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맛키를 죽이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저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납니다. 방금 전에 맛키에게 자수를 권했던 저인데 이게 본인 일이 되고 보니 자수는커녕 어떻게든 이 책임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고뇌하고 백만 가지 궁리를 했으니까요.

불타기 전에는 상당히 큰 집이 있었던 모양으로, 건물은 흔적도 없이 타버렸지만 정원석이니 석등롱 같은 것이 여기저기 서 있는 것이 과거를 숨긴 채 새삼 폐허의 애수를 자아낸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아, 매미가 울고 있군."

"오, 백일홍이 피었군."

어쩌면 그것은 학생시절에 읽었던 겐지모노가타리*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히카루 겐지(光源氏)가 무라사키노우에(紫の上)를 자신의 이상적인 아내로 만들기 위해 주의 깊게 길러낸 것처럼 저도 어린 소녀를 자신의 이상의 아내로, 애인으로 기르자고 생각했죠.

源氏物語, 일본 헤이안 시대에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가 쓴 일본 최고(最古)의 고전소설. 무라사키노우에는 주인공 히카루 겐지의 부인으로 어릴 때부터 겐지가 키웠으며 겐지의 첫 부인이 죽고 상을 치르자마자 품에 안아 부인으로 삼는다.

"앗, 잠깐. 당신의 이름은…… 당신의 이름은……?"
"제 이름 말입니까? 제 이름은 긴다이치 코스케, 변변찮은 남잡니다."

창망하게 저물어가는 폐허 속의 급경사를 긴다이치 코스케는 잡낭을 흔들고 또 흔들며 서둘러 내려갔다. 세토 내해의 외딴 섬, 옥문도(獄門島)를 향하여…….

전쟁은 모두를 파괴한다

우리가 서양 소설에 아무리 빠져들더라도 그 세세한 감각을 이해할 수 없는 반면 일본 소설의 경우, 일본 문화가 우리 생활과 겹쳐 있었던 시간이 너무 길고 그 잠식이 깊었기에 상상 이상으로 공감하게 된다. 그러므로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20세기 초중반의 일본 사회 속에서 펼쳐지는 악몽은 더욱 끔찍스럽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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