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지나간다. 덧없다. 무정하다. 내가 이 세상 어디에 무슨 소용인가. 때로, 써 놓은 내 글 속으로 들어가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나는 원한다. - P5
풀씨를 어둠 속으로 던지다 내가 사는 마을은 산과 산사이로 강물이 흐르는 곳이다. 마을이 작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진다. 뒷산에 바짝 붙은 우리집은 더 일찍 해가 진다. 한겨울 세시반이면 산그늘이 집으로 내려온다. - P17
바람이 왔다. 어제와는 다른 바람이. 나는 그 바람 속을 걸어갔다. - P20
몸이 활발하다. 새벽에 비가왔다. 빗방울은 차갑지 않았다. 디딤돌 파인 곳으로 물이 고여 있다. 어린 빗방울들이 만드는파문을 본다. - P20
글을 쓰다가, 강가에 서 있는 느티나무를 내다보았다. 실가지들이 꼿꼿하고 팽팽하다. 어제와는 다른 색을 가져왔다. 봄이 내 앞으로 한 발 더 다가왔다. 저 나무는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까. 나무 밑으로 강물이 흘러간다. - P21
비를 쫓는 비 다리의 중간쯤을 건넜을 때,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엉성한내 머릿속으로 떨어진다. 곧 시멘트 다리 위에도 빗방울 자국이 툭툭 정확하게 생겨난다. 빗방울이 많아졌다. 느티나무 밑으로 뛰어 들어갔다. - P23
소리가 빨라진다. 소란스럽다. 비가 점점 더 많이 내린다. 빗방울 소리는 절정으로 치닫는 음악 소리처럼 빨라진다. 아무래도 비가 더 쏟아질 모양이다. 비가 비를 강 건너로 쫓는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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