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맡긴다?
그럼 파쿠 씨가 실패하면, 맡긴 목숨은 돌아오지 않나? 신의 목숨도, 시로타의 목숨도? 이건 옳게 이해한 걸까.
―여기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 걸까.

"에모토는 분명히 뱀 같아요. 사람을 잘 이용하고, 속이고, 삼켜 버리죠."

"나는 그 여자애를 알아. 어디 사는 누군지 알아."
마음 깊은 곳에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파쿠 씨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니까 잊지 않아.
"그 여자애는 십 년 전 8월에, 이 현실 세계에서 행방불명되었어."

감주甘酒일본의 전통적인 감미음료 중 하나. 혼탁한 흰색을 띠고 있다. 술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알코올은 거의 함유되어 있지 않아 시판되는 상품은 소프트드링크로 분류될 때가 많다

"나는 멋대로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왔고, 어머니와 했던 단 하나의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어."

그것보다 더 잘못인 것은, 왜 약속을 지킬 수 없었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사건은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가미카쿠시神隱し예로부터 사람의 행방이 갑자기 묘연해지면 덴구(天狗)나 산신(山神)이 한 일이라고 여겨 이렇게 불렀다’다. 마치 신이 소매로 숨겨 버린 것처럼 어린아이나 젊은 여성이 홀연히 모습을 감추는 현상은 옛날부터 존재했다. 또한 그렇게 모습을 감춘 사람이 몇 년 후에 돌아오는 일도 있고, 그런 경우에 그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고 사라진 당시의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이온은 신의 소매 그늘로 초대받아 간 것이 아닐까. 생판 남의 감상적인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뿐이겠지만, 하야시다 노인의 다정한 바람이 전해져 온다. 사건의 진상이 항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를. 어머니도 아이도, 모두 구원받기를.

"학교에 있으면서 ‘사라진’ 경우에는 일일이 연필로 그림을 그렸을 것 같지는 않아. 머릿속으로 그렸을 거야. 그런 적, 나도 있으니까."

이제부터 그리려고 하는 세계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깊이 집중하면 주위의 현실이 사라지고 자신의 머릿속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또는 의도하지 않아도 들어가버린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일념 덕이야. 그런 점에서도 이온이랑 닮았다고 생각해."

보호받고 있는 거지―.
"어른이 된 이온 씨는 그 성에서 아홉 살 여자아이였던 시절의 자신을 지키고 있어."
―계속 여기에서 살자.
"여기라면 더 이상 아무한테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 어머니한테 혼나거나, 어머니의 남자한테 걷어차이거나, 배고프거나, 춥거나, 쓸쓸할 일도 없어."
―여기 있으면 계속 행복할 거야.
파쿠 씨가 페트병에 든 차를 마시더니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 성의 세계는 이온 씨 자신이야."
열아홉 살인 그녀의 아바타다.

그때 깨달았다. 세계유산이란, 요컨대 유적이지. 현역 건물이 아니다. 보존되어 있지만, 살아 있는 건물은 아니다.

그것은 동결된 죽음이다.

별안간 가슴을 쿡 찔린 것처럼, 신은 깨달았다.
그런가. 이 둘은 현재가―.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불행한 것이다.

그들에 섞여, 신은 외쳤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너무나도 가엾고, 애처롭고, 슬퍼서.

―그런 걸로 자기 인생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저는 뻔뻔스러웠어요.

"그건 말이지, 너희 학교 선생님 중에도 조금은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 있을 뿐인 거야. 이전의 세계에서도 분명히 그렇게 되었을걸."

"고마운 교훈이야. 나는 인생은 길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반나절도 지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신의 가슴을 쳤다. 한때의 밝은 상상을 날려 보내는, 차가운 현실의 바람. 시로타가 솔직하게 입에 담은, 가장 무거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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