동시에 이 세상에서 가장 거짓된 것. - P-1

보름은 정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다. 도망쳤다. 세상의 끝까지. 그러나 떨어져 내린 곳에서 보름이 마주쳤던 건 전혀 다른 것이었다. - P-1

"그럼 이제 우리도 우리 일을 해야지. 산군과 신이라고 해도 돈은 있어야 이 세상에서 사는 거잖아?" - P-1

그림자 같기도 하고 도사리고 있는 어둠 같기도 한 것들. 그건 이곳에 모인 집념이었다. 차 있어야 할 곳이 비면 거기엔 다른 것이 깃들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이런 빈 공간에 모였다. 그리고 마치 땅 주인처럼 행세를 했다. - P-1

인간의 마음과 정신은 오래 남았다. 좋지 않은 것일수록 더욱더. - P-1

원한을 가지면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던가. - P-1

선한 마음은 고이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이에게 전해지고 퍼져서 남는다. 그러나 악의는 달랐다. 그대로 가라앉고 썩는다. 그리고 다른 희생자를 찾아 잡아먹는 것이다. 이 빌딩에 고인 것은 그런 썩은 마음에서 시작된 악귀들이었다. - P-1

"……누가 호랑이 아니랄까 봐 잘 뛰어다니네."
"그렇게 대답하는 걸 보니 괜찮군." - P-1

죽은 뒤에도 남아서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존재는 인간 말고 거의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보름의 눈앞에 있는 건 뱀이었다. 그것도 크기가 어마어마한 뱀. 저런 악귀가 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 P-1

신은 그 자체가 존재 의의였다. 그렇기에 다른 무엇을 위해 부단히 정진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스스로의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태양과는 다르게 눈으로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달은, 어둠을 밝히는 달은 그 특성상 더 많은 기도가 올라오곤 했다. 그래서 보름은 산호의 울음소리를 그냥 듣고 넘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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