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 세 개의 가르침
옛날에 서당 선생이 삼 형제를 가르쳤다. 어느 날 서당 선생은 나란히 앉은 삼 형제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봤다. 첫째가 대답하길 “저는 커서 정승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니, 서당 선생이 “그렇지! 사내대장부는 포부가 커야지”라고 응수하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둘째가 “저는 커서 장군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니, 서당 선생이 이번에도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아암, 그래야지. 사내대장부라면 큰 뜻을 품어야지”라고 했다. 그러고는 막내를 바라보며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라고 물었다. 막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저는 장래희망은 그만두고 지금 여기에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엉뚱한 대답에 서당 선생이 “개똥 세 개? 그건 왜?”라고 물을 수밖에. 막내가 대답하길 “저보다 글 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그 입에 개똥 한 개를 넣어주고 싶고… 저보다 겁이 많은 작은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그 입에도 개똥 한 개를 넣어주고 싶고….” 여기까지 말한 막내가 우물쭈물하니, 서당 선생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럼 마지막 한 개는?” 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기까지 말씀하신 외할아버지가 잠시 뜸을 들이시다가 나에게 물었다. “얘야, 막내가 뭐라고 했겠니?” 나는 주저 없이 “그거야 서당 선생 먹으라고 하지 않았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건 왜 그러냐?” 나는 또 서슴없이 “큰형과 둘째 형의 그 엉터리 같은 소리에 맞장구치며 좋아했으니까 그렇죠, 뭐!”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는 주저함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자 외할아버지는 나를 넌지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마지막 세 번째 개똥은 서당 선생이 먹어야 마땅하지. 그런데 얘야,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잊지 마라. 앞으로 네가 살아가면서 오늘처럼 세 번째 개똥을 서당 선생이 먹어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 말을 하지 못할 때엔, 그땐 네가 그 세 번째 개똥을 먹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알았어요.” 나는 작은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 번째 개똥을 하나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세 번째 개똥은 당신 몫입니다!”라고 발언했어야 마땅했음에도 침묵하고 지나갔던 나 자신을 자주 발견했다. 그렇지만 세 번째 개똥을 되도록 적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의 속내 한구석에 께름칙한 무엇인가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것은 내가 나를 ‘개똥 세 개’ 이야기에 등장하는 삼 형제 중에서 막내와 일치시킨 것과 관련되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나?’ 나는 첫째와 둘째를 타자화했고 능멸했다. ‘그런 나는 첫째보다 글 읽기를 즐기고 있나?’ ‘나는 둘째보다 겁이 없나?’ 이런 물음들이 나를 헤집었다. 나는 글 읽기보다는 놀이를 훨씬 더 즐겼다. 또 겁도 많다. 나는 막내보다 첫째와 둘째에 가까웠다. 나는 나의 진짜 모습에 가까웠던 첫째와 둘째를 타자화하고 업신여겼던 나 자신을 되돌아봐야 했다. ‘개똥 세 개’의 등장인물이 ‘세 자매’가 아니라 ‘삼 형제’라는 점을 알아차린 건 그보다 또 한참 뒤의 일이었는데, 그러자 삼 형제의 바깥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프랑스 땅에서 가난한 난민의 처지가 되었을 때, 막내는커녕 첫째나 둘째도 아닌, 서당 마당을 쓰는 개똥이가 된 내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결 : 거칢에 대하여 | 홍세화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