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나는 이것만은 알았다.
이 노래의 끝을 맛본 이들은
자기만 알고,
다음 노래의 맛을 알으켜 주지 아니하였다.)

하늘 복판에 아로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 P15

내일은 없다-어린 마음에 물은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내일은 없나니
... - P17

거리에서

달밤의 거리
광풍이 휘날리는
북국의 거리,
도시의 진주
전등 밑을 헤엄치는
쪼그만 인어 나,
달과 전등에 비쳐
한 몸에 둘셋의 그림자
커졌다 작아졌다,

괴롬의 거리
회색빛 밤거리를
걷고 있는 이 마음,
선풍(旋風)이 일고 있네
외로우면서도
한갈피 두 갈피
피어나는 마음의 그림자,

푸른 공상(空想)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 P18

공상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도 모르고
한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知)의 수평선을 향하여. - P24

꿈은 깨어지고

꿈은 눈을 떴다,
그윽한 유무霧)에서.

노래하는 종다리,
도망쳐 날아나고.

지난날 봄타령하던
금잔디 밭은 아니다.

탑은 무너졌다.
붉은 마음의 탑이-

손톱으로 새긴 대리석 탑이 -하루 저녁 폭풍에 여지없이도,

오- 황폐의 쑥밭,
눈물과 목메임이여!

꿈은 깨어졌다,
탑은 무너졌다. - P25

기왓장 내외

비오는날 저녁에 기왓장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웁니다

대궐지붕 위에서 기왓장내외
아름답던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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