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말기 풍몽룡이 쓴 『열국지』는 춘추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다. 무려 550년간에 달한다. 같은 난세일지라도 삼국시대의 5배가 넘는다. 시간대도 길지만 등장인물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기본적으로 알아 두어야 할 중요 인물만도 2백여 명에 달한다. 같은 역사소설 『삼국지』의 3배에 가깝다.

『열국지』의 애독자 가운데 정관계와 학계 및 언론계 인사들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사실史實 속에서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는 지혜를 얻고자 한 결과로 보인다.

『열국지』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학의 보고라는 사실에 있다. 원래 인문학은 인간학에 문조文藻를 덧씌운 것이다. 문文, 사史, 철哲로 치장된 문조를 벗겨 내면 그 속살인 인간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동양학의 대가인 후쿠나가 미쓰지福永光司 전 교토대 교수가 언급했듯이 동양 문화의 정수는 인간학에 있고, 이는 춘추전국시대에 활짝 꽃을 피웠다. 서양의 역사・문화가 그리스와 로마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과 같다.

역사를 배제한 사상은 공허하고, 사상이 배제된 역사는 맹목적이다.

관포지교의 시작
춘추시대 중엽 제나라 재상 관중管仲은 제환공齊桓公을 도와 사상 첫 패업을 이룬 인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평생 변함없는 우정을 나눈 포숙아鮑叔牙의 성원과 헌신적인 도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게 바로 관포지교管鮑之交이다.

포숙아는 젊었을 때 함께 장사하면서 가난한 관중에게 이익을 더 보도록 돕고, 생사가 엇갈리는 운명의 순간에 관중을 구해 내고, 마지막으로 재상의 자리를 관중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포숙아가 없었다면 관중도 없었을 것이다.

"관중은 구구하게 돈을 탐해 나보다 배나 더 돈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오. 그는 집안이 가난하고 식구가 많소. 내가 그에게 더 가지고 가도록 사양한 것이오."

예나 지금이나 관포지교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이와 정반대되는 오집지교烏集之交가 보편적이다. 까마귀들의 사귐이라는 뜻이다. 『관자』 「형세」는 오집지교를 이같이 풀이해 놓았다.

"사람을 사귈 때 거짓을 일삼으면서 인정도 없이 은밀히 모든 것을 취하려는 자들이 있다. 이들을 일컬어 ‘오집지교’라고 한다. 오집지교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비록 처음에 서로 기뻐하며 사귀지만 후에 반드시 큰 소리를 내며 다투게 된다."

오집지교는 모든 것이 관포지교와 정반대이다. 매사를 이해관계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관자』에서 특별히 오집지교를 언급한 것은 관포지교와 너무나 대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사치하면 국고를 낭비하게 되어 인민들이 가난하게 된다. 인민들이 가난해지면 간사한 꾀를 내어 나라를 어지럽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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