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난 괜찮아. 같은 인간이 동시에 두 공간을 차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아인슈타인의 법칙에 의하면 말이지. 하기야 나한테 몽유병이라도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경부의 말에 의하면 사쿠라이 데쓰오는 내로라하는 플레이보이라고 한다. 아내인 히로코가 몰래 배신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않을까. 곤도 형사가 어젯밤에도 말했다시피 세상은 실로 유혹, 불륜 드라마가 유행하는 시대인 것이다.
아, 그런데요, 부인. 명탐정이란 놈은 온갖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놈입니다. 얼마나 많이 바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명탐정인지 아닌지가 가려지는 겁니다.
"제게는 자존심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긴다이치 선생님, 오해는 말아주세요. 자존심과 자부심은 다른 것이니까요. 저는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에 아쿠쓰와 깨끗이 헤어진 거예요. 그 사람…… 오토리 지요코 씨와 저 사이에는 많은 부분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고 게다가 아쿠쓰의 마음이 저를 떠나 그 사람에게 갔다는 걸 확실히 알았을 때 제 자존심은 더 이상 아쿠쓰에게 매달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거죠. 하지만 원한은 길게 남았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쓰무라 씨는 도련님 같은 성격이라고 들어서 뭔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저, 그 비밀을 알아낸다 해도 그걸 빌미로 그 사람에게 복수한다거나 그 사람을 위협하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어요. 그저 과거에 그 사람에게 진 여자로서 그 사람의 비밀을 알아내 남몰래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거죠. 긴다이치 선생님, 이게 여자의 싸움이란 거예요."
"‘일곱 아이를 낳았더라도 여자에게 마음을 허락지 말라는 말은 너를 가리키는 거다. 조만간 보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라고 말하더니 거리낌 없이 큰소리로 웃으셨습니다. 굉장히 사납고 오싹한 소리였어요."
"오토리 씨, 접니다. 사쿠라이 데쓰오예요. 히로코가 걱정하기에 몰래 당신 뒤를 따라왔습니다. 당신 자리에선 안 보이나 본데 제가 있는 곳에선 확실히 보였어요. 그 할머니, 거품을 내기 전에 뭔가 이상한 걸 찻잔에 집어넣었다고요."
牽强附會,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대어 자기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
긴다이치 코스케의 이 설명이 사실이든 아니든, 아니 분명 사실이겠지만, 우연히도 이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다시로 신키치는 터무니없이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뜻이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 번 과오를 범하면 두 번 다시 구원받을 수 없는 걸까.
말하자면 이것은 파멸형 청년의 마지막 자기현시욕의 발로였던 게 분명합니다.
"아니, 내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냐. 나 언젠가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인간 세상은 가면무도회 같은 거래. 남자도 여자도 다들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외국의 훌륭한 분이 그랬다나? 나 그 말에 너무나 감동했어."
"너 후에노코지 미사 아니야?" "그렇지 않아. 작년 그 남자…… 아, 후에노코지 야스히사 님에게 그런 무참한 짓을 당했을 때, 나 그 남자…… 아니 그분의 딸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 그분 똑똑히 말했는걸. 넌 불륜남의 아이라고."
"죽일 생각은 아니었어. 그저 그 수영장 옆에 데려가서 ‘아빠, 몸이 더러워졌으니까 여기서 목욕하세요’ 하고 말했지. 그랬더니 그 사람 ‘그런가, 그런가’ 하며 양복을 벗고 스스로 수영장 안에 들어갔어. 그러고는 그게 마지막이 되었지. 우후후."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라 할 만한 것은 물론 의외의 범인이겠으나, 실제로 범인의 정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갈등 구조다. 한 여성을 중심으로 정신 사나우리만큼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에서 파생되어 점진적으로 부풀어 오르다 한순간에 폭발해버린 갈등 자체가 이 작품의 모든 것이다. 이는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나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들의 집》 등에서도 볼 수 있는 모티브인데, 특히 긴다이치 시리즈의 후기 작품에 많이 나타난다.
따라서 혈연의 문제, 유전의 문제 등이 다른 것에 앞서는 모티브가 되고 그런 면에서 이들의 복잡한 관계도는 생태계의 먹이사슬과 매우 유사하다. 인간이기 전에 생존과 종족 보존이라는 본능에 충실한 동물에 가까운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인생의 실패자들이고 그림자 속에 머무르는 존재이나, 이 작품에서는 각자 무겁기 짝이 없는 고통과 강인한 의지를 짊어진 채 매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세심히 읽어보면 이들이야말로 이 냉정하고 잔혹한 생태계에서 그래도 뜨거운 감정을 간직한 인간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합리주의 정신과 전통적인 풍모를 모두 지닌 긴다이치는 이들과 쉽게 동화되고 벽을 무너뜨린다. ‘죽을 만큼 죽은 다음에야 사건을 해결한다’는 오명이 따라다니지만, 긴다이치 코스케는 근본적으로 타인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인명을 우선시하는 따뜻한 인물이다.
본편에서는 다소 냉정할 정도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공격성도 보이는데, 이는 오랜 경험에서 얻은 노련함으로 생각된다. 24세에 처음 등장한 이래 세월이 지나 중년이 된 긴다이치 코스케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갖추고 진정한 ‘어른’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탐정이 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가면무도회》는 요코미조 세이시라는 노대가(老大家)가 사회파라는 거대한 조류를 맞으며 어떻게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지켜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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