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우리가 살림이 평범하고 소박해서 즐거움이나 화려함을 선사할 수는 없어.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노생거 사원*에서 지내는 데 나쁘지 않도록 해 주지."
노생거 사원! 짜릿한 단어를 듣자 캐서린의 감정은 황홀의 절정으로 치달았다. 감사하고도 행복해서 침착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렇게 우쭐한 초대를 받다니! 함께 지내 달라는 부탁을 이렇게 열렬하게! 모든 것이 영광스럽고 뿌듯했고, 현재의 모든 기쁨과 미래의 희망이 다 담긴 초대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만 떨어진다면 가겠다고 성심껏 대답했다. "바로 집에 물어보겠습니다"라고, "반대하지 않으실 거예요"라고.
그런데 그게 이루어지려 한다. 집, 복도, 안채, 마당, 안뜰, 별채 같은 건 다 없을 수도 있지만, 노생거는 어쨌든 사원이었던 곳이고 바로 거기에 머물게 된 것이다. 길고 축축한 길, 좁은 방들과 버려진 예배당을 매일 가 볼 수 있고, 어떤 전해 오는 전설, 상처받고 불운하게 살다 간 수녀의 끔찍한 기억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완전히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이루어지려 한다. 집, 복도, 안채, 마당, 안뜰, 별채 같은 건 다 없을 수도 있지만, 노생거는 어쨌든 사원이었던 곳이고 바로 거기에 머물게 된 것이다. 길고 축축한 길, 좁은 방들과 버려진 예배당을 매일 가 볼 수 있고, 어떤 전해 오는 전설, 상처받고 불운하게 살다 간 수녀의 끔찍한 기억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완전히 가라앉힐 수 없었다.
"형이 쏘오프 양에게 다가가서 고통스러워요, 쏘오프 양이 그걸 받아 줘서 고통스러워요?" "그 말이 그 말 아닌가요?" "몰란드 씨는 차이를 알걸요. 남자는 다른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흠모한다는 이유로 괴로워하지 않아요.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여자 몫이죠."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원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군요." "그럼요. 책에서 읽은 것처럼 멋지고 오래된 곳 아닌가요?"
"‘책에서 읽은 것’ 같은 집에서 나오는 모든 공포를 마주할 준비가 됐어요? 심장이 튼튼해요? 미끄러지는 벽장문과 양탄자를 견딜 수 있겠어요?"
"그럼요! 집에 사람이 많으니까 쉽게 놀라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이 집은 오랫동안 사람이 안 살거나 버려진 적이 없으니까 미리 알리지 않아도 아무 때나 돌아올 수 있는 곳이잖아요"
사원! 진짜로 사원에 와서 기뻤다! 그런데 방을 둘러보니 그걸 의식하게 하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구로 가득 차있었고 모두 현대적인 취향의 우아함이 넘쳤다. 엄청 널찍하고도 육중한 구식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을 줄 기대했던 벽난로는 겨우 럼포드*였는데, 멋진 대리석이긴 하나 평범한 석판으로 되어 있었고 그 위에 정교한 영국 도자기가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장군이 말하기를 고딕 창문을 굉장히 정성스럽게 관리한다고 해서 특히나 관심이 갔는데, 그녀가 상상했던 것에 못 미쳤다. 뾰족한 아치가 고딕 모양으로 보존된 건 분명했다. 심지어 창문 여닫이조차도 그랬다. 그런데 창틀이 하나같이 너무 크고 깨끗하고 밝기만 했다! 조금이라도 갈라진 틈이나 무거운 돌 재료, 색칠한 유리창과 먼지와 거미줄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실망스럽기만 했다.
금으로 치장한 방 하나를 특별히 언급하다가 시계를 꺼내 보더니 깜짝 놀라며 5시 20분 전이라고 말했다! 마치 뿔뿔이 흩어지라는 신호가 내려진 듯했고, 캐서린은 틸니 양에게 다급하게 끌려가면서 노생거에서는 시간을 철저하게 엄수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앨런 씨 집에서 훨씬 큰 방을 많이 봤겠지?" "아뇨." 캐서린은 꾸밈없이 대답했다. "앨런 씨의 식당은 이 절반도 안 돼요." 평생 이렇게 큰 방은 처음이라고 했다. 장군은 기분이 좋아졌다. 큰 방이 있는데 굳이 안 쓸 건 없다 싶었다.
저녁은 별일 없이 지났고, 가끔 틸니 장군이 자리를 비우면 훨씬 밝고 명랑해졌다. 그가 옆에 있으면 자잘한 여행의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기운이 빠지고 억압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에도 대체적으로 행복감이 더 컸고 바쓰에 남은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불은 한순간 밝아지더니 그만 꺼져 버렸다. 호롱불은 더한 위협에도 안 꺼졌을 텐데. 몇 분 동안 캐서린은 공포에 사로잡혀 꼼짝도 못 했다. 완전히 끝났다.
남아 있는 심지에 다시 불을 붙일 가망은 없었다. 칠흑 같은 무거운 어둠이 방을 채웠다. 갑자기 포효하는 거센 광풍이 순간의 공포를 더했다. 캐서린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시나무 떨듯 했다. 잠시 고요해지더니 물러가는 발소리와 먼 곳에서 문 닫는 소리가 그녀의 놀란 귀에 꽂혔다.
사람이라면 더는 못 버틸 상황이었다. 차가운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고 원고가 손에서 떨어졌고, 그녀는 침대를 겨우 찾아 다급하게 뛰어오른 다음 이불 밑으로 깊숙이 기어 들어감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날 밤 눈을 감고 잔다는 것은 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침 해가 뜨자마자 읽으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지루한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그녀는 몸을 떨면서 이리저리 뒤척이느라고 이 세상의 모든 잠든 이들을 부러워했다.
아직도 몰아치는 폭풍우는 여러 가지 소리를 만들어 냈는데, 바람 소리보다도 더 무서운 소리가 가끔 겁에 질린 그녀의 귓전을 때렸다.
눈에 불을 켜고 한 면을 재빠르게 일별했다. 주요 내용에 집중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아님 뭔가 잘못 본 것인가? 눈앞에 펼쳐진 것은 삐뚤빼뚤하고 현대적인 글씨체로 써 내려간 면직물 목록에 불과했다! 눈앞의 증거를 믿어야 한다면, 그건 세탁물 영수증일 따름이었다.
종이 한 장을 더 집어 들었지만 약간 다를 뿐 역시나 목록이었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다르지 않았다. 셔츠, 양말, 넥타이, 조끼의 목록이 차례로 나왔다. 동일한 글씨체로 쓰인 두 장을 더 보니 우편료, 머리 파우더, 구두끈, 승마 바지 세제 등 고만고만한 품목에 들어간 비용이 적혀 있었다.
다음 날에도 그 비밀스러운 방을 조사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일요일이었는데, 오전 기도와 오후 기도 사이 시간을 몽땅 장군을 따라 야외에서 걷거나 집에서 차가운 고기 음식*을 먹거나 하면서 보냈다.
아무리 캐서린의 호기심이 크다고 해도, 저녁 식사 후 6시와 7시 사이의 엷어지는 햇살에 기대거나 또는 그것보다 더 밝지만 협소하게 비추는 믿을 수 없는 촛불만 달랑 들고 그 방을 탐험할 용기는 없었다.
추모비를 세워 놨다는 이유만으로는 틸니 부인이 실제로 살아 있을 거라는 의심을 조금도 해소할 수 없었다. 부인의 유골이 잠들어 있는 가족묘로 내려가서 유골이 담겼다고 알려진 관을 들여다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캐서린이 책에서 한두 번 읽은 것도 아니고, 밀랍으로 만든 형체가 등장하고 가짜로 꾸민 장례식을 벌이는 것쯤은 태연하게 해치웠을 것이다.
친구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흘깃 쳐다본 후 그에게 달려간 사이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피신한 다음 문을 잠그고는 다시는 내려갈 용기가 안 생길 거라 생각했다.
"나도 계획보다 일찍 돌아올 줄 몰랐어요. 세 시간 전에 상황을 보니 기쁘게도 더 머물 이유가 없는 것 같더군요. 근데 창백해 보입니다. 내가 계단을 너무 빠르게 올라오는 바람에 놀란 모양이네요. 이 계단이 하인 숙소와 연결되는 것도 몰랐을 것 같은데, 그렇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이웃의 자발적인 감시꾼들이 서로서로를 감시하고, 사통팔달로 뚫려 신문이 모든 것을 실어 나르는 이런 나라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런 짓이 저질러질 수 있단 말인가요?
친애하는 몰란드 양,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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