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나이토 히로후미
1961년생. 대학을 졸업한 뒤 출판사
근무를 거쳐 현재 역사서 저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양사부터 동아시아사· 예술·종교까지 폭넓은 분야에 통달했으며, 열정적으로 집필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동시에 종합 시사 잡지에 원고를 기고하는 등 지적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지은 책에 『유럽 왕실로 본 세계사』 『세계사로 깊어지는 클래식 명곡』 『세계사로 풀어내는 명화의 비밀』 『‘반도’의 지정학 ― 크림반도, 한반도, 발칸반도는 왜 세계의 화약고인가?』 등이 있다.

"와인은 세계로 가는 여권이다."

— 톰 엘크예르(Thom Elkjer)

‘신의 음료’ 와인이 인간의 욕망과 충돌하고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세계사를 바꾼 이야기

바로 그 풍요로운 평민 계급 농민들이 포도나무를 심고 수확해 와인을 양조하고 더불어 즐겨 마시며 수준 높은 문화를 창조했으며, 그 비옥한 문화 풍토 위에서 활발하게 토론하고 정치의식을 고취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고대 그리스 세계를 대표하는 아테네는 그 연장선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피타고라스, 히포크라테스 등의 걸출한 철학자, 수학자, 의사를 배출하며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다. 이것이 바로 와인이 바꾼 세계사 이야기 첫 번째 명장면이다.

‘유럽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명군 카롤루스 대제는 와인의 정치적 의미와 가치를 날카롭게 간파했다. 그래서 그는 활발한 정복 활동과 병행하여 왕국 안에서 와인 양조에 온 힘을 기울였다. ‘기독교의 수호자’로도 불리는 그는 왕국 전역의 교회에 토지를 하사하고 와인 양조를 독려했다.

그가 자신의 통치 시기에 거대한 왕국으로 성장했으나 몹시 불안정한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기독교’와 함께 ‘와인’을 전략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카롤루스 대제는 교회를 이용한 와인 산업 활성화 정책을 통해 부수적인 효과도 노렸다. 성정이 거칠고 다루기 힘든 게르만족을 포도 농사와 와인 생산에 적응시켜 온순한 기질로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카롤루스 대제는 와인을 단순한 상품이 아닌, 왕국 전체의 생존·번영과 밀접하게 관련된 핵심 상품이자 경제의 동맥을 흐르는 ‘혈액’으로 보았으며, 오늘날의 찬란한 유럽 와인 세계의 튼튼한 초석을 놓고 기틀을 다졌다. 이것이 와인이 바꾼 세계사의 두 번째 명장면이다.

나폴레옹 3세는 두 얼굴을 가졌다. 하나는 ‘무능한 독재자’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와인, 그중에서도 보르도 와인을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려놓은 ‘탁월한 마케팅 전문가’라는 얼굴이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헌신한 덕분에 보르도는 오늘날 부르고뉴, 샹파뉴와 더불어 세계 최고 와인 생산지로 자리매김했다. 이것이 와인이 바꾼 세계사의 세 번째 명장면들이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로 30년 전쟁이 끝났을 때 독일의 포도밭 면적은 전성기의 6분의 1도 안 되는 약 5만 헥타르로 줄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른 와인 명산지 알자스는 프랑스의 손에 넘어갔다. 30년 전쟁으로 파괴된 후 영영 복구되지 못한 와인 산지도 많았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포도밭이었던 곳이 곡물을 생산하는 밭이나 사과나무 과수원으로 바뀌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독일 와인은 부흥의 길을 걷지 못했으며,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수 없었다. 이것이 와인이 바꾼 세계사의 네 번째 명장면, 아니 안타까운 장면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은 ‘파리 심판’ 사건으로 보르도·부르고뉴 절대 신화를 무너뜨렸다.

‘파리 심판’ 사건이 일어났다. 1976년의 일이다.

‘파리 심판’은 세기의 대결이었다. 이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명품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맛과 향기, 품질을 겨루어 어느 쪽이 나은지 결정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대결에서 보르도의 샤토 무통 로칠드와 샤토 오브리옹 등이 프랑스산 레드와인으로 제공되었다. 부르고뉴의 명문 와이너리는 화이트와인을 선보였다. 테이스팅 심사위원으로는 모두 프랑스인이 초빙되었다. 미슐랭 별 세 개 레스토랑 오너와 소믈리에,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저명한 와이너리 경영자급 인사 등 내로라하는 와인 업계 거물들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대결에서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세계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보르도와 부르고뉴를 제치고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모두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1위를 차지했다.

‘파리 심판’ 사건을 기화로 한 캘리포니아 와인의 도전과 성공은 전 세계 와인 산업에 큰 변화를 일으켰으며, 와인 문화의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는 와인 세계사를 바꾼 다섯 번째 명장면이라 할 만하다.

와인 한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이 책을 읽다 보면 당신은 ‘신의 음료’ 와인이 인간의 욕망과 충돌하고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물줄기를 바꾼 인류 역사 이야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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