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의 주류를 형성해온 사람들이 지워버리려 애쓴 기억들을 되살리는 날이 선 글들이었기에 몇몇 독자분들은 1권을 읽고 시궁창물을 뒤집어쓴 느낌이라는 항의 편지를 보내 주시기도 했다. 그분들께는 내 소년 시절의 길잡이였던 김수영의 절창 ‘거대한 뿌리’의 한 구절로 뒤늦은 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나는 여기에 모인 글들을 쓰면서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 끝낼 수 없는 문제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인권단체,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나의 역사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이런 오만한 기대와는 달리 정작 나와 같이 일하는 베트남전 진실위원회의 차미경, 김숙경, 이수효 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의 최정민, 정용욱 님을 비롯한 많은 활동가들께는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하는 원고 마감을 맞추어야 한다는 핑계로 내 몫의 일을 못해 오히려 부담만 준 것 같아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나야 안정된 직장에 글을 쓰면 원고료에 인세 수입도 생기지만, 말도 안 되는 활동비와 근무 여건 속에서 자신의 인권은 반납한 채 남들의 인권을 위해 애쓰는 이런 분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는 놋주발보다 더 쨍쨍한 추억을 쌓아가는 축복이었다.
대한민국사 2 | 한홍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