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한심한 소리니. 좋아서 한 일을 두고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다. 이사할까 말까 망설이다 어쩔 수 없이 택한 집도 아니고 마음에 쏙 들어서 이사했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야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해! 정신 똑바로 차려!"

"네 형부 말이야, 어쩌면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활짝 갠 8월 오후,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보리차를 마실 때 언니가 불쑥 말했다. 깜짝 놀라 언니의 옆얼굴을 돌아보았지만, 언니는 평소와 다름없었고, 불안에 사로잡히거나 감정적으로 흥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안색도 좋았다. 볼살이 도톰하게 올라 있기까지 했다.

죽은 여자와 외도하는 건 애초에 가능한 일도 아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나는 그날 차가운 안개비가 내리던 밤, 퇴근한 형부가 이웃집에서 나오던 모습을 떠올렸다. 택시가 멈추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고 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집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형의 것인 줄 알면서도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이에서 딱딱 소리가 날 만큼 무서웠지만 그것은 비명을 내지르게 만드는 종류의 공포는 아니었다. 이승과 저승이 한순간 통할 때의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공포라고 하면 좋을까. 도망치고 싶어지는 공포가 아니라 그 자리에 못 박힌 듯한…… 무섭지만 시선이 빨려 버리는 듯한 그런 공포였다.

하지만 죽은 첩은 분명히 나에게만 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뭔가 헤아릴 수 없는 목적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뭔가를 호소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제 모습을 생전의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을까. 육신을 잃은 채 고독에 시달리며 망연히 빈집을 헤매고 있기가 쓸쓸했던가?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선명한 붉은색을 칠한 네모난 틀 안에 한 여인을 그린 것이었다. 네모난 창틀 주위에는 나뭇잎으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가 무늬처럼 여러 개 흩어져 있다. 창틀 안에 그려진 여인은 뒤로 단단히 맨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먼 데 있는 뭔가를 응시하고 있다.

여자가 입은 옷이 비백 무늬 유카타임을 안 순간부터 나는 그림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럴 리 없다, 우연이다, 하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너무나 충격적이라 위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음매 같은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 이음매에는 언제나 그 여자가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많은 일들을 떠올려 봐도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고 아무런 설명도 들은 적 없지만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오싹해지곤 한다. 동시에 한없이 그립고 감미롭기까지 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젊은 날의 아득한 정경이 거기 있다. 내가 죽어 재가 되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타오르는 듯한 불길한 저녁놀이 비치는 창문에 이번에는 내 모습이 비쳐지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