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 소리에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새벽 두시 반. 동생 말대로 어김없이 정각이었다.

벨은 계속 울렸다. 착신을 가리키는 빨간 등이 조급하게 깜빡였다. 나는 동생을 채근해서 수화기를 들게 했다.

아까도 얘기했죠? 물건에도 영혼이 깃들 때가 있어요. 영혼이 있는 존재에는 반드시 자정 작용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언제든지 자신을 가장 좋은 상태로 유지해 두려는 기능이요.

왜 그렇게 웃으세요? 네? 만든 얘기? 제가 지어낸 얘기로 당신을 협박하려고 한다는 겁니까?

엄마인 이사코는 다소 무리하더라도 이왕이면 고급품을 사라고 했다. 어차피 또다시 신용카드 신세를 지는 꼴이 되기야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불과 사흘 전에 회사 근처 부티크에서 사만 팔천 엔짜리 가을 정장을 산 참이었다. 엄마 말대로 고가의 물건에 손을 댔다가는 다음 달 카드 값 막기가 엄청나게 버거워지고 만다.

점원의 명쾌한 주장을 듣고서 디자인이 약간 귀엽고 실루엣이 예쁜 상복을 골랐다. 상복을 입으면 여자는 누구든 삼십 퍼센트쯤 예뻐진다.

당신은 말했어요. 인간은 내일 덜컥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플 만큼 절실히 깨달았다, 사는 동안에 하고 싶은 걸 해 두지 않으면 분명히 후회할 거다,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게 살지 않으면 죽어도 죽을 수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나랑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해 주었어요.

우리의 추억이 훼손될 만한 일은 그만두고 모든 걸 찬란했던 기억 속에 담아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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