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2월 16일 아침부터 비 관저의 견고한 창문 밖에서는 동이 트면서부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1미터쯤 떨어진 옆 침대에서 숨소리를 내며 잠든 아내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린코는 깨어 있을 때는 전투에 임하는 장군처럼 용감하지만 무방비하게 잠든 얼굴은 딱딱한 껍질 틈새로 과육이 엿보이는 리치나무 열매 같다. 살짝 손을 뻗어 쓰다듬고 싶었지만 그녀의 귀중한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 그만두었다.
20××년 4월 10일 아침부터 쾌청(←린코를 처음 만날 당시의 날짜) 그날 아침의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라면 나의 생활습관도 거의 완성되어서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설 때까지 하는 행동은 매일 똑같았다.
20××년 5월 10일 아침부터 쾌청(←린코를 처음 만날 당시의 날짜) 조류의 구애 행동은 참으로 다양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종으로는 공작이 화려한 꼬리털을 부채처럼 펼쳐 바르르 진동시켜서 암컷의 관심을 끄는 행위가 있다. 그리고 때까치. 마음에 드는 암컷의 호감을 사려고 휘파람새나 종다리, 멧새, 동박새 등을 흉내 내며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귄다. 극락조는 날개나 꼬리나 머리의 장식깃털을 열심히 흔들며 격렬한 춤을 선보인다. 참새조차 짝짓기 철이면 평소와는 딴판으로 달콤하게 지저귀며 암컷을 유혹하려 애쓴다.
조류 암컷은 수컷이 유혹해 오면 자기 자손을 만들 상대로 이 수컷을 택할지 말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여 교미한다. 그야말로 본능이다. 나는 수컷이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본능으로 ‘바로 이 사람’이라고 느꼈다. 누가 뭐래도 그 순간 내 몸을 관통해 버린 전류 같은 느낌은 신이 내려 준 본능이라는 이름의 벼락이 분명했다.
휴일 아침 8시에 ‘간다가와 천변에서 찍었습니다. 당신 곁으로 날려보냅니다’라는 엉뚱한 글에 동박새 사진을 첨부한, 매우 이상한 메일이었다. 그걸 앞뒤 재지 않고 들뜬 기분에 그냥 보내 버리다니.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작은 새가 날아왔네요. 무슨 새죠? 가르쳐주시겠어요? 다음에 만나 뵐 때라도.
20××년 5월 17일 아침부터 쾌청(←린코를 처음 만날 당시의 날짜) 린코의 휴대폰에 동박새 사진을 전송하고 일주일 동안 나는 한껏 들떠 있었다. 거의 팔짝팔짝 뛸 것만 같은 가뿐한 발걸음으로 통근하고 직장에서의 업무는 신속하게 해치우다 못해 내 담당이 아닌 업무까지 기꺼이 떠맡아서 해냈다. 동료와 점심 먹으러 나가서 거하게 한턱을 쏘고, 회식에서는 술도 못 마시는 주제에 생맥주를 피처로 주문해 마셨다가 주점 바닥에 널브러져 선배가 택시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 주는 지경이었다.
남녀가 평등하다지만 여전히 남성이 주도하는 직장과 사회에서 겪어야 하는 고독한 싸움. 그런 것들을 그녀에게 직접 듣게 된 건 훨씬 나중 일이었지만 그날 우리는 어떤 고독을 넘어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약지 하나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앞으로 무슨 일이 닥쳐도 함께 걸어가자는 우리의 첫 약속. 그리고 내 평생을 관통하게 될 결심의 순간이었다.
20××년 12월 18일 맑음 후우우. 첫 문장부터 한숨 소리를 적고 말았다. 왜 이렇게 일기를 시작하느냐 하면, 방금 읽으신 대로 마침내 밤을 세워 쓰고 말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절대 밝히지 않기로 했던 린코와 나의 첫 만남에 대하여.
20××년 12월 21일 흐림 정치 저널리스트 콜롬보 아베와 내가 ‘밀담’을 나눈 뒤 긴장된 사흘이 지났다. 아니, 긴장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특종! 총리의 남편 소마 히요리 씨의 외도 현장. 소마 린코 수상, 정계 은퇴를 향한 카운트다운 시작되나’라는 턱없이 자극적인 제목으로 엄청난 판매량과 영향력을 자랑하는 모 주간지에 나와 이토 루이 씨가 찍힌 야릇한 사진이 오늘이라도 실리지 않을까 하고 긴장하며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도촬의 먹잇감이 되었던 이토 씨 본인이었다.
벌떡 일어난 나와 눈을 맞추며 린코가 말했다. 목욕을 끝낸 개가 몸을 부르르 떨어 물방울을 터는 것처럼 나는 격하게 도리질을 했다.
20××년 1월 1일 맑음 새해가 밝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소마 가에서 새해 첫날에 치르는 행사, 즉 본가에서 열리는 새해 인사와 신년모임에 올해도 참석할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작년 정초의 린코와 올 정초의 린코는 그 처지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소마 가의 며느리이자 직진당 당수였고 올해는 직진당 당수이자 총리이다. 어머니는 불만이겠지만 ‘소마 가의 며느리’라는 처지는 일단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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