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칠 줄 모르는 비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9월인데도 숨 막히는 무더위가 계속되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까지 미지근했다. 화장터 여자 화장실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조사 대상은 도로공사를 수주한 건설사였다. 담합하여 서로 돌아가며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도요시마는 공사를 발주하는 시청 직원이어서, 참고인으로서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노인들이 밀실에 모여 뭐든지 다 정해 버립니다. 이런 짓은 이제 막아야 해요. 일본이라는 나라가 금방 못쓰게 될 겁니다. 의욕 있는 젊은이가 창업을 하고 열심히 영업한들 소용없습니다. 수십 년간 내려온 지역 인맥에 들어가 노인들의 인정을 받고 밑바닥 생활을 거치고 나야 겨우 수주할 기회가 돌아옵니다. 그런 시스템이 완성되어 버렸어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처럼 계속 달리는 체제.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 막아야 합니다."

고쇼부는 종합직 채용, 이른바 캐리어 출신이다. 일반직 채용이며 논캐리어인 시로쿠마보다 승진 속도가 빠르다.

같은 연차에 입사했는데도 고쇼부는 계장이고 시로쿠마는 계원이다. 의견이 갈릴 때는 고쇼부의 의견이 우선시될 게 분명하다.

정의를 외면하지 않으려 했던 정보 제공자가 얼마나 어두운 길을 걸어야 하는지 고쇼부는 모르고 있다. 인맥으로 똘똘 뭉친 지역 사회에서 빠져나와 고발을 하는 일이 얼마나 큰 두려움을 동반하는지. 얼마나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지. 고발 후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랭킹이 매겨지는 경쟁의 장에서는 그런 묘한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어쨌거나 얼른 정리나 합시다."

직접 손을 댄 사업이 쑥쑥 자라면 배 속에서부터 행복감이 차오른다. 힘차게 빨대를 빠는 입가는 일그러져 있지만 그것은 운카이 나름의 미소였다.

호텔이 납품업자에게 과도한 요구를 해 왔다는 사실은 증거를 보더라도 분명한데 그런 거래 상대를 왜 속박할까. 남들 눈을 피해 폭행을 일삼는 애인에게 오히려 집착하며 관계를 끊지 않는 피해자 같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가라테를 수련해 온 시로쿠마는 승부의 엄격함을 몸으로 배웠다.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될 때도 있다. 컨디션의 소소한 차이나 타이밍으로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임기응변과 집중력,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강한 승부욕이 중요해진다.
하지만─약자가 패배하고 강자가 승리하는 세상이어도 과연 괜찮은 걸까.
가슴속에 의문이 똬리를 틀고 있지만 일손을 멈출 수도 없다.

늘 그랬다. 앞장선 적도 없는데 어느새 구정물을 뒤집어쓰는 역할을 떠맡는다. 학창시절에 학급에서 담당자를 정할 때도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제일 귀찮은 역할로 떠밀렸다. 늘 잡다한 동네일을 도맡는 어머니 미나에를 한심하게 생각하곤 했는데, 어머니를 닮은 자기 처신이 싫었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못하니까 번거로운 일만 떠맡게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 물렁함이 내 생활 구석구석을 침범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사회는 대련 같은 게 아니잖아요. 약한 사람이 지고. 이번에는 아쉽게도 제가 졌네요, 라는 말로 끝나지 않죠. 진 쪽은 치명상을 입고 죽음에 이르기도 해요. 경쟁이란 게 그렇게 좋은 걸까요? 강자가 이기고 약자가 지는 거. 그런 세상이어도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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