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잔이 도기에서 유리로 바뀌면서 ‘맥주의 색’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의 요소가 되다

Oh Beer! O Hodgson, Guinness, Allsopp, Bass!
Names that should be on every infant tongue!
오, 비어! 오, 호지슨, 기네스, 올솝, 바스!
코흘리개 꼬맹이들도 다 아는 이름이지!

2002년 브릭스 4개국 합계 국내총생산(GDP)은 약 2조 4,000억 달러 규모로, 다 합쳐도 미국 GDP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2039년까지 브릭스의 경제 규모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G6의 합계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1995년 이후 세계 맥주 시장에는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구체적으로, 오랫동안 전 세계 상위 5위권 안에 거의 빠짐없이 모습을 보여온 영국이 사라진다. 그리고 브릭스의 한 국가인 브라질이 4위로 치고 올라오고, 푸틴 대통령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러시아가 5위의 자리를 탈환한다. 그리고 일본은 6위로 약간 하락한다.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4세는 "보리, 홉, 물 세 가지 재료만으로 맥주를 양조해야 한다"는 법령을 공포했다. 이는 맥주 제조가 제멋대로 부정하게 이루어지곤 하던 일을 단속하기 위한 조치로 1516년의 일이다. 이들 세 가지 맥주 제조 원료에 더해 ‘효모’가 네 번째 맥주 재료로써 정식으로 추가된 것은 1906년에 이르러서였다. 바이에른 맥주의 품질이 월등해진 것은 맥주 순수령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 법령은 EU 지역 내에서 비관세장벽으로 규정되어 합법적이지 않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여전히 순수령을 따라 맥주를 양조하고 있다. 보리 맥아만으로 제조한 맥주는 ‘올 몰트(All Molt)’ 또는 ‘100퍼센트 맥아’ 맥주라고 한다.

맥아와 부원료(malt, adjunct)

곡물이 싹을 틔우면 곡물 내에 녹말을 분해하는 효소 아밀라아제가 생겨난다. ‘맥아’는 싹이 난 곡물을 말린 것이다. 맥아를 빻아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아밀라아제가 녹말을 포도당이나 엿당으로 변화시킨다. 이로써 효모가 발효할 수 있는 ‘맥아즙’이 만들어진다.
보리 맥아가 맥주의 주원료이지만 쌀, 옥수수 등 녹말질을 함유한 원료를 20~40퍼센트 혼합해 맥주를 제조하는 나라도 있다. 보리 맥아 이외의 녹말질 원료를 ‘부원료’라고 부른다. 맥주를 제조할 때 부원료를 섞으면 원료비 원가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보리의 질소화합물량이 감소해 상대적으로 가볍고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다.

홉(hop)

오래전부터 곡물로 빚은 술에 식물을 첨가해 맛을 끌어올렸다. 선버들, 서양톱풀, 담쟁이덩굴의 일종인 긴병꽃풀, 샐비어, 백산차, 로즈메리, 노간주나무 열매, 생강, 캐러웨이, 파슬리, 호두나무 열매, 향쑥 등을 주로 사용했으며, 이들을 ‘구르트(Gruit)’라고 한다. 야생 홉도 간간이 쓰였으나 홉을 재배해 맥주 제조에 처음 첨가한 것은 11세기 독일에서였다. 홉은 구르트의 쓴맛에 비해 상쾌한 맛을 냈다. 홉의 탁월함은 그 맛과 더불어 홉의 미생물이 지닌 향균 효과에도 있었다. 당시 양조가들은 잡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홉의 효능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물(water)

주요 양조장이 위치한 곳의 물을 분석해 보면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맥주 유형과 물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 버튼온트렌트의 물에는 황산칼슘이 많다. 황산이온은 맥주의 맛을 담백하게 하고 홉의 쓴맛을 살려 주는 역할을 하여 강한 맛의 페일 에일을 양조하는 데 적합하다. 아일랜드 더블린과 영국 런던은 다크 에일, 독일 뮌헨은 다크 라거로 유명하다. 더블린, 런던, 뮌헨의 중탄산염을 함유한 일시경도가 높은 물은 짙은 색 다크 비어를 제조하는 데 알맞다. 그리고 칼슘, 마그네슘 등 미네랄 이온이 들어 있지 않은 연수는 색이 연한 라거를 만들어 낸다. 체코 필젠(플젠)의 담색 라거가 대표적이다. 양조업자의 기술과 별도로 그 지역 물의 특성이 맥주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효모(yeast)

고대 수메르인은 이미 발효를 진행한 항아리에 찌꺼기가 남아 있을 때 빵과 물을 섞어 다시 부어 주면 발효가 더 빨리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항아리 밑바닥에 내려앉은 찌꺼기, 침전물이 바로 효모다.
덴마크 미생물학자 에밀 한센은 덴마크 칼스버그 연구소에서 효모 순수배양법을 확립하고 순수하게 분리해 낸 발효 효모에 ‘사카로미세스 카를스베르겐시스(Saccharomyces carlsbergensis)’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1883년의 일이다. 이것이 하면 발효 맥주의 효모다. 참고로 일본 전통주, 미주, 소주, 상면 발효 에일이나 스타우트, 위스키 등에 쓰이는 발효 효모는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Saccharomyces cerevisiae)’라고 한다.

상면 발효 맥주(top fermenting beer)

냉동기가 발명되기 전, 다시 말해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맥주는 상면 발효 맥주였다. 그러니 상면 발효 맥주의 역사는 2,000년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에일, 스타우트, 포터, 벨기에 전통 맥주, 독일 쾰슈, 알트, 바이스 등이 모두 상면 발효 맥주에 속한다. 에일을 예로 들어 보면, 에일은 20~25도 정도인 상온에서 발효시키고 주 발효를 4~5일만에 끝낸다.

자연 발효 맥주(spontaneous fermeneting beer)

자연 발효는 일반적으로는 상면 발효에 속하지만 면밀히 따지면 상면 발효와 다른 양조법이다. 고대 수메르인이 빚은 맥주가 자연 발효 맥주다. 즉 효모를 인위적으로 주입해 발효를 유도하지 않고 공기 중에서 섞여 들어오는 미생물에 발효를 맡기는 방법이다. 벨기에 전통 맥주 람빅은 여전히 자연 발효법으로 생산되고 있다.

하면 발효 맥주(bottom fermenting beer)

독일 바이에른 지역은 대륙성 기후로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그러다 보니 뜨거운 여름날 맥주를 양조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겨울에 담근 맥주를 8~12도 저온에서 발효시킨 후 지하 저장고에서 얼음과 함께 가을까지 보관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주 발효가 끝난 후 발효통 바닥에 효모가 가라앉는데, 이를 모아 술밑으로 사용해 양조하는 맥주가 하면 발효 맥주다.
16세기 중반에 완성된 하면 발효 맥주 양조법으로 제조되는 맥주가 라거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제조되고 소비되는 맥주다. 상면 발효 맥주의 대표로 에일, 하면 발효 맥주의 대표로 라거를 들어 비교하면, 에일은 상온에서 단기간 제조되는 반면 라거는 저온에서 장기간 저장해야 한다(‘라거(Lager)’는 독일어로 ‘저장’이라는 뜻이다).

(1) 상면 발효 맥주

페일 에일(pale ale)

영국의 대표적 공업 도시 버튼온트렌트는 페일 에일의 원산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페일 에일을 ‘버튼 에일’이라고도 부른다. 버튼온트렌트 지역의 지하수에는 황산칼슘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경도가 높은 이 지역 물이 홉의 톡 쏘는 쓴맛을 도드라지게 만들어 버튼 에일만의 맛으로 정착되었다. ‘옅은 색’이라는 의미의 ‘페일(pale)’을 붙인 것은 영국에서 오래 전부터 인기를 끌었던 흑맥주(스타우트, 포터)의 짙은 색에 비해 상대적으로 색이 옅기 때문이다. 페일 에일은 짙은 호박색이어서 필스너의 담색에 비해 훨씬 짙다. 페일 에일의 원맥 즙 농도는 11~13퍼센트, 알코올 함유량은 3~4퍼센트다.

비터 에일(bitter ale)

비터 에일은 펍에서 판매되는 생맥주를 말하며, 통칭 ‘비터’라고 한다. 버튼 에일이 인기를 얻어 가자 버튼 에일을 흉내 낸 에일이 각지에서 제조되기 시작했다. 이에 버튼은 버튼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된 맥주를 ‘페일 에일’로 부르는 데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페일 에일은 버튼 에일의 대명사가 되었고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맥주는 ‘비터 에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편 버튼 에일은 병맥주로 해외로 수출되곤 한 반면 비터 에일은 나무통에서 숙성시킨 채로 나무통에 담겨 국내에서 유통되고 펍에서 소비되었다. 따라서 비터 에일은 ‘나무통 생맥주’라는 의미도 지닌다. 비터 에일은 페일 에일에 비해 원맥 즙 농도가 약간 낮고 홉의 특성이 한층 도드라져 드라이하다.

스카치 에일(Scotch ale)

스카치 에일은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는 에일을 말하며 스트롱 에일의 대명사다. 원맥 즙 농도가 높고 알코올 도수는 7~8도여서 중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흑갈색 맥주다. 지금은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주로 생산된다.

마일드 에일(mild ale)

마일드 에일은 영국 중부 철강업 중심 도시 맨체스터 노동자의 갈증 해소용 맥주다. 마일드 에일은 짙은 호박색에서 까만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고 비터에 비해서는 색이 진하다. 원맥 즙 농도가 7~8퍼센트로 낮은 편인 데다 적당한 감칠맛, 맥아 본연의 달콤함이 있으며 쓴맛은 약해 노동자가 가볍게 목을 축이거나 맥주 초보자에게 적합한 에일로 알려졌다. 보통 펍에서 생맥주로 팔린다.

브라운 에일(brown ale)

브라운 에일은 마일드 에일을 병에 담아 파는 맥주로, 마일드 에일보다 원맥 즙 농도가 좀 더 낮고 좀 더 달콤한 맛을 낸다. 브라운 에일의 달콤한 맛은 제조 공정에서 나온다. 브라운 에일은 주 발효가 끝났을 때 당을 첨가해 숙성시킨 후 당분이 남은 상태에서 병에 담아 가열 살균하는 과정을 거친다.

포터(Porter)

이스트런던 쇼디치의 벨 양조자 주인 랠프 하우드는 오래된 브라운 에일과 새로 담근 브라운 에일에 페일 에일을 섞은 맥주를 개발했다. 3종 에일을 섞은 이 신제품 ‘하우드 블렌드’가 세상에 선보인 것은 1722년의 일인데, 이것이 바로 ‘포터’다. 진한 맛에 저렴한 가격으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포터는 런던의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며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담색 버튼 에일에 밀려 20세기 시작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 포터가 최근 덴마크와 미국을 중심으로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특히 펍 양조장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스타우트(Stout)

18세기 중반 런던 포터가 아일랜드로 수출되기 시작해 인기를 얻자 더블린을 대표하는 맥주 회사 기네스가 독자적인 포터 양조법을 개발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기네스의 이러한 노력으로 탄생한 맥주가 ‘스타우트’다. 스타우트는 홉 첨가량이 높은 데다 까맣게 태운 보리를 사용해 강렬한 색감에 풍성한 맛을 지녔다. 스타우트를 ‘포터의 재탄생’이라고 보기에는 그 맛과 향이 포터와 완전히 달랐다. 근본적인 차이는 제조 과정에 있었다. 스타우트는 보리 맥아 80퍼센트에 태운 보리 15퍼센트, 플레이크 상태 보리 5퍼센트를 혼합한다. 스타우트의 하얗고 풍성한 거품은 플레이크 상태 보리가 만들어 낸 것이다.

발리 와인(barley wine)

발리 와인은 영국에서 제조되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를 흔히 일컫는다. 발리 와인은 원맥 즙 농도가 25퍼센트 이상, 알코올 함유량은 12퍼센트 가까이 된다. 색깔은 적갈색에서 암갈색에 이르며 풍부한 과일향에 달콤한 맛을 지닌 묵직한 맥주다. 6개월 정도 저장해야 하는데, 이때 효모가 통 아래 가라앉으므로 이따금씩 통을 흔들어 효모를 떠오르게 해야 한다.

임페리얼 스타우트(Imperial stout)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18세기 후반 영국 양조장 바클레이퍼킨스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정에 특별 제조해 납품한 스트롱 에일의 일종이다. ‘러시아 스타우트’라고도 불리는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원맥 즙 농도 24~24.5퍼센트, 알코올 함유량 8.4~10.5퍼센트에 이르는 암갈색 발리 와인으로, 러시아 황제 예카테리나 2세에게 각별히 사랑받았다.

쾰슈비어(Kölschbier)

쾰슈비어는 독일 쾰른에서 생산되는 상면 발효 맥주다. 밝은 호박색에서 황금색에 이르는 쾰슈는 원맥 즙 농도 11~12퍼센트, 알코올 함유량 4퍼센트 정도로 보통 독일 맥주보다 연하고 쓴맛이 약하다. 목 넘김이 좋고 뒷맛이 무척 깔끔하다. 쾰슈는 세계 맥주 중 유일하게 원산지 통제 명칭을 허가받은 맥주로 쾰른 이외 지역에서 만든 맥주에는 ‘쾰슈’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알트비어(Altbier)

알트비어는 독일 라인강변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도시 뒤셀도르프의 상면 발효 맥주다. ‘알트(alt)’는 독일어로 ‘오래된’이라는 의미지만 그렇다고 알트비어가 오랫동안 묵힌 맥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독일에서는 12세기 무렵부터 영국 에일 제조법을 활용한 정통 맥주를 만들어 왔다. 당대 영국 맥주는 맥주의 본가이자 양조법의 종주국으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누리고 있었기에, 알트비어는 ‘영국 전통 양조법을 충실하게 지켜 만든 정통 맥주’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므로 알트는 ‘전통적’ 혹은 ‘정통’이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 알트비어는 자홍색에 구릿빛 갈색을 섞은 듯한 색감이 특히 아름답다. 특유의 가늘고 긴 잔에 따라 마시면 상면 발효 효모의 고급스러운 향을 느낄 수 있다. 원맥 즙 농도 12퍼센트에 깊은 맛과 쓴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진다.

바이첸비어와 베를리너 바이세(Weizenbier, Berliner Weisse)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생산하는 바이첸비어는 밀로 만든 맥주다(‘바이첸(Weizen)’은 독일어로 ‘밀’을 의미). 독일인의 자부심이 가득한 상면 발효 맥주 바이첸비어의 밀 배합률은 50~70퍼센트다. 남부 독일의 바이첸비어는 ‘효모가 들어간 바이첸’과 효모를 걸러낸 ‘크리스털 바이첸’ 두 종류가 있다. 효모가 들어간 바이첸은 주 발효가 끝난 뒤 당분과 효모를 추가해 후발효 하는 방식으로 생산된다. 후발효는 20도에서 2주 동안 진행시킨다. 밀 특유의 풍미와 산미에 더해 탄산가스의 상쾌함 때문에 인기가 높다.

북부 독일 베를린에도 밀로 만든 맥주 ‘베를리너 바이세’가 있다. 베를리너 바이세는 보리 맥아 75퍼센트에 밀 맥아 25퍼센트 정도로 혼합하는데, 남부 독일의 바이첸비어에 비하면 밀 배합률이 낮은 편이다. 원맥 즙 농도 7~8퍼센트, 알코올 함유량 2~3퍼센트다. 후발효 과정 중 젖산균 배약액을 혼합한 데서 오는 신맛은 베를리너 바이세의 특징이다. 베를리너 바이세는 와인 잔처럼 아가리가 넓고 다리가 달린 전용 잔에 마신다. 여기에 ‘슈스(Schuss)’라고 하는 나무딸기즙이나 허브 에센스를 섞는다. 과일즙이 맥주의 신맛과 어우러져 새콤달콤한 청량음료 같은 느낌을 준다.

벨기에 상면 발효 맥주(Belgian ale)

벨기에 에일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도입한 기술로 양조한 상면 발효 맥주다. 여기에 벨기에 전통 양조 기술을 접목해 독자적 기술을 발전시켰기에 영국 에일이나 스타우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맥주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드코닉(De Koninck)

드코닉 사는 벨기에 제2의 도시 안트베르펜이 자랑하는 유일한 양조장이다. 이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단 하나의 제품이 ‘드코닉’이다. 알코올 함유량 5.2퍼센트, 맥아 100퍼센트에 체코산 사츠 홉을 사용한다. 15~20도 상온에서 발효 후 냉온에서 저장하며 관리한다. 제품은 가열 살균을 거치지 않고 여과만 한 생맥주다. 새하얀 거품 때문에 적갈색 맥주 색깔이 한층 선명하게 느껴진다. 에스터 향이 적절하게 풍기고 목 넘김이 좋으면서도 미묘하게 이질적, 매혹적인 맛이 난다.

― 호가든 화이트(Hoegaarden Wit)

호가든은 벨기에 중부 브라반트주 루뱅에서 동쪽으로 18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호가든은 밀을 이용해 화이트 비어를 양조해 왔다. 맥아 50퍼센트와 미발아 밀 50퍼센트, 홉에 더해 퀴라소와 코리앤더를 솥에 넣고 끓이는 독특한 방식으로 양조한다. 코리앤더와 퀴라소가 호가든의 매력적인 맛의 비결이다. 20도에서 5~7일간 주 발효를 진행하고 원심 분리하여 효모를 걷어 낸다. 이후 18도에서 7일간 보관하며 설탕과 효모를 첨가하고 다시 24도에서 1주일간 관리한다. 색이 하얗고 탁하며 에스터 향과 유사한 향이 풍긴다. 새하얀 거품이 풍성하고 부드러운 데다 효모 맛에 더해 시큼함도 느껴진다.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매력적인 맛을 지닌 맥주다.

― 로덴바흐(Rodenbach)

벨기에 서부 플랑드르의 작은 마을 루셀라레에서 알렉산더 로덴바흐가 한 양조장을 인수해 맥주 회사를 창업했다. 1820년의 일이다. 로덴바흐 맥주는 영국 에일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지만 자연 발효 방식으로 양조하는 로덴바흐는 와인 빛깔이 돈다. 자연 발효 람빅이 그렇듯, 나무통에서 숙성하는 2년 동안 나무통 틈새에 서식하는 각종 미생물로 인해 독특한 맛과 향이 만들어진다.

― 리프만스(Liefmans)

벨기에의 유서 깊은 도시 아우데나르더에는 벨기에 브라운 에일의 본가라고 할 수 있는 리프만스 양조장이 있다. 리프만스의 양조법은 담금 시간이 무척 길다는 특징이 있다. 우선 맥아즙을 24시간 동안 끓인 후 냉각시킨다. 리프만스 맥주는 양조장 내 미생물을 이용하는 자연 발효 맥주인데 다른 효모도 물론 첨가한다. 주 발효를 거친 미숙성 맥주는 상온에서 8~10주간 숙성시킨다. 이후 당분과 효모를 넣고 병에 담아 다시 6개월 동안 숙성시킨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맥주가 ‘리프만스 구덴반트(Liefmans Goudenband)’다. 리프만스 구덴반트는 12~15도에서 보관하고 4~5년 정도 지났을 때 최고의 맛을 낸다. 브라운 에일이라고 하는 만큼 맥주 색깔은 갈색이다. 드라이하면서도 깊고 풍성한 맛, 시큼한 맛이 잘 어우러져 있으며 뒷맛 또한 깔끔하다. 세계 제일의 브라운 에일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한 풍격을 갖춘 맥주다.

리프만스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걸작은 프루트 비어(fruit beer)다. 브라운 에일을 바탕으로 체리나 나무딸기를 담가 발효시켜 만든다. 체리를 넣은 맥주가 ‘리프만스 크릭(Lifmans Kriek)’, 나무딸기를 넣은 맥주가 ‘리프만스 프랑보아즈(Liefmans Framboise)’다.

― 듀벨(Duvel)

‘악마’라는 뜻의 그 이름처럼 듀벨은 예사롭지 않은 매력을 잔뜩 갖춘 맥주다. 맥아즙 농도 13~14퍼센트. 원심 분류하여 발효와 저장을 일체화한 탱크로 보낸다. 이후 프라이밍(priming) 공정을 거치며 효모를 첨가하고 병에 담아 숙성시킨다. 22도 창고에서 15일간 숙성시킨 후 5도로 유지되는 창고로 옮겨 6주간 안정화시킨다. 이렇게 해서 시장에 내보낸 뒤 9개월이 더 지나야 2차 발효가 완전히 끝난다고 한다. 듀벨 맥주의 맛이 가장 좋은 때는 2~3년 후다. 선명한 호박색이 아름다우며, 알코올 함유량 8.2퍼센트인데도 도수가 높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목 넘김이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도 오래 유지된다.

트라피스트 맥주(Trappist beer)

트라피스트 맥주는 수도원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맥주를 일컫는다. 중세부터 유럽 수도원 부속 양조장에서는 세 종류 맥주를 만들어 온 전통이 있었다. 귀빈에게 접대하기 위한 최고급 맥주, 수도사들이 수도원 내에서 소비하는 맥주, 순례자 또는 빈민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맥주의 세 종류다. ‘트라피스트 맥주’라는 호칭은 수도원에서 제조한 맥주에만 사용할 수 있다. 오늘날 대기업은 더는 직접 양조를 하지 않는 수도원에게서 양조 허가권을 얻어 트라피스트 유형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이를 ‘애비 비어(Abbey Beers)’라고 한다.

(2) 자연 발효 맥주

람빅(Lambic)

람빅은 브뤼셀 서쪽 파요텐란트(Pajottenland) 지역에서 생산되는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맥주다.

람빅은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10월 말쯤부터 이듬해 4월까지 담금을 한다. 발효에 필요한 이 지역의 미생물상이 겨울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리 맥아 60~70퍼센트에 미발아 밀 30~40퍼센트를 혼합하고 2~3년간 저장해 둔 홉을 넣는다. 이 부분에서 오래된 홉을 사용하지 않는 라거 맥주와 차이가 있다. 람빅은 산미가 강하다. 따라서 홉의 쓴맛은 필요 없고 홉의 항균 작용만 필요하기 때문에 오래된 홉을 넣는 것이다. 비발효성 당인 덱스트린을 남기는 당화 방법을 사용하는 것 또한 람빅의 담금 공정에서 주목할 점이다. 이는 제2차 발효에서 브레타노미세스 속 효모의 활동을 촉진해 알코올 함유량을 높이고 람빅에 독특한 맛과 향을 부여하여 완벽하게 당을 제거한 드라이 맥주로 완성시키기 위해서다. 람빅은 다양한 미생물 집합체처럼 보이기도 하나 알고 보면 각각의 미생물이 생애 주기에 따라 질서 있게 나타나 활동하고 역할을 마치면 자연 소멸한다. 2년 동안 이어지는 람빅의 제조 공정은 자연이 치밀하게 연출하는 한 편의 드라마다. 산미가 강한 람빅을 그대로 마시기는 힘들다. 그래서 오래 숙성시킨 람빅과 새로 담근 람빅을 한데 섞어 병에 담아 코르크 마개로 밀봉해 재발효시킨다. 이를 ‘괴즈(Gueuze)’라고 한다.

람빅을 좀 더 마시기 좋도록 새로 담근 람빅에 과일을 넣어 나무통에서 재발효시킨 ‘프루트 람빅(Fruit Lambic)’이 있다. 프루트 람빅 중 ‘크리켄람빅(Krieken-Lambic)’은 여름에 수확한 검은 체리를 새로 담근 람빅에 통째로 넣어 재발효시킨 람빅이다. 나무딸기, 복숭아, 블랙베리, 포도 등을 넣은 프루트 람빅 전통은 중세부터 이어져 왔다. 과일의 특징이 잘 어우러진 맛있는 맥주 칵테일이다.

(3) 하면 발효 맥주

라거 맥주(lager beer)

15세기 무렵 뮌헨에서 탄생한 하면 발효 맥주는 저온에서 오랫동안 저장하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독일 바이에른 지역 맥주에 지나지 않던 하면 발효 맥주가 뛰어난 품질의 저온 발효, 저온 저장 맥주로 거듭나면서 19세기에 접어들어 인기가 치솟았다. 그러자 맥주의 선배 격인 영국이 뮌헨 맥주를 ‘저장하는 맥주’, 즉 ‘라거 맥주’라고 불렀다(독일어에서 ‘저장하다’라는 의미의 단어 ‘라게른(lagern)’에서 ‘라거(lager)’라는 명칭이 나왔다고 본다). ‘뮌헨 맥주’라고 부르지 않고 그저 ‘저장하는 맥주’라고 한 것에는 영국인의 시기심과 업신여김이 다소 혼합되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결국 하면 발효 맥주는 ‘라거 맥주’로 일반화되었다.

필스너(Pilsner, Pilsner-style beer)

체코 필젠(플젠)의 양조가들이 단결하여 시민 양조장을 세우고 바이에른의 양조가 요제프 그롤을 초빙해 뮌헨 하면 발효 맥주 개발에 착수했다. 1840년대 초의 일이다. 필젠의 양조가들은 숙성이 다 되어 완성된 맥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진한 색깔의 뮌헨 맥주와 달리 옅은 호박색 맥주가 잔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색깔이 다른 만큼 맛 또한 뮌헨 맥주의 중후함과는 전혀 달랐다. 시원하고 상쾌하면서도 강렬한 맛의 필젠 맥주는 이렇게 탄생했다. 필젠 맥주는 즉시 유럽 주요 도시에서 큰 인기를 얻어 나갔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이 필젠 타입 맥주를 생산했다. 필젠 타입 담색 맥주가 전 세계를 휩쓸자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가던 뮌헨 맥주 기업들도 담색 맥주 양조에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뮌헨에서 탄생한 담색 맥주에 ‘필스너’라는 이름을 붙였다. 필젠 타입 맥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맥주다.

빈 맥주(Vienna-style beer)

19세기 유럽에서는 세 라거 맥주가 매우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바로 뮌헨 맥주, 빈 맥주, 필젠 맥주다. 그러나 비엔나 맥아를 사용한 적갈색 빈 맥주는 필젠 맥주의 폭발적인 인기에 밀려 19세기 말부터 쇠퇴하기 시작해 20세기 중엽에는 유럽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래도 빈 맥주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인정되는 맥주가 아직 남아 있다. 그 하나는 빈 맥주의 창시자 안톤 드레어의 제자가 드레어의 기술을 응용하여 개발한 메르첸비어다. 빈 맥주의 또다른 전통은 멀리 떨어진 멕시코에서 계승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동생 막시밀리안 1세는 1864년 멕시코 황제로 즉위했다. 막시밀리안 1세는 멕시코로 떠나면서 빈 맥주를 가져갔고, 현지에서 빈 맥주의 전통을 잇는 맥주가 만들어졌다. ‘노체 부에나(Noche Buena)’, ‘도스 에키스(Dos Equis)’ 등이 빈 맥주 계열인데, 아메리칸 타입 ‘코로나 엑스트라(Corona Extra)’가 미국 수입 맥주 중 1위를 할 정도로 인기를 끌며 빈 타입 맥주는 점점 밀려나는 추세다.

뮌헤너(Münchener, Munich beer)

독일 뮌헨이 ‘맥주의 도시’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7세기 전반에 일어난 30년 전쟁 이후의 일이다. 중세 뮌헨의 평범한 시민이 일상적으로 마시던 술은 와인이었고 맥주는 왕과 귀족 등 상류 계층과 성직자만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30년 전쟁으로 남독일의 비옥한 포도밭이 파괴되면서 많은 와이너리가 맥주 양조장으로 전향했다. 전통 뮌헨 맥주는 다크 비어였으나 필젠 타입 담색 라거가 유행하면서 뮌헨 맥주의 명맥이 끊기는 듯했다. 그러다 20세기 초 슈파텐 사가 담색 맥주 개발에 성공하며 뮌헨 맥주의 명성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오늘날 뮌헤너는 필젠 타입이지만 전통 뮌헨 맥주의 맛을 간직하고 있다. 홉의 쓴맛보다는 맥아 고유의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 특징이다.

도르트문더(Dortmunder, Dortmund beer)

13~15세기 한자동맹의 유력 도시 도르트문트는 독일 최대 맥주 생산, 소비 도시로 손꼽혔다. 도르트문트는 생산된 맥주를 여러 도시로 보내서 팔았는데, 당시 덜컹거리는 마차에 실려 오랜 시간 운송되는 맥주는 기본적으로 오래 버틸 수 있어야 했다. 도르트문트는 장기 보존 가능한 맥주를 제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도르트문트의 수출용 맥주 ‘도르트문더 엑스포트(Dortmunder Export)’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도르트문더 엑스포트는 지금도 프리미엄 맥주를 대표한다. 원맥 즙 농도는 13.5퍼센트로 필스보다 살짝 높으며 진한 호박색에 쌉쌀한 맛이다. 도르트문트 맥주는 쓴맛이 강한 북독일 맥주와 맥아 고유의 맛을 살려 부드러운 남독일 맥주의 중간 정도로 보면 된다.

헬레스(Helles)

1876년 독일 공학자 카를 폰 린데는 암모니아를 냉매로 사용하는 냉동기를 발명했다. 린데가 발명한 냉동기 제1호기는 뮌헨 슈파텐 양조장에 설치되었다. 슈파텐 양조장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가 냉동기 발명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덕분이었다. 냉동기는 뮌헨의 라거 맥주를 맥주의 왕좌에 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1894년 슈파텐 양조장은 뮌헨 양조장 중 맨 처음으로 담색 맥주를 개발했고 1920년대에는 파울라너 양조장도 담색 맥주 개발에 성공했다. 이것이 독일 필스의 탄생이다.

‘헬레스(Helles)’는 ‘투명’ 혹은 ‘담색’이라는 의미로, 독일의 담색 라거 맥주를 가리킨다. 원맥 즙 농도는 11~12퍼센트이고 쓴맛도 보통이어서 마시기 좋은 맥주에 속한다. 필스의 동생 같은 라거 맥주다.

둥켈(Dunkel, Dunkels Bier)

독일에서 하면 발효 흑맥주는 ‘둥켈’ 또는 ‘둥켈레스’라고 불린다. 흑맥주라지만 완전히 새까만 것은 아니고 흑갈색에 가깝다. 흑맥주는 오래전 북바이에른 프랑켄(Franken) 지역에서 활발히 양조되었는데 태운 보리나 맥아를 사용하기 때문에 흑갈색을 띤다. 원맥 즙 농도는 13퍼센트로 필스와 비슷하며 쓴맛을 억제해 둥켈만의 은은한 단맛이 느껴진다. 뮌헨 근교 클로스터 안덱스 수도원의 둥켈은 알코올 함유량 5퍼센트에 붉은빛이 감도는 짙은 갈색으로, 태운 보리향이 나며 드라이하다.

보크 비어와 도펠보크(Bock bier, Doppelbock bier)

북독일 하노버에서 남쪽으로 5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아인베크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14세기 전후부터 아인베크 길드가 생산한 맥주는 품질이 탁월해 유럽 맥주 애호가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이후 16세기 말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6세도 아인베크 맥주를 즐겨 마셨다. 아인베크 맥주 수입 비용이 치솟자 빌헬름 5세는 궁정 부속 양조장에서 아인베크 맥주를 양조하기로 결심했다. 오늘날에도 그 명성이 자자한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이렇게 설립되었다. 1591년의 일이다. 그리고 뮌헨에서 아인베크 맥주는 ‘보크 비어’라고 불렸다. 보크 비어는 원맥 즙 농도 16~18퍼센트 흑맥주인데 담색도 있다. 에스터나 과일향, 맥아의 맛과 향이 느껴지고 홉의 쓴맛도 강하다. 고전적 고급 맥주라고 할 수 있다.

도펠보크 비어는 원맥 즙 농도 18~20퍼센트까지, 알코올 함유량을 8퍼센트까지 끌어올린, 보크 비어보다 강하고 진한 맥주이며, 고전적인 고급 맥주다. 예전에 수도원 수도사들이 사순절 금식 기간에 유일하게 섭취할 수 있는 액체가 도펠보크 비어였다. 따라서 도펠보크 비어는 수도사들의 영양 보충제이자 생명수였기에 ‘액체 빵’이라 불렸다. 뮌헨 파울라너 수도원 양조장에서 만든 ‘살바토르’는 도펠보크 비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보크보다 더 진한 맥주가 ‘도펠보크 비어’로, 원맥 즙 농도가 18퍼센트가 넘는다. 옛날에 수도원에서 부활 주일 전 사순절 금식 기간에 수도사들이 유일하게 섭취할 수 있는 액체, 즉 ‘액체 빵’이었다. 가장 유명한 상표는 ‘살바토르(Salvator)’로, 도펠보크 비어의 원조다.

메르첸비어(Märzenbier)

뮌헨 하면 발효 맥주는 더운 여름철을 피해 기온이 낮아지기 시작하는 9월 29일(대천사 축일)부터 이듬해 4월 23일(성 제오르지오 축일) 사이에 담갔다. 특히 겨울의 막바지로 볼 수 있는 3월에 담그는 맥주(메르첸비어)는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버틸 수 있도록 항균 작용이 뛰어난 홉을 더 많이 첨가하며 정성 들여 만들었다. 이후 19세기 말에 이르러 메르첸비어는 빈 맥주 제조 기술을 도입해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메르첸비어의 자갈색은 비엔나 맥아를 사용한 결과이기에 메르첸비어와 빈 맥주는 동의어로 간주된다. 오늘날 메르첸비어는 원맥 즙 농도 13퍼센트, 알코올 함유량 5퍼센트 정도, 맥아 고유의 깊은 맛을 간직한 프리미엄 맥주로 인정받는다.

라우흐비어(Rauchbier)

북바이에른의 밤베르크는 오래전부터 뮌헨에 버금가는 맥주 양조 도시로 정평이 자자했다. 삼림이 풍부한 밤베르크에서는 너도밤나무를 태워 맥아를 건조시켰기 때문에 맥아에 너도밤나무를 태운 향이 스며들었다. 이 향은 당연히 맥주에도 담겼다. 독일어 ‘라우스(Rauch)’는 ‘연기’를 뜻한다. 라우흐비어의 향은 이탄(泥炭)을 태워 건조시킨 스카치 위스키의 스모키 향과 유사하다. 너도밤나무 외에 떡갈나무나 오리나무를 태우기도 하는데 각각 독특한 향을 풍긴다. 라우흐비어에 곁들이는 음식으로는 훈제 요리가 잘 어울린다고 한다. 최근에는 위스키 맥아나 알래스카 오리나무를 활용한 훈제 맥아로 담그는 맥주도 등장했다.

라이트 비어(light beer)

유럽에서 맥주에 ‘라이트’라는 말을 쓸 때는 맥주 색이 엷은 것을 지칭한다. 즉 유럽 맥주 라벨에 ‘라이트’라고 쓰여 있으면 색이 밝은 맥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 미국에서 라이트는 칼로리가 낮은 맥주를 의미한다.

다이어트 맥주(diet beer)

라이트 비어가 일반인을 위한 다소 칼로리 낮은 맥주라면, 다이어트 비어는 당뇨병 환자 등 칼로리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맥주다. 20세기 중엽 독일에서 제조되기 시작했다.

무알코올 맥주(non-alcohol beer)

현행 주세법에 따르면 알코올 함유량이 0퍼센트인 무알코올, 1퍼센트 미만인 비알코올일 경우 음료로 분류되어 주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그래서 맥주에서 알코올만 선택적으로 추출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알코올 함유량 0.5퍼센트 미만의 맥주가 탄생했다. 이를 ‘알코올 프리 맥주(alcohol free beer)’라고 한다. 무알코올 맥주는 알코올 성분은 전혀 없으면서 맥주 향과 맛을 내는 음료다.

아이스 비어(ice beer)

예전에 미국의 한 석유정제 회사가 고농도 맥주를 개발한 적이 있다. 맥주를 살짝 얼려 살얼음을 거둬 낸 후 맥주를 농축시켜 마시고 싶을 때 물에 희석하여 마시게 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아이스 비어는 이와 유사한 제조 과정을 거친다. 살얼음 부분에 맥주의 불쾌한 맛을 내는 물질이 몰린다는 것을 깨달은 후 이를 제거하여 더욱 깔끔하고 목 넘김이 좋은 맥주를 만들고자 했다.

4. 기타 맥주

(1) 고전 맥주

시카루(Sikaru)

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문명을 꽃피운 수메르인은 관개농법을 개발해 곡물을 수확한 뒤 발아시킨 보리와 밀로 빵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이 빵을 따뜻한 물에 풀어 선버들 등의 약초를 넣고 끓인 다음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킨 후 위쪽에 고인 맑은 술을 빨대로 마셨다. 이것이 최초의 맥주 ‘시카루’다.

치차(Chicha)

치차는 15~16세기에 남아메리카에서 대제국을 일군 잉카인이 마시던 옥수수 맥주다. 잉카제국 각지에서 선발된 건강하고 아름다운 열 살 전후 소녀들이 제국의 수도 쿠스코의 궁전으로 보내졌다. 이 ‘선택받은 소녀들’이 맡은 일 가운데 특히 중요한 일이 치차를 빚는 것이었다. 치차는 ‘씹어 만든 술’이다. 옥수수를 삶은 후 소녀들이 충분히 씹어 항아리에 뱉는다. 여기에 물을 넣고 가열한 후 이틀 정도 숙성시키면 술이 된다. 이렇게 ‘씹어 만든 술’은 고대 일본에도 있었다. 밥을 지어서 씹은 뒤 뱉어 놓으면 침 속 아밀라아제가 녹말을 당화시키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생물이 발효를 일으킨다. 일본어에서 ‘양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카모스(醸す)’는 ‘씹다’라는 의미의 ‘카무(嚙む)’에서 나온 단어다.

크바스(Kvass)

크바스는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오늘날의 폴란드, 러시아, 리투아니아 등 동북유럽 지역에서 가장 일반적인 음료였다. 각 가정마다 고유의 제조법으로 크바스를 만들곤 했으며 그 비법은 어머니에게서 딸로 전수되었다.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만든다. 호밀빵을 찢어 냄비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 3~4시간 둔다. 이후 건더기를 걸러낸 후 설탕, 빵 효모와 더불어 맛을 돋우는 포도, 사과 등을 넣고 병에 담는다. 차가운 곳에서 2~3일 동안 숙성시키면 완성되는 크바스의 알코올 도수는 2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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