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에게 바친다

하나레(離) 산 봉우리 근처에 다다랐을 때 두 사람은 위에서 내려오던 이상한 남자와 마주쳤다.

그 남자는 흰 무늬가 있는 홑옷 아래에 서늘한 인상을 주는 연한 옥색의 속옷 띠를 드러낸 채 매미 날개처럼 빛나는 갈색 하카마*를 입고 있었다. 하카마 자락은 풀씨투성이였고, 머리에 쓴 벙거지 모자 아래에는 자연스레 말린 더벅머리가 기름기 없이 참새둥지처럼 비어져 나와 있었다. 발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하얀 여름버선을 신고, 거기에 갈색 끈을 단 짚신을 신고 있었다.

그곳은 동반자살이 자주 벌어지는 장소였다.

올 여름 가루이자와의 산장에 틀어박혀서도 트로이를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이나 크레타 섬에서 미노스의 미궁을 발굴한 아서 에반즈 경의 전기 등을 몰래 다시 읽는 다다히로다.

旧道,구 도로, 혹은 옛길. 옛날부터 있었던 간선도로가 도시 발달과 함께 문제시되어 주요 도로에서 벗어난 도로의 통칭.

후에노코지 야스히사라면 전쟁 전 화족계 출신의 스타로 화제가 되었고, 영화계에서도 으뜸가는 미남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하지만 전쟁 후의 괴롭고 궁핍한 생활 탓일까. 안타깝게도 발견될 당시는 귀족적인 미모는 흔적도 없이 추레한 모습이었다. 갈비뼈를 하나하나 셀 수 있을 만큼 몹시 야윈 몸에 전라에 가까운 차림새로 팔다리를 대자로 벌린 채 수영장 안에 떠 있는 모습은, 송장개구리포를 연상케 하는 비참한 광경이었다.

어쨌거나 그가 야스히사의 죽음을 타살로 보는 근거는…….
야스히사의 시체를 부검했을 때 그의 성기나 음모에서 성교의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오토리 지요코는 메이지부터 다이쇼, 쇼와 초기에 걸쳐 미인화의 대가라 불리던 오토리 지카게(鳳千景)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 우타코(歌子)는 ‘신바시(新橋)의 명기’로 불리던 여자로, 춤의 명수였다. 그녀는 지카게에게 사사하고 일본화를 배우는 사이에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첫 번째 타입은 모험가적인 고고학자로, 스스로 현지에 나가 발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지금부터 1세기 정도 전에 이런 사람들 중에 학자라기보다 채굴업자 같은 인물이 많았다. 1870년대에 트로이를 발굴해 유명해진 하인리히 슐리만 등도 다분히 이런 성향을 갖고 있었다.

두 번째 타입의 고고학자는 순수하게 학구적인 사람들이지만 이것도 두 부류로 나뉜다. 이집트 아마르나 문서나 수메르 점토판을 모아 거기 쓰인 고대문자를 해독하려고 하는 언어학자와 그것들을 정리하고 체계를 잡아 과거를 현재에 재현하려는 역사문화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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