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殿. 호류지에 위치한 팔(八)각 지붕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꿈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호호호, 그 말씀을 들으니 기쁘네요. 어쨌거나 욕망에 열중하니까요. 욕망, 욕망, 욕망……. 그저 그것만이 제 평생의 사는 낙이에요. 거기 있는 손녀딸 유카리도 이제 대충 믿을 만하지만 욕망, 욕망, 욕망…… 그 하나가 아직…… 그래서 저도 좀처럼 죽지를 못하네요,"
"오늘, 오늘 밤 이 시각에 너희는 이 잘린 머리와 재회했다. 앞으로 너희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으리라. 너희는 저주받고 있다. 너희는 저주받고 있다."
이런 잔꾀를 부리는 일은 나중에 갖가지 증거를 남긴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문제의 시계는 거의 완전히 폭파되었지만 미세한 분말은 수집할 수 있어서 경시청 과학검사소에서 조사 중이다. 거기서 뭔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설사 실패했다 하더라도 거기서 범인상을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지 않겠습니까? 그야 세상엔 타인의 가정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파괴하는 것만으로 기뻐하고 싱글거리는 악마 같은 영혼을 지닌 인간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체로 누군가를 협박하는 놈이란 거기서 뭔가 수확을 얻으려는 마음이 있는 겁니다. 데쓰야 소년을 협박해서 대체 뭘 얻을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데쓰야 소년은 그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4층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호-겐-시게루-여, 너는-다른-남자를-살해-했다. 작년 가을-너-에게-이것과-같은-편지와-사진-을-보낸 것은-혼-조-나오-키치-가 아니었다. 너는-지금-살인-자다. 그러니-요구-액-은-배가-될-것이다.
그는 이제 새삼 도시인의 무관심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어 자신의 행동에 자신을 갖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도시 속의 고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그에게 새삼 참혹한 절망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率堵婆, 죽은 사람의 공양을 위하여 무덤 뒤에 세우는, 위를 탑 모양으로 만든 갸름한 나무상자.
"아버지, 우리의 앞날이 어떻게 되든 저는 평생 끝까지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거예요. 어릴 때부터 이 나이까지 아버지에게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제겐 당신 말고 다른 아버지는 없어요."
부부의 이야기에 의하면 긴다이치 코스케는 일주일 정도 전에 짐을 꾸려 표연히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남자가 뭔가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면 그 뒤 구제할 길 없는 고독감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내가 지금까지 자주 역설해온 바이다. 그는 사건 해결에 성공했을 때 절대 우쭐해하지 않는다. 우쭐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로 격렬한 자기혐오에 빠진다는 것은 이 이야기 속에서도 지적했을 것이다.
그 금액을 듣고 나도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아이가 없는 이 노부부가 검소하게 살아가면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뿐이 아니에요. 선생님, 거기에 양도세까지 제대로 지불하셨어요." 부인 요시에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설마, 자살할 작정인 건……." "그런 바보 같은!"
"그런 느긋한 사태가 아니에요. 선생님이 전 재산을 여기저기 시설들에 기부한 흔적이 있어요. 보스 말로는, 두 번 다시 일본에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 아니냐고."
황제의 물건은 황제에게 돌려주라고 하는데 지금부터 40년 전 미국에서 돌아와서는 오카야마 현의 농촌에 불쑥 나타나 <혼진 살인사건>을 해결한 그는 그로부터 36년 뒤 <병원 고개의 목매다는 집>을 마지막으로 홀연히 제2의 고향이라 할 미국으로 날아가 그대로 광대한 사막 어딘가로 사라져간 것일까. 아니면 미국 도회지의 떠들썩함 속에 증발한 것일까. 가자마건설은 방대한 정보망을 동원해 긴다이치 코스케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성공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선생님은 오랫동안 슬럼프로 집필을 쉬고 계셨는데 저는 그 동안에도 여러 가지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여기에 두세 가지 당시 사건의 기록이 있습니다. 내키시면 써주세요.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도도로키 경부님이나 이소카와 경부님께 물어보십시오. 어떤 사건이건 두 경부님 중 한 분이 관여하고 계시니까요."
나는 이것을 긴다이치 코스케의 유언이라고 믿고 있다. 유언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지금 무한한 슬픔과 싸우면서 긴다이치 코스케가 남기고 간 방대한 자료와 씨름하는 중이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너져가는 전통 일본 사회의 구조와 가치관에 대한 잔인한 통찰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긴다이치의 마지막 사건에서 이러한 일본 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슬프지만 일말의 희망을 숨긴 눈으로 그리고 있다. 후속 세대는 이전 세대의 죄업으로 고통받고 좌절한다. 거칠지만 생기 넘치던 젊은이들은 세월이 흘러 죽기도 하고 초라해지거나 속물이 되기도 하지만, 견실한 인간으로서 다음 세대를 키워내고 다음 세대에 희망을 걸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던 묘하게 가슴을 울리는 여운이 있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모험담이 이토록 슬픈 울림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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