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 이것은 내가 갖고 있는 여행문서(TITREDE VOYAGE)의 목적지란에 적혀 있는 말이다. 다시 말해, 주네브협정에 의거 내가 발급받은 여행문서는 나에게 다른 모든 나라에는 갈 수 있으나 꼬레 (Corée)에는 갈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서 꼬레만 분단되어 있고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는 분단되어 있지 않다. 결국 나는 분단되어 있는 나라인 꼬레에만 못가고 분단되어 있지 않은 모든 나라에 갈 수 있다.

[후기]
사람들이 말하길, ˝눈에 띄지 않으면 마음에도 없어진다˝ (Out of sight,
out of mind)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이 나에겐 진리가 아니었다. 두고 온나의 벗들이, 땅이, 그리고 가족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나는 더욱더 안간힘을 쓰며 붙들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것 같았다. 그것은 나처럼 현재가 없었던, 그리하여 미래도 없었던 사람에겐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나는 과거를 살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과거를 살아왔다.
과거를 살아야 했던 나는 철이 들지 않았다. 나이도 먹을 수 없었고,
헛되거나 헛되지 않거나 욕심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 청년으로 남아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언제부턴가 나는 이제 돌아간다해도 그대로 이방인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했다.
그것은 실로 뼈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이방인들 속의 이방인보다 동방인들 속의 이방인이 더 외롭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꿈처럼 그리던 돌아갈 때의 내 모습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 검은 그림자는, 지구의 회전축이 23.5도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는 사람이 갑자기 많아짐으로써 더욱더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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