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선은 혀끝에 멍이 들지 않나 싶게 거세게 혀를 찼다.
"그야 당연하지. 권력자들의 그런 부패와 타락에 환멸을 느껴서 한지섭 선배가 정계를 떠났으니까. 권력자들의 그 탐욕이 결국 돈이 정치를 지배하게 만들고, 나라 전체도 병들게 만드는 거지."
그 사회적 기여와 보람을 위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가입했었다. 그것은 사회적 기여라기보다는 자기 구원을 위한 한 가닥 끈을 마련한 것인지도 몰랐다.
군부독재 타도의 선봉이었던 운동권 경력과, 두 번의 투옥이 붙여준 두 개의 별과 맞설 수 있는 상대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완전히 절망했다. 야당은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 약간 다른 보수일 뿐이야. 진보라고 생각했던 건 우리의 착각이고, 오해야. 진보 의식은 거의 없어. 그저 기득권에 안주해서 자기네 권력 지키기에 급급할 뿐이지. 왜 세상이 그렇게 바뀌지 않고, 역사 발전이 그렇게 안 되는지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애. 진언은 그 잘난 당론 앞에서 여지없이 묵살되고, 진보적인 개혁안을 제기하면 따돌림당하고, 돈키호테 취급을 당하고 할 뿐이야. 그동안 좋은 수업 많이 받았다."
‘검사동일체’ 정신과 ‘상명하복’의 대원칙을 연수원에서부터 주입받은 그들이었던 것이다. ‘검사는 한 몸’이며 ‘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서는 복종한다’는 그 뜻은 ‘검사’라는 이성적 특수직에는 전혀 안 어울리게 조폭적 야비함과 천박함을 너무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국가기관 그 어디든 사통팔달 로비력이 안 미치는 데가 없다는 그 기업의 막강한 힘은 그렇게 여실하게 입증되었다. ‘로비력’이라는 그 모호한 말은 다름 아닌 ‘금력’—돈의 힘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지치지 말고 성실히 합시다.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이 기쁨이고 보람이고, 진정으로 행복한 자족적 삶이 아니겠소. 그 길을 향해 우리 함께 지팡이가 됩시다.’
"참, 자식은 겉을 낳지 속을 못 낳는다는 말이 어찌 그리 맞누." 남편이 긴 한숨 끝에 중얼거린 말이었다.
‘정치와 종교가 인간 세상의 2대 필요악이라는데, 돈을 더해서 3대 필요악이 아닐까…….’
이 형은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하오. 해마다 불어나는 순수한 동지들이 있지 않소. 그 일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자기희생적인 세상의 빛이오.
"그 사람은 운동권 처녀성을 지금까지도 지니고 있는 사람이야."
"운동권 처녀성?"
"응, 지금도 그때 그 정신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사생결단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우리하고는 많이 달라."
"아이고, 자네 나이가 몇인데 여전히 그렇게 깐깐하게 구나. 이젠 돈 욕심을 낼 나이도 됐잖아."
"응, 나도 돈 좋아해. 다만 노예로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하이고 아부지, 누가 면사무소 출신 아니라고 헐성불러 그리 찬찬허시요.’
"그래, 현규가 ‘돈은 인간의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다’ 하는 정의를 입증해 주는 실증자와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러게,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메운다고 했잖아."
흔히 말하는 ‘돈의 위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실감은 바로 ‘지배의 통쾌함’이기도 했다. 그렇다, 지배의 통쾌함. 그 기분은 참 야릇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뭐라고 꼭 찍어서 말할 수 없는 그 기분은 떳떳함이고, 뻐근함이고, 당당함이고, 승리감이고……, 참 여러 가지 기분이 뒤엉키는 것이었다.
"인간 사회를 지배해 온 두 개의 권력은 정치와 종교다. 그런데 그 두 가지를 지배하는 권력이 있다. 그것이 돈이다."
"모든 종교의 신들은 다 죽었고, 생살여탈권을 가진 돈만이 오로지 살아 있는 신이다."
"세계 최고의 역사학자이면서 소설가로도 꼽히는 중국의 사마천은 벌써 2,200여 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백금으로는 형벌을 면하고, 천금으로는 죽음을 면하고, 만금으로는 세상을 얻는다. 바로 그 세상을 얻는다는 말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재벌들이 국가권력까지 쥐고 흔들어대는 작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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