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황 여사님은 생각하는 게 어쩜 그리 저이하고 똑같으지요? 저이도 박태준 회장님은 참 아까운 대통령감이었다고,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마다 안타까워하고는 해요. 보수이면서도 진보도 잘 이해하고 존중했던 폭넓은 분이었다고요."
"아아, 광양 재첩국 맛은 언제나 기가 막힙니다." 이태하가 먼저 감탄을 터뜨렸고, "어머나, 이 맛! 서울 재첩국은 재첩국이 아니에요." 황연주가 잇따라 감탄했다.
"상큼하고, 알싸하고, 풋풋하고, 은은하고, 그러면서 깊고, 진하고……, 참 맛이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게 특이하고 묘해요. 이 국물 색깔도 푸르스름한 게 아주 곱기까지 하구요."
사회학적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돈이 생겨난 이후 5천여 년에 걸쳐서 줄곧 돈의 노예였소. 그런데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사회주의와의 대결에서 사회주의가 스스로 몰락하면서 자본주의가 독불장군으로 세계 지배력을 장악하게 되고, 그 세월이 30년이 넘으면서 이 나라 청소년과 젊은이 들까지 돈의 마력에 완전히 휘말리게 되고 말았소.
‘군중 속의 고독…….’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1학년 교양 국어 시간에 교수가 그 말을 설명하면서 바로 이런 건널목을 예로 들었던 것이다.
‘미친것들, 개 새끼한테 영어를 가르쳐? 미국이 그렇게도 좋으냐? 웃기고 자빠졌네.’ 너무 역겨워 이렇게 욕을 해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네, 회장님. 저도 개를 좋아합니다. 해피가 해피하도록 잘 하고, 많이 사랑하겠습니다."
그러나 회장이 원하는 것이고, 회장의 마음에 들어야 하니까 전진혜는 해피를 해피하지 않은 마음으로 회장이 만족할 수 있도록 목욕시켰다.
"어쩌겠어. 돈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 한때 척결의 대상으로 삼았던 자들에게, 병들어 보험 애걸을 하고 다니며 거절을 당하는 처지니 이보다 리얼한 실존이 어디 있고, 이보다 리얼한 부조리가 어디 있겠나. 그게 돈이라는 흉물이 부리는 괴력일 거야."
"회사에서 퇴직금 정산한 것으로 모든 관계를 끝낸 것 아닐까?"
이태하는 사무실을 나섰다. 드높은 빌딩들만 치솟아 하늘이 좁아질 대로 좁아진 도심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넓은 거리에는 숨 가쁘게 돌아친 도시의 일과에 지친 사람들이 가득 걸어가고 있었다. 이태하도 복잡한 생각이 뒤엉킨 채 그 사람들 속으로 섞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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