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가 되었는데 밥상 차리기가 싫었다. 애초에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편의점에 갔다가 사다 둔 쌀과자가 생각났다. 짭짤한 것이 당겼다. 가스미는 미지근한 바람을 보내는 선풍기 앞에 앉아 느릿느릿 과자 봉지를 열었다.
그야말로 막연히 상상하던 이상적인 치과 의원 풍경이었다. 조용하고, 예약 없이 가도 흔쾌히 받아 주고, 나른한 여름날 오후면 치아 연마하는 소리만 들리고, 그 소리조차 점차 멀어져 가다가 깜빡 졸 것 같은 한가로운 시골 치과 의원…….
가스미는 자전거를 천천히 밀며 가까이 가 보았다. 히카게日影 = 햇볕치과 의원이라는 이름을 ‘히카게日陰 = 응달’로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니 재미있었다.
가쓰히코는 딱하다는 표정을 하고 치켜뜬 눈으로 가스미를 보았다. "가스미, 잘 들어. 히카게 치과 의원은 말이야, 1983년에 폐업한 것으로 되어 있어. 그 뒤 건물은 폐가가 되어 아무도 살지 않았대. 그것은 장인한테 들었고, 나도 확인했어."
"원장과 치위생사라는 건 맞을 거야. 하지만 그들은 부부가 아니었어. ……피를 나눈 오빠와 누이동생이었어."
가스미가 침묵하고 있자 가쓰히코는 시선을 내리고 뒷머리를 북북 긁었다. "두 사람 다 독신이었대. 독신 상태로 함께 치과를 시작해서 함께 진료했던 거지. 그러다가 동생이 오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관계였다는 거지. 점점 불러오는 배를 감추고 흰 가운을 입었겠지만, 환자들 사이에 소문이 돌고, 그러다가 곧 동생이 진찰실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대. 다음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두 사람 모두 진료에 열심이었다는 거야. 하지만 동생이 대체 어디서 출산했는지, 태어난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낙태했는지 아니면 누구에게 맡겼는지 아무도 몰라."
"그게…… 그게……" 가스미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숨이 답답했다. "갓짱, 그 아이에게 인형을 사 준 사람은, 그 아이를 낳은 부모가 아니야. 그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해당하는 사람이 사 준 거야. 히카게 원장과 그 누이동생의 아버지 어머니 되는 사람. 손녀가 불쌍했던 거야. 그래서 이치마쓰 인형을 사 주었고, 그 아이는 한시도 품에서 떼지 않고 소중하게 안고 있었어."
보았으니까, 하고 가스미는 말했다. 병 속에서 말하는 듯한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입안에서 혀로 어금니를 더듬었다. 히카게 원장이 씌워 준 어금니 크라운이 가스미의 혀끝에서 매끄럽게 느껴졌다.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를 똑똑히 기억한다. 남편의 사십구재를 마치고 꼭 1주일이 지난 오후였다.
아침부터 음울한 안개가 자욱했다. 나무며 지붕이며 도로며 전신주며 할 것 없이 거무스름한 우윳빛 속에 가라앉아 보였다. 꽃피는 철인데도 몹시 쌀쌀하여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목덜미에 으스스 오한이 일었다.
남편이 죽은 것은 3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점심이 다 되어도 일어날 기미가 없는 것이 의아했다. 일요일 아침은 대체로 늦게 일어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시간까지 누워 있다니. 나는 침실 문을 열고 밝은 목소리로 불렀다.
빼곡히 들어찬 의류 아래쪽에 뭔가가 보였다. 거뭇해진 레이스 같은 것. 그리고 지저분하긴 하지만 하얗고 얇은 장갑을 낀 두 개의 손…….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전에 내 손은 옷장 속 남편 옷들을 거칠게 헤집고 있었다. 공포에 빠졌는데 어떻게 그런 행동이 가능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싸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처분했다고 믿었지만 망령이란 제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 나타날 수 있다. 조피가 남편 냄새에 싸인 채 숨어 있던 옷장을 처분했다고 해도 조피의 유령은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반드시 돌아온다……. 그것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통야 일본의 불교식 장례 절차의 일부. 입관 후 가족과 지인들이 관 앞에서 밤샘을 하며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이튿날 고별식을 하고 화장을 한다
될 대로 되라지, 하는 기분도 있었다. 이자는 산장과 완전히 한통속이구나, 라고 확신했다. 연휴가 끝난 비수기이므로 산장은 손님을 한 명 확보할 수 있어서 좋고 택시 기사는 산장까지 가는 택시비에다 용돈까지 챙겨서 좋다는 구조로 되어 있을 것이다.
다키타는 고개를 끄덕이고, 묻지도 않았는데 고후에서 학창 시절 은사의 통야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은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회사를 어떻게 세우게 되었는지, 심지어 자신의 이혼담까지 스스럼없이 늘어놓았고, 나는 대체 초면인 사람 앞에서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걸까, 하고 의아해하면서도 주인이 따라 주는 대로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었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문득 떠올리면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기억이라는 게 있다. 그런 기억은 몇십 년이 지나도 늘 변함없는 전율을 가져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