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후
 
지금 가마는 1,300℃의 지옥이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나갈 수 없는 불지옥.

사건 발생 전
 
쏴아아아아.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흙내가 일었다. 빗줄기가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처마 아래로 떨어졌다.

"지나갈 비다. 호들갑 떨지 마라."
그때 갑자기 코맹맹이 남자아이 목소리가 청암의 말을 치고 들어왔다.
"오늘 전국 곳곳에 소나기가 내리겠습니다. 강한 바람과 함께 천둥과 번개도 칠 것으로 보입니다. 수도권과 강원 영서, 충북 등에 소나기치고는 많은…."

‘반향어’란 자폐증의 하나로 상대방의 말을 따라 말하는 증상을 가리킨다. 상대방이 말했을 때 바로 따라서 하는 ‘즉각 반향어’와 상대방이 말하고 한참 지난 후에 따라서 하는 ‘지연 반향어’로 나눌 수 있다.

그렇다고 모아의 반향어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 가만히 듣다 보면 그 말들 속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들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왕에게 다기를 바칠 것을 명 받았지만 그걸 거부하기 위해 두 손을 잘랐다는 이이세 명장의 일화는 도예에 문외한인 지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러다간 내가 죽든가 저 악마를 죽이든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면 사흘은 지나야 가마 내부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이이세 도요의 명작을 만들어 낸 건 모두 이 가마입니다. 백 년도 넘게 도예가로 살아온 것이니 도예 명장은 바로 이 가마인 셈입니다."

"아, 죄송해요. 욕망이 적을수록 행복하다는 톨스토이의 말이 갑자기 떠올라서…."

"호의라는 건 따듯한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친절을 뜻합니다."

택시에서 내려서자, 눈앞에 커다란 건물이 서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건물은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동떨어진 곳에 홀로 자리 잡고 있어 어딘가 고립된 인상을 준다.
여기가 오늘의 마지막 의뢰처군.

아티스트 도현. 조각품이나 사물을 활용한 설치미술계의 떠오르는 신성이라 정평이 난 남자다. 일개 설비기사인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한… 건 아니고, 그저 팸플릿에 그렇게 적혀있던 것뿐이었지만.

"그걸 설명하려면 이것부터 먼저 말씀드려야겠네요. 혹시 [교수대 위의 까치]라는 그림을 아십니까?"
"그림이요? 아뇨,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뭐랬더라, 전기세 절감 차원에서랬나? 딱히 누가 훔쳐 갈 것도 없고,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나 뭐라나. 나 참, 정신이 있는 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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