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월 25일 흐림
신임을 묻는다는 말, 나, 처음으로 해 볼까 해.
간밤에 린코가 불쑥 말했다. 한밤에 내가 침실에 들어간 직후였다. - P-1

20××년 7월 30일 흐림
문득 돌아보니 벌써 반년 이상이나 일기를 놓아 버리고 있었다.
일부러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쓰고 싶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았다’는 것도 아니다. 미래의 어느 날인가 이 일기를 보고 있을 당신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들만 일어났던 것도 아니다. - P-1

20××년 8월 10일 맑음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쾌청하다.
오전 8시 30분, 벌써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린코와 나는 수상 전용차로 분쿄구의 모 초등학교에 차려진 선거투표소 입구에 도착했다. - P-1

20××년 9월 28일 맑음
9월 1일 오전 9시 50분, 수상관저.
정면 로비로 이어지는 대형 계단의 붉은 융단이 몹시 눈부시다.
수많은 보도진이 계단 앞에 모여 있다. 다들 마른침을 삼키며 기다린다.
후지노미야 씨, 강건한 SP 남성 두 명과 함께 보도진 제일 뒤에 선 나도 마찬가지로 숨죽이고 기다렸다.
마침내 시곗바늘이 10시 정각을 가리킨 순간. 회장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왔다.
계단 위 층계참에 씩씩하게 나타난 사람은 나의 아내 소마 린코. - P-1

"다만 우리 집의 또 다른 말썽쟁이 아들한테만은 단단히 일러두었다. 너, 네 동생 부인을 내치고 싶으면 맘대로 해 봐라. 대신 그 사람이 총리가 못 되면 너를 해임하고 히요리를 소마글로벌의 CEO로 앉힐 거다. 그 정도는 나한테 일도 아냐……라고 말이야." - P-1

필승 다루마지지자들이 후보자에게 선물하는 다루마 인형. 선거 전에 승리를 기원하며 왼쪽 눈에 검은 점을 찍어 눈동자를 그려 넣고, 승리하면 오른쪽 눈에 까만 점을 찍는 관습이 있다 - P-1

독안룡 마사무네독안룡은 외눈박이인 용맹한 인물을 가리키며, 마사무네는 일본 전국시대의 유명한 다이묘 다테 마사무네. 그는 다섯 살 때 천연두로 한쪽 눈을 잃었다 - P-1

여성이 아이를 낳고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사회. 출산 후에도 업무에 복귀할 수 있는 노동 시스템을 만든다. 모자 가정을 든든하게 지원한다. 형편 어려운 가정이라도 모친이 자녀 양육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다. - P-1

20××년 12월 15일 흐리다 가끔 비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제2차 소마 내각이 발족하고 한 달이 지난 즈음에 대하여 쓰겠다.
린코는 정치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주저 없이 과감하게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 P-1

20××년 3월 3일 흐림
린코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한 달쯤 전이었다.
정기국회가 열리고 시정 방침 연설도 작년 이상으로 감동적인데다(그리고 실질적이고) 완성도가 높아졌으며 이제는 총리로서 당당한 풍격을 보여 주고 있었다. - P-1

"뭐죠, 그게?! 그만두게 했다니, 무슨 말이죠?! 부인은 일하고 싶어 하는데 시마자키 씨가 그만두게 했습니까? 그게 뭡니까, 말도 안 돼요! 아이는 엄마 곁에 있는 게 가장 좋다니, 그거 당연한 거잖아요! 그것도 가능하고 직장도 그만두지 않을 수 있다면 세상의 일하는 엄마들이 모두 해피하겠죠! 그게 안 되니까 고통 받고 있잖아요? 그게 안 되니까 그렇게 만들려고 소마 내각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 P-1

"국민 여러분께 보고 드립니다. 저 소마 린코는 임신을 했습니다. 현재 임신 9주차에 들어선 참입니다." - P-1

20××년 3월 12일 맑음

소마 수상 사의 표명, 총리 임신으로 내각총사직인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임신, 출산을 위해 사임 결단
소마 수상 임신, 한 달 내 사임 의사 표명

아내 린코가 국민에게 임신 사실을 보고하고 한 달 안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결의를 표명한 뒤     . - P-1

"축하합니다. ‘총리 임신’이라니, 정말 희한한 일이군요. 쾌거입니다."

구보즈카 상석연구원이 대신 말했다. 따오기가 자연산란을 하는 장면이라도 본 듯한 말투다. - P-1

우리 자식으로 태어나는 아이.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인간. 둘도 없이 소중한 일본의 새로운 국민.

생명을 키우는 한 명의 인간으로 돌아가자. - P-1

20××년 ×월 ×일 맑음
마지막으로 일기를 쓰고 나서 시간이 한참 지나고 말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이 일기장을 들춰 보았다. 정말이지 온갖 이야기들을 자세히도 써 놓았네.
맨 앞부분을 읽으며 너무나 그리워 미소 짓고 웃기도 하고 눈물도 글썽이고…… 혼자 다양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 P-1

당신이 살아가는 시대     즉, 당신이 이 일기를 읽고 있는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린코와 나는 사라진 지 오래인 머나먼 미래를 당신은 살아가고 있겠지.
부디 그 미래가 훌륭한 시대이기를. 당신이 내적으로 풍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기를. - P-1

"코로나 팬데믹을 대하는 방식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산나 마린 미렐라 핀란드 총리. 이들은 모두 위기관리 능력과 대국민 소통 능력으로 많은 신뢰를 받았다. 그러나 일본에는 아직 여성 총리가 탄생하지 않았고 우리는 픽션의 세계에서나마 그 활약상을 만끽할 수밖에 없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남성우위가 계속되는 일본 사회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여성 총리. 린코와 같은 총리가 있었다면 신종 코로나 대책은 어땠을까 상상하고 싶어진다." - P-1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전 세계 현직 총리 중 최초로 ‘임기 중 출산+출산 후 휴가’를 얻은 인물이라고 한다. 이 뉴스는 일본에서 특히 화제가 되었다는데, 그렇다면 2020년에 발매된 문고신장판 『총리의 남편』은 이제 (판타지가 아니라) ‘리얼’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